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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29장 20-25절(송축함으로 드리는 감사) - 안효관

by Preacher 2024.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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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29장 20-25

송축함으로 드리는 감사 [추수감사절]

안효관 목사 2020-11-01

전주남성교회 https://https://www.nsc.or.kr/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로버트 에몬스(Robert A. Emmons) 박사는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12살에서 80살 사이에 있는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에게는 매일 감사한 일을 다섯 가지씩 쓰게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그룹에게는 그냥 자기들이 쓰고 싶은 것을 아무거나 쓰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그들의 차이를 점검했습니다. 그 결과 아주 중요한 차이점이 나타났습니다. 매일 감사일기를 쓴 사람 가운데 75%에게서 행복지수가 높게 나타났고, 수면이나 일이나 운동 등에서 더 좋은 성과가 나타났습니다. 매일 감사 일기를 썼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건강상태가 현저하게 좋아졌고, 스트레스는 적게 받고 행복감은 훨씬 더 많이 느꼈다는 것입니다. 하루를 되돌아보며 감사 일기를 썼을 뿐인데 뇌의 화학구조와 호르몬이 변하고 신경전달물질들이 바뀐 것입니다.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 사랑과 공감 같은 긍정적 감정을 느끼는 뇌 좌측의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감사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목표 달성을 잘한다. 의식적으로 감사연습을 하는 사람들에겐 목표의식과 성취욕이 생긴다. 감사하는 사람들은 소극적으로 가만히 있지 않고 의욕을 느껴 행동을 취한다. 감사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각자의 목표 달성에서 20% 정도 더 진전을 보이며 더 열심히 노력한다.”

 

세계적인 경영컨설턴트 톰 피터스(Tom Peters, 1942-)는 그의 책 『리틀 빅 씽』(The little big thinks)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감사라는 말은 삶의 윤활유와 같다. 성공이란 오늘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몇 번 했는지, 오늘 보낸 감사 편지 수에 비례한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감사해야 할 일은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이다.”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감사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공은 감사를 표현하는 횟수에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유럽 최고의 명문 경영대학원인 인시아드(INSEAD)에서 리더십 개발 분야의 교수로 있는 맨프레드 케츠 드 브리스(Manfred F.R. Kets de Vries)는 그의 책 『리더십 롤러코스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감사하는 사람들은 부족한 것을 한탄하기보다 가진 것에 집중한다. 감사를 표현하는 능력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증진시킨다. 감사하는 마음은 어려움과 좌절을 마주했을 때, 계속적으로 희망을 찾아야만 할 때 느끼는 스트레스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어준다.”

 

와튼스쿨 조직심리학 교수인 애덤 그랜트(Adam Grant, 1981-)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감사하고 베풀면 큰 인물이 된다. 조사에 의하면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감사표시를 받게 되면 남에게 기꺼이 도움을 주려는 확률이 두 배로 늘어난다. 훌륭한 리더는 기꺼이 감사할 줄 안다. 어떤 사람이든지간에 누군가가 내게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 한다. 직장인의 81%는 감사를 잘 표현하는 상사 밑이라면 일을 더 열심히 하겠다고 응답했다.”

 

여러분, 제가 몇 사람들의 글을 소개해 드렸습니다만, 그들이 모두 신앙인의 입장에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의 일상을 살아가면서 감사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하고 있을 뿐입니다. 신앙을 떠나서도 말입니다. 그들이 성경의 말씀을 들먹이진 않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을 분석하면서 감사하는 삶이 성공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깨닫고 한 말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건강하고 평안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 싶다면 감사가 우리의 삶에 늘 가득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행복하면 감사한 마음이 든다. 성공하면 당연히 감사한다. 좋은 일이 있으면 감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행복하기 때문에 감사하기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이 행복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감사한다는 것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깨달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감사가 행복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면 노화도 늦춰진다고 합니다. 작은 일에 감사할 줄 알고 그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은 그 삶이 천국이 된다는 것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감을 더 많이 느낄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에 능률이 오릅니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할 때에도 감사를 자주 표현하는 사람이 더 오랫동안 살아남게 됩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면 감사할 일이 어디 있느냐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감사는 오히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이기는 능력이 됩니다. 베네딕트 수도원 원장을 지낸 안셀름 그륀(Anselm Grun, 1945-)은 이렇게 말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인생에 불행이 닥치거나 어떠한 방해물을 만날지라도 내적인 기쁨을 잃지 않는다. 비록 자신의 계획이 무산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딘가에 열려있을 새로운 문을 찾을 수 있다. 보다 넓고 환한 길로 연결된 문을.” 그렇습니다. 감사는 우리의 삶을 늘 위협하는 걱정이나 불안이나 두려움에 대한 해독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우리로 우리에게 닥친 시련을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주고, 버텨낼 수 있는 능력을 덧입혀 줍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신앙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일에 감사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18) ‘범사에’(in all circumstances)라는 말은 ‘모든 상황 속에서’라는 뜻입니다. 어떤 상황, 어떤 형편에서든지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기쁘고 즐거울 때에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 중에서도, 슬픔 중에서도, 어려움 중에서도, 시련 중에서도, 고난 중에서도, 손해를 당한 상황에서도, 건강을 잃어버린 상황에서도, 넘어지고 쓰러지는 자리에서도, 심지어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렸다고 생각되는 상황에서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감사하지 못할 상황은 단 한 순간도 없다는 뜻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전 세계가 팬데믹에 빠졌다 하더라도, 일상의 삶에 수없이 많은 제약을 받아야 할지라도, 경제가 어려워져 우리의 삶이 힘들어졌어도, 사랑하는 사람이나 그리운 사람을 마음대로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런 상황이 우리에게서 감사를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감사를 찾기만 한다면 우리의 주변에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감사의 이유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다윗의 생애 마지막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실 때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사도행전 13:22)고 말씀하실 정도로 다윗을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랑하셨고 그렇게 기뻐하신 다윗인데도, 다윗의 일생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많은 시련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무명의 다윗을 역사의 무대에 올려놓은 사람이 사무엘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베들레헴 이새의 집으로 보내셨고,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 한 사람을 사울을 대신 할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찾아가 거기에서 막내 다윗을 알게 되었고, 다윗이 이스라엘의 차기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곧 이어서 다윗은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무찌름으로 이스라엘을 블레셋으로부터 구원해 냅니다. 그것을 계기로 다윗의 인생은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분명 선지자로부터 차기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적군의 장수를 무찌르고 나라를 구한 것은 너무나도 좋은 일입니다. 더군다나 골리앗을 무찌른 이후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됩니다. 누가 보더라도 다윗은 평탄한 길을 가야 할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골리앗을 죽이고 나라를 구한 이후 다윗은 사울 왕의 견제를 받게 됩니다. 그런 견제 속에서 사울 왕의 딸과 결혼하여 왕의 사위가 되기도 하지만,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결국 다윗은 사울 왕의 살해위협 속에서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고, 심지어 적군의 나라인 블레셋으로 망명을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까지 이릅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수없이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죽을 고비도 숱하게 넘겼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사울 왕이 죽고 사무엘 선지자의 예언대로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이후에도 다윗에게 시련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충신인 우리아의 아내를 궁궐로 끌어들여 범죄한 이후 다윗의 인생은 더욱 힘든 길을 가야 했습니다. 비록 여전히 왕의 자리에 있긴 하지만,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자기의 자식들 사이에 강간과 살인이 벌어져 사랑하는 자식이 죽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식이 아버지인 다윗을 배신하고 쿠데타를 일으켜 아들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기고 다윗은 신발도 신지 못한 채 쫓겨나 도망쳐야 했습니다. 계속된 반란으로 인해 왕의 권위가 위협받기도 했습니다.

 

정치적인 일에서만 그렇게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너무너무 사랑해서 하나님의 법궤를 자신의 왕궁이 있는 다윗 성으로 모여올 정도로 신앙적으로 살려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다윗의 마음에 결정체는 바로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화려한 왕궁에서 생활하는데 하나님의 법궤가 너무 초라한 곳에 모셔져 있는 것이 마음이 아파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다윗의 아름다운 계획이 거부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나의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다!’는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속상할 일입니다. 하나님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전을 건축하겠다는데 하나님께서 거절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속상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속상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계획을 아들에게로 미뤄놓고, 자신은 성전을 건축할 모든 조건을 갖추는데 열정을 다했습니다. 자신은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지만, 아들이 성전을 건축하는데 조금도 어려움이 없도록 건축할 자재, 성전에서 일할 사람들을 선별하는 일, 성전을 건축할 때 필요한 인력, 성전의 제도 등 어느 것 하나 빠뜨리지 않고 완벽하게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의 기록은 모두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준비한 모습입니다. 역대상 22장에서 성전건축을 거절당한 이후 23장에서는 성전에서 일할 레위 사람들을 세우는 일을 했고, 24장에서는 제사장을 세웠고, 25장에서는 성전에서 찬송하는 사람들을 세웠습니다. 26장에서는 성전 문지기와 성전 곳간을 맡을 사람들을 세웠고, 27장에서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조직을 개편하는 일을 마쳤고, 28장에서는 개편된 조직과 성전을 섬기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성전 건축을 조금도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솔로몬에서 성전 건축을 단단히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29장 오늘 본문 바로 앞에까지는 성전을 건축할 때 필요한 경비를 다 마련해 놓았고, 다윗 왕의 그런 모습에 백성들도 마음이 감동해 백성들까지 즐거이 예물을 드림으로 성전 건축에 필요한 자금이 넉넉하게 마련되었습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 한 말이 오늘 본문 20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라.”입니다. 다윗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한 열왕기상 2장에 보면 다윗의 유언이 여러 가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것이다. 바르실래의 아들에게는 은혜를 베풀어라. 요압과 바후림 베냐민 사람 시므이에 대해서는 내가 하지 못한 복수를 해 다오.’ 등등 여러 가지 말로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게 다윗 왕의 마지막 말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단 한 마디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송축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다윗은 마지막 유언으로 ‘하나님을 송축하라.’는 말을 남겼을까요? 아니, 열왕기상 2장에서는 여러 가지 유언을 기록하고 있는데, 오늘 본문서는 왜 다윗의 그 많은 말들 가운데 오직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말만 기록하고 있을까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다윗은 그의 평생에 어려운 일이 참 많았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그를 목동일을 하는 데서 불러내지 않으셨다면 그렇게 많은 어려움을 겪지 않고 평범하게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이루실 일을 기대하며 신앙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삶에는 참으로 많은 시련이 있었고 고난도 있었습니다. 그런 힘들고 어려운 삶을 마감하면서 그의 마음은 만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아주셨지만, 그 이면에는 가슴 아픈 일도 많았습니다. 몰래 눈물 흘려야 하는 일들도 많았고, 고통에 몸서리치는 상황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의 삶을 마감하면서 마지막 남긴 말이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송축하다’(ךרב-Barak)는 말에는 참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올 때에는 ‘축복하다, 은총이 베풀어지다.’는 뜻이 있습니다. 반대로 아래에서 위로 향할 때에는 ‘송축하다. 찬미하다. 무릎을 꿇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말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다윗이 그의 인생 마지막 말을 ‘무릎을 꿇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라.’라고 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는 참으로 많은 시련을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어려움도 많았고, 박해도 많이 받았습니다. 도망자 생활을 하면서 너무나도 힘든 삶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자식들 사이에 죽고 죽이는 끔찍한 일도 경험했고, 아들이 딸을 범하는 안타까운 일도 겪었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배신을 당하여 초라한 몰골로 도망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삶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해 주지 않으셨다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지 않으셨다면 결코 버텨올 수 없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인생 마지막 말을 ‘여호와 하나님을 송축하라!’고 말하고 삶을 매듭지었습니다. 그 말은 그의 삶 전체를 통해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이끌어주시고, 은혜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대한 마지막 감사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오늘 본문에 이어 나온 말씀처럼, 하나님께 송축함으로 감사를 드렸던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죽음 이후에도 복을 주셨습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에 ‘백성들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와 왕에게 절했다’(20절)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유언처럼 온 백성들이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왕으로 세웠고, 솔로몬의 통치가 형통했습니다. 백성들은 다윗 왕에게 충성했던 것처럼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게 복종했고,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그 이전의 모든 왕들보다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자신의 삶 마지막에도 하나님께 송축함으로 감사를 올렸던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아들에게까지도 말입니다.

 

여러분, 2020년 올 한 해 너무너무 힘들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우리는 힘든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감사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아니 힘들수록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감사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힘든 시대 먹고 살 것 때문에 걱정하고 한숨이 깊어만 갑니다. 그런데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큰 저주는 먹을 것을 얻지 못한 ‘목마름’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메마름’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천국이요 다른 하나는 감사하는 마음이다.’ 정말 의미 있는 말입니다. 상황을 초월하여 우리의 삶을 천국으로 만들고 싶다면, 아니 우리가 천국을 누리며 살고 싶다면 우리의 마음에 감사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러면 그 마음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그 곳이 천국이 됩니다.

 

시인 이해인 수녀가 쓴 ‘감사하면 행복하리라.’라는 제목의 시를 읽어드립니다.

 

내 하루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

한 해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

그리고

내 생애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는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되도록 감사를 하나의 숨결같은 노래로 부르고 싶습니다.

감사하면 아름다우리라.

감사하면 행복하리라.

감사하면 따뜻하리라.

감사하면 웃게 되리라.

감사하기 힘들 적에도 주문을 외듯이

시를 읊듯이 항상 이렇게 노래해 봅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살아서 하늘과

바다와 산을 바라볼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하늘의 높음과 바다의 넓음과

산의 깊음을 통해

오래 오래 사랑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어 행복합니다.

 

여러분, 우리 생애 처음과 마지막 기도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큰 시련을 겪는다 하더라도 우리 입에서 ‘감사’라는 말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감사하면 행복해집니다. 감사하면 따뜻해지고, 감사하면 마음에 여유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는 우리가 하나님께 올려드릴 가장 큰 찬양의 제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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