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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요나

욘 4장 1-11절(요나의 분노와 하나님의 자비) - 허창수

by Preacher 2023.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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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4장 1- 11

요나의 분노와 하나님의 자비

허창수 목사 5.08.09 1

동성교회 [창원시] https://https://cafe.daum.net/huhcs48/

 

사람들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할 때가 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가 반드시 재앙을 받아 멸망 받아야 할 죄악의 도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 니느웨 백성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는 것에 대해 분노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박넝쿨을 통해 요나의 분노가 잘못임을 깨닫게 하시고 니느웨에 재앙을 내리지 않은 자비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1: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니느웨로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런데 요나가 탄 배가 바다 가운데서 큰 폭풍으로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배 밑층에서 자고 있는 요나에게 선장이 깨워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1:6)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도망했던 요나는 결국 바다에 던져지고 큰 물고기가 삼켰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동안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요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물고기에게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고기 뱃속에서 살아나왔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요나에게 다시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3:2)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요나에 대한 설교를 많이 들었습니다. 물고기가 요나를 니느웨에 가까운 토했고, 요나는 일어나 곧 바로 니느웨에 들어가서 외쳤다는 설교를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지리적으로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로서 현재의 이라크에 한 성읍입니다. 그런가 하면 다시스는 현재 스페인입니다. 하나님은 동쪽에 있는 느니웨에 가라고 하셨지만 요나는 배를 타고 서쪽 다시스로 갔습니다. 물고기가 요나를 니느웨에 가까운 육지에 토했다는 것은 지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니느웨는 지중해와 접하지도 않았으며 아주 먼 반대 방향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나는 지중해 어느 해변에서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두 번째 말씀을 듣고 니느웨까지 갔습니다. 이때 요나가 니느웨까지 가는 길은 상당히 멀었습니다. 어쩌면 수일을 걸어갔을 것입니다.

 

니느웨를 악독이 가득한 채로 방치하면 죄로 인해 멸망할 것이 불을 보듯 분명했기 때문에 요나를 보내서 죄악을 지적하고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죄악에 대한 심판이 아닙니다. 죄인들의 구원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악독이 가득한 니느웨는 죄로 인해 재앙을 받고 망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느니웨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북한에 평양은 악독이 가득찬 도시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평양을 심판하시기보다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평양 시민들과 권력자들은 우리를 대적하는 철천지 원수들 입니다. 교회를 짓밟고 성도들을 죽인 하나님의 대적들입니다. 그들에게 가서 외쳐서 그들의 죄가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하신다면 쉽게 가서 외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이제 요나는 더 이상 피할 수 없어 니느웨로 가야만 했습니다. 당시 요나의 모습이 말이 아니였을 것입니다. 바다 가운데서 풍랑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지요, 바다에 던져져 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금식하며 기도하다가 물고기가 토해 냈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처럼 기력도 용기도 없는 상태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나는 사명감을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마지못해 억지로 가야만 했습니다. 니느웨에 도착하여 외쳤습니다. 니느웨 성읍은 사흘 동안 걸을 만큼의 큰 성읍이였습니다(3:3). 그러나 요나는 겨우 하루 동안 다니며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쳤습니다. 진심으로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큰 소리로 외쳤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니느웨 사람들이 두려워 겁먹은 소리로 외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요나의 소리를 듣고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3:5)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렸습니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았습니다(3:6).

 

왕과 대신들이 ‘니느웨에 선포하여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며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웃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3:7,8)고 조서를 내렸습니다.

 

요나가 외쳤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잠시 그 말씀을 살펴봅시다. 요나는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는 말씀을 외쳤습니다. 더 이상 다른 말씀을 외치지 않았습니다. 이 말씀은 선지자 요나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나 요나의 메시지지만 성령께서 요나에게 주신 메시지였습니다. 요나의 짧은 메시지는 종말론적이였습니다.

 

오늘 목사들도 종말론적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그 메시지는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요나가 니느웨에 전한 메시지를 듣고 온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는 듣는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용서 받고 구원받게 하는 것이라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메시지는 종말론적이지 못합니다. 죄에 대한 책망이나 무서운 심판에 대한 말씀이 없습니다. 종말론적 메시지는 죄로 인한 재앙과 멸망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듣고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말론적 메시지를 대부분 듣기 싫어합니다. 듣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 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그 영혼을 병들게 하고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요나가 전한 메시지는 니느웨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은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가 외쳤던 그 말씀을 듣고 왕으로부터 온 백성들이 회개하였습니다.

 

요나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왕으로부터 대신들과 온 성읍 사람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를 한 것입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셨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의 진실된 회개는 마침내 그들을 멸망시키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그들에게 내리실 재앙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니느웨가 용서받는 것을 보고 싫었습니다. 성내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1,2)라고 기도했습니다.

 

요나는 복음을 외쳤지만 그들이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재앙을 받아 멸망되기를 원했습니다. 요나가 우려했던 바가 현실화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강한 불만을 토한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소명에 절대 순복하여야 한다는 사실은 깨달았으나 앗수르에 대한 그의 적개심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불만을 품고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3)라고 말했습니다.

 

요나는 자신의 생각에 멸망 받아 마땅한 앗수르가 도리어 회개하고 구원을 받은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차라리 자신이 죽기를 구했습니다. 요나의 분노는 선지자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불만을 품고 성을 낸 요나에게 하나님은 ‘요나야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4) 라고 물었습니다. 요나의 분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의외로 부드러웠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질문에 대한 요나는 대답은 하지 않고, 니느웨 백성들이 어떻게 되는가를 보기 위해 산위에 올라가 초막을 짓고 니느웨가 멸망되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요나는 자신이 외친대로 니느웨 성이 40일이 지나면 하나님은 니느웨 성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기대한 것입니다. 요나 선지자의 이중 심리를 볼 수 있습니다. 메시지를 외치고 그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재앙을 받아 망하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요나는 일단 니느웨 성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초막을 짓고 성읍의 멸망을 기다렸습니다. 하늘로부터 유황불이 내려와 니느웨가 멸망당하는 것을 구경이라도 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아집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이중성을 볼 수 있습니다. 입으로는 축복하면서 속으로는 그가 벌을 받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재앙을 당하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 사람들이 진심으로 회개하는 것을 보시고 심판을 철회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요나는 자신이 전한 메시지대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 성읍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말로서 설득했지만 듣지 않으므로 박넝쿨을 통해 교훈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요나가 지은 초막 옆에 박넝쿨을 예비하셔서 그늘지게 하여 시원하도록 하셨습니다. 요나는 박넝쿨로 인하여 크게 기뻤습니다. 사막의 뜨거운 열기는 엉성하게 자신이 만든 초막으로는 막을 수가 없었지만, 하나님이 자라게 하신 박넝쿨의 그늘로 인하여 크게 기뻐했습니다.

 

박넝쿨로 인하여 더위를 피하게 된 요나의 기쁨은 하루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벌레로 인하여 박넝쿨을 갈아먹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동풍을 불게 하여 박넝쿨을 말라 죽게 하였습니다. 요나가 만든 초막은 뜨거운 햇볕을 막아줄 수가 없었습니다. 요나의 머리에 뜨거운 햇볕이 내려 쬐므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리라’(8)고 죽기를 구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요나에게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9) 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물으신 것은 요나가 실로 하찮은 것에 불과한 박넝쿨 때문에 분노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질문의 의도를 분명히 파악하지 못하고 박넝쿨이 사라짐으로 인하여 자신이 당하는 고통에 대해서만 강한 불만을 말했습니다.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9)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불만을 품고 죽어도 옳다고 말하는 요나에게 하나님은 조용하게 설득하시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온유하심과 인내하심과 자비하심과 놀라운 사랑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습니다. 왠만 하면 하나님께서 크게 화를 내시며 요나를 책망하실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러지 않으시고 조용하게 요나를 자신의 잘못을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10,11)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박넝쿨을 아끼는 마음과, 하나님의 니느웨 백성을 아끼는 마음을 대조하여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하루 정도 기쁨을 주는 박넝쿨을 아끼면서 죄중에 버려진 사람을 아끼지 못하는 요나가 아닌가를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하나님은 니느웨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찮은 박넝쿨을 아꼈던 요나는 니느웨 백성이 비록 죄악에 빠져 범죄하였지만, 그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죄중에 빠진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죄인을 구원하실 때 반드시 나와 여러분을 통해 복음을 외치게 하시고 그가 듣고 회개하게 하여 구원하십니다.

 

교회를 대적하고, 성도들을 심히 괴롭히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은 그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믿고 외칠 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그가 회개하고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마땅히 재앙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 할지라도 그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가 회개하고 구원받도록 하여 그와 함께 구원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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