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6장 6-10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이삼규 목사 20180520
갈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먼저 영상 하나를 시청하겠습니다. 삶을 송두리째 바꾼 ‘드웨인 존슨’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이 영상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드웨인 존슨이 훌륭한 조디 스웩이란 스승을 만나지 못하였다면 헐리우드의 최고 스타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지난 15일은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스승의 날에 선생님들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이 통과된 후 오히려 선생님들이 스승의 날을 없앴으면 좋겠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물론 학생들이 대표로 선생님께 카네이션 하나 정도는 달아드릴 수 있지만 그 만큼 부담이 크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영이도 이번에 스승의 날에 학생들이 뭐해주었냐고 물어 보니까 그 반은 아무 것도 안했다고 합니다. 반장이 좀 똑똑하면 카네이션 하나라도 달아드리고 스승의 노래라도 불러줄텐데 반장이 무능해서 아무 것도 안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제 청년들이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여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같이 사진도 찍고 맛있는 식사도 대접받았습니다. 이렇게 우리 자녀들이 생각해주는 것만도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 사실은 사진 찍느라 청바지 준비하라고 해서 배보다 배꼽이 더 컸습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옛 날에 어떤 어른이 죽으면서 한자로 사람 인(人)자를 여섯 개를 써 놓고 죽었다고 합니다. 아무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뜻을 풀이하는 중년의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사람이 사람이라고 다 사람인가?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이 바로 교육입니다.
가르치는 자
우리에게는 참된 스승이 계십니다. 바로 우리의 영원하신 스승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드시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일명 세족식을 하신 것입니다. 세속식이 끝난 후에 주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요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우리 주님은 말로만 가르치시는 선생님이 아닙니다. 행함으로 본을 보여주신 선생님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보통 선생님이 아니십니다. 주님으로서 선생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 본을 보여 주시면서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옛날 전도사 때 수련회 가서 청년들의 발을 씻어 준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라고 하셨으니 한 번 해 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남의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이 그렇게 유쾌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자에게는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남쪽 유다 왕 중에 여호사밧은 선한 왕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잘못한 것이 있습니다. 북쪽 아하시야와 왕과 교제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대하 20:35 유다 왕 여호사밧이 나중에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교제하였는데 아하시야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였더라
여호사밧은 그 아들 여호람을 위하여 아합의 딸을 며느리로 맞이하였습니다(대하 21:6). 여호람은 왕이 된 후에 자기보다 착한 형제들을 죽이고 우상숭배를 하다가 창자에 중병이 들어 창자가 빠져 나와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 아하시야가 42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일 년을 통치하였습니다. 아하시야의 어머니가 누구입니까? 아달랴 즉 아합의 딸입니다.
대하 22:3 아하시야도 아합의 집 길로 행하였으니 이는 그의 어머니가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라
대하 22:4 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에 그가 패망하게 하는 아합의 집의 가르침을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아합의 집 같이 악을 행하였더라
대하 22:5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의 가르침을 따라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들이 요람을 상하게 한지라
북쪽 왕 아합의 아들 요람이 아람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우다 부상을 당하였습니다. 그래서 남쪽 왕 아하시야가 문병을 갔습니다. 그런데 예후가 반란을 일으켜 아합의 집을 무너뜨리고 북쪽 왕이 되었습니다. 그때 문병 갔던 아하시야도 그곳에서 죽임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그의 어머니 아달랴가 취한 행동이 무엇입니까?
대하 22:10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자기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유다 집의 왕국의 씨를 모두 진멸하였으나
대하 22:11 왕의 딸 여호사브앗이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몰래 빼내어 그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게 하였으므로 아달랴가 그를 죽이지 못하였더라 여호사브앗은 여호람 왕의 딸이요 아하시야의 누이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이더라
대하 22:12 요아스가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어떻게 할머니가 그렇게 악독할 수 있습니까? 왕의 씨를 진멸하고 스스로 여왕에 등극한 것입니다. 이때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이며 고모인 여호사브앗이 한 왕자를 숨겼습니다. 그가 바로 요아스입니다. 육년을 제사장의 집에서 숨어서 지낸 것입니다. 그 후에 제사장 여호야다의 준비로 아달랴를 몰아내고 요아스가 일곱 살 때 왕이 되었습니다.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아니었으면 절대로 왕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칠세에 왕이 되어 40년 동안 유다 나라를 통치하였는데 제사장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날 동안 요아스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습니다. 문제는 언제 일어났습니까? 영적 스승인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일어났습니다.
대하 24:17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대하 24:18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어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경고하였으나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하였습니다.
대하 24:20 이에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그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대하 24:21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령을 따라 그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죽였더라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입니다. 여호야다가 아니었다면 요아스가 살아남았겠습니까? 서슬 퍼런 아달랴를 몰아내고 그를 왕위에 올려놓았는데 그 스승의 은혜를 어떻게 이렇게 갚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스가랴가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대하 24:22 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을 죽이니 그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
요아스만 그렇게 행동했습니까? 웃시야 왕도 그랬습니다.
대하 26:4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대하 26:5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웃시야는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강성하여 지매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였습니다.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장들만 할 수 있는 분향을 하려고 하다가 나병이 걸려 평생 외롭게 별궁에서 살다가 죽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영적 스승이 중요합니다. 요아스 왕도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을 받아 바른 길로 갔었습니다. 그런데 스승이 죽고 난 후에 타락의 길로 간 것입니다. 웃시야 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죽은 후에 교만하게 행동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영적인 스승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영적 스승을 두고 계십니까?
가르침을 받는 자
갈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말씀을 가르침을 받는 자는 어떻게 하라고 바울 사도가 가르칩니까?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가르쳤습니다.
고전 9:9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고전 9:10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고전 9: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고전 9: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고전 9: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고전 9: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말씀하는 모든 좋은 것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좋은 것’이란 ‘아가도스’라고 하는데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선한’, ‘좋은’ 등 많은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땅도 여러 가지 땅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가운데 ‘좋은 땅’이 있습니다.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맺는 땅입니다. 바로 ‘아가도스’입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가르치는 자와 모든 선한 것 즉 좋은 것을 함께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좋은 것이 있을 때 가장 먼저 누가 생각납니까? 아마도 부모님 일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부모님과는 핏줄로 이어져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옛말에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임금과 스승과 부친은 한 몸과 같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함께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일체감이 필요한 것입니다. 일체감이 없이 좋은 것을 함께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가끔 좋은 것을 함께 해 주실 때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해드린 것이 별로 없는데 뜨거운 사랑을 베풀어 주시니 너무나 감사하고 절로 일체감이 듭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면에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빌 4: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빌 4: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빌 4: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빌 4: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을 할 때 바울의 복음 사역을 위하여 참여한 교회가 바로 빌립보교회 외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두 번이나 쓸 것을 보내었다고 말합니다. 에바브라디도 편에 보내 준 것을 받으므로 풍족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향기로운 제물이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무엇을 교훈합니까?
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우리는 앞에서 두 사람의 배은망덕한 행위를 살펴보았습니다. 영적인 스승인 여호야다와 스가랴가 살아있을 때는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다가 그들이 죽고 나니까 백팔십도 변해버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둡니다. 그러나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둡니다.
갈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선을 행함에 있어서 커다란 장애물이 무엇입니까? 낙심하여 포기하는 것입니다. 보통 씨를 뿌리고 거두는 데는 넉 달이 걸립니다(요 4:35). 영적인 씨를 뿌리는 것은 일찍 거둘 수도 있고 시간이 좀 더 지체될 수도 있습니다. 바울의 경고가 무엇입니까? 속지 말라는 것과 포기하지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르치는 자와 좋은 것을 함께 나누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엡 6: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무엇보다 가르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한 걸음 더 나아가 가르치는 자를 본 받는 것입니다.
히 13: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더욱 중요한 것은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입니다.
히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여러분이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이 바로 가르치는 자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그 사역을 감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근심으로 하게 만든다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영원한 참 스승이 계십니다. 그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가르침을 받은 자들입니다. 제자들입니다. 제자가 할일이 무엇입니까? 스승과 함께 모든 좋은 것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스승과 함께 좋은 것을 함께 나누기를 원하십니까? 스스로 속이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때가 이르면 반드시 거둡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지체들에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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