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4장 4-9
기도하라, 생각하라, 행하라
이준원 목사 2012.05.20
콜럼버스한인장로교회 https://www.kpccoh.org
[들어가는 말]
옛날이야기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죽음의 신이 한 마을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의 죽음의 신이 가는 길을 막으며 물었습니다. “여기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하십니까?” “100명의 목숨을 가져가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그 사람은 죽음의 신보다 빨리 마을로 달려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 일에 대해 경고해주었습니다. 해가 졌을 때 그 사람은 마을 밖으로 나가는 죽음의 신을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그는 항의했습니다. “당신은 분명 100명의 목숨만 가져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1,000명의 사람들이 죽은 겁니까?” 죽음의 신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내가 한 말대로 했을 뿐이다. 나는 분명히 백 명의 목숨만 가져갔다. 나머지는 내가 한 게 아니라 염려라는 놈이 한 일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분명 무서운 시대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앞날에 대한 걱정이나, 직장, 사업, 건강, 자녀에 대한 일상적인 염려 외에도 테러에 대한 두려움까지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씀해줍니다. 걱정하지 말라! 우리는 분명 이 세상에서 살면서 신경 쓸 이유는 있지만 염려할 이유는 없습니다.
신경을 쓴다(concern)는 것과 염려한다(worry)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신경을 쓴다’는 것은 내가 그 문제에 대해 알고 있고, 구체적인 사실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있으며, 그 문제에 대해 조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염려’는 다릅니다. 염려는 아주 비생산적인 일이고 믿음 없는 행동이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떠한 상황이든지 염려는 그것을 더 낫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마비시켜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거부하게 만듭니다. 앞날에 대해 걱정하게 되면, 현재의 삶에서 믿음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능력이 마비됩니다.
1. 염려에 대하여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가 염려하지 말고, 대신 구체적으로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그런데 바울이 어디에서 이 편지를 썼는지를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만약 바울이 이때 지중해 어느 해변의 모래사장 위에서 흔들의자에 앉아 선글라스를 끼고 얼음을 동동 띄운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주욱 마시며 ‘아~ 조~오타!’라고 생각면서 “항상 기뻐하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라고 하는 상황이었다면 그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 편지를 쓰던 때는 아주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요즘 미국의 감옥처럼 좋은 데가 아니라 아주 끔찍한 곳입니다. 이때 바울은 감옥에 갇힌 채 앞날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이제 자신의 목을 자르기 위해 데리러 오는 사람들의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이때 바울의 처지는 너무나 비참하고 불쌍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가 뭐라고 합니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4-5절)
요즘 우리는 너무나 불확실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2001년 9월 11일 이후로 미국에서는 테러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언제 또 테러리스트들이 비행기나 다른 폭발물로 공격을 해올지 알 수 없습니다. 또 요즘 부쩍 지진이나 토네이도(tornado) 발생이 많아진 것을 듣고 있습니다. 두 달 전쯤에 여기 콜럼버스에서도 토네이도가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아십니까? 저의 부모님이 LA 사시는데, 언제 대지진(The Big One)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불안감 속에 그곳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뉴스도 있습니다. 처갓집이 일산이라, 혹시라도 남북 간에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공격당할 위치입니다.
그나마 이런 것들은 내게 직접 일어날 확률이 아주 낮은 편입니다. 일어나더라도 나 혼자만 피해를 보는 일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같이 고통을 겪게 될 일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 자신이 사형을 당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언제 당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누구보다도 더 두려워하고 걱정에 사로잡혀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사도 바울은 전혀 걱정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기뻐하라고 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바울은 실제적인 세 가지 지침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2. 삶에서 염려를 몰아내기 위한 세 가지 단계
1) 기도하라 - 올바른 기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6절)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일에 기도와 간구로’라든지, ‘큰 문제에 대해 기도와 간구로’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기에 너무 크거나 너무 작은 문제는 없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닥친 엄청나게 큰 문제들만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자세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엄청난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꼭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염려하려는 마음이 생기려고 하는 순간, 염려 대신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걱정거리가 다가올 때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영적 습관을 기를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조건반사 작용과도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조건에 따라 자동적으로 반사작용을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것은 배워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손을 뻗다가 뜨거운 것이나 차가운 것에 손이 닿으면 재빨리 손을 거둡니다. 특히 뜨거운 것이 닿으면 귓불에 손을 가져갑니다. 귓불이 차가워서 그렇다고 합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도 무엇을 하려고 막 가다가 “야” 하고 부모가 소리 지르면 멈추어 섭니다.
운전도 그렇습니다. 처음 운전을 배울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어색하고 서툴렀습니까. 빨간 불이 들어와 있는 것을 보면 브레이크를 밝아야 한다, 좌회전을 해야 하니 왼손으로 깜빡이를 아래로 내리자, 백미러와 좌우 거울을 자주 확인해야 한다, 계기판의 스피드가 얼마인지 체크해야 한다, 길에 있는 속도표시가 어떤지를 봐야 한다 등등,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힘이 들고 떨렸습니다. 그런데 몇 달, 몇 년이 지나서 이제 운전한지 오래 되었다면, 아직도 그것을 다 해야 하기 때문에 떨리십니까? 운전하는 것이 몸에 뱄기 때문에 그런 조작을 다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고가 날지 모르니 늘 조심하면서 운전합니다.
오래 전에 제가 살던 곳에 한국에서 택시 운전을 하시던 분이 이민을 왔습니다. 뉴욕 택시 운전사들도 대단하지만 한국 택시 기사들도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런데 그분이 운전실기시험에서 떨어졌습니다. 왜 떨어졌는지 아십니까? 택시기사였으니까 운전을 얼마나 잘하겠습니까. 게다가 미국은 길도 넓고 차도 별로 없고, 얼마나 쉽습니까. 그래서 그분이 한 손은 창문에 턱 걸치고 한 손으로만 운전을 한 겁니다. 그러니 운전 시험관이 너무 조심하지 않는다고 떨어뜨린 것입니다. 너무 숙달되어도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잘하면 좋지만 조심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걱정거리가 찾아올 때는 어떻게 하십니까? 걱정스러운 생각에 사로잡혀 밤에 잠은 오지 않고,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스트레스를 받는 지경에 이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적인 조건반사 기능을 개발하면, 걱정거리가 생기자마자 큰 두려움과 불안감에 빠져 들어가던 모습을 바꿀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갑자기 어떤 일이 떠오르면서 ‘안 돼, 그 일이 정말 일어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면 속이 뒤틀리기 시작하고 두려움의 물결이 몰려옵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가 이렇게 생각할 때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기도해야겠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그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나가서 주님 발아래 내려놓습니다. 따로 시간을 내어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기도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내게 염려를 가져다주는 문제가 발생했다면, 따로 시간을 내어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업이나 집을 사는 데에 필요한 돈을 융자(loan) 받으려고 은행 담당자를 만나는데 길거리에서 아무렇게나 만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무 데서나 서서 의논하지 않을 것입니다. 먼저 시간 약속(appointment)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찾아가 의논하게 됩니다.
우리는 급할 때 언제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따로 시간을 내는 것도 필요합니다. 둘 다 해야 합니다. 지금 이 주일예배 같은 것이 바로 그런 모임입니다. 또 새벽기도회와 수요예배도 그렇습니다. 따로 시간을 내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시간을 정하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근심과 염려로 다리가 떨리기 시작할 때면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 이것이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면 믿을 만한 사람들을 찾아가 도움을 구할 때도 있습니다. 어딘가로 사람을 찾아가서 만나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어려움에 닥쳤을 때 하는 첫 번째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힘들면 ‘다른 주님’, 즉 술에 의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술은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술은 오히려 더 크고 더 많은 문제들을 일으킬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6절을 보면, 단순히 기도와 간구만 하라고 하지 않고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결코 놓치면 안 되는 중요한 것입니다. 기도 응답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미리 감사하기를 빼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오히려 기도가 응답되기 전에 필요한 요소입니다.
무슨 일이든 감사를 한다면 초점이 어디로 갑니까? 하나님에게 맞추어집니다. 감사하게 되면,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시며 능력이 많으신 분인지를 기억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동적으로 문제들을 올바른 시각으로, 하나님의 시각으로 불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전능하심을 묵상하면서, 그에 비하면 내 인생의 문제들은 얼마나 작은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문제가 찾아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십니까? 기도하십니까? 우리는 때때로 어떤 문제 때문에 낙심하고, 실망하고, 불평하고, 좌절합니다.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밀려와서 가슴이 울렁거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때 그런 문제에 대해 기도합니까? 무슨 일이 탁 터지면 걱정부터 하는지, 기도부터 하는지, 생각해보십시오. 그런데 기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기에 그토록 기도하라고 명령합니까?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7절)
이 성경말씀이 약속해주는 것과 약속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내가 구하는 기도의 내용에 대해 반드시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응답받을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나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뢴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일이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뭐 하러 기도합니까? 이루어지지도 않는데 왜 기도해야 합니까?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런 상황 가운데 우리에게 평강(평화)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줍니다. 우리는 어려울 때 즉시 “하나님, 제게 닥친 이 문제를 해결해주세요.”라고 말씀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해주실 수도 있고 안 해주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그렇게 기도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내게 당신의 평화를 주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나는 “A를 주세요”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B를 주실 수도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내게 지금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다른 더 비싼 장난감을 주는데 그것을 거부하고 원래 놀던 것을 고집합니다. 원래 것은 5불이고 새 것은 20불이며 훨씬 더 좋은 건데도 그것을 모르니까 원래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보는 부모는 얼마나 답답합니까.
하나님은 우리보다 우리 사정을 더 잘 아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고 말씀합니다. 가만히 보면 바로 이 두 곳이 걱정을 일으키는 장소입니다. 마음은 잘못된 감정이 일어나는 장소이고, 생각은 잘못된 사고가 일어나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의 평화가 이 두 가지 영역을 모두 지켜주신다고 약속합니다. 이 지켜주신다는 말은 군사적인 용어입니다. 우리 마음과 생각에 호위병을 세워서 지켜주시며 보호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염려가 되는 일이 있으십니까? 바로 그 일을 주님께 아뢰며 던져버려야 합니다. 이 시대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루 종일 걱정을 끌고 다닙니다. 예수님 안에서 허락된 풍성한 삶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채, 그저 평생 걱정과 염려 속에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면서 날이 가면 갈수록 염려의 짐은 점점 더 커져만 갑니다. 그렇게 되면 영혼이 곤고해지고 피폐해집니다.
“여러분의 걱정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 (벧전 5:7)
이 구절에서 두 개의 단어가 두드러집니다. ‘맡기다’(cast)와 ‘돌보다’(care)입니다. ‘맡기다’라는 단어는 개역성경에는 ‘던지라’고 되어 있지만, 어떤 것을 던질 때 사용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이것은 문제에 대한 염려를 중단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시도록 해드리려는 분명한 의지적인 행동을 뜻하는 말입니다. ‘돌보다’는 단어는 개역성경에 ‘권고하다’로 되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관심을 가진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돌보아주신다는 뜻입니다.
지금 나를 괴롭히며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바로 그 일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그것을 해결해주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이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아뢰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2) 생각하라 - 올바른 생각
먼저 하나님께 기도한 다음에는 올바르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하라, 생각하라, 행하라”고 했는데, 이 두 번째 것을 가장 안 합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8절)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계속 누리기 위해서는 마음과 생각이 따라야 합니다. 올바른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이사야 26:3)
여기서 “심지가 견고한 자”라는 것이 바로 ‘올바른 생각을 하는 자’를 뜻합니다. 올바른 생각이란 “주를 의뢰”하는 것임을 또한 이 구절이 알려줍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는가가 결국에 가면 우리가 무엇을 행하는가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으로 추하고 해가 되는 생각을 미리 방지해야 합니다. 성경을 따라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이 앞의 스크린이 참 밝고 깨끗한데, 여기에 여러분의 마음의 생각이 다 비추어진다면 어떠시겠습니까? 가나다순으로 앞에서부터 비춘다면 항상 강 씨가 손해 보겠지요? 아니면 가나다의 뒤에서부터 한다면 황 씨가 손해 보겠지요? 어쨌든 자신의 생각을 스크린데 비춘다면 자신이 있으십니까?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생각만이 다 나타나겠습니까?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머릿속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채워야 합니다.
다음에 어떤 문제가 찾아오면 자신을 향해 말을 거는 것을 시도해보십시오. 예를 들어 시편 기자가 했던 방식을 사용하는 겁니다. 42편을 보면, 시편 기자는 아주 깊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염려하며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부르짖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 괴로워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이제 내가,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을, 또다시 찬양하련다.” (시편 42:5)
그는 지금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우울한 생각과 절망감에 굴복하기보다, 믿음을 따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아주 좋은 본이 됩니다. 우리도 어려움이 닥치면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다음번에 의심과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오거나 근심과 걱정이 마음의 문으로 기어 들어오려고 한다면, 그때 조용히 앉아 자신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용기를 내! 하나님이 함께 하시잖아!’
어려운 문제가 찾아오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몇 년, 몇 십 년을 믿어왔든지, 이제 막 믿기 시작했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인생에서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혼란스러워 하는 시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러한 순간에 패배하기를 거부함을 의미합니다. 앞날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이 찾아올 때 그런 생각을 거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충격과 두려움과 근심이라는 미사일을 쏘아댔고 지금도 쏘아대고 있고 앞으로도 쏘아댈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단호한 자세로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내 마음은 결정되었다. 나는 염려가 나를 이기지 못하게 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기다리고 바랄 것이며, 내가 스트레스와 미리 걱정하는 일로 나 자신을 아프게 하기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올바른 생각입니다.
3) 행하라 - 올바른 삶
올바르게 기도하고 올바르게 생각했다면 올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9절)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고 선포합니다. 이것은 결코 자기 잘났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그토록 따르려고 살았던 삶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보이지 않는 마음의 자세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올바르게 기도하고 올바르게 생각한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당연히 올바르게 살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순서가 거꾸로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올바른 기도와 올바른 생각은 없이 그냥 행동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제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이 순서를 잘해야 합니다. 올바르게 기도하라, 생각하라, 행하라!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모르는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고 선포합니다(사 57:21). 그와는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순결하게 살아가면 하나님의 평안을 경험하게 된다고도 선포합니다(사 32:17).
[나가는 말]
옛날 중국의 기 나라에 걱정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하늘이 무너질까봐 두려워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요즘도 태양이 식을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이 사람과 아주 비슷합니다. 결국 그는 쇠약에 걸려 죽고 말았습니다. 이때부터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뜻의 ‘기우’란 말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걱정은 하면 할수록 끝이 없습니다. ‘혹시 지진이 나면 어쩌나. 전쟁이 나면 어쩌나, 지구의 온난화로 홍수가 나면 어쩌나.’ 걱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사업이 불안해서, 자녀의 진로 때문에 가정 문제 등 우리의 의심과 걱정은 끝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걱정과 두려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고 그 뜻을 알 수 없을 때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생히 듣고 따르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적 채널을 하나님께 맞춰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정말로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복을 나누어주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올바르게 기도하라, 생각하라, 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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