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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이사야

사 53장 4-6절(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 신만교

by Preacher 2024.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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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53장 4-6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신만교 목사

화평성결교회 [의정부시] http://whttp://www.hpehc.org

 

(사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이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을 입성하실 때 백성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환영을 하였지만 사실은 예수님은 하나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왕이 아니라 고난 당하는 왕으로써의 예루살렘 입성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한 주간의 참혹한 수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이 주간이 예수님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한 주간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순절을 주님과 함께 동행하신 성도여러분, 이 주간에 더욱 주님께 가까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미국 의학협회지에 현대 의학자들이 예수님께서 당하신 십자가 고통을 의학적으로 분석한 바 있습니다.

 

(영상시작)

 

당시 로마는 사형을 집행하기 전에 죄수를 기둥에 묶고 죄수의 등에 채찍질을 가했는데, 이 채찍은 가죽끈에 날카로운, 양의 뼈나, 납 조각을 붙여놓은 겁니다. 예수님은 이런 채찍으로 유대법에 따라 40에 하나 감한 39번의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이어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 형틀은 34-57kg이나 나가는 무게였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기 위해 사용된 못은 길이가 12-17cm, 지름은 1cm정도의 끝이 뭉툭한 쇠못으로 예수님의 손바닥이 아니라, 팔뼈 끝 부분과 손목뼈 사이를 관통했을 것으로 봅니다. 손바닥에 못을 박으면 몸무게를 지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의 발은 겹쳐진 채 십자가의 기둥에 고정되었고, 못은 발 중앙의 둘째 뼈와 셋째 뼈 사이에 꽂혔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은 양손과 양발의 주 신경들이 끊기는 고통, 다시 말해서 손과 발이 잘리는 듯한 아픔을 느끼셨을 것이라는 겁니다. 더욱이 십자가형에 앞서 받은 채찍질로 인한 출혈과 쇼크, 혈압 저하증, 못을 박기 위해 땅에 누웠을 때, 채찍질 당한 등이 다시 찢겨지는 아픔, 십자가 위에서 숨을 쉴 때마다 찢겨진 등이 거친 나무기둥과 부딪칠 때 생기는 고통 등 예수님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극한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의학자들은 예수님이 무엇보다 호흡곤란 상태로 더 극심한 고통을 느꼈을 것으로 봅니다. 못에 박혀 쭉 뻗은 팔과 어깨를 끌어내리는 몸무게는 숨을 들이쉬기보다 내쉬기를 훨씬 어렵게 만들고, 이로 인한 근육경련 현상 등이 호흡을 방해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숨을 제대로 쉬기 위해서 발을 밀어 올리고 팔꿈치를 구부리면서 어깨도 함께 들어 몸을 위로 끌어올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동작은 못 박힌 발에 몸무게 전체를 싣게 되므로 고통이 극에 달하게 됩니다. 더욱이 팔꿈치를 구부리는 동작은 못에 박힌 손목을 돌리게 하고 팔의 신경을 손상시키게 되므로 고통은 가중되고 결과적으로 예수님은 매번 호흡을 할 때마다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치명적인 산소 부족을 경험했을 것이라는 게 의학자들의 설명입니다. 이때 죄수의 다리를 꺾어 버리면 죄수는 수분 내에 질식사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는 빨리 죽도록 하기 위해 다리를 꺾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리조차도 꺾지 아니하고 고통을 다 당하셨습니다(요19:33). 결국 의학자들은 예수님의 실제적 사인을 출혈로 인한 쇼크사 내지는 질식사로 보고 그 외에도 탈수, 불규칙한 심장박동, 심장 쇠약 등의 요인도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영상 끝남)

 

성도여러분, 왜 이토록 처절하게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셔야 했습니까?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1. 나의 죄를 대속(代贖)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들이었습니다. 이런 죄인이 용서받기 위해서, 구약시대에는 양이나 염소를 잡아 그 피로 속죄제로 드림으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죄 지은 인간을 대신해서 동물들이 대신 피를 흘린 겁니다. 매일 엄청난 동물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불완전한 제사였습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반복해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를 준비하셨습니다. 그 속죄제물이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처음 보자 뭐라고 증거 했습니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로다.’ 예수님이 양처럼 희생제물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 자신은 이 세상에 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대속’이란 노예를 사서 자유를 주기 위해 값을 치르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죄 값으로 마귀의 종이 되었고 영원한 형벌을 받을 운명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르시고 영원한 사망과 저주에서 건져내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 겁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출애굽 하던 전날 밤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처음 난 것, 초태생, 장자가 모두 죽는 재앙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재앙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가정은 한 가정도 예외 없이 이 무서운 재앙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 비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지시대로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습니다. 신비한 것은 무서운 재앙이 임하는 날밤에 죽음의 사자가 그 피를 볼 때에 그냥 넘어갔습니다. 이미 재앙이 임한 것을 확인 한 겁니다. 누가 재앙을 받았습니까? 어린이 대신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대속의 피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의 죄 값으로 예수님이 저주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바로 이것을 믿는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건물에 피뢰침과 같습니다. 천둥, 번개가 무섭게 치는 날에도 피뢰침이 있는 건물에 있으면 벼락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요? 피뢰침이 대신 벼락을 맞아주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당해야 할 심판을 이미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 함이 없나니

 

이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한 줄 믿습니다.

 

# 주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인을 구속하셨으니 그 피를 보고 믿는 자는 주의 진노를 면하겠네 내가 그 피를 유월절 그 양의 피를 볼 때에 내가 너를 넘어 가리라

 

여러분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입으신 줄 믿습니다. 또 구속의 은혜를 지금 입기를 바랍니다.

 

2. 내가 지은 죄에 대한 징벌(懲罰)을 대신 받으신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작은 죄라도 용납하실 수 없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의로운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는 반드시 응징하고 죄 값은 반드시 치러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公義)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범죄 하였습니다. 범죄의 결과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왔습니다. 죽음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심판의 결과는 지옥의 형벌입니다.

 

(롬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을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요일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러니 어찌하면 좋습니까? 공의를 따르자니 사랑이 울고 사랑을 따르자니 공의가 우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고민하시다가 비법을 찾으셨는데,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가시켰습니다. 본문 6절입니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내가 지은 죄는 예수님에게 전가시켜 예수님이 대신 징벌을 받게 하시고 예수님의 흠 없는 의(義)는 우리에게 전가시켜 우리를 의인으로 삼으시어 구원하신 겁니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義)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그 죄 값으로 십자가를 지신 겁니다. 아무 죄가 예수님이 나의 죄를 뒤집어쓰시고 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있을 수 없는 일인데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롬 5: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옛날에 한 임금이 법을 제정하여 온 나라에 공포하면서, 그 법을 범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 벌로써 두 눈을 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법을 가장 처음 범한 사람은, 어이없게도 하나밖에 없는 왕자였습니다. 왕자가 포박되어 왕에게 끌려 왔습니다. 재판석에 자리한 왕은 ‘법에 따라 범법자의 두 눈을 빼라’고 명령했습니다. 왕의 엄명에 형 집행을 맡은 관리들이 왕자를 묶고서 눈 한 짝을 뺐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쪽 눈을 빼려고 하는데, 임금이 ‘잠깐 멈추어라. 눈 하나는 빼지 말고 대신 내 눈을 빼라’고 했습니다. 임금이 ‘내 눈을 대신 빼라’고 했지만, 누가 감히 임금님의 눈을 뺄 수 있겠습니까? 신하들이 엎드려 ‘폐하, 그럴 수 없습니다.’고 하자, 임금은 직접 날카로운 송곳을 취하여 자기 눈 하나를 찔러서 뺐습니다.

 

그러므로 법도 지키고 자기 희생을 통해서 아들을 향한 사랑도 할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 역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동시에 충족되는 현장이었습니다. 죄는 공의로 심판하고 죄인은 사랑으로 구원하신 겁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고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될 때 울음이 안 나올 수가 없습니다.

 

#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 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나 십자가 대할 때에 그 일이 고마와 내 얼굴 감히 못 들고 눈물 흘리도다

 

3. 나의 구원을 위한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딤전 2:4)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렇지만 죄인이 어찌 구원을 기대하겠습니까? 무슨 수로 죄인이 하늘나라를 갑니까? 북한을 탈출하려다가 붙잡혀 억류된 탈북자들이 어떻게 자유의 땅으로 갈 수 있으리요. 자기 힘으로는 안됩니다. 누군가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비자도 받게 하고 비용을 대주어야합니다. 똑같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우리 힘으로는 안됩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힘써도 안됩니다.

 

# 울어도 못하네- 힘써도 못하네- 참아도 못하네- 믿으면 하겠네 주 예수만 믿어서 그 은혜를 힘입고 오직 주께 나가면 영원 삶을 얻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구원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비용은 다 하나님이 지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다 지불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거저 주셨습니다.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여러분, 이 구원의 선물, 다 받으신 줄 믿습니다. 아직 못 받으신 분 오늘 꼭 받으세요. 어떻게 받아요? 여러분, 선물 받아 보셨잖아요. 선물 받을 때 대가를 주고받습니까? 거저 받습니까? 거저 받습니다. 아무리 비싼 선물이라도 그 값은 선물 주는 사람이 지불하고, 받는 사람은 거저 받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구원도, 천국도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거저 받는 겁니다. 그 대가(代價)는 하나님께서 지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속전(贖錢)으로 자기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놓으신 겁니다.

 

구원의 선물은 믿음으로 받는 겁니다. 감사하므로 받는 겁니다. 구원의 선물을 대가를 지불하고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구원 못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다 믿음으로, 감사하므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이 구원의 선물을 거절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러분 가족들을 이번 새생명축제를 통해서 꼭 받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크게 후회합니다. 왜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셨습니까? 나의 죄를 대속(代贖)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지은 죄에 대한 징벌(懲罰)을 대신 받으신 겁니다. 나의 구원을 위한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찬미예수 117장을 부릅니다. 얼마나 아프셨나 못 박힌 그 손과 발 죄 없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 하늘도 모든 땅도 초목들도 다 울고 해조차 힘을 잃고 온누리 비치잖네 나의 죄 너희의 죄 우리의 모든 죄를 모두다 사하시려 십자가 달리신 주 얼굴과 손과 발에 흐르는 그 귀한 피 골고다 언덕 위를 피로 붉게 적셨네 아아 끝없어라 주의 사랑 언제나 아아 영원토록 구원의 강물 넘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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