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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데살로니가후서

살후 3장 6-15절(게으름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 이삼규

by Preacher 2024.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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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후3장 6-15

게으름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이삼규 목사 20180902

낙양교회 http://nakyang.onmam.com

 

살후 3: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살후 3:7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살후 3:8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살후 3:9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살후 3: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살후 3: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살후 3:12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살후 3:13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살후 3:14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살후 3:15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

 

사람이 범하기 쉬운 치명적인 7가지 죄가 있습니다. 곧 “교만, 시기, 분노, 게으름, 탐욕, 탐식, 탐색”입니다.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고 교회를 타락시키는 이러한 죄들 중 하나가 ‘게으름’입니다. 게으름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 부잣집의 황소 한 마리와 노새 한 마리가 먹는 것도 같이 먹고 쉬는 것도 같이 쉬며 늘 함께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황소는 꾀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주인이 노새보다 나에게 더 힘든 일을 시키는 것 같아. 게다가 일도 더 많이 시키는 것 같단 말이야!” 황소는 앞으로 일을 안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주인이 일을 하라고 끌어내도 외양간에서 꼼짝도 안하고 누워만 있었습니다. 그러기를 며칠, 황소에게 슬슬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일을 하고 돌아온 노새에게 물었습니다.

“노새야 내가 일하지 않고 놀고 있는 것에 대해 주인이 아무 말도 안 하더냐?”

“아니, 아무 말도 없었어.”

“정말 아무 말도 없었어?”

“응, 그런데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주인이 소를 잡는 백정하고 오랫동안 얘기하더라.”

 

게으름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은밀한 죄악입니다. 게으름은 언제든지 우리 삶에 들어와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게을러지지 않도록 항상 경계하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보게 됩니다. 영적으로 각성하지 못하고 게으를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지고 그 결과 우리의 믿음은 흔들리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2장 실천 편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롬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베드로 사도도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을 때 열매 맺는 자가 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벧후 1: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예수님께서 소아시아 일곱교회에 편지하면서 첫 번째 교회인 에베소 교회들을 향하여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계 2: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살후 3: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여기에서 ‘명하노니’(파앙겔로)라는 말은 바울이 전한 복음이 신적 계시임을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고전 7:10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살전 4:11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살후 3:4 너희에 대하여는 우리가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딤전 4:11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어떤 명령을 주셨습니까?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먼저 ‘게으르게 행하는 자’에게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미 데살로니가 전서 4장과 5장에서도 명한 바가 있습니다.

 

살전 4:11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살전 5: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게으르게’라는 말은 현재형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전 권고보다 더 강한 메시지를 동반하는 말씀입니다. 게으름이 주는 폐혜가 크기 때문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바울이 전해준 올바른 복음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게으르게 행하는 자들과 바울이 전해준 올바른 복음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에게서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게으름은 성화의 과정을 통하여 제거되어야 할 대표적인 악이며, 영적인 불결입니다. 따라서 게으름과 싸워 그 뿌리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은혜의 영향력으로 파괴하지 않으면, 성화에 있어서 진보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거룩한 사람들의 분투하는 삶은 게으름과는 거리가 멀고 교회사에 나타난 뛰어난 영적 인물들 가운데 게으름과 친숙했던 사람은 없습니다. 죄가 들어오기 전에도,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는 노동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창조 세계를 하나님을 대신하여 선량한 관리자로서 돌보도록 위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과 물에 충만해질 모든 창조 세계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아름다운 창조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일하여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노동이 죄의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적으로 보면 노동 자체는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다만, 노동에서 경험하는 열매 없음과 고통이 죄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일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큰 축복이며, 우리가 이미 받은 구원의 은혜도 순종을 통한 부지런한 성화의 삶으로 더욱 풍성함을 누리게 됩니다.

 

요즘 가장 큰 고민거리가 무엇입니까? 일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현 정부도 그것이 가장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일자리가 많아서 고용을 창출해야 하는데 일자리가 없어서 일하고 싶어도 취업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들어갈 하나님 나라도 지루한 쉼이 계속되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거기서도 노동은 계속됩니다. 거기서 우리는 부지런히 하나님을 찬송하고 이 땅의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며 하나님을 섬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섬김에 행복할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새 성품은 날마다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고 그 분의 성품을 알아가기를 힘쓰려고 하지만, 우리 안에 아직 남아 있는 옛 성품은 나태하게 지내려 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게으르려고 합니다. 거룩한 사람에 대한 모든 무기력한 게으름 뒤에는 자기의 마음의 정욕을 따라 살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성경이 게으름을 혐오하여야 할 악으로 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착한 성품이 충성된 삶과 관련되고 악한 성품이 게으른 삶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성경의 진리는 이러한 사실과 맥을 같이 합니다. 달란트 비유는 이런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 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 25: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바울의 모범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전서 2:9절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였습니다.

 

살전 2: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살후 3:7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살후 3:8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살후 3:9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바울은 언제 어디서나 본이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본받아야’(미메오마이)라는 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주님을 본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에게 이제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바울 사도가 본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세운 원칙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무질서하게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질서하다는 것은 군인들이 대열에서 이탈하거나 대오를 떠날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 ‘의무에 태만하다, 제멋대로 굴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공동체라는 것은 항상 질서가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행진할 때도 항상 순서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유다지파를 선두로 해서 질서 있게 행진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합지졸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다스리는 치리회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당회입니다. 물론 당회원들을 세운 분들은 성도님들이지만 교회를 질서 있게 다스려 달라고 치리권을 맡긴 것입니다.

 

2)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살후 3:8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 말씀은 바울이 누구에게도 환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자비량 선교를 원칙으로 세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했습니다. 바울의 직업이 무엇이었습니까? 천막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바울이 자비량 선교 원칙을 세운 것은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원칙 때문입니다.

 

3)바울은 권리를 내려놓았습니다.

 

살후 3:9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마땅히 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고전 9:9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딤전 5:18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권리를 내려놓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전하는 모든 자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게으른 자들에게 주시는 권면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함께 있을 때에 어떤 명령을 하였습니까?

 

살후 3: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제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 힘들게 부모님 도와줄 때 마음에 걸리는 성경 구절이 바로 이 구절이었습니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 오늘 본문을 보면 게으르게 행하는 자들이 일으킨 문제가 있었습니다.

 

살후 3: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게으른 것보다 더 나쁜 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의 일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입니까? 게으른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일상적인 것에서 진전이 없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잠 26:14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 게으른 사람은 문이 돌쩌귀를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무엇을 하건 침대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침대가 그의 인생의 돌쩌귀가 되어서 무엇을 하건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주변만 맴돌다가 이내 그리로 복귀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기 때문에 게으른 사람에게는 발전이 없습니다.

 

왜 그런 삶을 살까요? 그에게 뚜렷한 목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희망사항은 있겠지요. 목표는 구체적인 실천 계획이 서 있고, 노력하면 성취가 가능한 단계에 있어, 꿈꾸는 이로 하여금 그것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삶을 그 목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게 하는 것입니다. 망상이나 희망 사항을 가지고 사는 데는 비용이 안 들지만,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살려면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 새로운 종목이 생겼는데 그것이 바로 클라이밍이라는 경기입니다. 암벽등반과 같은 것인데 구조물을 만들어 놓고 등반을 하는데 우리나라에 세계적인 선수가 있습니다. 김자인 선수입니다. 그 선수가 경기하는 것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다른 모든 선수들은 탑 지점까지 올라가지 못하는데 김자인 선수는 시간 안에 탑을 찍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선수의 발이나 손을 보면 얼마나 노력을 많이 하는 선수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게으르지 않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따라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게으르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먼저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인지를 생각하고 그 우선순위를 따라 자신의 삶을 재편해야 합니다.

 

선을 행하라!

 

살후 3:13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맡은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지칠 때가 있습니다. 혼자 하는 것만 같고, 길은 막힌 것 같아 힘들 때가 있습니다. 바울은 그런 어려움을 겪는 성도들에게 낙심하지 말라고 위로합니다. 막혀 있는 환경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일꾼으로 불러주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수고와 눈물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갈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떠나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게으름에서 떠나야 합니다. 바른 복음에서 곁 길로 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부지런해야 합니다. 선을 행해야 합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실 때가 있습니다. 게으름에서 떠나 선을 행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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