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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고린도후서

고후 13장 5절(믿음 안에 있는가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 - 이삼규

by Preacher 2024.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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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13장 5

믿음 안에 있는가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

이삼규 목사 20140302

낙양교회 http://nakyang.onmam.com

 

고후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세상을 살다보면 참과 거짓, 선과 악을 구별하기가 참으로 힘들기 때문에 오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판단)과 행동이 오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서나 참과 거짓이 함께 고속도로를 달리고, 동일한 들판과 공장에서 일하고, 한 교회에 출석하고, 같은 비행기를 타기도 하고, 똑 같은 가게에서 물건을 사기도 합니다. 거짓은 참을 모방하는데 능숙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자꾸 혼동하게 됩니다. 오늘날 누가 가인이고 누가 아벨인지 구별하려면 매우 날카로운 매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영혼의 건강을 해치는 것을 예민하게 경계해야 합니다. 이삭은 야곱의 팔을 만졌지만 그것을 에서의 팔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자기들 중에서 배신자가 나올 것이라고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유일하게 알아챈 사람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가룟 유다 자신이었습니다. 함께 어울리면 아주 편하고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말도 부드럽게 하기 때문에 호감을 줍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때로는 사탄의 사자(使者)일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거칠고 직언(直言)을 마다하지 않기 때문에 자꾸 피하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우리에게 영적 위험성과 영원한 멸망에 대해 경고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 사도는 우리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가 자신을 시험하고 자신을 확증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림받은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시험해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확증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믿음 안에 있습니까? 진짜는 신앙의 기본에 충실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그를 미몽(迷夢)에서 구하기 위해 마련해주신 모든 수단들을 충분히 이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영적 미몽(迷夢)에서 벗어나는 길

 

1)기도(祈禱)

 

물론 기도가 우리를 오류에 빠지지 않게 무조건 다 지켜주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기도의 대상이 중요하고 어떤 기도들은 유익은 없고 오히려 해롭기 때문입니다. 바알 선지자들은 광란적으로 기도하면서 심지어 제단 위로 뛰어오르기도 하고 자신을 칼로 자해하면서 피를 흘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는 전혀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요즘에 절에서 108배를 하면서 열심히 기도드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그들에게 어떤 응답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신에게 드리는 기도는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기도를 드렸던 하나님은 존재하셨지만,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기를 거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만하고 자기의(自己義)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알 선지자들과 바리새인들의 경우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하는 데 많은 어려움들과 문제점들이 따를 수 있지만 그래도 기도는 오류를 피하고 올바른 곳에 머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방법인 것입니다.

 

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다른 조건들이 똑같다면,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보다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적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눅 18:1)합니다.

 

2)신앙(信仰)

 

사도 바울은 믿음(신앙)이 ‘방패’라고 말합니다.

 

엡 6: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신앙의 사람은 단순하게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평안한 가운데 행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드릴 때 기뻐하시기 때문에 천국의 모든 보화를 신앙의 사람들에게 허락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신앙’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의미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신앙의 사람이 낙관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신앙은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신앙의 사람이 밝고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신앙이 ‘쾌활함’은 아닙니다. 또한 신앙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거나 사람들 사이의 교제를 즐기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성경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믿는 것입니다.

 

3)성경 묵상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롬 10:17). 성경은 우리를 정결하게 하고 강하게 하고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공급해줍니다. 그래서 복된 사람은 성경 말씀을 주야로 묵상합니다.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4)순종(順從)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그렇습니다. 사울이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그 왕위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만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운전자가 안전히 운행을 하려면 항상 길가에 세워진 도로표지판을 잘 살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운전자가 도로 표지판을 잘 읽었다고 할지라도 그 도로 표지판의 지시에 순종하지 않으면 사고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로 표지판이 지시하는 데로 순종할 때 안전운행을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네비에서 알려주는 아가씨의 지시를 잘 따라야 합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려면 우리는 성경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5)겸손(謙遜)

 

시 147:6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들은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

 

성경은 절대 교만한 자의 편을 들지 않습니다.

 

잠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잠 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오직 유순한 양만이 목자의 인도를 받을 수 있으며, 오직 겸손한 자녀만이 하나님 아버지의 인도의 손길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시 25:9 온유한 자를 정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의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교만한 자들은 진리에서 떠납니다. 교회를 괴롭혀 온 모든 이단들 뒤에는 자신을 믿는 교만이 숨어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 역사의 증언입니다. 우리 주님도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그러니 주님을 따르는 우리는 더욱 겸손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6)진지한 사색(思索)

 

우리는 사색해야 합니다. 물론 인간의 사유(思惟)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색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진리가 저장될 수 없습니다.

 

전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특별히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진지한 사색이 우리를 더욱 성숙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7)성령의 조명(照明)

 

성령님의 내적 조명(照明)이 없는 사색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위험스럽습니다. 인간의 지성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배는 항해 지도의 도움이 없이는 대양(大洋)을 항해할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님의 내적 조명을 받지 못하는 인간의 지성은 진리, 절반의 진리, 완전한 오류가 뒤섞여 있는 대양을 가로질러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셔서 우리의 마음에 빛을 비추게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눈이 되시고, 이해력이 되십니다. 우리는 결코 그분 없이 살아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의 자가 진단법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 즉 ‘자아 인식’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의를 추구함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면을 벗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고 과감히 실행해야 합니다. 오직 성령님과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도덕적 및 영적 상태를 드러내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최종적으로 판단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서로를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마7:1-5 참조). 심지어 자기 자신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고전 4:3절 참조). 궁극적 판단은 불꽃같은 눈으로 사람의 생각과 행위를 완전히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의 몫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판단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고전 11: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고전 11: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의 자기 발견이 불완전하고 우리의 자기 판단이 대부분 편견에 빠진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영적 위치를 찾아주려고 애쓰시는 성령님과 협력하여 스스로를 살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우리가 상황의 필요에 따라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도록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비록 이 질문들이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밝혀주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부분적으로 도움이 될 것입니다.

 

1)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틀에 박힌 진부한 답이 아닌 정말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말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물질입니까? 명예입니까? 권세입니까?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2)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도록 강요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 말고, 여러분이 자발적으로 원해서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생각들은 ‘우리 마음의 은밀한 보물’ 주위에 모여들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생각들을 끌어당기는 바로 그 보물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마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3)나는 내 돈을 어떻게 쓰는가?

 

이 질문에 답을 하면서 우리는 의무적으로 돈을 지출해야 하는 것들을 빼놓고 생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세금을 내거나 가족과 자신을 위한 생필품을 사기 위해 지출하는 돈은 여기에서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에 돈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거의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뜻대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생겼을 때 그 돈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냅니다.

 

4)나는 여가를 어떻게 보내는가?

 

우리 시간의 많은 부분이 문명화된 삶을 영위하고 지속하는데 소요되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어느 정도의 자유시간이 주어집니다. 바로 이 자유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드러냅니다. 여유가 생기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보거나 아니면 운동을 하거나 오락을 즐깁니다. 여러분은 자유 시간을 어떻게 보내십니까?

 

5)나는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는가?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들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이끌리기 마련입니다.

 

행 4:23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우리가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자유가 있을 때 찾아가는 곳이 곧 우리가 어떤 사람임을 말해줍니다.

 

6)나는 누구를 존경하고, 어떤 것에 열광하는가?

 

우리가 겉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속으로 동경하고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 주변의 이방나라들을 동경하였습니다. 그래서 왕이신 하나님을 저버리고 인간 왕을 세워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양자로 받아들여진 영광, 하나님과의 언약, 율법, 복에 대한 약속, 믿음의 조상들을 모두 잊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과연 이스라엘을 비판할 수 있을까요? 우리도 그들과 똑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7)나는 무엇을 보고 웃는가?

 

마땅히 존중해야 할 하나님의 지혜를 존중하는 사람은 ‘웃는 것’이 잘못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머는 우리의 본성을 이루고 있는 여러 가지 중요한 속성들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유머 감각이 부족한 사람은 그만큼 건강한 인간성을 상실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머 감각과 ‘경솔한 웃음’은 다릅니다. 경솔하게 웃음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죽음, 출생 그리고 사랑 같은 것들을 경솔한 웃음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기도, 성경, 의(義), 인간들의 큰 슬픔과 고통 및 그리스도께서 피의 대가를 지불하시고 사신 교회를 가지고 농담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짧은 시간이라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된 이야기를 가지고 농담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믿음 안에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진정 여러분 안에 왕으로 계십니까?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저는 진짜를 구별하는 일곱가지 질문을 말씀드렸습니다. 이 질문을 항상 마음속에 새기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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