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전5장 16-18
진짜 행복한 사람
조원건 목사 13-11-24
켈러한인제일침례교회 http://fkbckeller.org
올해도 추수감사절이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추수감사절이 되면 지난 한해를 돌이켜보며 감사할 일들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속에 항상 감사할만한 일들만 었었습니까? 아마 원망스러고 짜증나는 일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즉 “모든 상황에서 감사하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적으로 과연 그러한 삶이 가능한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바울이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했는데, 그 이유는 믿는 사람들에게 감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항상 지켜야할 규칙이 있기 마련입니다. 예를들어,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 부모는 자식을 사랑으로 돌보고 자식은 부모에게 순종할때 그 관계가 잘 유지됩니다.
그럼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반대로 질문한다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깨뜨릴만한 행동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바울은 로마서에서 왜 하나님의 진노가 인간에게 임하는지 즉 인간의 가장 큰 죄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깨뜨리는 죄가 무엇인지 로마서 1:21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한마디로 감사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죄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범죄했습니까? 그들은 에덴동산에 있는 선악과 이외의 모든 나무를 먹을수 있는 자유에 대하여 감사하기 보다는 한가지 먹지 말라고 금하신 선악과 때문에 불평과 원망이 생기게 되어 결국 범죄하게 되었고 죽음이라는 사형선고를 받게된 것입니다.
따라서 감사는 해도 되고 안해도 그만인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감사가 사라지게 되는 순간 인간은 죄에 빠지게 되어있고 결국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내 안에 감사가 부족하다면 왜 감사가 부족한지 그 이유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감사하는 삶을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럼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왜 우리는 감사하며 살기가 힘든 것 같습니까? 그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때에 얻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감사 대신 원망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항상 주시는 분이 아니라, 내게 꼭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울때 자식이 원하는 것을 항상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식이 원하는 것이 자식에게 항상 유익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식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해서 아무 때나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이에 따라 필요한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자식에게 결혼할 배우자가 필요하다고 해서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는데 결혼시키는 부모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현명하고 지혜로운 부모는 자식에게 필요하다고 아무 때나 주는 사람이 아니라 자식에게 꼭 필요한 것을 꼭 필요한 때에 주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속에서도 똑같은 일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그들을 애굽으로부터 해방시키시고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은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너무나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과 감사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광야로 나오고 보니까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등 의식주의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마음에서 기쁨과 감사는 사라지고 원망이 시작되었습니다. 민수기 11:4-5을 보시겠습니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스라엘백성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고기, 생선, 오이, 참외, 부추, 파, 마늘이었습니다. 광야에 월맛이나 H-Mart를 세웠으면 장사가 잘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서 원망과 불평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이 원하는 것 대신에 메추라기와 만나를 주셨습니다. 비록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다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신명기 29:5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게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그들이 40년동안 원하는 것을 항상 얻지는 못했지만 40년이 지나서 보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다 주셨고 결국 그들에게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광야 40년내내 원망과 불평을 끊이지 않았고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애굽에서 탈출한 1세대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이외에는 아무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복을 경험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혹시 이런 질문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그냥 주시면 그들도 감사할텐데 왜 구태여 꼭 다른 것을 주셔서 원망을 사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먼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이전에 신약성경에 기록된 또 다른 사례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설교할때 사도바울의 편지를 많이 인용합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신약성경의 거의 절반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하는 베드로는 딱 2권의 신약성경을 기록했지만, 바울은 신약성경 총 27권중에서 무려 13권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바울도 정말 자신이 원하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2:8,9을 읽겠습니다.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바울에게는 고질적인 질병이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간질 아니면 눈에 심각한 질병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질병을 고쳐달라고 하나님께 아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질병때문에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복음을 전할때 비웃음과 조롱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로 전도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의 평생동안 그의 병을 고쳐주지 않으셨습니다. 즉 그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바울이 그토록 원하던 것을 주시지 않으신 것입니까? 하나님의 대답이 고린도후서 12:7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즉 복음전파를 방해하는 것은 바울의 질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전파를 방해하는 것은 그의 질병이 아니라 그의 교만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교만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그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고린도후서 12:10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이 세상에서 억울함과 가난과 고통을 즐거워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그가 원하는 것을 얻기는 커녕 오히려 그가 원하지 않은 일을 당한다 할지라도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때때로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는 이유는 나를 좀더 겸손한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한 목적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는 유일한 이유가 내가 교만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이유중에 하나가 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주시지만, 우리가 원하는 때에 주시지 않을 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랫동안 기다려야할 때가 많습니다. 아마 이 세상에서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뜸을 들이시면서 우리를 기다리게 하시는 것 같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야고보가 주고 있습니다. 야고보 1:4을 읽겠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기다리고 인내하게 하시는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이 결코 무익하거나 불필요한 시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기다리고 인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까? “우리가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특별히 11월에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봄이나 여름에 지키면 안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자라지만 열매는 가을에 거두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을에 잘 익어서 풍성한 열매를 거두어들이기 위해서는 봄부터 가을까지 기다림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누구라고 비유하셨는지 요한복음 15:1을 보시겠습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하나님 아버지를 농사꾼으로 비유하고 계십니다. 농사꾼은 언제 씨를 심고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고 언제 추수를 해야하는지를 잘 아는 전문가입니다. 바로 그 농사꾼이신 하나님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때 내 안에 생명의 씨앗을 심으시고 그 씨앗이 자라게 하시며 마침내 열매를 맺게 하시고 추수를 하십니다. 그래서 언제 비료를 주고 언제 물을 주고 언제 추수해야 하는지 그때를 나보다 농사꾼이신 하나님이 더 잘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하나님이 내게 필요한 것을 내가 원하는 때에 주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인내하면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기다릴뿐만 아니라 감사함으로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감사하며 기다리는 동안 논의 벼가 익어가듯이 우리도 온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성숙한 신앙의 사람으로 만들어져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든지 못얻든지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되지 않을수도 있게 됩니다. 바울은 그가 정말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지만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라는 사람 자신이 온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성숙한 사람이 되니까 그가 무엇을 가졌느냐 못가졌느냐 때문에 행복과 불행을 느끼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감사란 크리스챤이 해도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우리는 원망할만한 일도 많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살아갑니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감사하면서 살수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먼저 우리가 감사하기 힘든 이유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백성에게 그들이 원하는 고기와 생선과 각종 채소는 주시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꼭 필요한 만나를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꼭 필요하고 유익한 것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으면 감사할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때에 주시지 않는 이유는 내게 필요한 때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바로 농사꾼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최고의 전문가이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하나님의 때를 감사함으로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감사함으로 기다릴때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것을 주셔도 감사하고 혹시 주시도 않아도 바울처럼 기뻐하며 감사하는 사람으로 살아갈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 아니겠습니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가져도 불평하고 원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정말 불행한 사람 아닙니까?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서 감사할 조건이 꼭 있어야만 감사하고 없으면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정말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받은 저희들이 당연히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원망과 불평에 붙잡혀 살때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저희들은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때에 얻지 못하면 쉽게 낙심하고 실망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시간 다시 한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꼭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또한 내게 꼭 필요한 것도 내가 원하는 때가 아닌 농부이신 하나님이 가장 적당한 때에 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가 원하는 것을 아무때나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과 인내를 통하여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주시고, 가진 것이 많든 적든 관계없이 범사에 감사하는 그래서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하나님 아버지께 이시간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미 주신 큰 은혜를 이웃과 형제자매와의 나눔을 통해서 더 큰 감사와 더 큰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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