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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고린도전서

고전 15장 1-8절(부활을 믿습니까?) - 이삼규

by Preacher 2024.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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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5장 1-8

부활을 믿습니까?

이삼규 목사 20140420

낙양교회 http://nakyang.onmam.com

 

고전 15: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고전 15: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고전 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전 15: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 15: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고전 15: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고전 15: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고전 15: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이집트에 가면 수많은 피라미드가 있습니다. 하나하나를 봐도 엄청난 규모의 무덤입니다. 그 무덤 하나를 만들기 위하여 수십 년이 걸렸고, 수만 명이 동원되었습니다. 또 중국 시안(서안)에 가면 진나라 황제였던 진시황의 무덤이 있습니다. 엄청난 규모가 발굴되었는데도 모두 발굴하려면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를 정도의 규모를 자랑합니다. 평생 무덤 하나 장식하느라 온갖 힘을 다 쏟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권력자들은 죽어서도 무덤의 규모를 통해 자신들의 위용을 남기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의 무덤은 없습니다. 주님은 무덤에 머물러 계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죽은 자 가운데에 계실 수 없었습니다. 친히 생명이 되셔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망을 이기고 무덤을 깨치고 부활하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되지 못합니다. 세상에 흔히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소식입니다. 한 번도 그러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활의 주님은 그 놀라운 사건을 이루셨습니다. 그럼에도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고린도는 헬라의 도시였습니다. 헬라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하였을 때 어떤 자들은 바울을 비웃었습니다.

 

행 17: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대부분의 헬라 학자들은 인간의 몸을 일종의 감옥으로 보았기 때문에, 죽음을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보아서 오히려 환영하였습니다. 이러한 헬라 철학의 회의적인 입장은 교회에까지 침투하여 들어와, 바울은 이 문제와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부활의 진리는 성도들의 삶에 있어 교리적으로나 실생활에 있어서나 그 함축하는 의미가 컸기 때문에 무시해 버리기에는 너무도 중요한 진리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일명 ‘부활장’이라는 고린도전서 15장을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1.부활은 사실인가?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고린도의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그 기본적인 사실로부터 부활에 관한 논증을 시작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말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확신시키기 위해 세 가지 증거를 제시합니다.

 

1) 구원(15:1-2)

 

고전 15: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고전 15: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바울이 고린도에 와서 복음을 전했을 때, 고린도 인들의 신앙은 그들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 사실은 복음의 메시지에서 빠뜨릴 수 없는 요소입니다. 죽은 구세주는 아무도 구원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고, 그리스도를 믿었으며,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구원의 확증으로서의 말씀 위에 굳게 서 있습니다. 그들의 확고한 태도는 곧 그들의 믿음이 속 빈 것이 아니라 진실한 것임을 증거 해 줍니다.

 

2) 구약성경(15:3-4)

 

고전 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전 15: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여기에서 바울이 말한 ‘먼저’라는 말은 ‘제일 중요한’이라는 뜻입니다. 복음은 교회가 선포해야 할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사회 활동이나 인류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일에 참여하는 것도 유익한 일이지만 그러한 것들이 복음보다 우선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부활하시고, 그리고 여러 성도들에게 보이신 것은 복음이 발판으로 삼고 있는, 근본적인 역사적 사실입니다(3-5절).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라는 말은 그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신학적 설명입니다. 로마 제국은 많은 사람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세상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희생제물은 오직 한 분 예수님뿐이십니다.

 

“성경대로”(3절)라는 표현에서 바울이 언급한 성경은 구약 성경입니다. 구약 시대의 희생제사에는 우리의 대속자와 구주로서의 그리스도의 희생을 예표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속죄일의 제사(레 16장)와 이사야서 53장의 예언 역시 그리스도의 죽음을 알려 줍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 중 그리스도께서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선포하는 구절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셨습니다(마 12:38-41).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첫 열매로 비유합니다. 첫 열매는 구약에서 유월절 다음의 안식일 이튿날 하나님께 드려졌던 것이었습니다(레 23:9-14/고전 15:23). 안식일은 늘 일곱째 날에 해당하기 때문에 안식일 이튿날은 한 주간의 첫 날, 또는 주일에 해당되며 그 날은 우리 주님께서 친히 부활하신 날입니다. 초실절 외에도 구약성경에는 메시야의 부활에 대한 다른 예언들도 있습니다(시 16:8-11/22:22 이하/ 사 53:10-12/ 시 2:7).

 

3) 증인들(15:5-11)

 

십자가의 예수님은 불신자들의 눈에도 보여졌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당신의 부활을 증거 할 수 있는 믿는 자들에게만 보이셨습니다.

 

행 1: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행 2: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행 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행 5: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으며 한곳에 모였던 제자들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친형제인 야고보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신자가 되었습니다.

 

요 7:5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행 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또 500여 명의 형제가 동시에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하였습니다(6절).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은 절대 착각이나 기만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 일은 승천하기 바로 전에 일어났었을 것입니다.

 

마 28: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그러나 주님의 부활에 대한 가장 뚜렷한 증인은 바울 자신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불신자였을 때 그는 예수님의 죽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의 근본적인 변화, 그로 하여금 핍박하게 만들고 고통당하게 만든 바울의 변화야말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셨다는 데 대한 생생한 증거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구원이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며, 자신이 주를 섬길 때에도 그 은혜가 자신 안에서 그리고 자신을 통해서 역사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이러한 바울의 설명에 대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예,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에 동의합니다.”라고 말했다면, 바울은 “너희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면 또한 모든 죽은 자들의 부활도 믿어야 할 것이다.”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으로, 진정한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가 체험하는 모든 것, 범죄만 빼놓고 모든 것을 체험하셨습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복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복음이 없다면 우리들이 믿는 믿음도 헛것이며, 우리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셈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이미 죽은 성도들은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결코 다시 보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통만 받으면, 기대할 만한 장차의 영광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까? 부활은 단순히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부활은 언제 있는가?

 

바울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하여 세 가지 비유적 표현을 들어 설명합니다.

 

1) 첫 열매(15:20,23)

 

레위기 23장에 보면 곡물을 거둘 때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 가져가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제사장은 그 단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바쳤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유월절 날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한 묶음의 첫 열매로서 예수님께서 장사된 지 사흘 후인 주간의 첫날에 부활하셨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첫 곡식 단을 하나님 앞에서 흔드는 것은 수확한 곡식이 모두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것은 우리도 장차의 수확의 일부가 될 것이라는 데 대한 하나님의 보증입니다. 신자들에게 있어 죽음은 그저 ‘잠자는’것일 뿐입니다. 육체는 잠자지만 영혼은 주님과 함께 본향에 거합니다(빌 1:21-23/고후 5:1-8). 부활 때, 잠자던 육체는 깨어나서 영광스럽게 변화될 것입니다.

 

2) 아담(15:21-23)

 

바울은 아담에게서 그리스도의 표상을 보되, 대조적인 모습의 표상을 봅니다(롬 5:12-21절 참조). 첫째 아담은 흙으로 지음을 받았으나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부터 오셨습니다(15:45-47). 첫째 아담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이 세상에 죄와 사망을 가져다 주었지만, 둘째 아담은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써 의와 영생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23절에 언급된 “차례”(order)라는 말은 원래 군대의 서열을 의미하는 용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활에 일련의 질서, 또는 순서를 설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중에 재림하실 때, 그분은 당신의 교회를 들어 올리실 것이며 동시에 모든 믿는 사람과 믿음 안에서 죽은 자들을 일으키실 것입니다(살전 4:13-18). 예수님께서는 것을 “생명의 부활”(요5:29)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심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실 때 죄인들은 “심판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요5:29, 계 20:11-15).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 중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며, 둘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아무도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나라(15:24-28)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오실 때,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 천년 동안 죄악들을 몰아내시고 당신의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계20:1-6). 그때에 신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다스리며 주님의 영광과 권세에 동참할 것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 대한 최후의 반역이 있게 되고 예수님께서는 이 반역을 당신의 권세로 멸하실 것입니다. 그때에 죄인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고 불 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또한 그때에 죽음 자체도 지옥에 던져져서 최후의 적인 사망이 궤멸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 당신의 교회로 돌아오실까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은 “순식간에 홀연히”(15:51절)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날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3.어떻게 부활하는가?(15:35-48)

 

성경 어느 곳에도 부활 때에 하나님께서 흩어진 조각들을 다시 모아 우리의 이전의 몸으로 돌이킨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부활에는 연속성은 있지만(부활한 몸이 우리의 몸이라는 점에서), 동일성은 없습니다(부활한 몸은 이전과 같은 몸이 아니라는 점에서). 바울은 그러한 기적이 말로 설명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부활의 이 교리를 분명히 하기 위해 세 가지의 유추적 표현을 사용하여 설명해 줍니다.

 

1) 씨앗(15:35-38, 42-48)

 

씨를 뿌릴 때에 우리는 그것과 똑 같은 씨를 추수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씨는 죽지만, 그 죽음에서 생명이 탄생합니다(요12:23-29). 비록 얼마 안 되는 밀알들을 뿌렸어도 그 식물이 자라서 추수할 때에는 많은 밀알을 얻습니다. 그러나 새로 추수한 곡식이 처음에 심겨졌던 종자와 똑 같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유전자는 동일합니다. 연속성이 있습니다. 밀을 심었는데 보리를 거두지는 않습니다.

 

더욱, 추수 때에 얻는 것들은 종자로 심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습니다. 그 특별한 한 예로 튤립을 들 수 있습니다. 작년 가을에 교회 화단에 튤립을 심었습니다. 튤립의 구근처첨 못생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배 끝나고 저희 집 앞에 있는 화단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빨간 튤립과 노란 튤립 꽃이 피어 있습니다. 부활 때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우리를 옛 모습 그대로 환원시키는 것이 고작이라면, 하나도 나아지는 것이 없습니다. 또한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늘의 영광을 향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에 합당한 몸을 갖는 것입니다.

 

고전 15: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고전 15: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고전 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고전 15:45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전 15: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고전 15: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고전 15: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현재 우리의 몸은 이 지상의 환경에 적합합니다. 그러나 부활한 몸은 영적 환경에 적합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신속히 움직이실 수 있었으며 잠겨진 문을 그대로 통과하실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분은 음식을 드실 수도 있었으며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몸을 손으로 만지고 촉감을 느꼈습니다. 바울이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합니다. 부활의 몸은 구속 사역의 완성이며 우리로 구주 예수님의 형상을 닮게 한다는 것입니다.

 

고전 15: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즉 먼저 육이요(또는 땅의 것), 그 다음에는 신령한 것(또는 하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출생은 우리에게 육적인 것을 주지만, 두 번째 출생은 영적인 것을 제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의 것, 육적인 것을 거부 하시면서 “네가 거듭나야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버리시고 아벨을 선택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첫 아들 이스마엘은 거부하시고 둘째 아들 이삭을 선택하셨습니다. 우리가 첫 번째 출생에 의존하면 장차 영원한 정죄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출생을 체험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축복받게 될 것입니다.

 

2) 육체(15:39)

 

바울은 종류가 다른 동물의 세포 조직은 서로 다르다는 과학적 발견을 예고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다양한 종의 생물들을 아무 구별도 없이 번식시킬 수 없습니다. 인간의 몸은 한 종류의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짐승, 새, 물고기는 다 그 나름대로의 고유한 육체적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짐승과 새와 물고기의 육체를 각각 다르게 만드실 수 있다면, 부활 때의 우리의 몸을 왜 다르게 만드시지 못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부활에 참여하는 것은 오직 사람들뿐입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애완동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입니다.

 

3) 하늘의 육체(15:40-41)

 

땅에 속한 육체도 있지만 하늘에 속한 육체도 있습니다. 양자는 서로 다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하늘에 속한 육체의 영광도 서로 다릅니다. 여기서 바울은 비록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영화롭게 된 몸을 가지게 될지라도 그 영광중에서 신자들은 서로 다를 것이라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천국에 있는 그릇은 가득 채워지지만 어떤 그릇은 다른 그릇보다 클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지상에 있을 때에 충성과 헌신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몸이 지상에 적합하도록 창조되었듯이 부활한 몸은 천국에 합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부활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결론이 무엇입니까?

 

고전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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