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22장 7-20
22장 강해 2 누가 하나님을 달래나
박경호 목사 20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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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살펴볼 내용은 두려움과 공포와 근심에 사로잡혀 자신들을 스스로 구원하려는 이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구원하려고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민수기 22장 7절을 보면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이 손에 복채를 가지고 떠납니다. 여기서 복채라는 말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원문의 복채라는 단어는 점을 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해석이 어렵기에 의역하여 복채라는 단어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영어 성경에서도 점을 치는데 드는 비용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여기에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복채라는 말이 점을 치는 것에 대한 대가임에도 불구하고 발락이 발람에 보내는 복채는 단순히 점을 쳐서 미래에 어떻게 될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해 달라는 요청이라는 것입니다. 즉 이 복채는 발람이라는 거짓 선지자를 만족시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채는 만족을 시켜서 얻고자 하는 것을 얻어 내는 목적이 있는 뇌물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첫번째 방문자들과 그들이 가지고 온 복채를 돌려보내는 일이 있은 후에 발람이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두번째 방문에서 왜 그의 마음이 흔들려 가게 되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힌트가 됩니다.
사람은 뇌물로 인하여 만족될 수고 있고 마음이 흔들릴 수 있고 변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럴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믿는 신들 또한 그렇습니다. 그들은 인간들이 주는 것에 의존하며, 만족하여 그들이 원하는 것을 내어줍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과 그들의 신들이 교통하며, 관계를 맺는 방식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뇌물을 받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서 조종되어지고 만족을 구하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10장 17절을 보시면 우리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며, 평가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외모란 단순히 얼굴이나 키 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사회적 지위, 지적 능력, 부하거나, 가난하거나 개의치 않으시며, 그것에 의해서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다음 구절에서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사랑하고 나그네를 사랑하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뇌물을 받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뇌물이 하나님께는 아무런 소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이며,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데 고린도전서 1장 26-27절을 보면 우리를 구원하심에 있어서 우리의 지혜를 따지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능력의 크고 적음을 달아보지 않으셨고, 우리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복채라는 의미를 생각할 때에 우리는 성경이 중요하게 말하고 있는 한 단어를 생각해야 합니다. 바로 만족시키다 라는 단어에 대하여 입니다. 영어로는 propitiation 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화목제물로 번역이 됩니다. 왜 이 단어가 중요한가 하면 모든 인간들은 인생에서 만나는 넘지 못하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날 때 초 자연적인 능력을 바라보며,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을 찾게 되고 신을 만족시키거나, 달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결하는 시도를 합니다. 발락 처럼 말입니다. 또한 뇌물을 받고 하나님을 조종하려는 발람 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모든 인간들이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구원함을 얻지 못하였으며, 극복하지 못하였는데 바로 죽음이라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하나님께 범죄한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형벌이며,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믿는 어떠한 신들도 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였으며, 극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트리거나, 달래거나, 만족 시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아무리 많은 물질로도 안되며, 세상이 놀랄 만한 업적을 이룬다 하여도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조금도 벗어나거나, 진노의 양이나 크기를 줄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하는 일에 있어서 완전히 실패하였으며, 가능성이 전혀 없는 자포자기의 상태에 놓여 있으며, 비참한 종말을 맞이 할 수 밖에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만족하셨다, 그 노가 누그러졌다, 하나님의 진노가 달래어졌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방식으로 이러한 일이 일어났으며, 어떻게 이 일이 성취되게 되었는가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장 25절을 보면 [롬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이 구절에서 화목제물이라는 단어가 바로 propitiation 으로 만족시키다, 달래다, 누그러트리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화목제물이 즉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는 제물이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시고, 만족시키셨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답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화목제물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인간들의 죄에 대한 자신의 진노를 누그러트리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족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이 복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간들의 손에 의해서 지으신 분이 아니며, 그들로 섬김을 받으셔야만 만족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만족하게 하시며, 그러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값없이 사하여 주시며, 우리를 값없이 사랑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자랑스러워하며, 기뻐하며, 즐거워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그분의 우리를 향한 사랑이 왜 진실한가 하면, 그 사랑에는 거짓이 없으며, 감추거나, 숨겨진 의도가 없으며, 그 사랑은 자신의 아들을 버리시기까지 하신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세상의 신들과 다른 점은 거래가 끝이 나면, 서로에 대하여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금전적 관계와 필요 충족의 관계로만 맺어진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로서의 관계이기에 버리지 않으며, 떠나지 않고 우리를 인도하며, 이끌어 가셔서 그분을 닮도록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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