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3장 1-6
준비하고 계십니까? [대림절]
안효관 목사 2017-12-03
전주남성교회 https://https://www.nsc.or.kr/
올해 연초에 인터넷을 통해서 이런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스라엘 경찰 국장인 로니 알쉐이크(Roni Alsheikh)가 한 유대인의 축제일에서 ‘이스라엘 경찰국이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고 합니다. “메시아가 오시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 분을 보기 위해 다가갈 것이고 이로 인해 큰 혼잡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경찰은 그분을 경호하기 위해 아주 강력히 행동해야 할 필요가 생기게 된다,”고 그 경찰국장이 Breaking Israel News에서 말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보도에서는 알쉐이크 경찰국장이 보다 명확한 언급을 했다고 합니다.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찾아오실 것이다. 이 일을 준비하는 것은 정말로 기쁜 일이다. 우리가 메시아의 오심을 대비해서 경호의 문제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라고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인 랍비들 역시 최근 몇 년 동안 ‘유대인들이 임박한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랍비들 가운데는 ‘메시아가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벌어진 상처를 치료하시기 위해 오실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구약의 예언을 믿는 유대인들도 메시아가 곧 오실 것이고, 그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다눈 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아직도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믿지 않고,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다른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이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주실 때가 아닌가 하고 기대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지금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경찰국에서는 메시아가 오신다면 그 때가 언제이든 메시아를 맞을 준비를 다 해놓고 있다고 합니다. 메시아를 보기 위해서 사람들이 몰려들 경우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혼란을 막을 준비, 메시아를 경호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그들은 메시아가 언제 오시든지 그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올해가 될지 내년이 될지, 아니면 십년 후가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또 그 때가 여름일지 겨울일지도 모르고, 낮에 오실지 밤에 오실지도 모릅니다. 주님이 언제 오시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 오실 때를 우리가 준비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그 때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다면 반드시 그 약속대로 주님은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도, 우리는 어쩌면 애써 그 말씀을 무시하며 주님께서 오시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진 않습니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말입니다.
오늘은 대림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대림절(待臨節)이라는 말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애드벤트’(Advent)라고 합니다. 이 말은 ‘오다,’ ‘도착하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Adventus’'에서 온 말인데, 원래는 옛날 로마에서 황제가 즉위한 뒤에 그 나라의 주요 도시를 초두 순시할 때 쓰던 의전적 용어였습니다. 황제가 어떤 도시를 방문하면 그것을 ‘그분의 방문’(His Advent)라고 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이야 말로 진정한 황제요 유일한 주님이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을 ‘그분의 방문’(His Advent)라고 불렀습니다. 그 이후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탄생하신 그 절기를 대림절(Advent)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림절은 진정한 왕이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이제 오늘부터 이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만왕의 왕이신 우리 주님께서 아기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신 성탄절까지 4주간을 대림절이라고 부르며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제가 군대생활을 좀 늦게 시작했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부대가 육군본부 직할부대였는데, 제가 근무하던 때에 육군본부 직할부대에서 합동참모본부 직할부대로 소속이 바뀌었습니다. 1월 1일부터 소속이 바뀌면서 재창설기념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육군본부 직할부대에서 합참본부 직할부대로 바뀌니까 그 기념식에 합참의장이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현직 군인 중에서 최고 서열이 합참의장입니다. 그 합참의장이 부대에 온다고 하니까 그 아래에 있는 별들이 줄줄이 참석하는데, 그 날 참석한 별의 숫자의 합이 30개 가까이 된다는 이야기가 나돌았습니다. 부대에서는 합참의장을 맞을 준비로 며칠 전부터 난리가 났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념식이 있던 전날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그러자 부대에서는 눈을 치워야 했습니다. 길에 있는 눈을 다 길 옆으로 쓸어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길 옆으로 치운 눈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빗자루 자국이 난 모습이 보기 흉하다고 마치 눈이 소복이 쌓인 것처럼 길 옆의 눈을 평탄하게 만들었습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부대에서 시키는 일이라 사병들은 눈평탄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여러분, 합참의장이 부대를 방문한다고 하니까 맞을 준비를 며칠 전부터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눈평탄작업까지 하면서 합참의장을 맞을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높은 분 한 사람의 방문을 맞아들이는 데에도 그만큼 정성을 들입니다. 하물며 만왕의 왕이신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는데 우리가 어찌 준비를 게을리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구약성경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라기서가 언제 기록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대체적으로 주전 40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때는 세계 역사가 페르시아를 중심으로 흘러가던 시기였습니다.
남북으로 분단된 이후 북 이스라엘은 주전 721년에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을 당했고, 남유다는 그로부터 약 135년 후인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남 유다가 멸망당하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는데, 그들은 바벨론 제국의 멸망 이후 세 번에 걸쳐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귀환은 주전 536년에 있었습니다. 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킨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바벨론 시대에 포로로 잡혀왔던 사람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입니다. 그런 고레스 왕의 배려로 유다백성들 약 5만여명이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해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는 파괴된 성전을 다시 짓는 것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주전 515년에 그들은 파괴된 솔로몬 성전을 대신할 두 번째 성전을 완공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귀환은 1차 포로귀환이 있은 지 약 80년이 지난 주전 458에 있었습니다. 학사 겸 제사장이었던 에스라를 중심으로 약 1700여 명이 바벨론에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혼란에 빠진 이스라엘에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선포된 말씀을 따라서 그들은 그 동안 잊어버렸던 여호와 하나님을 신앙하는 신앙을 회복하려 했습니다. 세 번째 귀환은 두 번째 귀환 이후 14년이 지난 주전 444년에 이루어졌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에서 왕의 신임을 받고 있던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자청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공작 속에서도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게 됩니다. 이미 스룹바벨의 성전이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라의 국권과도 같은 예루살렘 성벽도 재건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페르시아의 통치 아래 있긴 하지만 나라의 번영과 회복이 속히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그런 바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이스라엘의 주권이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자기들의 욕망을 좇아 살고 있습니다. 이방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자기들의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너무나도 쉽게 아내와 이혼해버립니다. 윤리적으로 타락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인 제사장들조차도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백성들이 가져오는 제물로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선 하나님께는 병들고 못난 것들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무질서해졌고,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무관심했습니다. 뭔가 나라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들은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더군다나 경제적으로 아주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페르시아에게 많은 세금을 바쳐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계속되는 가뭄과 병충해, 특히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포도원은 극심하게 황폐화되고 말았습니다.(말라기 3:11) 바로 그런 시대적 배경 속에 말라기 선지자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그렇게도 바라고 기대하는 회복을 반드시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 회복은 바로 메시아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먼저 당신의 사자를 보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1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 보낸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보낸 사자에 대해서는 말라기 4:5-6절에서도 말씀하십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아버지이신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할 엘리야를 보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난 후에 메시아가 임하십니다. 본문 1절에서 이렇게 이어 말씀하십니다.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엘리야는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이 ‘네가 누구냐? 그리스도냐? 아니면 엘리아냐?’라고 물을 때 그는 아주 분명하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라 그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일 뿐’이라고 말입니다.(요한복음 1장) 그가 바로 말라기 선지자가 선포한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먼저 보내심을 받은 엘리야입니다. 그리고 그 세례 요한 뒤에 세상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본문 1절에서 ‘갑자기 성전에 임하실 주’ 그리고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는 예수님입니다.
오늘 본문은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시면 하실 일 두 가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그 첫 번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켜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이 그것이 말씀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그가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재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금을 연단한다는 것이나 재로 표백한다는 말은 모두 거짓되고 부패한 것을 깨끗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용광로를 통해서 금과 은을 분리해 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악인들로부터 의인들을 분리해 내실 것입니다. 온갖 더러움과 죄악 가운데 있던 백성들은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레위 자손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돕는 사람들입니다.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한다는 말씀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회복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이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땅에 사시면서 병든 자를 치유하시고, 상한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해 외톨이가 되고, 죄인으로 낙인찍혀 아픈 가슴을 안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의 마음을 치유하시고 그들을 보듬어 주셨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께서도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려다가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믿음으로 산다는 것 때문에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품에 안으시고 그들을 위로해 주십니다. 다시 오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영원한 나라는 고통도 없고 눈물도 없는 곳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땅에서의 모든 고통을 끝내 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과 평강을 주십니다. 그것이 천국입니다.
우리는 그 나라를 소망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해서 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죄악이 만연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거나 박수를 받는 일도 아닙니다. 때로는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아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길을 선택하며 기꺼이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다가 때로는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꺼이 그리스도인임을 포기하지 않고 믿음의 길을 갑니다.
우리가 그렇게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도 마다하지 않고 가는 이유는 지금 당하는 고난과 수고가 언젠가 우리 주님으로부터 위로받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이루어질 날이 반드시 옵니다. 주님의 위로를 기다리며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주님 품안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될 때까지 우리는 이 믿음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면 다시 오실 주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용기를 내어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의 길을 갑니다. 우리의 바람이나 기대가 이 세상뿐이라면 우리는 굳이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이 세상뿐이라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과 쾌락과 즐거움을 포기할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의 삶을 그냥 즐기며 살면 됩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오늘 주어진 내 삶을 즐기며 살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내일을 준비하며 삽니다. 오늘 고생하더라도 내일 내게 주어진 하늘의 은혜를 소망하며 삽니다. 오늘의 쾌락 대신 내일의 영광을 바라보며 삽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삶들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메시야가 오시면 하실 일 또 하나는 심판입니다. 주님의 오심은 곧 심판입니다. 오늘 본문 5절에서 분명하게 선언하십니다.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심판의 주님으로 이 땅에 오십니다. 누구를 심판하십니까?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점치는 자, 간음하는 자, 거짓 맹세하는 자, 품꾼에게 삯을 주지 않아 품꾼을 억울하게 하는 자,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고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는 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점치는 자는 거짓된 종교적 술수로 사람들을 신앙에서 떠나게 만드는 사람을 말합니다. 간음하는 자는 성적으로 부도덕한 자들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성적 윤리가 사라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성적 자기 결정권이라는 거창한 말로 포장되어 간통죄가 사라지고, 군대 내 동성애 처벌법인 군형법 92조의 6항을 폐지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 주님은 심판의 주님으로 임하실 것입니다. 거짓맹세하는 자들이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아들에게 담임목사직을 물려주기 위해서 거짓말을 일삼는 것은 사기꾼만이 하는 짓이 아니었습니다. 명성을 날리던 존경받았던 분도 그런 거짓말에 익숙해져버렸으니, 거짓과 거짓말이 난무한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요한계시록 21:8절에서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품꾼에게 품삯을 주지 않아 억울하게 하는 자라는 말을 오늘 우리 시대의 언어로 바꾼다면 비정규직을 차별하고, 알바생들의 알바비를 제때 주지 않고, 외국인근로자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고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힘이나 권력을 가지고 힘없는 약한 사람들을 짓누르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를 방어할 힘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관대하게 대해주어야 함에도 오히려 압제하여 억울하게 하고 그들의 눈에서 눈물이 나게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이란 앞서 언급한 모든 사람들의 통칭입니다. 만일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런 일을 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신앙에게 떠나게 만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어떻게 윤리적인 성적 타락에 자신의 몸을 던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에게 이익이 주어진다는 것 때문에 거짓말을 일삼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어떻게 힘없고 약한 사람을 압제하고 억울하게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거룩한 삶을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어려운 이웃을 보면 보듬어주고 감싸주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시선을 회피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다시 오실 그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 때문에 힘들고 고달프다 하더라도, 믿음으로 산다는 것 때문에 손해 본다 하더라도 그 믿음의 길을 끝까지 가는 것이 준비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심판하실 주님 앞에 결코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많은 세상 사람들이 가는 그 길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가면서 말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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