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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데살로니가전서

살전 1장 1-10절(본이 되는 교회) - 서명성

by Preacher 2024.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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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1장 1-10

본이 되는 교회

서명성 목사 2014.7.27.

팔로마한인교회 http://palomarkc.org/

 

어느 교회든지 건강한 교회, 부흥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새 예배당 입당 D-Day를 10월 첫 주일로 삼고 있습니다. 입당이 감격스럽지만 그 자체가 교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가 잘 준비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의 극심한 반대로 인하여 바울이 가장 짧게 머물렀던 데살로니가교회는 바울로부터 제대로 양육 받을 기회를 갖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마게도니아와 아가야의 본’이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교인가 환난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고 또한 귀한 믿음의 본이 되는 교회가 되었을까요? 그 비결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적용하면서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한 우리의 여정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아의 수도로서 그 지역의 정치, 문화, 상업의 중심지입니다. 데살로니가는 교통의 요충지로 로마와 동방 제국을 연결하는 에그나티아(Egnatia) 도로 상에 있었습니다. 주민 대부분은 마게도냐인과 헬라인이었으며 회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유대인들도 상당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시 유럽의 관문 도시인 빌립보를 떠나 데살로니가로 갔고, 거기에서 3주 이상을 보냈습니다. 이때 생겨난 데살로니가 교회는 야손을 위시해 바울의 충실한 동역자가 된 아리스다고(행 27:2)와 세군도(행 20:4) 등이 있었습니다.

 

문안 인사(1:1)

 

사도 바울은 그의 동역자인 실라와 디모데들과 더불어 데살로니가 교회에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했습니다. 실라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결정한 사항을 가지고 바울과 함께 안디옥으로 파송 받았던 사람입니다. 또한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바울이 마가 대신 데리고 떠났던 선교동역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빌립보에서 바울과 함께 모진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교회의 본질을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것으로 묘사합니다. 즉 참된 교회란 죄악과 사탄의 권세에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믿음의 연합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간 자들의 모임입니다. ‘은혜와 평강’은 단순히 안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영적인 복입니다. 은혜는 그럴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베푸시는 하나님의 호의를 말하며, 평강은 유대인들에게 총체적 복지를 가리키는 말인 샬롬의 헬라어 표현입니다. 오늘도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고 있는 은혜와 평강을 누리며 기뻐해야 합니다.

 

바울의 감사(1:2-5)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해 항상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에 귀 기울이던 자들을 회심시키시고 하나님의 영광스런 구원에 동참시키신 것을 인하여 감사했고,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이방 세계에 드러내고 있는 모습을 인하여 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살아 움직이는 믿음이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주님을 향한 사랑과 잃어버린 영혼들과 성도들을 향한 사랑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들에게는 사랑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또한 감사했던 것은 그들에게 있는 소망의 인내 때문이었습니다. 그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소망이야말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요 이 땅을 거룩하게, 또한 탐욕 없이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형제들이라 부르며 격려합니다. 특히 그들이 보여준 세 가지 특징인 믿음, 소망, 사랑은 선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드러냅니다. 이 편지를 받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커다란 위로와 격려를 받을 뿐 아니라 주님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더 굳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형제들이라는 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점, 그리고 택하심을 받은 특별한 존재인 점을 거론합니다. 무엇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변화시켰습니까? 그들에게 복음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제대로 임할 때 달라집니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이 복음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전했습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했습니다.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이라는 용어 자체가 복음의 증거가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사역이며, 성령의 힘으로 하는 사역임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바울과 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보여 준 삶과 사역의 모델이 강조됩니다. 이들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하여 존재했고 그들을 위해 말씀을 전했고, 그들을 위해 천막장이로 살았습니다. 이들은 말씀과 삶으로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본이 된 성도들(1:6-7)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주님과 바울의 일행이 보여 준 본을 따라 살려고 하는 점을 인정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복음이 전해진 뒤부터 고난이 뒤따랐습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였던 야손과 그의 형제들은 공중 앞에 끌려가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도 복음 때문에 이들에게 고난이 많았던 것은 바울이 사용한 ‘많은 환란’이라는 단어 속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많은 환란 속에서 ‘성령의 기쁨으로’ 바울과 그 일행이 전해준 말씀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기쁨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특별히 주어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과 성령의 기쁨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상관성이 있습니다. 그 어떤 환란도 이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말씀을 받다’는 동사가 부정과거분사로 처리되었는데 이는 먼저 말씀을 받고 나중에 바울과 주님을 본받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말씀을 받은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말씀대로 살려는 노력을 바울과 주님을 본받는 일로 나타냈습니다. 그들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로부터 온전한 복음을 들었고, 성령의 능력을 경험했으며, 그에 합당한 거룩한 삶을 열매로 나타냈습니다.

 

믿음의 소문(1:8-10)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산 결과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북쪽 마케도니아와 남쪽 아가야의 모든 신앙인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처음부터 신앙이 모델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주님을 닮고자 했고 또한 그분의 말씀을 전해준 바울과 그 일행의 본을 닮고자 했을 때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지역의 믿는 자들에게 귀한 본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의 영향력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무엇보다 기뻐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실로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바울과 주님을 본받아서 환난 중에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실제적인 행동이 곁들인 그들의 복음 전파는 삽시간에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에까지 퍼져 갔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이 같은 영적 열매는 바울의 수고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마지막 심판, 성도의 영광스런 구원을 기다리며 그들의 믿음을 지켜 나갔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주변에 어떻게 소문이 나 있습니까? 주님을 본받는 삶을 통해 누구에게 본이 되고 있습니까?

 

이 부분에서 특히 대명사 ‘그들’(마게도니아와 아가야 지역의 신앙인들), ‘너희’(데살로니가 성도들), ‘우리’(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의 상호관계 속에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다른 지역의 신앙인들이 바울에게 전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로 들어갔을 때, 그들은 이방 종교의 배경 가운데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일행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전도자들이 전해 준 말씀을 믿고 따랐습니다. 둘째로, 그들은 우상을 떠나 하나님께 돌아와 그분을 섬겼습니다. 셋째로, 그들이 하늘로부터 오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재림의 신앙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9-10절은 몇 가지 중요한 교리적인 내용을 보여줍니다. 첫째,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은 다 우상입니다. 하나님만이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그 생명이 없고 거짓된 우상들로부터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은 부활하신 분, 죽음을 이기신 분입니다. 넷째, 때가 차게 되면 그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니 우리는 그를 기다려야 합니다. 다섯째, 미래에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여섯째, 그때 진노를 피할 수 있도록 건져내실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그는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주님의 부활, 구원, 재림을 언급합니다. 이것이 바울의 신앙고백이며 복음입니다. 이 신앙은 그대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물려졌을 것입니다.

 

바울의 모습은 모든 리더에게 귀한 본을 보여줍니다. 우리 교회에서 리더는 목회자 뿐 아니라 목자, 선교회장, 사역부장 등 책임을 맡고 섬기는 분들이 포함됩니다.

 

바울의 본

 

1) 성도들을 위하여 항상 관심을 가집니다

 

바울과 그의 일행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의 핍박을 인하여 삼주 만에 떠나게 된 사실에 대해 바울은 아쉬움과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뢰아를 거쳐 아덴에 도착했을 때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어 데살로니가교회의 사정을 알아보도록 했습니다. 이는 혹 미혹하는 자가 들어와서 데살로니가의 어린 성도들의 믿음을 해치고 유혹할까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디모데가 와서 바울에게 그들의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전하므로 바울이 크게 안도하고 위로를 받고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이때의 기쁨과 감사함으로 쓴 편지가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물론 이 편지를 쓰면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게 대한 권면과 경계도 들어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데살로니가교회에 대한 기쁨과 칭찬, 감사와 애정의 표현이 주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아직까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작은 장점과 좋은 특징을 계속 격려하고 힘을 더하여 주며 더 나아가 그들 자신들을 이 말씀에 비춰 더욱 되돌아보고 힘쓰기를 원합니다. 연약한 성도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이 같이 형제나 자매들을 향한 기도와 격려입니다. 리더들은 섬기는 대상을 위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영적으로 돌아보고 기도하고 감사하고 기억하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 삶을 통하여 성도들을 양육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디모데 전서 3장에 나오는 감독의 직분 중에 가르치기를 잘하며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가르침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로만 전하고 가르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으로써 성령의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가르침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웠겠지만 그보다도 그가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보여준 삶을 통해서 더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칠 기회를 갖거나 그럴 위치에 있게 될 때마다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르치는 내용에 급급하기보다 배우는 사람에게 보일 우리의 모습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데살로니가교회의 본

 

1)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과거에 하나님을 모르고 섬겼던 모든 것들을 버리게 됩니다. 바울 당시에 사람들은 우상을 섬겼으나 20세기를 사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나님처럼 섬깁니까?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건만 하나님 중심으로 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돈은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아주 요긴하게 사용됩니다. 돈을 이용할 줄 아는 자들이 되어야지 돈에 가꾸로 이용당할 때 문제가 됩니다. 우선순위가 바뀌니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돈, 물질, 쾌락 등이 들어서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자꾸 뒷전에 밀리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도 그들이 예수 믿기 전에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보니 자기중심, 자기만족에 우선순위를 두던 삶이 하나님께 방향을 돌려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2) 말씀을 진지하게 받았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성령의 기쁨이야말로 참된 회심의 증표라 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밝히 이해되고 마음에 깨달아지는 순간, 그 영혼 안에는 하늘의 기쁨이 흘러넘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쁨을 회복하는 길은 오직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는데 있습니다. 결국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은 것이 바울과 주를 본받는 자가 될 수 있는 비결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권능과 그에 따른 삶의 변화를 체험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확신으로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3) 예수님과 전도자들의 삶을 본받았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받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않고 그들의 사역자들과 주님을 본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즉 그들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았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바울은 겸손과 순종을 강조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을 것을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빌 3:17). 자기를 본받으라는 말은 그가 완전해서가 아닙니다. 빌 3:12절을 보면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이라 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본받으라는 말입니까? 예수를 알려고 하는 열심, 예수님을 닮아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려는 열심, 복음의 진보를 위한 그의 열정을 본받으라는 말입니다. 바울의 삶을 통해 영향을 받은 데살로니가교인들은 곧 예수님과 전도자들을 닮는 생활을 했고, 결국 주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범이 되었습니다. 복음은 이들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지만, 이들의 생활 속에서 나타난 믿음과 특별히 이들에게 나타난 분명한 변화들을 통해서 더욱 강하게 전달되었습니다. 이것이 초대 교회의 역동적인 모습이며 오늘 우리 교회가 회복해야 할 건강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4) 전도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복음이 데살로니가교회로부터 퍼지고 이를 통해 그들의 하나님을 향하는 믿음이 각처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퍼졌다’는 말의 헬라어는 나팔처럼, 천둥처럼 울려 퍼진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과 관련해 아주 적절하고 강력한 은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세상에 나팔처럼 울리기 원하십니다. 그들은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변화된 삶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증거 하였기에 열매가 풍성했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니 바울마저도 더 이상 그들에게 덧붙여 줄 이야기가 없었을 정도였습니다(1:7,8).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도 스스로 삶에 적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교회는 오래 다녀도 그 변화가 미미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제대로 본을 받고 제대로 본을 보여주는 모습을 가졌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입니다.

 

5)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노후를 대비하기에 적금을 붓거나 보험을 듭니다. 눈에 보이는 육체적인 것은 대비하면서 영적인 것은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가오는 심판을 알지 못할 때 갑자기 멸망하게 됩니다. 마 24장에 보면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면서 육체적인 데만 관심을 쏟았습니다. 노아는 120년을 그들에게 경고하였으나 우습게 여기다가 졸지에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자기 멋대로 살면 하나님은 그들을 마귀의 수중에 그냥 내버려둡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다가 나중에 낭패를 당하고 와서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이제부터라도 신앙생활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베드로는 말세를 사는 성도들에게“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벧후 3:11,12) 개역개정판에는‘간절히 사모하라’로 번역되어 있으나 헬라어는 ‘재촉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한 심령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재림이 더뎌지는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성결의 삶을 힘쓸 때에 주님의 재림이 빨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과 섭리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것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하나님께 대한 반응이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주기도문에서 “나라이 임하옵시여”(마 6:10)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으며 종말에 관한 예언 중에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데 성도들의 순종이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새 하늘과 새 땅에 살게 될 성도들은 지금부터 그곳에 살기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힘쓰면서 그날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은 경건하게 살다가 주 앞에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데살로니가 교회가 풍성한 열매를 거두며 믿음의 소문이 퍼질 수 있었던 것은 세 가지가 딱 맞아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통하여 역사하심과 바울, 실라, 디모데 같은 전도자들의 삶을 통한 능력 있는 가르침과 데살로니가교인들이 진지한 자세로 말씀을 받고 말씀에 따른 변화된 삶입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만족하기가 쉽지 않기에 교회가 성장하고 성숙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를 통하여 퍼진 믿음의 소문은 바울을 기쁘게 했습니다.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하게 된 과정과 데살로니가교회가 우상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 이야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이야기들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과 함께 퍼져 나갔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팔로마한인교회도 이와 같이 아름다운 소문이 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단지 새 건물을 가졌다는 소문만 나서는 안 됩니다. 입당하고 났더니 교회 안에 부인할 수 없는 아름다운 변화가 분명히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좋은 소문이 각처에 퍼지도록 하기 위하여 우선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본이 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한편 우리가 속한 교회가 본이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더욱 큰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갖고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로서 최선을 다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럴 때 팔로마 한인 교회의 믿음의 소문이 이 지역뿐만 아니라 미주에 퍼지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됩니다. 변화된 삶을 통하여 온 교우들이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며 가정과 사업과 하시는 일 가운데 열매가 풍성하게 맺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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