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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예레미야

렘 31장 31-34절(새 언약 백성) - 문기태

by Preacher 2023.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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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31장 31-34

새 언약 백성

문기태 목사 2018.11.03

창원침례교회 http://whttp://www.changwon.or.kr/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예레미야 31장 31-34절)

 

한국 근대사에 가장 존경 받는 인격자로 도산 안창호 선생을 들 수 있습니다. 인격자는 자기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상해에서 임시 정부 대표로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상해에는 각 국가들의 대사관들이 모여 있는 조계라는 곳이 있어 각 국가별로 블록마다 건물의 모습이 다릅니다. 조계 안에서는 마치 각 나라의 자치주와 같이 각국에서 온 외국인들이 자기 나라처럼 살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용이 되어 있었습니다. 안창호 선생님이 계셨던 임시 정부 청사는 그렇게 안전한 장소였습니다. 일제가 마음대로 안창호선생을 잡아갈 수도 없고 해칠 수 없는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도산 선생이 어린 한 소년에게 "내가 너를 찾아가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약속한 날에 찾아가려고 할 때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반대했습니다. "거기 가면 위험합니다." 그러자 도산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약속은 생명처럼 지켜야 됩니다." "아니, 어른도 아니고 그깟 어린아이와 한 약속 아닙니까" 그러자 선생님은 "어린 아이와의 약속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약속을 지키러 가셨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어 한국으로 압송되어서 감옥에 갇혀 결국 죽을 고초를 겪고 출옥한 다음 세상을 떠났습니다. 도산 선생님은 생명으로 약속을 지킨 분입니다. 그래서 모든 이들이 세월이 많이 흘러도 존경을 합니다.

 

성경에도 약속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특별히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약속이 많이 등장합니다. 성경은 그 약속을 언약이라고 대부분 기록했습니다. 약속과 언약이 같을까요 다를까요 약속이 두 사람 사이에 평등하게 맺어진 것이라면, 언약은 불평등하게 맺어진 일방적인 약속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언약은 불평등 약속입니다. 사실 국가간에 맺는 조약은 평등 조약인데 한국이 미국과 맺은 약속은 불평등 조약입니다. 그래서 미군이 한국에서 범죄하면 한국 사람에게 못된 짓 했는데도 처벌이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외국 사람이 남의 나라에서 땅을 사용할 때에는 땅값을 지불하고 매입하던지 세를 내야 되는데 미국은 우리 땅을 사용하면서 월세나 연세 내지 않습니다. 그것은 6.25전쟁 당시, 우리 나라가 화급할 때 아쉬워서 맺은 불평등 조약 때문입니다. 힘센 미국이 아쉬운 우리를 향해서 불평등조약을 맺었는데 하나님은 아무 부족함도 없으시고 아쉬울 것도 없으신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유리한 불평등한 조약을 스스로 맺어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은 언약은 무조건적인 약속입니다. 항복할 때 조건부 항복이 있습니다. '당신이 이러이러하게 해주면 당신에게 항복하겠다' 한편으로는 '그냥 내가 졌으니까 완전히 손들고 당신의 자비만 바랍니다.'하는 무조건적인 항복도 있습니다. 약속도 조건적인 약속이 있고 무조건적인 약속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은 약속은 무조건적인 약속입니다.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내게 그 약속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데도 무조건적으로 약속했습니다.

 

또 약속에는 쌍방적인 약속이 있는가 하면 일방적인 약속이 있습니다. 쌍방적 약속은 두 사람이 서로 합의하여 받을 것 받고 줄 것 주면서, 깎을 것 깎고 붙일 것 붙여서 평균되게 서로 깊이 의논해서 하는 약속입니다. 그냥 혼자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약속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은 일방적인 약속입니다. 그리고 만약 약속을 파기하면 약속을 범한 자가 그 약속의 위배에 해당되는 벌을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는 새 언약은 우리에게 그 약속 위배를 묻지 않고 그 모든 약속의 위배의 값을 스스로 담당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약속하시고 일방적으로 이루실 것을 선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큰 복을 약속하십니다. 그 약속대로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큰 민족으로 만드십니다. 그리고 그 큰 민족을 모세를 보내셔서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내십니다. 약속의 땅을 향해 가는 도중에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 회중을 모아놓고 모세를 통해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너희들이 약속의 땅에서 살아갈 때 지켜야 하는 율법을 주겠는데 너희들이 지키겠느냐" 그러자 모두 "당신이 우리에게 그 율법을 주시면 우리가 성실히 지키겠습니다" 서약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십니다. 연약한 인생들을 위해서 사람답게 살아가야 할 최소한의 계명을 돌 판에 새겨서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고 서로 해치고 상처 주고 이용하기를 반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돌아오라고 하셨지만 귀를 막고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기다리시며 선지자들을 통해 수 없이 반복하여 경고하셨지만 언약을 버리고 더 악하게 변했습니다.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눈물을 머금고 바벨론 군대를 보내셔서 심판하셨습니다. 온 힘을 다해 싸웠지만 전쟁에 완패했습니다. 나라는 완전히 망하고 성읍은 다 불탔습니다. 과수원도 경작지도 모두 폐허가 되었고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머나먼 땅으로 끌려갔습니다. 후회해도 이미 늦었습니다. 온갖 설움을 당하며 비참한 하루하루가 이어졌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보내서 말씀하십니다. 31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예레미야는 예수님이 오시기 600년 전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오시기 600년 전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상세하게 새로운 언약을 맺을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새 언약이 필요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옛 언약이 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듣고 지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명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옛 언약은 그렇게 깨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더 좋은 언약을 계획하셨습니다. 그것을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옛 언약보다 더 좋은 새 언약을 준비하시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새 언약은 더 좋은 언약입니다. 새 언약은 옛 언약과는 명확하게 다른 언약입니다. 새 언약은 어떤 면에서 더 좋은 언약일까요

 

1. 새 언약은 은혜의 약속입니다.

 

오늘 말씀 31절에서 34절까지 5번이나 하나님은 "내가 ... 하리라." 고 하십니다. 31절에 '날이 이르면 내가 새 언약을 맺으리라.' 33절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다.'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34절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게 하겠다.'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옛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옛 언약은 백성들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종의 멍에였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위해 하실 바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위해 해야 할 바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옛 언약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옛 계명을 다 지키지 못하여 하나님이 벌 주실까 바 쩔쩔 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옛 언약 아래 있습니까 새 언약 아래 있습니까 옛 언약 아래 있는 사람은 여전히 율법을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다. 자신도 정죄하고 다른 사람도 정죄하는 경직된 삶을 삽니다. 못마땅한 것 투성이요. 입만 열면 불평입니다. 그러나 새 언약 아래 있는 사람은 은혜를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자격 없는 나에게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가 넘쳐서 날마다 감격합니다.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삽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온갖 좋은 것들을 선물로 안겨 주심을 깨닫고 살며 행복하게 됩니다.

 

율법은 신령한 것이나 사람들은 육신에 속합니다. 로마서 7,8장은 사람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죄 아래 팔렸음을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실패는 옛 언약의 연약함 때문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율법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아시고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다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연약한 우리가 우리 힘으로 의롭게 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롭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로 구원 받았습니다. 은혜로 의롭게 되고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은혜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은혜를 힘입어 기도하며 무엇이든지 받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은혜로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아 누리며 복되게 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은혜로 선물로 거저 주시는 것임을 믿기 바랍니다. 그 크신 은혜를 바라보며 살고 그 은혜에 붙잡혀 살기를 축원합니다.

 

2. 새 언약은 성령의 약속입니다.(33)

 

33절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돌 판에 기록한 것과 마음에 기록한 것의 차이가 무엇인 것 같습니까 하나님이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소원과 능력을 주시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마음도 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능력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바르게 살아야 되는 것을 몰라서 바르게 살지 못할까요 선을 행하는 것이 옳은 것임을 몰라서 악을 행할까요 만약 그렇다면 교육만 잘 시키면 세상은 밝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교육 수준은 훨씬 높아졌지만 범죄는 더 지능적으로 발달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몰라서, 십계명을 몰라서 우상을 숭배했을까요 온갖 불의가 사회에 가득 찼을까요 하나님께서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을 돌 판에 계명을 기록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선지자들을 백성들에게 보내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선악을 할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을 몰라서 따 먹었을까요 그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입으로 하나님이 그것을 금하셨다고 뱀에게 말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그 당시에도 사람들은 무엇이 죄인지 잘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범죄하고 심판을 받은 이유는 죄의 유혹을 물리칠 의지가 부족하고 죄와 싸워서 이길 힘이 없어서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무엇이 죄인지 그리고 죄를 범하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지만 사람들 안에 의지가 약합니다. 우리 힘으로 힘을 다해 버텨 보지만 한 순간에 무너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도와 주시려고 성령님을 보내 주십니다. 구약 시대에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모세, 삼손, 기드온, 사무엘, 다윗, 다니엘 같은 인물들에게 성령님이 오셔서 그들에게 신비한 비밀을 알게 해 주시거나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이 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임무를 다하면 떠나 가셨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의 시대인 오늘에는 믿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늘 함께 계시며 우리를 떠나지 않고 도와 주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받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능력도 주어집니다. 그러면서 우리 안에 놀라운 변화가 나타납니다. 율법은 결코 인간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놀라운 변화가 시작됩니다. 미움이 사라지고 용서와 사랑하는 마음이 솟아납니다.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베풀며 섬기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거칠고 포악하던 사람이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바뀝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던 사람이 순종하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무엇보다도 늘 죄에 굴복하고 연약하게 무너지던 사람이 죄를 이기고 거룩하게 변화됩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 입으며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힘으로 실패했던 놀라운 변화를 우리 안에서 주도하십니다. 여러분, 성령으로 충만하여 날마다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께 사로잡혀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좋은 열매를 많이 맺기 바랍니다.

 

3. 새 언약은 체험의 약속입니다.(34a)

 

34절에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이 말씀은 비 신자들에게 전도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미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라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지식으로 아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체험으로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믿는 모든 사람에게 다 하나님을 체험하게 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특별한 사람만 성령님이 임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냈습니다. 백성들은 그런 하나님의 사람을 보며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믿고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예수 믿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님이 임하셔서 능력을 체험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체험을 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모든 이들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과 체험으로 아는 것 둘 중에 어느 것이 확신을 갖게 합니까 지식으로 아는 사람은 누가 "네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지식이 잘 못 되었어." 하면 대부분 흔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체험으로 만난 사람은 누가 "네가 믿는 하나님은 가짜야!" 해도 "아니야! 나는 그분을 만났어.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셔. 그리고 나를 사랑하셔. 누가 뭐래도 난 그분을 믿어." 할 것입니다. 확신으로 가득 차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흐릿하게 아는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알고 믿습니다. 기도 응답을 통한 체험이 있습니다. 말씀을 통한 인도의 체험이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와 열매에 대한 체험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여러 체험으로 알기 때문에 요동치 않고 굳건한 믿음에 서서 나아갑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새 언약은 여러분이 직접 하나님을 체험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직접 하나님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목사님의 하나님을 기다리지 말고 여러분의 하나님의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4. 새 언약은 사죄의 약속입니다.(34b)

 

34절 후반부입니다.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옛 언약 아래에서는 죄를 생각하게 할 뿐 죄를 없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어린 양의 피는 죄를 온전히 사해주고 가리워 줍니다. 새 언약은 죄가 깨끗이 용서되며 하나님께서 다시 그 죄를 기어하지 아니하신다고 약속합니다. 사람들의 용서는 온전치 못하여 누가 나에게 상처를 입힌 것, 섭섭함을 안겨준 것, 잘못한 것을 잊지 못합니다. 시간이 흘러도 기억에서 지우지 못하고 그 사람을 볼 때 그의 잘못과 허물, 죄를 통해서 그를 바라보고 그런 사람으로 대합니다. 그러다 보니 얼굴이 편안하지 못합니다. 마음이 불편합니다. 부부간에도 용서한다고 하고서 부부싸움을 하면서 옛날 잘못한 일들을 반복하여 다시 열거합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도 나 같을 줄로 생각합니다. '용서하신다고 하셨지만 나를 과거의 허물과 죄가 많은 사람으로 바라보시겠지!' 하나님의 온전한 용서를 믿지 못하고 자꾸 의심합니다. 그래서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조금만 힘든 일이 생겨도 죄에 대한 벌을 받는 것은 아닐까 하며 가슴이 내려 앉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본문에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그들의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여러분의 모든 죄의 형벌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하여 다 받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모든 죄는 다 용서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억에서 여러분이 회개한 모든 죄가 완전히 지워졌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바라보실 때 여러분은 의롭고 거룩하게 새롭게 창조된 피조물로 아름답게 보이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의롭게 여기시고 사랑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옛 언약아래 있는 백성입니까 새 언약 아래에서 사는 백성입니까 새 언약 아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시는 옛 언약으로 돌아가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새 언약을 붙잡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사십시오. 성령 충만하여 성령 안에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삶 속에 날마다 체험하며 확신을 갖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확신하며 하나님과의 깊은 사랑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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