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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이사야

사 55장 1-3절(목마른 자들아) - 강대식

by Preacher 2023.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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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55장 1-3

목마른 자들아

강대식 목사 2016.06.26

한가족교회 http://ahttp://afamily.ijesus.net/

 

1. 목마른 자들은 물로 나아오라.

 

사람들은 목말라 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돈, 명예, 출세, 권력, 취직, 즐거움과 쾌락, 게임과 오락 --- 그리스도인들은 기도 제목들을 보면 무엇에 목말라하는지가 보인다. 우리 육신이 목말라하는 것들은 죽으면 다 끝나고 마는 것들이다. 본문에서 ‘목마른 자들’은 영혼이 목마른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육신의 목마름을 채우고자 하는 자들은 실망하고 말 것이다.

 

영원한 것을 향해 목말라야 한다. 영원히 사는 내 영혼이 목마른 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사람에게 주셨다.(전3:11) 세상에 있는 보이는 것들은 가질수록 더 목마르고 더 부족함을 느낀다.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1:8,14)

 

주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라고 하셨다.(마5:6) 의는 공의와 정의요 하나님의 거룩함의 표현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것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가지 못하고 지옥에서 영벌을 받아야 한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

 

‘오호라’는 안타까워 탄식할 때 내는 말이다. 하나님은 안타까워 하시면서 초청을 하고 있다.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하고 부르신다.

 

조건은 오직 하나, 목마르는 것이다.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해 하는 자들은 목마름이 없는 자이다. 영혼의 상태를 모르니까, 가진 것으로 만족해 하고 배불러 한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못하는도다”(계3:17) 세상의 것으로 배부른 자일수록 그 영혼은 목말라 있지만 모르는 것이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인 줄을 모르니까 그렇다. 죽으면 끝이 아니라 영혼은 둘 중에 한 곳으로 가야 한다. 한 곳은 영원한 복락의 천국이요, 한 곳은 영원한 형벌의 지옥이다.

 

사람들은 천국 지옥을 말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예수님만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이 시대의 과학과 상식만 참말쟁이로 여기고 있다. 하늘에서 오신 분이 친히 그 실상을 말하는데도, 세상 초등학문들에 오염되어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자기 영혼의 목마름과 배고픔을 어찌 알꼬? 예수님을 영으로 만나기 전에는 다 그렇다. 교회 다니면서도, 오직 세상의 것들에만 목말라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영혼의 목마름과 배고픔은 여기서 채우지 아니하면 저기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주님은 지금 부르시는 것이다.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인종차별도 없고 빈부귀천 남녀노소 차별이 없다. 영혼이 목마르면 된다. 영혼이 목마른 줄을 알면 된다. 목마르면 물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풍성한 저수지로 가야 한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7:37-39)

 

수가성 우물 가에서 여인에게 주님은 말씀하셨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군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0,13-14)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요 성령이시다. 그렇게 육신으로 목말라하던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중심에 모시고 나면 그 갈증과 탐욕과 욕망이 사라지는 것을 본다.

 

무슨 수로 그 욕망의 불길을 끌 수 있는가? 역사적으로 그 불을 끄는 인간의 지혜와 방법은 없었다. 지식이 모자라서도 아니고 재물이 모자라서도 아니다. 인간의 욕망의 불은 계속 타오르며 세상을 더욱 악하게 만들고 있다. 인간의 욕망의 불과 목마름의 갈증을 끄는 물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그분이 영원한 생수의 강인 성령의 세례를 베풀어주셔야 한다. 예수를 만나면, 그분이 성령을 부어주시면, 놀랍게도 타는 목마름을 멈추고 새로운 존재가 된다.

 

그것이 기독교의 참 역사이고 본질이다. 기독교는 부자가 되게 해주는 곳도 아니고, 권력과 명예의 바벨탑을 쌓게 해주는 곳도 아니다. 변질되고 세속화된 교회들이 복음을 팔고 하나님을 팔아 한몫 챙기려는 것 뿐이다. 우리 주님은 그런 교회와 지도자들을 향해, 교회를 ‘강도의 소굴’(권력이 왕 노릇?)로, ‘장사하는 집’(돈이 왕노릇?)으로 만들었다고 책망하셨다.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오지만, 노략질하는 이리들을 조심해야 한다. 거짓 선지자들인 거짓 목사들과 신학교수들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돈 없는 자도 와서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신다. 돈 없이, 값 없이가 가능한 것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그 값을 그분의 피로 다 치루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느니라”(엡1:7) 사는 수고는 내가 해야 한다. 십자가에서 내 죄의 값이, 그 형벌의 값이, 그분의 피로 치러진 사실을 믿고 그분을 내 마음 중심에, 영혼 중심에 모시고, 영접하는 수고, 그분을 사는 수고는 내가 해야 한다.

 

주님이 우리의 목마름을 해갈하기 위해 주시는 생수는 젖과 포도주의 기능을 한다. 젖은 영혼이 먹는 자양분이요, 포도주는 그 위에 생기와 활력과 기쁨을 주는 양식을 말한다. 어려서는 젖만 먹어도 되지만 성장하면 생기의 포도주도 먹어야 한다. 이러한 젖과 포도주를 먹을려면, 우리가 지금 마시고 있는 더러운 물, 아니 독을 버려야 할 것이다.

 

2.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해 살지 말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사55:2)

 

사람들은 내 영혼에 양식이 되지 못하는 것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은을 달아준다. 영혼이 결코 배부르고 만족할 수 없는 것들을 위해서는 땀흘리고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하셨으니 일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영혼의 양식을 위해 돈을 쓸 줄 알고 수고할 줄 알라는 것이다. 육신과 욕망을 위해서만 살고 영혼은 삐쩍 말라 영양실조로 내버려 두는 삶을 그만 살라는 것이다. 영혼에 양식을 먹이지 아니하면 인간은 만족과 행복을 누릴 수 없다.

 

영혼이 양식으로 채워져야 사람은 비로소 참된 행복감과 만족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르다는 말씀을 새겨야 한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평강이 임한다. 영혼의 양식은 말씀과 기도이다. 진리의 말씀을 알기 위해 살기 위해 은을 달아주고 수고를 해야 한다.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뜻을 알며 결단과 위로와 격려를 받아야 한다. 긍휼하심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해 나아가야 한다.

 

말씀과도 기도와도 멀어진지가 한참 되었다면, 당신의 영혼은 지금 목마르고 삐쩍 말라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면 평안도 없고 만족도 없고 끝없는 갈증과 불안과 염려만 가득할 것이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서만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신다.(요6:27) 정기적으로 시간을 정하고 분량을 정하고 말씀을 읽으라. 말씀을 깊이 알기 위해 경건서적들을 돈을 주고 사서 읽는 수고를 하라 아비 같은 스승들을 만나야 말씀을 알고 실천하는 자극을 받게 된다. (홈페이지, ‘경건서적실’을 보라. 사진과 내용 소개가 있을 것이다.)

 

그 진리의 말씀에 근거해서 영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될 뿐이다. 영의 생각으로 하는 기도와 묵상만이 생명과 평안을 준다는 것을 명심하라. 말씀과 기도를 통해 주님께 듣고 들어야 한다.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주일 설교를 온 마음을 집중하여 듣고 다시 녹음을 통하여 듣고 새기고 실천하라.

 

3. 나와서 귀를 기울이고 들으라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는,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서는, 축복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축복은 주님의 말씀과 법도와 규례에 순종할 때만 주신다. 신구약 공히 하시는 말씀이다. 신명기 특히 28장은 오직 말씀의 청종에 따라 저주와 축복이 갈라지고 있다. 주님도 내 말을 듣고 실천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라고 하셨다.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하나님께서 듣고 들으라고 통사정을 하고 계신다. 왜? 주의 백성들이 듣질 않고 있으니까 그러시는 것 아닌가? 그것만이 사는 길인데, 죽는 길로, 망하는 길로, 저주의 길로 가고 있으니, 그러시는 것 아닌가? 지금 보는 것, 듣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눈과 귀에는, 일시적으로 즐겁고 좋을지 모르지만, 영혼은, 좀먹고 시들고 갈증나고 말라깽이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주님의 말씀에 성경에 귀를 기울이고 주님께로 나아와 들으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하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희의 영혼이 죽으리라 하시는 것 아닌가? 시들고 말라빠진 영혼의 상태로 주님의 심판대 앞에 가서 무어라 변명의 여지가 있겠는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1-14)

 

(방탕하던 어거스틴을 깨우신 말씀이다.) 주님께 나아와 듣고 또 듣고 귀를 기울이면, 영혼이 살 뿐 아니라, 육신으로도 좋은 것으로 먹을 것이며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을 것을 약속하고 계신다. 꿩먹고 알먹고 일거양득의 축복을 약속하고 있다. 그리고 이 축복은 영원한 축복이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언약을 맺고 보장한다고 하신다.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영원한 왕권을 약속하셨다. 약속을 지키셨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권을 상징하지만 그것은 곧 우리의 영원한 왕권의 복이기도 하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들으면 이렇게 좋은 축복, 영원한 축복, 영원한 왕권을 약속하시고 있다. 사람은 약속을 하고 식은 죽 먹듯이 어기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그분의 거룩함과 신실함과 전능하심에 의해 그 실현이 보장된다. 어제까지는 어떻게 살았을지라도 오늘 이 시간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을 통해 듣고 또 듣자.

 

하나님의 말씀은 들으면 들을수록 믿음이 생기고 성장하고 축복으로 이어진다. 안 들으면 안 들을수록 믿음이 없어지고 작아지고 저주로 이어진다. 신명기 30장은 모든 율법의 결론으로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신30:19-20)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신30:15-16)

 

우리 자신의 선택에 하나님은 맡기고 있다. 하늘과 땅을 증거로 증인으로 삼고 있다.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 중에 무엇을 택하겠는가? 생명과 복, 사망과 화 중에 무엇을 택하겠는가? 내가 생존하고 번성하는 길은 오직 하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의지하는 것이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것이다. 성경을 읽으며 연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순종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의 남은 인생 길을 평탄하게 하고 형통하게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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