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약 --------------------/느헤미야

느 13장 1~9절(개혁, 다시 그리고 계속) - 김준범

by Preacher 2024. 4. 26.
728x90
반응형

느13장 1~9

개혁, 다시 그리고 계속

김준범 목사 2019.01.13

양의문교회 http://whttp://www.asheep.org/

 

느헤미야 13 장

 

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그 책에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영히 하나님의 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2절: 이는 저희가 양식과 물로 이스라엘 자손을 영접지 아니하고 도리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그 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 하셨다 하였는지라

3절: 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몰수히 분리케 하였느니라

4절: 이전에 우리 하나님의 전 골방을 맡은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연락이 있었으므로

5절: 도비야를 위하여 한 큰 방을 갖추었으니 그 방은 원래 소제물과 유향과 기명과 또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십일조로 주는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또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두는 곳이라

6절: 그 때에는 내가 예루살렘에 있지 아니하였었느니라 바벨론 왕 아닥사스다 삼십 이년에 내가 왕에게 나아갔다가 며칠 후에 왕에게 말미를 청하고

7절: 예루살렘에 이르러서야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 뜰에 방을 갖춘 악한 일을 안지라

8절: 내가 심히 근심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

9절: 명하여 그 방을 정결케 하고 하나님의 전의 기명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 놓았느니라

 

---- 말씀요약 ----

 

느헤미야가 개혁의 큰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다

 

느헤미야서는 부흥과 개혁의 책입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제국이 무너진 후,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느헤미야는 총 세 차례의 귀환 중(1차 귀환 때에는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의 통솔 아래 성전이 재건되었고, 2차 귀환 때에는 학사 에스라의 지도 하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으로 다시 회복되었음), 마지막 3차 귀환의 지도자가 바로 느헤미야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신앙개혁과 부흥의 큰 시대를 마무리하는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했던 일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한 일입니다(느 1-6장).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아닥사스다 왕에게 탄원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독려하고 또한 대적들의 공격에 대해서는 싸우면서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둘째, 예루살렘 성에 거하는 백성들을 모아서 학사 에스라를 모시고 말씀 사경회를 열어서 이스라엘 사회를 말씀의 기초 위에 다시 올려놓았습니다(느 8장). 셋째, 말씀의 사역으로 인해 일어난 회개의 운동을 이끌며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언약을 맺도록 했습니다(느 9-10장).

 

그들이 맺은 언약의 내용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는 이방인과 다시는 통혼하지 않겠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잘 지키겠다는 것이었으며, 셋째는 십일조와 헌상의 생활을 올바로 해서 하나님의 전이 버림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었고, 넷째는 암몬과 모압 사람이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인을 쳤습니다(느 9:38). 그들은 저주로 맹세하기까지 하면서 하나님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키겠다고 비장한 각오로 서약하였습니다(느 10:29). 그들은 참으로 놀라운 은혜의 각성과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다시 퇴보하고 개혁의 빛이 바래지다

 

그런데 이렇게 놀라운 은혜의 각성과 대부흥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토록 단호하게 언약을 맺은 후, 불과 몇 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다시 신앙적으로 퇴보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가 12년 동안의 총독 생활을 마치고 아닥사스다 왕이 있는 수산 성으로 돌아갔다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예루살렘을 다시 찾았을 때,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형편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에 맺었던 언약을 모두 깨뜨려서 이스라엘 사회가 총체적으로 후퇴하고 변질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느 13장). 그래서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을 하나님의 회에 포함시킨 것과(1-9절), 십일조와 헌물에 대한 언약을 어긴 것과(10-14절),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것과(15-22절), 이방인들과 통혼한 것을 조목조목 책망하였습니다(23-31절).

 

놀라운 종교개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지 불과 몇 년도 지나지 않아서, 어떻게 이런 총체적인 신앙적 퇴보와 변질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참으로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느헤미야 시대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교회는 언제든지 영적으로 퇴보할 수 있고, 개혁은 언제든지 빛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느헤미야서가 이런 실망스러운 모습을 기록하면서 끝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 13장의 말씀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고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후의 모든 만세만대의 교회들에게 경고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개혁과 갱신이 얼마나 쉽게 후퇴하고 변질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거의 공통으로 발견되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높이 들어 귀하게 쓰신 위대한 신앙의 거장들이 있은 뒤에 등장했던 교회들은 대개 이전 세대만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제자들은 대개 그 스승만 못했습니다. 이후 교회가 이전 교회만 못한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개혁, 다시 그리고 계속

 

이런 실망스러운 모습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이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고 어떻게 했습니까? 느헤미야는 실망하지 않고 다시 조목조목, 그 신앙의 기본을 바로 잡고 회복시키기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이 일을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나의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14,22절). 이는 자신이 예루살렘의 개혁과 회복을 위하여 많은 싸움을 싸우면서 다시 회복시킨 선한 일들이 다시 무너지지 않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개혁에서 개혁으로 나아가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개인들도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겠다고 결심해 보지만, 1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퇴보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가정들도 그러하고 개교회도 그러합니다. 느헤미야 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회는 쉽게 퇴보하였습니다. 개교회나 교단도 얼마든지 그렇게 퇴보할 수 있습니다. 한 세대가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고 모범적으로 신앙생활을 했다가도, 다음 세대는 그 이전 세대만 못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한국교회도 그러합니다. 이미 한국교회는 이전 세대보다 모든 면에서 퇴보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다시 뿔뿔이 흩어졌던 것처럼, 목회자 후보생들이 줄어가고 있고, 목회자들도 여러 면에서 이전보다 못합니다. 성도들도 이전 세대의 성도들에 비해 신앙생활의 기본기에서 많은 퇴보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우리의 신앙 선배들이 물려준 자리에서 퇴보하거나 변질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당대보다는 우리 다음 세대가 신앙적으로 더 좋아지고 단단해지고 개혁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 시대가 우리의 미래 전체에 비추어볼 때에 가장 초라한 시대가 되기를 바라야 합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하여 하나의 초석을 놓는 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굉장한 사람으로 착각하여, 자신의 시대를 최고의 황금기로 만들려고 애를 씁니다. 물론 우리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마음을 겸손히 낮추고, 우리의 다음 세대가 우리 세대보다 더 신실하고 더 좋게 되는 것으로 가장 크게 만족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세대만 잘 되고 잘 하면 무슨 소용입니까? 그 다음 세대에 신앙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면 이 얼마나 허무한 일입니까? 한 교회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좋아진다는 증거를 얻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교회 역사에서도 이런 예를 찾아보는 일이 매우 드뭅니다. 우리 교회가 세대가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이전 세대보다 더 좋아지고 견고하게 해달라고, 부흥과 개혁과 갱신을 계속 이루어가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 그렇게 되도록 기도합시다. 이것은 결코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정말 많은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영국의 시인 키플링은 성공과 실패를 가리켜서 “두 사기꾼”이라고 불렀습니다. 성공이 사기꾼이 될 수 있는 것은, 한번 성공을 경험하게 되면 자신이 다 이룬 것처럼 생각하고 나태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일시적인 어떤 작은 성공에도 얼마나 호들갑을 떨고 얼마나 잘 속는지 모릅니다. 또한 실패가 사기꾼이 될 수 있는 것은, 실패가 우리를 낙심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퇴보했다고 하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회복하면 됩니다. 두 사기꾼에게 속지 맙시다. 행여 지금 조금 잘하고 있다는 생각에 방심하지 맙시다. 가만히 있으면 퇴보하고 맙니다. 또한 지금 실패했다는 생각에 낙심하지도 맙시다. 느헤미야처럼 다시 개혁하고 계속 하면 됩니다. “개혁, 다시 그리고 계속”입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