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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나훔

나 1장 7~9절(강해 3 - 심판과 긍휼) - 윤희주

by Preacher 2024.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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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1장 7~9

심판과 긍휼 [강해 3]

윤희주 목사

신행카페 http://cafe.naver.com/pasu7777/

 

나훔서는 요나서와 쌍벽을 이루는 성경으로써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민족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를 향하신 경고의 예언이십니다. 당시 10만명만 되어도 아주 큰 도시였는데 니느웨는 60만명이나 살던 세계적인 도시였습니다. 요나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선언되었더라도 회개하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는다는 경고이고 나훔서는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듣고도 회개치 않으면 심판받아 망한다는 것에 강조점을 두었습니다. 이제 7절~15절까지에서는 나훔서의 가장 중요한 내용을 배울 수 있습니다. 나훔서에서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심판하시는 것은 니느웨의 범죄를 심판하셨음을 강조하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로하시기 위해 심판하셨음을 가르치십니다. 북쪽 이스라엘을 잡아가 혼혈족으로 만들어 이스라엘 민족을 없애 버린 악랄한 앗수르를 심판해 버리심으로 남쪽 유다가 큰 위로를 받게 됨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7절)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의뢰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이 말씀이 나훔서 전체를 대표하는 요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 니느웨를 심판하셨다고해서 악한 분이 아니시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멸망받지 아니하도록 요나 선지자를 보내 주셨고 나훔 선지자까지 보내 주셨습니다. 선민이 아닌 우상 숭배자들인 이방 민족이지만 그렇게 하심은 여호와는 선하시며 악한 분이 아니라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방 민족이라도 요나의 경고를 듣고 회개하니 긍휼을 베푸셨고 나훔 선지자의 경고를 무시하니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하나님은 선하시기에 환난 날에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악하시면 환난 날에 더 환난을 당하도록 할 것입니다. 환난을 당하는 사람은 그 어떤 사람에게로 피하려 하지 말고 산성되시는 하나님께로 피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이 있습니다. 전쟁이 나면 왕이 그곳으로 피신했고 정부가 그곳으로 피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흔들리지 않고 가장 든든하다고 여기는 것이 산이이어서 그곳에 성을 쌓은 것입니다. 그는 자기에게 의뢰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산성이신줄 알고 그곳으로 피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돌아보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기에 어느 누구도, 어떤 세력도, 감히 넘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품안에 있는 자를 누가 감히 손대겠습니까? 손댄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손대는 행위가 되니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어려울 때 하나님께 피하는 증거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15절을 보시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라고 분명히 언약해 주셨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십시요. 반드시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건져 주실 것입니다. 환난 날에 하나님께서 아시는 자가 된다면 승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환난 중에 계십니까? 이궁리, 저궁리 하지 마시고 당장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십시요. 이기적 마음으로 무릎 꿇어서는 해결이 없습니다. 전적 하나님께 맡기고 지금까지 받은 은혜에 감사만 하십시요. 이것 달라, 저것 해주라, 요구만 하지 마십시요. 무엇이 필요한지는 우리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시니 처분은 하나님께 전적 맡기기만 하십시요. 욕심을 버리시고, 이기심을 버리시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어렵게 된 원인을 찾아 집중 회개하시면서 주신 은혜에 감사하면 환난은 어느새 없어질 것입니다. 새로운 은혜가 예전의 형편보다 더욱 크게 임하심을 분명 체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산성되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피하시길 바랍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을 보시면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하나님이 아시는 자가 되면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게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 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를 지켜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많은 성도들이 산성되신 하나님, 피난처 되신 하나님,,, 하면서도 어려움을 직면하면 하나님 앞에 먼저 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생각에 힘이 될만한 사람부터 찾는다는 것이지요. 실컷 고생한 다음에야 비로소 진정어린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찾아봐도 별 수 없으니 그제서야 하나님을 찾는다는 말이지요. 사람을 찾아 일단 위기는 모면했다 하더라도 결국엔 실패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도리어 더 큰 실패의 자리로 간다는 것입니다. 오직 든든한 산성되시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으십니다.

 

●(8절) 그가 범람한 물로 그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이 말씀은 니느웨를 향한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데 홍수가 지나간 자리처럼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7절의 은혜를 받게 되지만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면 8절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도 회개할 줄 모르는 니느웨를 어두움이 땅을 덮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천지가 되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우리는 잘 살펴야 합니다. 경고하셨는데도 돌아서지 않고 그대로 행하면 자취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판하심을 명심해야 합니다. 더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됨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말씀이 니느웨에 그대로 이루어져 니느웨가 어디쯤 있었는지 자취를 찾지 못하다가 현대에 이르러 고고학이 발달하니 학자들이 폐허된 자취를 겨우 발견했다고 합니다. 회개치 않으면 흔적조차 없애 버리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명심하며 살아야 합니다.

 

●(9절) 너희가 여호와를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그가 온전히 멸하시리니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여호와를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유대인, 너희는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과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보호하시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는 것입니다. 그가 온전히 멸하시리니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완전히 소멸되어서 소망이란 다시는 없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니느웨가 완전히 망하여 다시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일이 없게 된다는 말씀이지요.

 

환난 중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자들은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지만 환난에 거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들은 환난을 당하다가 결국엔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앗수르가 그 괴롭힘의 댓가를 멸망으로 치루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도를 괴롭히는 자의 종말을 알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도를 괴롭히는 자는 불신자나 이방인들만이 아닙니다. 성도라면서 성도를 괴롭히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같은 교회 안에서 왜 서로 상처를 주고 싸우고 합니까? 참 희한한 일이 서로 싸우면서 생각하는 것이 자기만이 하나님 편에 섰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싸워야 할 이유가 하나님의 진리에 섰기 때문에 마귀의 세력과 싸운다고 생각하니 정말 우습고도 희한하다는 것이지요. 물론 상대방이 악한 짓을 했다고 판단했기에 싸울 것입니다만 그들도 회개하면 하나님의 귀한 자녀인 것을 간과하면 안됩니다. 그들을 징계하겠노라고 싸우는 자기 자신도 회개치 않으면 니느웨의 꼴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 버리면 안됩니다.

 

어쨋던 교회 안에서 싸운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었음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 편이고 너는 아니다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심판을 부른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길이 참으시는데 인간인 내가 왜 나서서 하나님의 참으심을 방해하려 합니까? 원수까지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왜 내가 나서서 하나님의 근본 성품까지 훼손시키려 합니까? 공의를 행하시기까지 오래 참으시면서 기회를 주시려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을 왜 내가 나서서 하나님 대신 공의를 행하려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나타내실 때 사람을 통해서 나타내시니 내가 그 사람이다! 이런 생각입니까? 하나님의 지체인 교회에서 분쟁을 일으키고 싸우는 자는 결단코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니느웨가 따로 있는게 아닙니다. 현대판 니느웨가 되지 마시길 진정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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