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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이사야

사 54장 2-3절(네 장막터를 넓히라!) - 이백민

by Preacher 2023.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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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54장 2-3

네 장막터를 넓히라!

이백민 목사 2015.12.06

브니엘교회 [호주] http://ghttp://gcpeniel.org/xe/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전하신 말씀들과 행하신 일들은 그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혁명적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생각하던 종교적으로 거룩한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였습니다.

 

사도들을 통하여 교회가 그 지경을 넓혔지만 교회들이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혁명이 마르틴 루터를 통하여 일어났습니다. 교황의 면죄부와 함께 타락해가던 교회를 향하여 학문상의 토론을 할 목적으로 붙혔던 95개조의 논제와 함께 종교개혁이 시작되어 마르틴 루터는 “종교 개혁의 아버지”라고도 불립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났지만 교회는 또 한가지를 잊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바로 선교였습니다.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 1761-1834)에 의해 선교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윌리엄 캐리가 목회할 당시에는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선교는 사도시대에 사도들에게만 주어진 명령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1792년 봄 그는 '이교도 개종에 대한 크리스천의 의무에 관한 연구'라는 책을 통해 세계선교는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해야 할 의무와 필요라는 것을 역설하였습니다. 당시 이 책은 루터의 95조항과 함께 베스트 셀러가 되어, 뜨거운 세계선교열풍을 전 유럽으로 확산되게 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윌리엄 캐리는 “현대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윌리엄 캐리가 그 시대의 목회자들에게 선교의 필요성에 관한 설교를 하면서 인용한 본문입니다. 이 설교를 통하여 처음으로 침례교 선교회(Baptist Missionary Society)가 시작되었습니다.

 

네 장막터를 넓히라! – Enlarge the place of your tent!

 

선교는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가장 중요한 명령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 28:19) 예수님은 유대인들만을 위해 십자가를 지지 않았습니다.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사야서에 “네 장막터를 넓히며”라는 말씀이 집을 크게 지어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믿음의 영역이 넓어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믿음의 자손들이 번창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믿음의 자손들이 번창하기 위해서는 말씀이 전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또 다른 말씀으로 선교가 진행되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이 강한 성령의 역사와 함께 많은 은혜를 받고 교회도 커져 갔지만 한 가지 잊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선교에 관한 명령이었습니다. 성도들이 비록 은혜 받고 거룩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선교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망각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억지로라도 그들이 흩어져서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행 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행 8: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우리는 선교를 통해 믿음의 장막터를 넓혀야 하겠습니다.

 

선교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 The Great Commission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의 제일 마지막 구절들을 우리는 “예수님의 지상명령” 또는 “선교의 대사명”으로 부릅니다. 마태복음의 마지막 구절들은 어떻게 보면 마태복음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 생활의 결론도 선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시작은 무엇입니까? 믿음의 조상들의 족보로 시작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족보에는 계속 누가 누구를 “낳고”라는 말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의 족보는 예수님에 의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의해 다시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전의 족보에는 아브라함의 한 가정으로부터 시작된 믿음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으로 커진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결론은 예수님을 통하여 모든 민족들이 믿음의 자손들로 자라 가야 할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도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 54:3)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그러므로, 이 대사명은 믿음의 사람들이 항상 이루어 가야 할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 Make the desolate cities inhabited.

 

선교는 죽은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울은 선교를 하면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습니다.

 

(고후 11: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고후 11: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고후 11: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고후 11: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고후 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셔서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선교사의 희생과 수고로 한 영혼이 살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윌리엄 캐리가 인도에 가서 선교하는 일이 시작부터 힘들었고 마칠 때 까지 힘들었습니다. 인도에 가서는 선교사역이 상업적 이익에 손해를 끼칠까 두려워하였던 동인도 회사의 심한 견재와 적대감을 이겨내야 했으며 5살 난 아들은 선교지에서 죽었고 아들을 잃은 그의 아내는 정신병에서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또한, 벵갈에서 7년 가까이 땀을 흘렸지만 단 한 명의 인도인 개종자도 없었습니다. 그 후에야 수 많은 열매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선교할 때 바울 자신도 고생하였지만 많은 교회들이 바울의 기도와 물질로 선교사역에 동참하였습니다. ‘가는 선교사’도 있지만 ‘보내는 선교사’도 있습니다. 우리가 직접 선교사의 일을 하지 못할지라도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기도와 물질로 함께 동참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대로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만드는 일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사 54:3)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의 선교명령을 잊지 않고 어떤 모습으로든 선교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적 용>

 

이사야 54:2-3

 

선교가 없었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누구 때문입니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바울은 선교에 대해 얼마나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습니까(고전 9:16)? 선교는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선교사역에 동참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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