엡6장 18-20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유은호 목사 2015.6.21.
창문교회 http://www.windowchurch.com/
법륜스님(1953-)이쓴『기도』라는 책이 있습니다. 부제로는 내려놓기(Letting go)입니다. 그 책에서 법륜스님은 기도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언제나 ‘내가 옳다’는 생각을 버리는 기도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우리 마음에 물든 탐진치(貪瞋癡), 즉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 이 삼독을 걸러내면 어떤 사람이라도 모두 다 청청해 질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생각만 벗어 버리면 누구나 다 자유롭고 행복한 경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부지런히 정진하라‘고 하셨듯 다만 부지런히 정진하시기 바랍니다.“(법륜,『기도 : 내려놓기』(서울: 정토출판, 2010), 100, 145).
불교에서 말하는 기도는 마음의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내려놓고 비우기 위해 끊임없이 정진하는 것이 기도의 목표입니다. 불교의 기도에서는 자신의 노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의 노력에 따라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수도 있고, 자신의 정진하는 노력이 약하면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비해 기독교의 기도는 자신의 노력으로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기독교의 기도는 성령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유다서 20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의 기도는 자신의 노력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ἐν) 성령의 능력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성령안에서 기도하는 사람의 첫 번째 특징은 자기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음성을 들으며 성령의 능력으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6장 18절에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안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의 간구는 간절하게 간청, 애원(entreaty)하는의미를 가집니다.(Liddell and Scott's Greek-Englis h Lexicon Abridged (the Littl e Liddell) (Simon Wallenberg Press, 20 07), 151, 155). 여기서 보면 기독교가 말하는 기도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망과 소원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기도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기독교의 기도가 무당종교와의 차이가 있다면 무당종교는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일방적으로 구하는 무당종교에 비해 기독교는 내 기도와 간구를 구하되 항상 성령안에서 성령의 뜻대로 구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청년때에 어느 선교단체가 주최하는 수련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조별 모임을 할 때 특이한 기도로 기도모임을 가졌습니다. 모두 눈을 감고 성령께서 마음에 주시는 음성을 듣고 한마디씩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는 아무리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고 해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기 저기서 한마디씩 기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번 기도모임을 하는 동안 저도 눈을 감고 성령께서 제 마음에 음성을 들려 주시도록 기다렸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제 마음에 생각나게 하시는 것을 성령의 음성이라고 믿고 저도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제가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 생각나면서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로마서 8장 15절에는 우리를 성령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을 받은 자들은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우리 영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성령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성령의 음성을 들으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내 개인의 기도와 간구를 내 노력이나 내 뜻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가르쳐 주시는 음성을 들으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성령 안에서(ἐν) 기도한다고 할 때 여기의 안은 우리가 성령속으로 들어가 그분에게 감싸여서 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내 뜻으로 내 생각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뜻과 성령이 가르쳐 주시는 것을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도를 할 때 조용히 성령께서 내게 주시는 음성을 들으면서 기도합니다. 그러다 보면 내가 나 자신을 보지 못한 부분을 성령께서 보여주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해주십니다. 때로는 죄의 문제를 생각나게 하시면 회개합니다. 때로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게 하시면 그 상처를 치료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누구를 미워하는 것이 떠오르면 성령께서 보여주신 것임을 믿고 미움을 없애 달라고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때로는 내가 간구하며 소원하는 것을 간청하면서 기도하도록 마음을 주십니다. 그러면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때로는 내가 생각지도 것을 기도 제목으로 주시면 그것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기 전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 성령께 귀를 귀울이면 저에 대해서 기도해야 할 것들이 떠오릅니다. 그러면 그것들을 놓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성령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성령의 음성을 들으면서 성령안에서 자신을 위해 기도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안에서 기도하는 사람의 두 번째 특징은 성도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18젛 후반부에 보시면 성령안에서 여러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기독교 기도의 가장 큰 특징중에 하나는 나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성도들간에 기도를 해주면 고난도 이겨내고 힘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고난도 기도로 함께 나누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더 빨리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려 성도님들이 서로 서로 기도의 제목을 나누면서 성령안에서 중보기도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속히 여러분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AD 100년경 시리아 안디옥의 주교였던 이그나티우스는 젊은 시절 베드로와 바울을 직접 만난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도 요한의 직제라고 알려져 있는 분입니다. 그는 로마의 핍박으로 로마에서 순교하러 끌려갑니다. 쇠사슬에 묶여 로마서 끌려 가면서 에베소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남겼습니다. “저는 그분(예수님) 때문에 쇠사슬들을 영적 진주들처럼 지니고 다닙니다. 여러분의 기도 덕분에 이 쇠사슬로 말미암아 제가 부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늘 여러분의 기도에 동참하고, 그렇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사도들과 일치하고 있는 에베소 그리스도인들의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이냐시오스,『일곱편지』, 박미경 역주 (왜관: 분도출판사, 2000), 34-37.
이그나티우스는 에베소 교인들의 중보기도로 고난을 피하지 않고 담대히 순교의 영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그나티우스도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늘 중보기도하며 에베소 교인들이 사도들의 신앙을 물려 받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성령안에서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면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성령안에서 중보기도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안에서 기도하는 사람의 세 번째 특징은 복음전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선교사였습니다. 19절에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나를 위해 구할 것은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릴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우리교회가 기도하고 있는 남수단의 김종우 선교사님은 우간다에서 사역을 하시다가 더 어려운 지역인 남수단에 들어가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선교편지를 받아보면 남수단이 정치적으로 안정이 안되어 언제나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의료시설이 열악하여 늘 질병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물과 음식도 부족하여 어려움 중에 있지만 신학교와 학교, 교회를 세우며, 사역자를 세우면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남수단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선교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선교사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는 남수단의 김종우 선교사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남수단의 김종우 선교사님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안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성령께서 때로는 자신의 문제를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때로는 성도들을 위해, 때로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성령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성령안에서 기도하는 방법입니다. 성령안에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문제에만 골몰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령안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성령께서 나와 성도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주시면서 우리들의 기도의 폭을 확장시켜 나가십니다.
여러분들이 성령안에서 성령에 사로잡혀서 기도하실 때 여러분이 회복되고, 이웃성도들이 응답받고, 복음을 전하는데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성령안에서 기도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 성도들에게 성령안에서 성령의 음성을 들으며 기도하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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