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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예레미야

렘 23장 9-17절(선지자들의 사악) - 강대식

by Preacher 2024.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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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23장 9-17

선지자들의 사악

강대식 목사 2019.07.28

한가족교회 http://ahttp://afamily.ijesus.net/

 

1.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악하다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악한지라 내가 내 집에서도 그들의 악을 발견하였노라” “내가 사마리아 선지자들 가운데 우매함을 보았나니 --- 내가 예루살렘 선지자들 가운데도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과 다름이 없고 그 주민은 고모라와 다름이 없으니라”(렘23:12-14)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을 대신하였으며, 제사장은 전문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제사)을 주관하는 사람이다. 백성들은 성전에서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께 죄사함을 위한 희생제사를 드렸다. 제사장직은 아론이 속하였던 레위지파 사람들이 대대로 물려받은 직분이었다. 제사장은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기도 하였고, 민·형사 재판을 주관하는 재판장 역할도 했다. (예수님 당시, 제사장 수 18,000명, 24반열 일주일 정도 직무) 선지자는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활동하였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모든 것을 선포하셨다. 선지자의 기원은 모세에게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신18:15)에 있다.

 

모세는 구약에서 가장 뛰어난 선지자였으며,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명에 의했으며 기름부음을 받았다. 선지자들은 성경을 기록하였으며, 메시야와 이스라엘 운명과 종말에 대하여 예언했다. 선지자와 제사장들은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의 거룩한 모범이 되어야 했으나, 오히려 하나님과 백성들 앞에서 사악의 모범과 근원이 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악한지라. ‘사악’은 ‘간사하고 악독’하다는 것이다. 유다의 멸망을 앞둔 예레미야 선지자의 시대에는 그 사악함이 극에 달하였다.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렘5:30-31)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상하고 모든 뼈가 떨리며 취한 사람 같이 된다고 하였다.(9절)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고 하셨다. (29절) 그러나 사악한 선지자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하나님 말씀으로 예언하였다.(26절)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한 것이었다. 사악한 선지자들은 거짓 꿈을 예언하였고,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백성을 미혹하였다.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0-32절)

 

하나님은 그들이 내 집에서도 성전에서도 서슴치 않고 악을 행하였다고 하신다. 사마리아 선지자들은 우매하여 바알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그릇되게 하였다. 예루살렘 선지자들은 가증한 일을 저질렀으니 간음을 행하며 거짓을 말하였다. 또한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다. 그래서 선지자와 제사장들은 다 하나님 앞에서 소돔과 다름이 없었고, 백성들은 고모라와 다름없게 되고 말았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당시에만 유효한 말씀이겠는가? 예수님 오셨을 당시에도 유대인들은 머리에서부터 꼬리에 이르기까지 그러했다. 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장로들과 대제사장들이 서기관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예수님은 그들이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하나님을 헛되이 섬긴다고 하셨다.

 

오늘날 현대 교회도 하나님을 헛되이 섬기는 원인은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것이고, 거짓을 설교하는 것이고, 마음의 간교한 것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목사들을 길러내는 유명 신학교에서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들만을 가르치고 있다. 성경을 읽지 않고 배우지 않는 현대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좋게 여기고 있다. 그들은 이 사악한 현대판 선지자들이 세상의 영을 받아 가르치는 사람의 지혜인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아 가르치는 성령의 지혜인지, 도무지 분별을 못하고 있다. 그저 재미있고 교훈적이고 교양적이고, 축복과 평안과 형통을 약속하면 은혜 받았다고 안심하고 만족하고 있다. 그 큰 문, 그 넓은 길이 멸망으로 인도하는지를 도무지 모르는 것이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도 적다는 주의 말씀에는 주의조차 기울이지 않는다

 

2.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로부터 나와서 온 땅에 퍼진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선지자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리니 이는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로부터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하시니라”(렘23:15)

 

전쟁을 이기게 하시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하시는 말씀이다.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해서 고통스럽게 죽이겠다는 선언이시다. 이유는 모든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로부터 나와서 온 땅에 퍼지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선지자들은 모든 선지자들의 대표격이다. 권력과 영향력이 그러하다. 그들이 사악하면 모든 선지자와 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함께 사악하게 마련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신학교의 교수들과 유명교회 목사들이 사악하면, 이 땅의 온 교회가 함께 사악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명약관화하다.

 

저들이 미국제 영성, 미국제 복음, 현대 신학을 여과 없이 빛의 속도로 도입 출판하고 있다. 거기서 베스트 셀러면 여기서도 베스트 셀러다. 거기 유명 신학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오면 여기서도 교수(목사)는 따논 당상이다. 그리하여 사람의 지혜, 세상의 초등학문이 날개를 달고 교회를 전염시키고 사악하게 만든다. 그들이 교회와 교단을 장악하여 음부의 권세가 크게 이기게 한다. 성령의 지혜로 가르친 전통이 분명 있음에도 저들은 그것을 어리석게 여긴다.

 

사실은 성령을 받은 적이 없고 오직 세상의 영만을 받은 육에 속한 사람들이기에,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않고 그것들을 알 수도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들을 통해 사탄의 지혜가 여과 없이 교회를 충만하게 만든다. 세속화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교회인지 세상인지 구별이 안 되고, 신학교인지 일반 대학교인지 구별이 안 되게 지혜가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다.

 

기독교 심리학이라 하지만 사실은 일반 심리학을 위장한 것이고, 신학이라 하지만 사실은 철학과 경영학의 위장일 뿐이다. 전통적인 기독교 용어를 사용하지만, 그 내용은 사람의 지혜와 학문으로 채워져 있다. 특히 19세기 말에 과학과 산업의 발달, 정신분석학, 양식비평, 공산주의 등의 사상의 쓰나미가 몰려와서, 성령의 지혜로 가르친 전통을 완전히 쓸어가고 말았다. 사도와 선지자의 가르침의 전통, 이를 이어받은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의 가르침의 전통이 대형 박물관에서나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20세기 중반에 와서야 소수의 목사와 교수들이 이 성령의 지혜의 전통을 재발굴하여 재출판하기에 이르렀고 그 극히 일부분이 우리 나라에도 소개되고 있는 형편이다.

 

저도 목사 사역 10년쯤에 로이드 존스 목사의 저서를 통해 접하게 되었고 그 후에는 오직 이 청교도 신학으로 다시 사역을 수정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로부터 나와서 온 땅에 퍼지고 있는 현상은, 예레미야 시대 유대 종말의 때에 뿐만이 아니고,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교가 그러하였고, 16세기 종교개혁과 17세기 청교도개혁 이후 5백년 동안 온 교회와 온 땅에 퍼졌다.

 

교회는 세속화 되었고, 신학은 인간학이 되었고, 신앙은 우상숭배와 미신으로 가득찼다. 이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배워야 하고, 그 성경을 최고 권위로 여기고 우리 신앙과 삶의 준칙으로 삼는 일이 시급하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셔서, 사악한 선지자들을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해서 치셨고 치실 것이다. 우리가 이 사악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유다가 멸망하듯이 종말을 고하고 말 것이다.

 

3.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렘23;16-17)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하신다. 그 선지자들이 오늘날에는 설교하는 목사들이다. 신학교 교수들이다. 너희에게 설교하는 목사들의 말을 듣지 말라는 것이다. 그 목사들이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고 있다. 가르침이 그러하면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것도 헛것이 되고 만다. 그들이 말하는 비전이나 부흥도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들의 설교와 가르침은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는 자들에게 뭐라고 하느냐?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자들에게 평안하다. 평안을 약속하고 있지 않으냐?

 

또 자기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하는 자들에게,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자들에게는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않으리라 한다는 것이다. 멸망할 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평안을 빌어주고, 완악하여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재앙을 경고하는 것이 아니라 재앙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나님과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대로 바리새인의 누룩과 사두개인의 누룩으로 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성경의 참된 가르침을 성령을 통해 모르는 사람들은 다수가 그러니까 넘어간다. 존경하는 목사님이 평안과 축복을 약속하니 회개하지 않고 안심하다 재앙을 당하고 만다. 그것이 성경 속의 역사이고 이후 기독교의 역사가 그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사악한 선지자들에게 속아 넘어가는 미혹을 분별하지 못하면, 이스라엘 멸망하듯이 똑같이 평안이 아니라 재앙이 임하고 만다.

 

주님도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하셨다. 사악한 선지자들도 양의 옷을 입고 광명의 천사로 행세하니 그 열매를 보고 알아야 한다. 유명할수록 클수록 화려할수록 수가 많을수록 사악한 선지자들의 온상인 것을 알아야 한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방법은 미혹의 역사를 보내어 거짓 것을 믿게 한다는 것이다.(살후2:11-12)

 

진리를 알려고 하는가? 진리에 관심이 있는가? 성경을 읽고 배우고 있는가? 이 물음에 예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그 사람이 바로 진리를 믿지 않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바로 불의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바로 미혹의 역사를 따라 거짓 것을 믿고 있는 사람이다. 기독교 역사상 성령의 가르침으로 정평이 나있는 청교도 신학을 가르치지 않는 유명 신학교, 그 신학교가 사악한 거짓 선지자들의 온상이다. 청교도 신학으로 성경을 해석하지 않고 세상 지혜로 해석하는 교회, 기독교 역사상 가장 성경적이고 가장 성숙한 신앙의 모델인 청교도들, 그들의 신앙을 설교하지도 가르치지도 않는 교회, 그 교회 목사들이 바로 성령이 가르친 지혜를 버리고, 사람의 지혜,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가르치는 사악한 거짓 선지자들이다. 이렇게 말하면 과격하다고 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70여 평생 동안, 23년 간의 목회 기간 동안, 진리를 찾아 여기까지 달려온 저의 최종 결론이고 최종 확신이다. 하나님은 최근 더욱 분별과 확신을 더해 주고 있다.

 

한가족교회가 수원으로 옮기면서 ‘청교도 아카데미’를 개설한 뜻이 여기에 있다. 아직은 미약하고 작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 모습이 끝이 아니고 시작일 뿐이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사용하실 것을 저는 믿고 확신한다.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일으켜 세우듯이 한가족교회와 청교도아카데미를 창대하게 하실 것이다. 저에게 청교도 신학을 만나게 하시고 지금까지 10여년을 매진하게 하신 것이 우연이 아니다.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하라. 홀로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사54:1)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리라”(삼상2:5) 오직 성경으로, 성경의 참된 해석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몸에 벤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들을 성령의 지혜로 씻어내야 한다. 오직 성경과 성령으로 가르친 전통으로, 성령이 가르친 지혜로 돌아가야 한다. 목사를 길러내는 신학교는, 오직 청교도 신학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참된 신학 개혁이다. 교회와 성도들도, 자신과 교회와 사회를 개혁한 청교도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만이 참된 개인의 개혁이다. 그 길만이 구원의 길이고, 하나님이 축복하는 길이다. 우리의 현재 모든 것은 우리 생각의 결과이다.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우리의 생각과 길과는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 성령이 가르친 지혜로 돌아가는 것만이 하나님의 생각과 길과 뜻을 따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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