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 --------------------/베드로전서

벧전 1장 18-25절(대속함을 받은 종으로 살라!) - 권율

by Preacher 2023. 12. 3.
728x90
반응형

벧전1장 18-25

대속함을 받은 종으로 살라!

권율 목사 2018. 10. 4.

부곡중앙교회 청년부 청년회 [부산시] https://blog.naver.com/ryulkwon0616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오늘 본문은 “너희가 알거니와”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이 부분이 앞 구절과 떨어져 있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앞 구절(17절)과 이어져 있습니다. 앞 구절, 1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다시 말해, 우리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아버지를 두려워하며 이 세상을 살라는 뜻입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너희가 알거니와”(원문은 분사 구문, εἰδότες)라는 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좀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왜냐하면 너희가 알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됩니다(NAC 참고). 그러니까 우리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아버지를 두려워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를 너희가 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바로 18-19절입니다. 다 같이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정리해서 간략하게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너희가 대속함을 받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두려워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때 말하는 “너희”는 일차적으로 베드로의 편지를 받는 이방인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을 이전에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주변의 이방인들처럼 우상을 섬기고 세상 쾌락에 빠져 인생의 파멸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또한 이 구절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도 이전에는 우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과는 관계없는 인생을 살며 세상 죄악을 벗 삼아 내 인생의 주인이 마치 나 자신인양 자만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때가 되어 그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입니다. 19절 말씀대로,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대속함을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대속”이라는 말을 당시 문화적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는 이 단어를 노예 해방이라는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값을 지불하고 노예 상태에서 해방된다고 해서 절대적인 의미로 해방된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값을 지불한 그 노예가 주인으로부터는 해방되었지만, 당시 섬기는 신(god)의 노예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신이 그 노예를 값 주고 산다고 사람들이 생각했기 때문입니다(BECNT 참고).

 

이런 맥락에서 18-19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러니까 우리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았다는 말은, 죄의 지배에서 해방되었지만 그 즉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절대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해방된 것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상태가 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19절에 따르면, 이전의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이 무엇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또 반복하지만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아 이제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 아버지를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죄의 지배에서 해방되었다는 것만 생각하여, 마치 어느 누구의 간섭도 필요 없는 것처럼 방종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이전의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 복된 사실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 즉시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값 주고 사셨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가 완전히 다른 신분을 가졌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새로운 신분을 얻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십니까? 21절 말씀대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고 영광을 주신 그 하나님이십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당신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신 위대한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 위대하신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는 복음입니다. 죄의 지배에서 대속함을 받아 하나님께 종이 되었다는 사실을 결코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종이 된다고 하면 왠지 통제당해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거부 반응부터 보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그가 절대적으로 선하시고 지극히 위대하신 분이라면, 내가 그의 종이 된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복음입니다. 절대적으로 선하신 그분께서 내 인생을 파멸로 치닫게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지극히 위대하신 그분이 나의 어려움을 그냥 바라만 보고 계시겠습니까?

 

오히려 저는 더욱더 하나님의 종으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정말이지 하나님 아버지께서 시키시는 것만 행하는 겸손한 종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온전히 행하지 못하는 제 모습이 참으로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는 저의 일상이 종종 가증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합니다(21절b).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이 되시고 내가 그분의 종이 되었기 때문에, 비록 죄 많은 나의 믿음과 소망일지라도 이것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종이 된 우리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다 같이 22절을 크게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이 말씀은 우리의 현재 상태와 함께 또 그렇게 살아야 함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거듭났기 때문에(23절), 우리는 진리에 순종하여 영혼을 깨끗하게 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날마다 우리의 영혼을 거룩한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며 더욱 순전하게 형제자매를 사랑해야 합니다! 베드로의 권면대로,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또 반복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이전의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즉, 죄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으로 선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그분께서 우리를 지배하시기 때문에, 그분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살아 있는 그분의 말씀에 사로잡혀, 진리의 복음에 순종하며 거짓이 없이 형제자매를 사랑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