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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예레미야

렘 29장 10-14절(생각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 정오영

by Preacher 2023.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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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29장 10-14

생각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정오영 목사 2016-07-24

울타리교회

 

어저께 노은성이가 밖에서 넘어져 무릎 쪽에 조그마한 상처가 있었습니다... 아주 어리광을 부리고 아주 불쌍한 모습으로 바라보면서 흑흑흑....... 노은성 무릎이 아파요?... 목사님 아파요...흑 흑 흑... 아파---...이리로 와라...목사님이 기도하면 안 아플 거야...! <하나님..은성이가 무릎을 다쳤는데 아파요 이제부터 안 아프게 해 주세요...> 조금 있다가 또 다시 아프다고 해요.... 다시 기도해 줄게 ...이번에는 기도해 주고서 목사님이 기도했으니 안 아퍼요....... 하나님이 안 아프게 해줘요....... 이제 부터는 안 아플 것을 아주 강조했습니다........ 은성이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 뒤로 아프다고 안하는 것이었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되는데..... 곰곰이 생각 해 보았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되는데 ......... 아주 쉬운 것인데.... 왜 사람들은 고민을 할까? 생각을 바꾸지 않으니 말 입니다...

 

일상에서 우리들의 생각에 고정되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고정된 생각은 우리에게 잘못되고 우리를 파멸로 이끌어 갈 수가 있습니다... 얼마든지 내 생각이 맞다는 보장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진리가 아니며 어느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은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숨 가쁘게 달리다가도 가끔은 자신을 살피고 생각을 바꿀 것이 있는 지를 살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할 것을 바꾸라고 합니다....

 

1. 하나님의 생각으로 (11절)

 

[렘]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 이니라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으로..... 19세기 실존주의 신학자 키르케고르는 실존을 세 가지로 분류를 하였습니다.. 미적실존, 윤리적 실존, 종교적 실존으로 분류합니다. 미적실존은 육체의 쾌락을 좆아 자신의 욕망대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윤리적 실존은 진지하고 성실한 삶을 추구하며 도덕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성실, 겸손, 진지, 양심, 의무, 반복) 종교적 실존은 신 앞에 단독자로 홀로서서 영원한 진리를 대면하고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실존의 참 모습을 말합니다... (인간이 신 앞에 선다는 것, 영원한 진리를 대면한다는 것,)

 

(내 주관적인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이라는 객관적이며 - 하나님 주관적인 생각이 내 인생에 적용되어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를 생각하시고 은혜를 부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크신 은혜를 부어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나 크 은혜를 주십니까? 사라, 라헬, 잉테하지 못하던 자가 잉태를 합니다. 에굽에 묶어두지 아니하시고 이끌어 내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굼주린 자들에게 양식을 주시었습니다. 목마른 자들에게 물과 생수를 주십니다.. 바벨론 포로(종)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이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눈은 항상 그가 구원하신 성도를 향하십니다.(시8:4)

 

[시]8: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8: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족히 비교 할 수가 없습니다...(사55:8-9)

 

하나님의 생각은 심히 깊으십니다.(시92:5)

 

[시]92:5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 깊으신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1)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미워서 재앙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삼상]6:9 보고 있다가 만일 궤가 그 본 지역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의 손이 아니요 우연히 당한 것인 줄 알리라 하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지 아니하는 것이 재앙입니다.

 

[신]31:17 ..이 재앙이 우리에게 내림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냐 할 것이라

[신]31:18 또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들을 따르는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

 

예수님이 찾으셨던 사람들은 연약한 사람, 낮은 사람, 외로운 사람,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보다 더 슬펐던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나보다 더 아팠던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 나보다 더 소외되고, 나보다 더 큰 인생의 고통을 겪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무슨 뜻입니까? 실제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에게, 어떤 것을 지고 있더라도 내게 나오면 내가 너희에게 절망을 넘어설 희망을, 슬픔을 넘어설 기쁨을, 죽음을 넘어설 부활의 생명을 선물로 주겠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몸으로 보이신 것이 십자기에 달려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신 새 생명의 역사입니다. 곧, 인생이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부활과 생명을 향해서 달려가라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고난과 시련을 겪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서 좌절하지 말고 다시 일어서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오늘의 안주가 아니라 미래와 희망

 

인생에서 무언가를 도전하여 성공을 이루는 자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될 때까지 끊임없이 도전하는 4전5기형 사람입니다.......... 우리교회 최선홍이형 또 하나의 형은 오늘에 현실에 안주하지 도전하는 소망으로 끊임없이 도전하는 형........우리교회 노희표집사형 우리 신앙인 모두에게도 신앙적 소망은 분명하고 확실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희망이 정말 이런 것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희망을 우리는 ‘소망’이라고 합니다. 막연한 기대나 희망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희망, 우리가 말하는 소망이란 하나님에 대한 소망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소망이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소망입니다. 우리는 막연한 소망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명백히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겠다는 그것 아닙니까? 우리는 그 소망에 붙잡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그것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향한 소망이었습니다. 포로에서 다시 돌아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비젼은 오늘의 안주가 아니라 미래와 희망입니다.

 

2. 기도하려는 생각으로(11-12절)

 

[렘]29: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렘]29: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기도는 하나님과 친근히 지내는 것입니다... 기도는 이름을 의뢰하는 자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가까이 함(약4:8)

 

[약]4: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약]4: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약]4: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1)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엎드려 기도할 생각으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대인 포로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나라가 풍전등화 앞에서 존폐의 위기에 있을 때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은 예루살렘의 수많은 젊은 청년들을 포로로 붙들어 갔습니다. 그들은 강제 노역장에서 엄청난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지금이야말로 바로 기도할 때”라고 권면했습니다. 힘들고 지쳐있으면서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그때가 바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임을 주지시켰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명령하셔서 이스라엘 포로들에게 부르짖어 기도할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하나님은 역사를 이끌어 가실 때 분명한 두 가지 주관을 갖고 계십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역사를 만들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를 인간에게 맡기고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삼아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둘째로 택함 받은 자(소명: calling)는 하나님과 가까이서 모든 것을 의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의 여러 곳에서 하나님은 “나와 의논하자”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곧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의논하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라는 것입니다.

 

[마]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7: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심지어 하나님은 택한 자에게 주실 것을 다 준비해 놓으시고도 구해야(기도해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구하지 아니하면 주시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찾을 수 있도록 숨어 계신 분이십니다. 예레미야는 포로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는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한 명도 찾지 못 하게 숨어 계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찾을 수 있게 숨어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과 하나님을 만난다는 말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모세는 80세까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80세에 가시나무 앞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180도로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숨어 계십니다. 그러나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나타나주십니다. 찾을 수 있게 숨어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어거스틴은 예수님 이후에 가장 예수님과 같은 사람을 어거스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한 분이시지만 예수님을 닮으려고 하였던 사람들은 수 십억명이 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예수님을 닮은 사람을 어거스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거스틴의 영향 아래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성경은 어거스틴이 확정시켜 놓은 것입니다. 그는 어려서 방탕하였습니다. 술과 여자로 살고 있었습니다. 방탕할 때 어머니 모니카는 암브로시우스 목사의 권면을 들었습니다. <기도하는 부모의 자녀는 망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어거스틴은 <성경을 펼쳐 보라>는 신비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음성으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성경을 펼쳐 들었습니다. 그 성경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붓은 기독교를 정리하는 신학대전으로 나타났습니다.

 

3. 언약의 말씀으로 (14절)

 

나의 고정관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으로 빠꾸어야 합니다.

 

[렘]29: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언약에는 은혜 언약과 행위 언약이 있습니다>

 

성경의 언약은, 언약의 저주가 누구에게 임하는 가에 따라, 크게 은혜 언약과 행위 언약으로 나누어집니다. 은혜 언약이란 하나님이 주권적인 사랑으로 주시는 일방적인 언약입니다. 은혜 언약에서는 계약 파기의 저주를 하나님이 지십니다. 인간의 죄를 하나님이 감당하시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서 행위 언약에서는 계약 파기의 저주가 계약을 범한 사람에게 임합니다. 행위 언약이란 인간의 행위가 조건으로 붙는 언약입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군주-봉신의 관계는, 인간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들을 행하는 한에 있어서만 유효한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범하면, 그 언약은 파기되는 것입니다.

 

<모든 언약의 완성 – 새 언약>

 

그러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노아와 맺으신 언약을 비롯해서, 성경에 여러 언약이 나오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언약은 무엇입니까? 이전의 모든 언약을 최종적으로 완성한 언약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피로 세워진 ‘새 언약’ 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성찬 예식을 제정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8).

 

누가복음 22장 20절에는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새 언약의 특징은 예수님의 몸이 찢기시고 예수님이 피를 흘리셨다는 것입니다. 죄는 인간이 지었는데, 저주의 피, 죄 사함의 피를 예수님이 흘리셨습니다. 새 언약은 은혜 언약입니다. 새 언약의 백성이 되기 위하여 인간에게 요구되는 행위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피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새 언약은 무조건적인 은혜 언약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한량없는 은혜를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베드로는 생각을 바꾸어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데로 그물을 내리리라.

 

[눅]5: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눅]5: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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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만 장군은 게하시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꾸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이나 씻었습니다.

 

[왕하]5: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왕하]5: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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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만 하옵소서..........내가 듣겠나이다. 이제 내가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꿔보면 어떨까요?(렘29:10-14)

 

1. 하나님의 생각으로 (11절)

 

2. 기도하려는 생각으로(11-12절)

 

3. 언약의 말씀으로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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