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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빌립보서

빌 4장 10-13절(나는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인가) - 이준원

by Preacher 2023.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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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4장 10-13

나는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인가

이준원 목사 2013.6.26.

콜럼버스한인장로교회 https://www.kpccoh.org

 

1. 자족은 배우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13절은 많은 크리스천들이 좋아하는 말씀들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핵심 단어가 무엇입니까? “자족”(11)입니다. 13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할 때 자족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빌립보서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사도 바울이 썼습니다. 어디서 썼습니까? 감옥에서 썼습니다. 옥중 서신입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 언제 풀려날지 알 수 없는 정말로 불안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결코 만족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밑바닥 인생이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이 무슨 만족할 게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뭐라고 합니까?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1절) 이 얼마나 놀라운 말입니까? 죄수의 입에서 자족한다는 말이 나온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족한다는 말과 더불어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기뻐한다’는 말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가 오히려 힘 있고 유쾌한 음성으로 감옥 밖에서 어두운 얼굴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선포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4절)

 

감옥에 갇혀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 이처럼 기뻐하라는 말을 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이것은 우리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자유를 가지고 마음대로 거리를 활보하며 사는 사람보다,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이 기뻐하라고 당당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쁨은 보통 기쁨이 아닙니다. 어떤 환경의 지배도 받지 않고 항상 마음속에 누릴 수 있는 이 기쁨이 바로 ‘자족’입니다. 비록 몸은 감옥에 갇혀 어둡고 칙칙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지만,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그 마음에서부터 기쁨이 솟아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 본문 말씀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와 비교도 되지 않는 열악하고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었던 바울이 이처럼 자족하며 기뻐할 수 있었다면, 우리도 이 비결을 배워서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감옥에 앉아서도 자족하며 기뻐했는데, 여러 가지로 풍요롭고 자유로운 환경에 사는 우리는 왜 기쁨이 없고 불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까?

 

11절을 잘 보면, 우리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족은 배우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자족은 가만히 있어도 자연히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배워서 얻는 것입니다. 바울도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하는데, 그럼 배우기 전에는 자족할 줄 몰랐다는 말이 됩니다. 사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족할 줄을 모릅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아무리 원하는 물건을 사더라도 조금 지나면 또 다시 만족을 못하고 다른 것을 봅니다. 아무리 원하던 일을 하더라도, 조금만 지나면 또 다른 일을 봅니다.

 

그것은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부패한 죄성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한 채 살아가는 것이 보통이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자족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은 마치 갈지 않은 땅과 같아서,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잡초가 납니다. 잡초 씨앗을 가져다 심을 필요가 없고, 가시나무 묘종을 가져다 심을 필요가 없습니다.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잡초가 무성하게 나고 가시는 뿌리를 내립니다.

 

사람의 마음이 그와 같습니다.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법을 가르쳐줄 필요가 없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인간의 마음에는 항상 불평과 원망이 쏟아져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남편들은 고집(솔직히 말하면 똥고집)을 부리는 것을 배우고 결혼하셨습니까? 아내들은 바가지 긁는 학원에 가서 배우고 결혼하셨습니까? 자녀들은 부모님 말을 안 듣는 특별 과외를 받았습니까? 사람의 마음은 가만히 두면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해집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나쁜 생각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데, 곧 음행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의와 사기와 방탕과 악한 시선과 모독과 교만과 어리석음이다. 이런 악한 것이 모두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힌다.” (막 7:20-23, 새)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 밭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땅을 갈고, 모종을 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가꾸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고 삶의 귀한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결코 가만히 있어도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애쓰며 마음 밭을 가꾸어야 합니다.

 

왜 QT를 해야 합니까? 왜 새벽기도를 해야 합니까? 왜 성경을 읽어야 합니까? 자신의 마음 밭을 가꾸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QT 안 하고 성경 읽지 않고 기도하지 않아도 구원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정말 추한 삶을 살게 됩니다. 가슴에 잡초가 숭숭 난 채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자족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저절로 자족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갈고 닦고 가꾸며 재배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족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결코 자족할 줄을 알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떤 방법으로 자족을 배웠다고 말합니까?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2절)

 

이 말을 알기 쉽게 풀어 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가난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부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나는 잘 먹을 때나 배고플 때나, 넉넉할 때나 아쉬울 때나, 모든 형편에서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다.” 바울은 자신의 삶의 경험을 통해 자족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그는 가난을 겪으면서 가난 속에서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그는 부요함을 경험하면서 부요 속에서 자족하는 비결을 터득했습니다.

 

11절의 “배웠노니”와 12절의 “배웠노라”는 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서 이어지고 있는 행동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배워왔다는 의미입니다. 비천할 때나 풍족할 때, 배부를 때나 굶주릴 때, 풍족할 때나 궁핍할 때, 다양한 인생 경험을 거쳐 오면서 또 환경을 통하여 자족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잘 살펴보십시오. 삶의 형편이 어렵습니까? 어려운 지금의 그 환경이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처럼 자족할 줄 아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어려움은 지나갑니다. 나중엔 힘들게 살고 싶어도 그렇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자족하기를 배울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십시오. 지금 어려울 때 자족하지 못하면, 나중에 일이 잘 풀려도 자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반대로, 지금 넉넉하고 편안하게 살면서도 자족하지 못하면, 나중에 상황이 어려워질 때 더더욱 자족하지 못하게 됩니다.

 

지난주에 LA에 갔다가 어제 돌아왔습니다. 콜럼버스에 비해서 모든 것이 복잡하고 사람도 너무 많고 공기도 나쁩니다. 교통이 너무 복잡하고 물가도 비싸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고, LA 살면서 날씨도 좋고 모든 것이 편리하다고 만족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캘리포니아는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도 불평하거나 힘들어하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기서 자족할 줄 모르면 어디를 가도 자족할 줄 모릅니다.

 

반대로, 여기 콜럼버스에 사는 것이 불만이십니까? 너무 시골이라고 느껴서 괴롭습니까? 그러나 지금 자족할 줄 모르면, 나중에 다른 데를 가도 자족할 줄 모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족을 배워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고 자족을 배워야 할 곳은 바로 이곳입니다.

 

2. 자족의 실제적인 내용

 

바울이 배운 자족의 실제적인 내용을 바울은 ‘비결’이라고 부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3절)

 

이 말을 바꾸면, ‘나는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그때마다 내게 능력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제든지 자족할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바울의 자족의 비결을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할 수 있는 능력은 주님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그 능력을 받으면 어떤 환경에서든지 자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비결의 핵심은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어떤 경우에서나 능력을 공급하는 원천이 되신다는 것을 삶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난할 때는 그 가난에 구애받지 않고 자족할 수 있도록 주님이 자기를 강하게 하시는 것을 경험하면서 배웠습니다. 부요한 형편에 처했을 때는 그 부요에 자신의 마음이 빼앗기지 않고 계속해서 복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능력을 주시는 것을 경험하며 배웠습니다.

 

그래서 그의 말을 요약하면, 자족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힘이고, 주님의 능력만 받으면 어떤 환경에서든지 자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13절을 보십시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이 말에 바로 그런 뜻이 담겨 있습니다. ‘자족은 주님이 주신다. 주님이 주시는 힘을 받으면 언제든지 자족할 수 있다. 어떤 환경에서든, 주님은 그 힘을 주신다.’

 

나에게 바로 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의 비결이 있습니까? 어떤 환경에서든지 주님께서 주시는 이 능력을 아십니까? 경험하셨습니까?

 

3.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의 모습

 

바울이 말하는 비결, 즉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능력이 실제적으로 어떤 것인가를 보면,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1) 환경을 초월하는 능력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의 첫 번째 모습은, 환경의 노예가 되지 않는 능력입니다. 어떤 환경을 만나든지 거기에 매이지 않는 능력을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환경의 변화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부유하던 사람에게 갑자기 재난이 닥치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도 한동안은 제정신이 아닙니다. 그럴 때는 기도도 잘 안 나오고 찬송도 안 나옵니다. 그런데 그처럼 암담한 상황에 놓였을 때도 이상한 힘이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경험을 안 해 본 사람은 모릅니다.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마음대로 환경을 다스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깁니다. 또 자기가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면서, 나름대로 기대를 가지고 지금의 상황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런 경험을 해보셨습니까? 환경을 초월해서 상황을 다룰 수 있는 신비로운 힘을 아십니까? 환경의 노예가 되지 않고 오히려 그 상황을 다스리는 그런 능력을 아십니까? 그것이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환경이 바뀔 때마다 그것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대표적인 인물이 요셉입니다. 아버지로부터 그토록 사랑을 받던 소년이 하루아침에 집을 떠나 남의 나라에 가서 노예가 되어버린 사건을 잘 압니다. 요셉의 환경이 그처럼 힘들게 바뀌었을 때 그에게 따라다니는 표현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라는 표현입니다. 노예로서의 환경에 내던져진 요셉이었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이 그 모든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자족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능력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조금 지나서 요셉의 환경이 또 바뀝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럴 때도 똑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감옥이라는 비참한 환경에 매이지 않고 그 환경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어려운 환경에 처했던 요셉을 보면서 인생을 포기하고 단념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네로가 파놓은 지하 감옥에 갇혀서 쇠고랑을 차고 있었지만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외친 바울을 향해 인생이 끝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요셉이든 바울이든 그 어느 신앙의 사람이든, 하늘로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공급받을 때 정말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나에게 이 능력이 있습니까? 나는 이 능력을 압니까?

 

날마다 환경에 매여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의 삶은 참으로 비참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 사람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환경에 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환경에 매이지 않습니다. 가난하든 부하든, 환경을 마음대로 다루면서 살 수 있는 능력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오해합니다. 환경이 바뀌면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환경이 바뀌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무엇이 되기만 하면, 어디로 가기만 하면, 이 문제만 해결이 되면, 다 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어려울 때 제대로 되기를 배우지 못한 사람이, 환경이 나아진다고 제대로 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2) 감사의 조건을 찾아내는 능력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은 어떤 것이든 아름다운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징그럽게 생긴 벌레라도 자세히 보면 놀라운 질서와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겪는 모든 환경도, 그것이 가난이든 풍요로움이든, 최소한 한두 가지 이상 감사할 조건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감사할 조건은 아무에게나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셔서 눈이 열리는 자만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병이라고 하면 소위 ‘저주받은 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나병환자라도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놀라운 믿음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크리스천 나병환자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세상은 참으로 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나환자들에게는 건강한 사람들이 갖지 못한 감사의 조건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웃음이 있고 만족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들이 건강한 사람들보다도 더 행복할지 모릅니다. 그들은 생에 대한 탐욕을 다 버린 사람들이고 마음을 완전히 비운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비우지 못한 건강한 사람들이 못 보는 행복과 만족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기뻐하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의 조건은 가까운 데 있습니다. 찾기만 하면 감사할 수 있고, 감사하게 되면 자족할 수 있습니다. 요즘 세상 학문의 연구 결과도 보면, 건강의 비결이 감사라고 합니다. 감사할 때 몸속에서 뭔가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실제로 건강도 더 좋다고 합니다.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그 속에서 감사할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야 합니다. 환경이 나아지면 감사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매주 목장에서 감사의 조건을 나누자고 할 때 ‘늘 똑같다. 감사할 게 없다.’고 하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없습니다. 없다고 생각되면 찾아야 합니다. 찾으면 있습니다. 안 찾으니까 안 보이는 겁니다. 감사의 조건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그럴 때 자족을 배우게 되어 놀라운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만족의 조건을 밖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니까, 남이 가진 것이 더 아름답고 더 크게 보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왜 외부적인 환경을 가지고 행복과 불행을 판단합니까? 행복은 어떤 환경에서든지 자기가 감사의 조건을 찾느냐 못 찾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는 어떤 환경에서든 감사의 조건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엄청난 모래밭에서 한 알의 작은 다이아몬드를 발견해낼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이 방 하나짜리 아파트이든 두 개짜리든 상관이 없습니다. 이 능력만 있으면, 자동차가 1990년형이든 2000년형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능력이 없으니까 그런 것들이 상관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능력만 있으면 지금 처해 있는 환경에서 다이아몬드를 찾는 눈이 열립니다. 그 속에 자족이 있습니다. 그 속에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능력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3)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의 능력

 

마지막으로 바울이 말하는 주님의 능력은, 어떤 환경에서든 자기를 돕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돈이나 환경이나 학벌이나 어떤 사람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을 믿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을 주십니다.

 

“돈을 사랑함이 없이 살아야 하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겠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담대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도우시는 분이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다. 누가 감히 내게 손댈 수 있으랴?’” (히 13:5-6, 새)

 

우리의 인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우리를 인도하시며 함께 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필요할 때마다 공급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약할 때 강하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이 모든 것을 분명히 확인하고 믿고 고백하는 능력이 바울이 말하는 일체의 비결입니다.

 

이제 우리는 환경을 탓하지 말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말기 바랍니다. 환경 탓, 다른 사람 탓, 조상 탓을 하며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삶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받아 어떤 환경에서도 자족할 수 있는 비결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지금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자족의 능력을 소유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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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점검과 기도

 

- 지금의 환경에서 자족하고 있는가?

 

- 환경이 나아지기를 구하기 전에, 자족할 수 있는 능력을 받기를 간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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