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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요나

욘 4장 5-11절(요나의 관심, 하나님의 관심) - 이백민

by Preacher 2024.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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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4장 5-11

요나의 관심, 하나님의 관심

이백민 목사 2018.12.02

브니엘교회 [호주] http://ghttp://gcpeniel.org/xe/

 

선교는 보통 전도와 구분하여 다른 언어, 문화를 가진 다른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구약성경에 나타난 가장 대규모의 선교는 요나를 통한 니느웨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선교였습니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대규모의 선교는 사도 바울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신구약을 통틀어 가장 큰 규모의 선교는 바로 예수님의 의한 선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신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시는 선교를 길 잃은 양에 비유하셨습니다.

 

(눅 15: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눅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이 외에도 잃은 아들(탕자)과 잃은 드라크마 비유를 통해서 한 영혼의 구원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누가복음 15장에 계속해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요나서를 보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요나를 부르신 하나님 – God called Jonah.

 

요나가 활동하던 시기는 이스라엘 13대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2세 때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시기에 영토도 제일 많이 확장되었고 번영을 누렸습니다. 이러한 때에 앗수르라는 나라는 하나님께서 더 두고 보실 수 없을 정도로 악함이 가득하여 하나님께서 그 수도 니느웨를 멸망시키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욘 1: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그런데, 요나는 하나님의 부름과 명령을 받았음에도 순종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가라고 한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른 목적지인 다시스로 향하는 배를 탔습니다. 요나는 선지자이면서도 이방 사람들이 생각하듯 하나님이 이스라엘 어떤 지역에서만 존재하는 신이고 그가 원한다면 하나님을 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하였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리고, 요나서 전체를 읽어보면 마지못해 하나님의 명령에 억지로 끌려가듯 순종하지만 니느웨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못마땅해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시대에 아모스와 같은, 성경에 알려지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 잘 하는 다른 사람들을 세워서 니느웨로 보낼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하고 불순종하는 요나를 세워서 다른 사람들까지 위험에 처하게 하고,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 갔다가 나오고, 니느웨에서도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요나를 왜 선택하셔서 보내셨을까요?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도 있었지만 요나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욥의 고난에도 의미가 있었듯이 선교사 또는 선지자 자격조차 없을 것 같은 요나에게도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2.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 – God’s compassion for Nineveh.

 

요나는 왜 니느웨로 가기 싫어했을까요? 유대인들의 선민사상, 즉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 외에 다른 민족을 구원하시기로 한 것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 많은 신학자들이 지지하는 다른 해석으로는 니느웨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받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악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더 정확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멸하시기로 작정했다는 본문 말씀도 있기 때문입니다.

 

(욘 1: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멸망 당해도 마땅한 이 잔인하고 악한 민족을 왜 구원하려는 것인지 요나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적으로는 요나의 생각이 맞았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이 민족이 얼마 후에 북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완전히 멸망시키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인간적으로는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선지자 요나 입장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니느웨에 당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지만 요나의 마음은 차가웠습니다. 니느웨 백성들을 사랑하거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리라는 열망도 없었습니다. 아주 성의 없이 억지로 하나님의 심판을 니느웨 백성들에게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차라리 심판을 받으라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기대와는 달리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말씀을 들었던 니느웨 왕이 조서를 내려 온 백성들이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겸손를 표하면서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심판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욘 3: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요나는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여 용서 받는 것을 몹시 싫어하여 화를 내었습니다.

 

(욘 4: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욘 4: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3. 요나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 – God’s compassion for Jonah

 

불신자들 중에 요나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하나님이 있다면 어떻게 저렇게 나쁜 사람들을 그냥 놔 둘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사람들이 병들고 약하게 살도록, 어려움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느냐고도 말합니다. 요나도 사회적 정의감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요나가 멸망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던 니느웨 사람들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든 상태가 되어 요나는 하나님께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욘 4: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신앙적인 눈으로 볼 때 니느웨도 심판 받아야 했지만 요나도 심판 받아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요나도 끝까지 용서하시면서 이끌어 주시고 가르쳐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금방 죽는 것이 낫겠다고 한 요나의 자리에 박넝쿨이 자라게 하시고 그늘 밑에서 있었던 요나는 상쾌한 기분에 살맛이 났습니다.

 

(욘 4: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그리고 이튿날 새벽에 벌레들이 박넝쿨을 다 갉아먹게 하셔서 요나는 더운 날씨에 다시 힘들어 했습니다. 그리고, 몸이 힘들어 지니 다시 죽고 싶어졌습니다.

 

(욘 4: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하나님께서는 박넝쿨 없어져서 화내는 요나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옳으냐고 물어 보십니다. 요나는 하나님께 아주 대 들듯이 대답을 하였습니다.

 

(욘 4: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하나님께서는 박넝쿨 하나 때문에 살고 싶은 마음, 죽고 싶은 마음이 오가는 요나에게 이렇게 교훈을 주셨습니다.

 

(욘 4: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욘 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요나서는 이렇게 여운을 남기며 끝을 맺습니다. 요나서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보다는 오히려 요나에게 큰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니느웨 백성들은 잠깐의 회개로 멸망은 면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민족으로 완전히 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통하여 니느웨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것 보다 니느웨 백성들을 통하여 요나를 돌보시고, 가르치시고, 은혜 베푸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잃어 버린 양이 된 요나를 구원하시는 섬세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기 이전에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지,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먼저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의미에서 나 한 사람을 구원하시고 나 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적 용>

 

* 요나 4:5-11

 

1. 선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선교가 왜 필요합니까?

2. 요나는 선교사로서 어떤 점들이 부족하였습니까?

3. 선교사로서 부족한 자격을 가진 것 같은 요나를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용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4. 요나서는 대부분의 이야기의 초점이 니느웨 구원 보다는 요나에게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 사실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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