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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데살로니가전서

살전 1장 2-10절(교회의 존재 이유) - 이삼규

by Preacher 2023.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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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1장 2-10

교회의 존재 이유

이삼규 목사 20140825

낙양교회 http://nakyang.onmam.com

 

살전 1:2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살전 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살전 1: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살전 1: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살전 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살전 1: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살전 1: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살전 1: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살전 1: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곤충학자 하면 ‘장 파부르’가 생각나지요. 그는 쐐기벌레 중 한 종류를 연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연구하는 중에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매우 크고 동그란 그릇을 하나 준비하고, 큰 사금파리 하나를 준비한 후, 행렬 구더기를 사금파리 바깥쪽에 다닥다닥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구더기들이 이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구더기들을 이동시키기 위해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맨 앞에 있는 구더기가 앞으로 이동을 시작하고 다른 구더기들이 그들을 따라서 이동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파브르의 말대로라면 쐐기 벌레 중에서 자신이 어디를 향해 행진하고 있는지 아는 벌레는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저 앞에 있는 다른 벌레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닌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다들 자기 앞에 있는 벌레만 따라가다 보니 마침내는 제일 앞장서서 가던 벌레도 행렬 맨 뒤에 가던 벌레를 마주치게 되었고 이 구더기들은 계속해서 둥그런 사금파리 주변을 계속해서 돌았습니다. 본래 행렬 구더기는 일직선으로 행진하여 횡단하고 통과하는데 파브르가 실험을 하기 위하여 빙글빙글 도는 길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같은 자리를 맴돌았습니다. 지쳐서 하나씩 떨어져 나갈 때까지 말입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모방하기를 좋아하고, 분위기에 휩쓸리고 유행에 끌려 다니고 관습에 얽매이는 습성이 있습니다. 교회도 유행에 민감해서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봉독해 올린 데살로가 교회는 아주 훌륭한 모델을 따랐던 교회였습니다. 그들이 모델로 삼은 대상은 하나님과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그들은 마땅한 모델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모델로 삼았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세 가지가 겸비된 교회였습니다.

 

살전 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겸비된 교회였습니다. 교회는 항상 이 세 가지가 균형 즉 밸런스를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습니다.

 

살전 1: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의 모습을 살펴보십시오. 대형교회들마다 물론 특색이 있겠지만 본이 되는 교회가 몇 교회나 있습니까? 교회의 규모가 크다고 다 본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들이 한국교회를 이끌어 가는 리더의 역할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작은 개척교회들이나 농어촌교회들이 본받을 만한 그런 교회가 얼마나 있는지 의문이 갑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데살로니가교회처럼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교회 부임하여 처음 했던 설교가 오늘 본문으로 “이상적인 교회”라는 제목으로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모델이 되는 교회의 특징

 

모델이 되는 교회는 반드시 어떤 특징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1)말씀중심

 

데살로니가 교회는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은 교회였습니다. 즉 말씀 중심의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모델이 되는 교회의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성경을 기준으로 삼아 모든 일을 결정함으로써 성경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말씀중심의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생길 때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모든 믿음과 모든 행동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검증되어야 합니다.

 

2)성령의 인도

 

한걸음 더 나아가 교회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교회 부흥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교회 부흥이 무엇입니까? 교회 부흥은 성령께서 자신의 사역을 수행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예배 순서 한 귀퉁이에 밀려 나가 있지 않고, 자신의 사역을 수행하시는 것입니다. 부흥이 일어나면 성령께서 교회의 최고 경영자가 되어서 교회를 이끌어 나가십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데살로니가 교회도 그러했습니다.

 

살전 1: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살전 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데살로니가교회를 인도하신 분은 성령님이셨습니다.

 

3)존재의 목적을 이루는 것

 

살전 1: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데살로니가 교회는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교회로서 이 땅에 존재하는 중요한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교회는 여러 가지 목적을 최상으로 구현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증언하고, 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심하게 될 때 우리의 시민권은 즉각적으로 변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속한 시민이 아닙니다. 다만 일시적으로 이 세상에 속해 살 뿐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 쪽으로 내려왔을 때,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히브리인’(Hebrew)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강 건너 편에서 온 사람, 낯선 사람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말할 때 그 억양이 달랐습니다. 아브라함의 생활은 그 습관이 달랐습니다. 먹는 습관, 옷 입는 습관, 기타 다른 습관들이 본토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하란 땅에서 아브라함은 분명 이상한 사람이었고 낯선 사람이었고 이국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거듭날 때 즉시로 새로운 시민권을 얻게 되고 그들이 이전에 시민으로 살던 곳에서는 순례자요 이방인이 됩니다. “이 세상은 나그네 길 나는 다만 나그네 나의 집은 저 하늘 저 넘어 있고”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를 이 세상에 남겨두셨을까요? 도대체 우리는 왜 이 세상에 살고 있습니까? 새롭게 거듭난 사람들은 모두 새로운 본성을 가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예수님은 우리의 형제가 되십니다. 우리는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천국은 우리의 고향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 이방인들 사이에 살도록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남겨 두신 까닭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

 

1)교회는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어느 날 영국 문학계(文壇)에서 내노라 하는 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당시에 둘 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재능 있는 작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문학에 대한 자기 지식을 한껏 자랑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만일 지금 죤 밀턴이 이 방에 들어온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그를 위해 큰 박수를 칩시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만일 윌리엄 세익스피어가 들어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세익스피어를 위해 모두 일어서서 환호합시다." 이때 누군가 조용히 질문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 이 방에 들어오신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이 질문을 던진 사람은 영국의 위대한 수필가, 챨스 램(Charles Lamb)이었습니다. 그는 모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만일 지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방으로 들어오신다면, 나는 그저 고개 숙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배는 반드시 성령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식으로 경배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향한 개인적인 헌신과 피와 불로 인한 내적인 정결함이 있어야만 합니다. 세상과, 세상의 견해와 습관과, 세상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과 분리되어야만 합니다. 회심 자들을 만들어 내는데 열심을 발휘하는데 예수님의 경고를 잊어버리고 행동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 경고가 무엇입니까?

 

마 2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전도 열심히 하면 뭐합니까? 그 사람을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하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전도의 무용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열심히 전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전도한 그들을 천국백성이 되도록 본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마 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여러분은 어떤 위치에 서 있습니까? 천국 문을 가로 막는 걸림돌 즉 장애물입니까? 아니면 천국 문으로 인도하는 디딤돌입니까? 지난주일 오후에 말씀드린 대로 우리는 ‘복음화’를 힘써야 합니다. 그 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제자화’입니다. 우리가 전도한 그 분이 제자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진정한 제자가 또 다른 제자를 낳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경배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성령과 진리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진정한 경배자가 되기를 원하신다면 성령을 좇아 행하십시오. 그리고 진리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십시오. 진리에 순종하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교회는 증언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이 땅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습관과 가치관을 제거하기 위해서 이 땅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세상에 그분을 증언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증인이 무엇입니까? 증인은 개인적으로 체험한 것을 입증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 주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무엇에 대해서 증인이 되어야 합니까? 우리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체험한 것에 대해서만 증인이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법정에 가서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말해 준 것입니다.”라고 말한다면 판사는 즉시 입을 다물라고 명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말한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무엇을 보았습니까? 무엇을 느꼈습니까? 무엇을 맛보았습니까? 개인적으로 경험한 것은 어디까지입니까? 주님은 명령하십니다. “내 증인이 되리라”

 

이번에 제주도에 있는 모 검사장이 공인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가 망신을 당하고 사표를 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잘못한 행동에 제보한 여학생이 있습니다. 그 학생이 두 번이나 그런 잘못된 모습을 보고 경찰에 제보를 하였고 결국 체포되었습니다. 더우기 발뺌을 할 수 없는 것은 cctv 영상에 다섯 번이나 그런 장면이 고스란히 포착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어디선가 우리가 영상에 녹화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행동 하나하나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자리에 증인은 있어야 증인으로서의 효력이 있습니다.

 

타이타닉이라는 배가 침몰할 때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하퍼는 스코트랜드의 목사였는데 시카고에 있는 무디 교회에서 3개월 동안 설교를 하기 위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배가 대서양을 항해하던 중 빙산에 부딪쳐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승객 중 얼마는 구명정에 옮겨 탈 수 있었지만 하퍼 목사님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차가운 대서양의 바다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물에 떠 있으려고 허우적거리는 그 시간에 하퍼 목사님은 주위를 헤엄쳐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하퍼 목사는 부서진 나무 조각 하나에 매달려 있는 한 남자에게 다가가 예수를 믿으라고 간절히 말했습니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속으로 가라앉기 바로 전 하퍼 목사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으리라.

 

4년이 지나 그 여객선, 곧 타이타닉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한 모임에서 그 남자는 자기가 그 날 밤 두 번 구원을 받았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첫 번째는 하퍼 목사님의 전도로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고, 두 번째는 혹한의 바다에서 구조된 것이었습니다. 하퍼 목사님이 죽으면서 간절히 소원했던 것은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러한 소원을 가지고 삽니까? 우리는 위기에 처할 때나 편안할 때나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시는 그 분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전해 주면서 살고 있습니까? 하퍼 목사님이 마지막 순간에도 전도를 한 모습은 자신의 죄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우리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증인의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3)교회는 일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선한 일을 하기 위함입니다.

 

엡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부으셨고, 예수님은 여기 저기 다니시면서 선한 일을 하셨습니다.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요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선행을 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선행을 한다는 것은 단순한 구제 사역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행을 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 남겨진 것입니다. 만일 이 일이 필요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벌써 천국에 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선행을 합니까? 기도와 헌금을 통해서 선행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말씀해 주시고 그것에 대해서 해설을 해주신 아주 아름다운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 16: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여러분! 아무리 큰 부자라 해도 이 세상을 떠날 때 가지고 갈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지금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보십시오. 돈이 없어서 병원에 이렇게 여러 날 누워있겠습니까? 또한 그가 만일 죽으면 무엇을 가지고 가겠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 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마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마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선행 즉 아낌없이 베푸는 것입니다.

 

눅 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교회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증인의 삶을 살고 또 선행을 하는 것이 광신주의입니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교회는 신약 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모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증인이 되고, 선을 베푸는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의뢰하고 용기를 내어 믿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에 맞추기 위해서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집을 바꿀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용기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하는 사업을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키기 위해서 방향을 과감하게 전환할 수 있습니까? 성령의 능력을 소유하십시오. 우리는 경배하고 증언하고 선행을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완수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우리의 생활을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킴으로써 우리의 욕망을 기꺼이 포기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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