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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느헤미야

느 13장 4-9절(마음속의 도비야를 제거하라!) - 안효관

by Preacher 2023.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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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13장 4-9

마음속의 도비야를 제거하라! [신년주일]

안효관 목사 2018-01-07

전주남성교회 https://https://www.nsc.or.kr/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1790년 경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한 도시에 점원 다섯 명이 일하는 잡화점이 있었습니다. 경기가 좋은 때인지라 장사가 잘 되었고, 주인은 매일 밤 열한 시경에 가게 문을 닫고, 수고한 점원들을 위로하는 뜻으로 술자리를 자주 마련했습니다. 점원들은 이것을 유일의 낙으로 삼고 매일 기운을 내어 부지런히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고용된 아모스 로렌스(Amos Lawrence)라는 청년은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장과 다른 점원들은 그런 로렌스를 유혹하고 싶어졌습니다. ‘더 권하지 않을 테니 딱 한 잔만 마셔보게. 그 다음부터는 자네의 뜻에 맡기겠네.’ 사람들이 그렇게 조르는 바람에 평소 술을 마시지 않던 로렌스도 술잔을 입에 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술을 마시기 시작한 그는 점점 술맛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처음에는 술맛이 쓰더니 자꾸 마시다 보니 술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렌스는 주변 친구들이 권하지 않았는데도 술이 마시고 싶어졌습니다. 술이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 ‘아니, 내가 술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니. 이렇게 자꾸 마시다보면 결국 중독되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자 ‘이러면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음에 굳게 다짐했습니다. 앞으로는 결코 술을 마시지 않겠노라고 말입니다. 술맛을 알아갈 즈음에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로렌스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오래가는지 보자!’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로렌스는 자신이 한 다짐을 굳게 지켰습니다. 때로는 사람들로부터 놀림을 받게도 했지만 그는 결심을 꺾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가 50세가 되었을 때 그는 보스턴 시의 상류 상인계의 일원이 되었고, 자선사업가로 미국 전역에 그 명성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젊었을 때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한 결심을 굳게 지킨 결과 그는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었고, 많은 사람을 도와주는 위치에 서게 된 것입니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여러 가지 결심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올해는 꼭 다이어트에 성공하겠다고 마음먹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올해에는 꼭 술과 담배를 끊어야 겠다고 결심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어떤 운동을 열심히 해서 건강을 유지하겠노라고 다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해서 목표한 시험에 꼭 합격하겠노라고 다짐하기도 합니다. 2018년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7일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새해에 다짐하고 마음먹었던 것들 잘 지키고 있습니까?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굳게 마음먹고 작정한 것이 삼일 넘기지 못한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말의 원래 유래는 다른 뜻이었다고 합니다. 일설에 의하면 그 말은 조선 선조 때의 문인인 서애 유성룡 선생에게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유성룡 선생이 도 관찰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 고을들에 전해야 할 문서가 있어, 역리를 통해서 그 문서를 발송했습니다.

 

그런데 3일이 지난 후에 그 문서에 잘못되어 고쳐야 할 내용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급하게 문서를 갖고 떠난 역리를 불러들였습니다. 역리를 불러오라는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역리가 유성룡 앞에 나타났습니다. 3일 전에 떠났다면 되돌아오는데 많은 시간이 걸려야 했는데, 금방 눈앞에 나타나자 ‘어찌 먼 곳에서 그리도 빨리 왔느냐?’고 묻자 역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옛말에 ‘조선공사삼일’(朝鮮公事三日)이라는 말이 있사옵니다. 소인의 소견으로 아무래도 사흘 후에 고칠 내용이 있을 것 같아 보내지 않고 사흘을 기다린 것입니다.” 조선공사삼일이라는 말은 정치가 부패하면 관리의 명령이 삼일에 한 번씩 바뀐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들은 유성룡은 ‘가히 세상을 깨우칠 말이로구나. 나의 잘못이다.’라고 말하고선 공문을 고쳐 다시 반포했습니다. 여기에서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3일 만에 바뀐다는 뜻이 아니라, 3일 동안 잘 생각한 후에 마음에 결단을 한다는 뜻으로 말입니다.

 

여러분이 새해에 다짐했던 결심이 작심삼일이기를 소망합니다. 마음먹은 지 3일 만에 바뀌는 다짐이 아니라, 3일 동안 신중하게 생각한 후에 한 결심이기에 그 결심을 끝까지 밀고 나가 반드시 이루는 결심이기를 빕니다.

 

오늘 본문은 느헤미야 시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느헤미야는 주전 5세기에 활동했던 사람입니다. 남유다가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한 이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은 세 번에 걸쳐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거대한 제국 바벨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의 초대 왕이었던 고레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던 사람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허락했습니다. 그래서 주전 536년에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약 5만여 명이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사명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할 때 파괴되어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건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 가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주전 516년에 예루살렘 성전을 완공하게 됩니다. 제1차 포로귀환이 있은 후 약 80년의 세월이 지난 주전 458년에 제2차 귀환이 있었습니다. 에스라를 중심으로 약 1700여 명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에스라를 통해서 종교개혁에 힘을 썼습니다. 제1차 포로귀환 이후 성전이 지어졌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은 여전히 혼합되어 있었고, 나약했습니다. 그래서 율법학자였던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가르치면서 신앙공동체로 회복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제2차 포로귀환이 있은 후 약 14년이 지난 주전 444년에 제3차 귀환이 있었습니다. 제3차 포로귀환을 이끈 사람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느헤미야입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의 신임을 받고 있는 페르시아의 관리였습니다. 느헤미야 1:11절에서 느헤미야를 ‘왕의 술 관원’이라고 소개합니다. ‘술 관원’이라는 말은 왕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그 직위가 고위직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 순 없습니다. 그러나 술에 독을 넣어 왕을 독살하는 일들이 역사에서 자주 있었던 사실로 본다면, 왕이 신임하는 사람만이 그 직임을 맡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특별히 느헤미야는 포로민의 후손입니다. 비록 페르시아 때 포로로 잡혀온 것이 아니라 바벨론 제국 때에 잡혀온 사람의 후손이지만, 포로민의 후손에게 왕이 자신의 생명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직임을 맡겼다는 것은 느헤미야가 얼미나 왕의 신임을 받고 있던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느헤미야가 고국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에스라를 중심으로 종교개혁을 함으로서 신앙공동체로 회복되기를 바랐지만,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힘들고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성전은 건축되었지만 성벽이 허물어지고 없어 주변의 이방인들으로부터 늘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가난했고, 힘이 없어 주변의 노략 속에서 마음 편히 살지도 못했습니다. 그런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아닥사스다 왕이 ‘자신을 유대지역의 총독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한 느헤미야의 청을 받아들였고, 느헤미야는 유다의 총독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오게 됩니다. 예루살렘에 온 느헤미야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것이었습니다. 무너진 성벽을 재건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왜냐하면 한 나라의 수도에 성벽이 없다는 것은 그 나라의 주권을 상실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벽을 다시 쌓는다는 것은 곧 주권을 회복하고,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힘을 갖춘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와서 성벽을 다시 쌓으려 하자, 주변의 이방인들이 계속해서 방해공작을 펼치게 됩니다. 처음에는 이방인들이 조롱했습니다. ‘너희가 얼마나 성벽을 잘 쌓는다고 그러느냐? 너희가 쌓은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지고 말거야.’ 그렇게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성벽이 점점 쌓아져가자 이번에는 위협합니다. 전쟁을 하겠다고 위협하고, 지도자인 느헤미야를 죽이겠다고 위협합니다. 그럼에도 느헤미야와 유대 백성들은 더욱 성벽재건에 힘을 쏟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방인들의 위협에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면서 파수꾼을 두어 전쟁에 대비하며 공사를 계속했습니다. 심지어 밤에도 횃불을 켜놓고 공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벽재건 공사가 완성이 됩니다.

 

성벽 공사가 끝난 다음 느헤미야는 율법학자인 에스라를 초청하여 신앙부흥운동을 시작합니다. 백성들을 수문 앞 광장에 모아놓고 말씀을 읽고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지금까지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 회개하고, 말씀과 어긋난 것들은 바로 잡자고 결단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성전에 대해서 무관심했는데, 이제부터는 성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잘 하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렇게 12년의 유다 총독 생활을 마치고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약속한 대로 다시금 페르시아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느헤미야가 다시금 예루살렘을 찾아왔습니다. 그게 오늘 본문인 느헤미야 13장입니다. 페르시아로 돌아갔던 느헤미야가 얼마 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6절에 ‘아닥사스다 왕에게로 갔다가 며칠 후에 왕에게 말미를 청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며칠 후에’라는 말의 정확한 뜻은 ‘날들의 끝에’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이 말이 아마도 ‘1년이 다 되어갈 무렵’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학자들의 해석이 맞다면 느헤미야는 페르시아로 돌아갔다가 1년이 지났을 때 즈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돌아온 느헤미야는 너무나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루살렘에 돌아와 보니, 도비야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 뜰에 있는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작은 골방이 아니라 아주 큰 방을 말입니다. 이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도비야가 누구입니까? 느헤미야 4장에 보면 도비야는 암몬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방인입니다. 이방인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을 재건할 때에 가장 앞장서서 훼방했던 산발랏이라는 사람의 종입니다.(2:10) 산발랏의 신하였습니다. 그는 느헤미야가 백성들을 격려하여 성벽을 재건할 때에 ‘너희가 건축한 이 성벽은 여유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조롱했던 사람입니다.(4:3) 유다 백성들을 조롱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상관인 산발랏과 함께 느헤미야가 하는 일을 방해하고, 느헤미야에게 협박 편지를 쓰기도 했던 사람입니다.(6:19) 도비야는 결코 유대인 편일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도비야가 성전에 있는 방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도비야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도비야가 유다 백성들과 아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비야는 자신의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여 유다 백성 가운데 힘 있는 사람과 계속 관계를 맺어왔고, 느헤미야 6:18절에서 말씀한 것처럼 유대의 힘있는 가문의 딸을 자신의 며느리로 맞아들이면서 유대인들과의 친분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정치적인 영향력 때문에 유대 백성 가운데는 도비야를 섬기기로 서약한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6:18) 그런 도비야의 정치적인 영향력은 대제사장에게까지 연결되었고, 당시 대제사장인 엘리아십이 도비야에게 성전 뜰의 한 방을 내어준 것입니다.

 

유다 백성의 공공의 적이었던 도비야가 대제사장뿐만 아니라 수많은 유다의 힘있는 사람들과 내통이 되어 성전 뜰에 있는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기가막힐 일입니다. 당시 사회가 얼마나 엉터리였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이어 나오는 말씀에 의하면 성전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습니다.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인들은 모두 성전을 떠나고 없었습니다. 성전에서 일하기 때문에 백성들로부터 양식을 얻어 생활해야 하는 레위인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성전에 대한 관심도 없고, 성전의 최고 책임자인 대제사장은 이방인이요 유대민족의 대적자인 도비야에게 방을 내어줄 정도로 타락해 있었습니다. 그러니 성전이 제대로 보존되지도 못하고, 성전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레위인들은 먹고살기 위해서 뿔뿔이 흩어지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도비야는 결코 성전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입니다. 반드시 성전에서 쫓아내야 할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시 예루살렘을 방문한 느헤미야가 두려움을 무릅쓰고 도비야를 쫓아내고 맙니다. 오늘 본문 8절에 느헤미야가 성전 뜰의 방에 있던 도비야의 세간을 다 밖으로 내 던질 때 그의 마음이 ‘심히 근심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근심했다는 말은 두려웠다는 뜻입니다. 도비야의 영향력을 알기 때문입니다. 도비야가 얼마나 악랄한 사람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때 유대백성들을 조롱했을 뿐만 아니라 군사들을 모아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협박했던 사람입니다. 느헤미야를 죽이기 위해서 모의하기도 하고, 느헤미야에게 협박편지도 여러 차례 보냈던 사람입니다. 유대백성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유대에서 제법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신하처럼 부려먹는 사람이고, 대제사장의 마음을 꼬드겨러 성전 뜰에 자신의 방을 만들 정도로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대제사장의 비호를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런 도비야를 성전 밖으로 쫓아낸다는 것은 두려운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정말로 도비야의 음모 속에 암살을 당할 수도 있고, 유대백성들의 저항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느헤미야는 과감하게 도비야를 쫓아내고 맙니다. 도비야를 쫓아낸 후, 도비야가 불법 점유하고 있던 그 방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의 전에서 귀하게 쓰는 그릇들과 제물들을 그 방에 들여놓았습니다. 느헤미야가 도비야를 성전에서 쫓아내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두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용기를 내어야만 그 일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심히 근심하고 두려울 수밖에 없는 그 일이지만 느헤미야는 과감하게 도비야를 내쫓고 성전을 정결하게 하고 성전 예배를 회복하게 됩니다.

 

여러분, 새해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올해 결심한 것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결심한 것 가운데 도비야를 쫓아낼 때 느헤미야가 가졌던 그런 신앙의 용기가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굳은 결심이 아니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 아니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결코 내 힘만으로는 헤쳐 나갈 수 없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용기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우리 마음 깊숙이에 뿌리박혀 있는 잘못된 생각들과 우리의 삶 깊은 곳에 뿌리박혀 있는 못된 습관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는 분명 도비야와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내 자신의 삶과 너무나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쉽게 뽑아지지 않고, 쉽게 제거할 수 없을 만큼 깊이 뿌리박혀 있는 옛사람의 모습도 있습니다. 여러분, 새해에는 그런 못된 습성들, 못된 습관들을 과감하게 제거하십시다.

 

내 삶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을 뽑아낸다고 하는 것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그것을 제거할 때 큰 아픔을 겪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것을 제거할 때 엄청난 저항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것을 제거하려 할 때 지금까지 살아왔던 내 삶 전체가 흔들리는 것같은 혼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뽑아내야 할 것이라면 뽑아야 합니다. 제거해야 할 것이라면 반드시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신앙의 나무가 바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내 삶에서 제거해야 할, 뽑아내야 할 도비야는 무엇입니까? 정결한 신앙생활을 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들, 하나님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만들어야 할 우리의 신앙을 방해하는 것들, 성장하고 성숙해져야 할 내 신앙과 인격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들, 그것들이 무엇이니까? 많은 것 하려 하지 말고 올 한해에 딱 하나만 버리십시다. 딱 하나만 바꾸어 보십시다.

 

지금 내가 기도해야 할 때인데 기도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무언가 때문에 기도하지 못했다면, 내가 기도하는데 방해가 되었던 것 딱 하나만 바꾸어 보십시다. 내가 하나님 앞에 좀 더 온전한 모습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예배드림에 방해가 되는 것 있다면 딱 하나만 바꾸어 보십시다. 거룩하고 성결한 신앙생활을 힘써야 하는데, 그런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는 잘못된 습관이 있다면 딱 하나만이라도 제거해 보십시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다. 내게 힘을 주셔서 반드시 제거해야 할 것 제거하는 데 힘을 주시도록 말입니다. 작심삼일입니다. 3일 동안 깊이 생각해 보십시다. 올해 내가 바른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제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내가 제거하고 바꾸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깊이 묵상해 보십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힘으로 바꾸어 보십시다.

 

분명 내 삶 깊숙이에 뿌리박혀 있는 잘못된 습관이나 성품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제거하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은 결코 성장하지 않습니다. 제거하는 것이 힘들다고, 그 일을 하는 것이 내겐 너무 큰 아픔이라고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지금의 이 모습을 극복해야만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해갑니다. 김연아 선수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 순간을 넘어야 다음 문이 열린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갈 수 있다.” 그렇습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도비야는 우리가 반드시 넘어야 할 장애물입니다. 그 장애물을 뛰어 넘어야 더 나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이 당신의 남은 인생의 첫날이다』라는 제목의 책에 카디자 윌리엄스(Khadijah Williams)가 2013년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하면서 졸업생을 대표해서 졸업연설을 한 글이 실려 있습니다.<사진1>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14살 때 차가운 쓰레기더미 속에서 저를 출산하셨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뉴욕의 거리를 전전했고 무료급식과 쓰레기를 뒤지며 굶주림을 해결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게 길거리에서 키워졌습니다. 값싼 모텔과 노숙자 쉼터를 찾는 일은 굉장히 드물었고, 대부분 차가운 길바닥과 냄새나는 뒷골목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 집 주소는 언제나 뉴욕 어느 동네의 식당 뒷골목이었습니다. 그렇게 제 이름은 ‘노숙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전 공부가 좋았습니다. 가진 것 없는 제가 그나마 남들과 같아지기 위해 한 권의 책을 더 읽고 한 번 더 생각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노숙자들이 모여 사는 텐트촌에서 어머니와 저는 두 모녀가 감수해야 할 위험한 시선을 참아내며 필사적으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12학년을 다니는 동안 자그마치 12곳의 학교를 옮겨 다니며 공부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한 달에 5권의 책을 읽었고 뉴욕의 모든 신문을 정독했습니다. 거리의 길바닥은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넓은 공부방이었습니다. 꿈이 생겼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나의 운명을 스스로 바꾸는 꿈. 우리 가족이 더 이상 남들의 비웃음 섞인 시선을 받지 않아도 되는 꿈입니다.

 

‘노숙자 주제에 대학은 꿈도 꾸지 마라.’ 사람들은 항상 같은 말을 했습니다. 저는 노숙자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항상 머리를 단정하게 했고 옷도 언제나 깨끗하게 입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공부했습니다. 11학년이 되었을 때는 어머니께 이사를 하더라도 더 이상 학교는 옮기지 않겠다고 부탁했습니다. 대학에 가려면 저에 대해 잘 아는 선생님의 추천서가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학교에 갔고 밤 11시가 되어서야 돌아갔습니다. 평균 4.0에 가까운 학점을 유지했고, 토론 동아리 참여, 육상팀으로 활동하는 등 다양한 학교 활동에도 참여했습니다. 모든 곳이 저에겐 배움의 장소였습니다.

 

이런 저에게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복지단체들이 장학금으로 저를 도와주기 시작했고 사회단체에서 절 지켜봐 주었습니다. 절 믿는 사람들이 생긴 것입니다.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내 인생과 운명을 바꾸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그리고 전 결국 브라운과 컬럼비아, 암허스트 등 미 전역의 20여개 대학으로부터 합격통지서를 받아냈습니다. 노숙자였던 저는 지금 하버드의 4년 장학생입니다. 전 제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에 언제나 자신감을 가졌고, 남들이 ‘노숙자니까 그래도 돼.’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습니다. 전 가난이 결코 변명거리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이름은 카디자 윌리엄스입니다. 더 이상 사람들은 저를 노숙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이 카디자 윌리엄스는 2013년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했고, 그가 원했던 교육기술기관 매니저로 사회 첫발을 내딛고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노숙자가 세계 최고의 대학인 하버드대학교에서 4년 장학생으로 공부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런데 그녀는 목표를 세우고 공부했고, 마침내 그녀의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도비야를 제거하는 것도 그만큼 힘든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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