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20장 12-21
하나님 앞에서 끝까지 가져야할 마음
김창진 목사 2017.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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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스기야의 고난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히스기야 왕의 마지막 부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이스라엘이 솔로몬 이후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나누어진 이후 남 유다의 13대 왕으로 25살에 왕이 되어 29년간 나라를 다스린 왕입니다.
성경이 언급하는 히스기야 왕에 대한 기록을 보면 열왕기하18:3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모습으로 솔로몬 시대부터 버리지 못한 산당의 제사를 과감히 제거(왕하18:4)하고, 이스라엘의 발목을 잡았던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제거하고, 모세시대부터 내려오던 놋 뱀을 부셔버리고 ‘놋 조각’에 불과하다는 의미의 ‘느후스단’(왕하18:4)이라 부르며, 과감한 종교개혁을 합니다. 그래서 열왕기하18:5에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 히스기야 왕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시고 그가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였다고 열왕기하18:7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히스기야 왕이지만 그에게 두 가지의 커다란 고난이 닥칩니다. 첫 번째 고난은 앗수르의 침략으로 남 유다가 위기(왕하19:10-11)에 처합니다. 두 번째 고난은 그 와중에 죽을병에 걸린다(왕하20:1)는 겁니다. 이 두 문제가 거의 동시에 일어나므로 히스기야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고난에 봉착하게 됩니다.
히스기야 왕은 인생의 커다란 위기인 이 두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져갑니다. 두 번에 걸친 앗수르의 침략에 한번은 왕실과 성전의 모든 금과 은을 내 주므로 돌려(왕하18:15-16)보냈지만, 두 번째의 침략에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앗수르 왕이 보낸 협박과 회유가 담긴 편지를 가지고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펴 놓고 기도합니다. 다행이 하나님의 은혜로 앗수르 군사 18만5천명이 하루아침에 송장이 되는 일이 일어나고, 그에 놀란 앗수르의 왕 산헤립은 급하게 앗수르로 돌아갔고 부하들의 반란에 죽임을 당합니다(왕하19:36-37).
그 와중에 히스기야는 중병이 걸려 죽음의 선언을 듣게 됩니다. 죽을병에 걸린 히스기야는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통곡하며 하나님께 기도(왕하20:1)합니다. 히스기야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죽을병에 걸린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의 연장을 받고, 그에 대한 증표로 아하스 왕이 만든 해 시계의 그림자가 뒤로 10도 물러가게 하시는 증표를 보여 주십니다.
● 누구에게나 고난은 있다
히스기야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왕으로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은혜로 형통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평가는 히스기야 전후에 그러한 자가 없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인생에 커다란 위기가 두 번씩이나 찾아오고,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옵니다.
▶ 이런 히스기야의 위기를 보면 의아해 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 잘하고, 예배 잘 드리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며, 우상을 배격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데 복이 아닌 고난과 위기를 허용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겁니다. 그래서 혹 어떤 분들은 이런 일을 당하면 ‘하나님 왜 제게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제가 하나님 앞에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하나님을 모르며,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이 사는 사람들은 저렇게 잘 살고 있는데요....’하며 하나님께 서운한 감정을 내 비치며, 그게 깊어지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잘 하던 신앙생활도 등한시 하는 일들이 생기곤 합니다.
이렇게 앞일을 알 수 없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성경이 말씀합니다. 전도서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인생에 형통함과 곤고함을 병행하여 주시므로 사람이 장례 일을 알지 못하게 하신답니다. 왜요? 더욱 더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5:13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왜 이렇게 해야 합니까? 욥기11:7-9 ‘7.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 8.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무엇을 하겠으며 스올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9. 그의 크심은 땅보다 길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이사야55:8-9 ‘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9.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그래서 전도서 3:11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고 말씀합니다. 그러기에 다윗 왕 다음으로 믿음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히스기야에게도 커다란 고난이 닥치므로 알 수 있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난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고난을 히스기야 왕은 기도로 이겨내고 극복합니다.
● 끝까지 갖고 가지 못한 마음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인생의 큰 위기를 잘 극복한 후 히스기야 왕이 저지르는 실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12-13절을 보십시오. “12.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 13.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왜 이렇게 했을까요? 당시 바벨론은 신흥 강대국으로 도약하려는 때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와 동맹하여 앗수르를 견제하려고 사신을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은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국가의 중요한 모든 것을 다 보여 줍니다.
이런 히스기야의 모습을 역대하32:25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마음에 교만하여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잊고, 바벨론에서 온 사신들에게 나라의 중요한 모든 것을 다 보여 주므로 ‘내가 이정도야’라며 자신을 과시합니다. 죽을병에서 낫고, 앗수르의 공격을 물리친 사건을 자신이 잘나서, 자신이 잘해서, 자신이 능력이 있어서 됐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기에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내가 이정도야’라는 생각에 국가의 중요한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겁니다.
▶ 히스기야의 마음의 교만으로 인하여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까? 본문 16-17절 “16.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17.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18.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하니”
다행이 히스기야가 자신의 교만을 회개하여 히스기야 생전에 바벨론에 멸망당하는 수치는 겪지 않지만(대하32:26), 약 100여년 후 히스기야의 4대 손인 시드기야 왕 때에 베벨론에 멸망당하고 시드기야 왕은 포로로 잡혀갑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으로 남 유다가 당하게 될 모습을 보면 떠오르는 말씀이 있습니다. 잠언16:18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 겸손한 마음의 표현 = 기도
이러한 히스기야와 연관한 말씀들을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끝까지 가져야 할 마음은 바로 겸손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을 무엇으로 표현 할 수 있습니까? 그게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표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표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표현입니다.
그러기에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교만한 성도입니다.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도 얼마든지 내 힘으로 잘 살 수 있다는 교만의 모습이고,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도 얼마든지 내 능력으로 잘 살 수 있다는 교만의 모습이고,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필요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교만의 모습입니다.
히스기야는 마음의 겸손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큰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지만, 마음의 교만함으로 기도하지 않고 자신을 자랑하므로 남 유다가 멸망하고, 그의 후손들이 수치를 당하는 일을 겪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끝까지 가져야 하는 마음은 겸손의 마음이고, 겸손한 마음의 표현은 기도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기도의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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