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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베드로후서

벧후 1장 10-11절(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 이삼규

by Preacher 2024.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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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후1장 10-11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이삼규 목사 20190818

낙양교회 http://nakyang.onmam.com

 

[벧후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벧후 1: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세계 종교 중에서 성지순례를 의무로 규정한 종교는 이슬람교뿐입니다. 이슬람교도는 이슬람력 12월 8-10일에 정해진 절차대로 순례를 행합니다. 이것은 ‘이슬람의 다섯 기둥’ 곧 이슬람교도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의무인 [신조암송, 하루 5회 기도, 구제, 라마단 금식, 성지순례] 가운데 가장 성스러운 의식으로 꼽히며, 성지순례를 마친 이슬람교도는 그의 이름 앞에 ‘알 하지’라는 경칭이 붙을 정도로 존경을 받습니다. 남자는 바느질을 하지 않은 두 조각의 흰 천인 아흐람으로 몸을 가리고, 여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가리는 하얀 옷을 입고 성지에 들어갑니다. 누구든 슬리퍼를 신어야 하는데, 이것은 지위고하 빈부에 관계없이 신 앞에 평등하다는 의미입니다. 순례기간 내내 순례자들은 “알라여! 내가 왔나이다. 명을 받들어 왔나이다.”라고 쉬지 않고 말합니다. 머리카락을 자른다든가 손발톱을 깎을 수 없고 향수를 뿌리거나 보석으로 치장할 수 없으며, 성관계나 언쟁, 험담을 해서도 안 되고,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다치게 해서는 안 되며 희생물을 제외하고 어떤 생명체도 죽일 수 없습니다.

 

이슬람교도는 이러한 율법적인 순례에 자신의 인생을 걸고 그들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해 구원과 자유를 얻은 우리 성도들은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할 수 있을까요?

 

베드로 사도는 소아시아 즉 오늘날 터키 북부 지역(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흩어져 살면서 극심한 박해를 견디고 있던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해 편지를 보냈습니다. 베드로전서를 보낸 지 약 2년 후인 AD66년 경에 두 번째 편지인 베드로후서를 보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죽을 때가 임박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라도 교회 안에 들어온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을 경계하고 대적하도록 지침을 줘야 했습니다.

 

그때 당시 거짓 선생들은 주로 영지주의자로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성도의 윤리를 무시해도 된다는 도덕 폐기론을 내세우고, 예수님의 성육신과 재림을 부인하였습니다. 세상의 기독교 핍박도 문제였지만, 이단 교리에 미혹되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믿음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성도가 생기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거짓 선생들의 정체를 밝히고 그들의 가르침이 거짓임을 주장하며, 성도에게 예수님의 강림을 확신하고 주의 날 곧 심판의 날을 기다리라고 엄중하게 권면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오래 참고 계시는 것을 기억하고,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과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힘입어 보배로운 믿음을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합니다. 예수님은 신적인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믿음을 성장시키고 성숙하게 하는 능력은 우리에게서 비롯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벧후 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성도를 부르신 목적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라고 하였는데 신성한 성품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하나님은 거룩한 삶으로 성도들을 부르셨습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완전한 경건에 이를 수는 없지만 경건한 삶을 최대한 추구해야 합니다. 경건한 삶을 살게 하는 근원은 그리스도의 신기한 능력, 즉 신적 능력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이 베드로의 관점입니다. 예수님은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생명(영생)과 경건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벧후 1: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벧후 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그의 영광과 덕으로써’ 부르셨습니다. 그 부르심이 모든 축복의 출발입니다. 부름 받은 성도들은 생명과 경건의 능력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는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강림하신다는 재림의 약속입니다. 이렇게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받은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마땅할까요?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도 세상에 있는 것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세상을 대표하는 것들은 세 가지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시험을 받은 것도 바로 이 세 가지 때문입니다. 마귀가 사십 일 동안 주리신 예수님을 찾아와서 시험했던 것도 바로 이 세 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첫 번째 아담처럼 넘어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세상의 것은 썩어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특히 정욕은 썩어질 세상의 대표적인 것입니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정욕을 피하고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들은 추구하는 것이 바뀝니다.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은 정욕을 따라 썩어질 것을 좋아하지만 그리스도를 아는 자들은 거룩과 선을 추구합니다. 이것이 성도가 부름 받은 목적입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약속과 연결시킵니다. 신성한 성품은 이미 주어졌지만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또는 성도가 이 세상을 떠나서 천국에 들어갈 때 완성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적인 성품은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을 거부하는 자는 결코 알 수 없고 가질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신적인 성품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또 알고 있다고 하면서 정작 신적인 성품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신적인 성품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께 관심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성화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영적으로 새로 태어난 사람이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는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탄생과 성장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연속된 생명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신적인 성품에 참여하고 계십니까?

 

신성한 성품을 더해 가야 함

 

거룩한 삶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삶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벧후 1: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벧후 1: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벧후 1: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는데 거기에 더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래, 사랑’입니다. 여기에서 가장 먼저 나온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믿음은 기본 베이스와 같은 것입니다. 믿음을 바탕으로 신성한 성품이 더해져야 합니다. 신성한 성품을 부지런히 계발하고 훈련한 성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데 게으르지 않을 것이며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성도가 부르심을 더욱 든든히 하고 하나님을 닮아 가도록, 하나님은 세상의 미혹과 위협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여덟 가지 덕목을 갖추라고 말씀하십니다.

 

⓵믿음(피스티스)-하나님의 전적인 선물로서(엡2:8-9) 성도의 삶의 기초이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성도의 응답입니다.

⓶덕(아레테)-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나누는 일을 말합니다.

⓷지식(그노시스)-성도가 덕 있는 생활을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나 통찰력을 말합니다.

⓸절제(엥크라테이아)-self-control. 육체의 욕망을 다스리는 능력으로서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입니다(걸 5:23)

⓹인내(휘포모네)-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고난과 악에 대항하며 용기 있게 오래 참는 것을 말합니다.

⓺경건(유세베이아)-삶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 받는 것을 뜻합니다.

⓻형제우애(필라델피아)-초대교회 시기에 믿음 안에서 형제자매가 된 그리스도인들의 교제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⓼사랑(아가페)-사랑은 모든 덕목 가운데 으뜸입니다(고전 13장).

 

믿음으로 시작된 그리스도인의 덕목은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완전한 사랑의 본을 이 세상에 보여주셨습니다. 곧 이 사랑은 남을 위한 자기희생이며 하나님이 우리 속에 이루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이라는 신성한 성품 목록은 우선순위의 의미보다 상호 결합의 의미가 강합니다. 이 성품을 골고루 갖추는 과정이 성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성품 중 지나치게 결여된 요소가 있다면 반드시 채워야 합니다. 다른 요소가 잘 구비되었어도 빠져 있는 그 한 가지 요소 때문에 영적인 성장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덕스럽지 못해서, 어떤 사람은 절제하지 못해서, 어떤 사람은 인내하지 못해서 열매 맺지 못하는 것을 교회 안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해야 함

 

벧후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명합니다. 하나님이 성도를 부르시고 택하신다는 말은 구원 사역에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작용한다는 뜻입니다.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믿음을 더욱 굳게 해야 하고, 신성한 성품을 소유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러면 언제든지 실족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구원의 확신을 갖고 계십니까?

 

고후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많은 사람이 구원의 확신을 가졌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착각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시고 택하셨다는 확신은 신앙 여정에서 힘들고 지칠 때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그러나 전혀 그리스도인답지 않게 엉망으로 살면서도 본인은 천국에 간다며 스스로 위안을 얻는 것을 교만하고 어리석은 행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부르심’(클레시스)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 부르심은 calling을 말합니다.

 

[롬 8: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부르실까요? 미리 택하신 자들을 부르십니다.

 

[엡 1: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가 택함 받은 때가 언제입니까?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택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따른 것입니다. 이렇게 택함 받는 자를 부르신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를 불러주셨을까요?

 

[엡 1: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고 말하지만 삶으로는 그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실천적 무신론자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확실히 구원받았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의 신념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사람의 신념은 구원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만이 구원을 약속합니다. 오랜 신앙 경륜도, 남들의 좋은 평가도, 땀흘려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도 역시 사람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이 거룩한 열매를 풍성히 맺는다면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주실 것이라 약속합니다. 반대로 거룩한 삶이 없다면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는 것은 바로 거룩한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의 증표입니다. 그 확증이 없다면 참된 그리스도인지 증명할 수 없습니다. 성도가 들어갈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입니다. 그리스도를 앎으로 인한 거룩한 삶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힐 때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하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벧후 1: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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