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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데살로니가전서

살전 1장 1-10절(아름다운 본을 보이는 교회) - 서명성

by Preacher 2023.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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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1장 1-10

아름다운 본을 보이는 교회

서명성 목사 2015.1.4.

팔로마한인교회 http://palomarkc.org/

 

어떤 교회의 주보에 실린 글을 소개합니다.

 

1. 집안일이나 회사 일로 시간이 없고 너무 바쁘면 교회에 나오지 마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이 기억하고 드리는 정성스런 시간을 원하시지 쓰고 남은 자투리 시간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2. 이런 일 저런 일로 쓰다 보니 물질이 없으면 헌금하지 마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첫 열매와 정성을 원하시지 쓰다 남은 물질을 받으시는 거지가 아니십니다

3. 집안일과 회사 일로 찌들고 힘들면 교회 봉사하지 마시오

하나님은 귀찮은 마음으로 억지로 하는 봉사를 받을 만큼 구차하지 않으십니다.

4. 직분을 받고 그 직분을 잘 감당치 못하려면 그 직분을 포기하시오

하나님은 직분의 종류를 보시는 분이 아니고 그 직분을 얼마만큼 성실하게 잘 감당하는 지를 보시며 맡은 자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으십니다.

 

이 글을 각자에게 적용한다면 나는 어떤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합니까? 무늬만 그리스도인입니까? 아니면 행동으로 믿음의 본을 보이는 성도입니까? 특히 제직으로 임명을 받았으면서도 주일 예배만 참석했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분들이 금년부터 한분도 안 계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새해에 내가 몸으로 감당해야 할 사랑의 헌신과 수고는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모범적인 교회였습니다. 그렇다고 오랜 역사와 경륜을 자랑하는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할 여건이 갖추어진 교회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3주 밖에 머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울을 감격시킬 정도로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아름다운 본을 보인 비결이 무엇일까요? 2015년 저희 교회 표어가 “믿음으로 역사하고 사랑으로 수고하고 소망으로 인내하는 교회”입니다.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아름다운 본이 되는 교회, 지역 사회에 좋은 소문이 난 교회가 되고자 본문을 중심으로 몇 가지를 살펴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

 

손바닥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난다고 하나님의 역사도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순종이 마주 쳐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아름다운 본을 보이는 교회가 되는 과정에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습니까?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을 떠나면서 그가 세운 계획은 1차 전도 여행 때 들렀던 곳을 다시 방문하면서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소아시아 다른 지역을 복음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계획을 가지셨습니다.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을 지나 서쪽으로 진행하여 에게 해 연안의 최대도시인 에베소로 가려고 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가 지정학적 여건으로 보아 소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전진 기지가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바울의 전도팀이 아시아에서 사역하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를 거쳐 무시아를 지나 비두니아로 가려고 하였으나 성령께서 그것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할 수 없이 방향을 바꾸어 드로아에 이르렀습니다. 드로아는 소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곳입니다. 에게 해와 흑해가 마주치는 곳입니다. 그 밤에 바울이 환상을 보았습니다. 마게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 앞에 서서 “마게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간청하였습니다.

 

바울 일행은 마게도냐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고 지체 없이 바다를 건너 유럽으로 건너갔습니다. 유럽의 첫 관문인 빌립보를 거쳐 데살로니가를 가게 됩니다. 데살로니가는 로마와 동방을 잇는 큰 도로인 이그나치아에 자리 잡고 있던 교통의 요지입니다. 그곳에 복음이 전파된 것은 바울이 처음부터 계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된 데살로니가 교회인지라 열매도 많았습니다. 사도행전 17:3에 의하면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바울과 실라를 좇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보여준 본

 

1) 성도들을 위하여 항상 감사함으로 기도합니다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서 많은 고난을 받은 후 데살로니가에 도착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도 은혜 가운데 복음을 전하다가 적대적인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아 빨리 떠나게 되었기에 바울은 아쉬움과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뢰아를 거쳐 아덴에 도착하였을 때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어 데살로니가 교회의 사정을 알아보도록 하였습니다. 혹시 미혹하는 자가 들어와서 데살로니가의 어린 성도들의 믿음을 해치고 유혹할까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디모데가 다녀와서 그들의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전하므로, 바울은 크게 안도하고 위로를 받고 기뻐하였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기쁨과 감사함의 마음으로 쓴 편지가 바로 데살로니가 전서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믿음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섬기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소망으로 기다리는 것을 기억하고 계속해서 감사하며 기도해왔습니다. 그들이 보여준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는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보여야 할 신앙적 특징입니다. 그들의 믿음은 피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이며, 억지가 아니라 자발적이고 열정적입니다. 그들의 사랑은 헌신적이었고, 어렵고 힘든 때도 소망 가운데 참고 견디는 인내를 보여주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형제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존재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바울의 편지를 받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당연히 마음에 위로와 격려를 받았을 것이고, 주님에 대한 믿음을 더 굳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완전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그들이 가진 작은 장점과 좋은 특징을 언급하며 계속해서 격려하기 원했습니다. 리더들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섬김을 받는 자들을 위한 지속적인 격려와 기도입니다.

 

2) 자신의 삶을 통하여 성도들을 섬깁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보여준 삶과 사역의 모델을 언급합니다. 전도팀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해 존재했고, 그들을 위해 말씀을 전했고, 그들을 철저히 섬겼습니다. 전도팀이 빌립보에서 핍박을 받아 감옥에 갇혔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으로 풀려나서 데살로니가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는 은혜와 성령이 충만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복음을 인하여 핍박을 받는 자에게는 성령이 강력하게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벧전 4:14). 그래서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는 단지‘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과 확신으로 담대하게 증거하였습니다.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이라는 용어 자체가 복음의 증거는 언제나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사역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사역임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의 가르침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웠지만 바울이 그들과 함께 하면서 보여준 삶의 모습을 통하여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무슨 사역을 하는 가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역을 하는 가입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칠 기회를 갖거나 그럴 위치에 있게 될 때마다 먼저 좋은 본을 보여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보여준 본

 

1) 말씀을 받는 자세가 진지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었을 때 그저 좋은 말씀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것이 바울에게 큰 위로와 기쁨이 되었습니다. 교인들은 많은 시련과 슬픔을 당하였으나 큰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들였기에 교회에 말씀의 능력이 나타났고 그 결과 그들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져다주시는 변화를 체험할 때에야 비로소 이 복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진실한 것임을 마음 속 깊이 확신하게 됩니다.

 

2) 예수님과 전도자들의 삶을 본받았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복음이 전해진 때부터 고난이 뒤따랐습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였던 야손과 그 형제들은 공중 앞에 끌려가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복음 때문에 환난과 어려움을 당했지만 그들은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고, 주님과 말씀을 가르치는 바울을 본받았습니다. ‘말씀을 받다’의 동사가 부정과거분사로 처리되었는데 이는 말씀을 받는 일이 바울과 주님을 본받는 일보다 먼저 이루어진 것을 말해주려 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말씀을 받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바울과 주님을 본받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기쁨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특별히 주어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과 성령의 기쁨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깊은 상관성이 있습니다. 어떤 자세로 말씀을 받습니까? 주의 말씀을 받을 뿐 아니라 주를 본받고, 말씀의 사역자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성령님을 통한 능력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처럼 성령님이 주시는 능력을 직접 체험하시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3) 전도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목회자가 그 목회 현장을 떠난 후에 나타나는 현상이 목회의 진정한 시금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울의 데살로니가 사역은 아주 짧았지만 열매가 많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데살로니가에 교회를 제대로 세웠고, 그 교회가 이제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교회를 낳고 교회가 복음을 선포하면 복음은 다시 더 많은 교회를 낳게 됩니다. 이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누구를 자신의 롤 모델로 삼아 그를 닮고 따르려는 가에 따라 결국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되는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주님을 닮고자 했고 또한 그분의 말씀을 전해준 바울과 그 일행의 본을 닮고자 했을 때 어느덧 그들은 마게도니아와 아가야의 모든 신앙인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8절에서 두 가지를 지적합니다. 첫째는 주님의 말씀이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들렸고, 둘째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소문이 모든 곳에 퍼졌습니다. ‘퍼졌다’는 말의 헬라어는 나팔처럼 천둥처럼 울려 퍼진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과 관련해 아주 적절하고 강력한 은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교회가 복음을 세상에 나팔처럼 울리기 원하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입니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과 사랑에 대해 좋은 소문이 나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의 통로 역할을 할 수 있고, 세상에서 지친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교회를 찾아올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의 소문은 어떠합니까? 교회의 사역을 통해 지역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의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도록 하기 위하여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 개인이 본이 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한편 내가 속한 목장, 제직부서, 선교회에서 본이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요약해서 말한다면 데살로니가 교회가 이와 같이 풍성한 열매를 거두며 믿음의 소문이 퍼질 수 있었던 것은 세 가지가 딱 맞아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통하여 역사하심과 바울, 실라, 디모데 같은 전도자들의 삶을 통한 능력 있는 가르침과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진지한 자세로 말씀을 받고 말씀에 따른 변화된 삶입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만족하기가 쉽지 않기에 교회가 잘 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소문

 

9-10절은 그들(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의 신앙인들), ‘너희’(데살로니가 성도들), ‘우리’(바울과 동료 사역자들)의 상호관계 속에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들이 전하는 내용을 보면,

1)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 들어갈 때,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바울 일행을 영접하는 방식에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이방 종교의 배경 가운데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일행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이 전해 준 말씀을 믿고 따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2)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어떻게 우상들을 떠나 살아계시고 진리이신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는지 놀랐습니다.

3)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하늘로부터 오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을 보고 또 놀랐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복음을 받는 전후의 과정에서 일어난 변화는 회심자가 가지는 세 가지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1)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건만 하나님 중심으로 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선순위가 바뀔 때,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돈, 물질, 쾌락 등이 대신 들어서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신앙생활은 어느 새 뒷전으로 밀리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도 예수 믿기 전에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과거에 하나님을 모르고 섬겼던 모든 것들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고 보니 자기중심, 자기만족에 우선순위를 두던 삶이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생명이 없고 거짓된 우상들로부터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2)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깁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진리이신 분임을 알기 때문에 자기의 삶을 바쳐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 뜻을 따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보여주었던 세 가지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굳건한 믿음이 있을 때 어떤 형편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놀라운 역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12년을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도 내가 예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의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의 병이 치료가 되었고 영혼의 구원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마가복음 5:34,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니 마음의 평강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편지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 지어다. 야곱이 라헬을 너무도 사랑하였기에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일하는 팔 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 그렇기에 외삼촌 라반에게 속아 라헬 대신 레아와 결혼하였으나 다시 팔 년을 라반에게 봉사하였습니다. 사랑이 넘치니 수고가 수고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사랑 중에 가장 큰사랑은 우리를 사랑 하사 아들을 세상에 보내 주신 하나님이 사랑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수고를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얼마나 하나님과 함께 하고 싶어 하는가 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증거는 한 번이라도 더 교회에 가보고 싶고 섬기고 싶고 하다못해 떨어진 휴지라도 집으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보아도 못 본 척 그냥 지나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랑이 다른 사람들을 향한 사랑으로 발전하게 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는 희생의 수고를 하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환난 가운데 있었으나 하나님이 베푸시는 위로를 바라보았고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자기들에게 닥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소망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저버렸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고, 사랑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열심히 섬길 수 있고, 소망으로 고난 가운데 도리어 담대할 수 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은 모든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떠받치는 세 기둥이라 할 수 있고 그러한 삶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발할 수 있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노후를 대비하기에 연금을 타거나 보험을 듭니다. 눈에 보이는 육체적인 것은 대비하면서 영적인 것은 제대로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가오는 심판을 알지 못할 때 갑자기 멸망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면서 육체적인 데만 관심을 쏟았습니다. 노아는 120년을 그들에게 경고하였으나 우습게 여기다가 졸지에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성도들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하며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자기가 구원받을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다가 나중에 사업이나 건강을 잃고 와서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이제부터라도 신앙생활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말세를 사는 성도들에게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벧후 3:11,12)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3:14) 바울은 예수님에 대해 세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첫째 주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분이십니다. 둘째, 우리를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에서 건지시는 구원자이십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부활, 구원, 재림은 바울의 신앙고백이며 복음입니다. 이 신앙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그대로 전수되었습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 교회의 아름다운 소문이 각처에 퍼지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신문이나 한인회보에 거창하게 광고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가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고 우리가 속한 믿음의 공동체가 본이 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여 봅시다. 데살로니가 교회와 같이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가짐으로 팔로마 한인 교회의 믿음의 소문이 이 지역뿐만 아니라 온 미주에 퍼지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겠습니다.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교우들 간에 격려와 칭찬이 많아져야 합니다. 리더들이 먼저 본을 보여야 합니다. 섬기려 이 땅에 오신 주님처럼 섬겨야 합니다.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우리가 먼저 변화되어야 합니다. 교우들을 사랑으로 격려하며 그들의 믿음을 긍정적으로 북돋아 주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깨달고 이를 힘써야 합니다. 금년 한 해도 모든 교우들이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며 가정과 사업과 하시는 일 가운데 열매가 풍성하게 맺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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