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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사무엘상

삼상 26장 1-12절(하나님이 갚아 주십니다) - 문기태

by Preacher 2023.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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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26장 1-12

하나님이 갚아 주십니다.

문기태 목사 2016.06.19

창원침례교회 http://whttp://www.changwon.or.kr/

 

사무엘상 26장

1 십 사람이 기브아에 와서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 산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매

2 사울이 일어나 십 광야에서 다윗을 찾으려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과 함께 십 광야로 내려가서

3 사울이 광야 앞 하길라 산 길 가에 진 치니라 다윗이 광야에 있더니 사울이 자기를 따라 광야로 들어옴을 알고

4 이에 다윗이 정탐꾼을 보내어 사울이 과연 이른 줄 알고

5 다윗이 일어나 사울이 진 친 곳에 이르러 사울과 넬의 아들 군사령관 아브넬이 머무는 곳을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에 누웠고 백성은 그를 둘러 진 쳤더라

6 ○이에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에게 물어 이르되 누가 나와 더불어 진영에 내려가서 사울에게 이르겠느냐 하니 아비새가 이르되 내가 함께 가겠나이다

7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

8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

9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10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11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12 다윗이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되 아무도 보거나 눈치 채지 못하고 깨어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더라 (삼상26장 1-12절)

 

아버지에게 큰 상처를 받고 평생을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형제들과 갈등을 겪으며 상처를 받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습니다. 또 어떤 이는 목회자에게 상처를 받아 큰 충격 속에 방황하기도 합니다. 직장에서 상사와의 심각한 갈등을 겪으며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힘들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우리는 인간 관계에서 갈등을 겪으며 힘들어 할 때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주 가까운 관계, 피할래야 피할 수도 없는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아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대표적인 실례로 다윗과 사울의 관계를 들 수 있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탓에 자주 악한 영에게 사로잡혀 큰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사울의 신하들이 악신에 시달리는 사울 왕 앞에서 악기를 연주하여 악신을 쫓아줄 사람을 찾게 되었고 수금을 잘 연주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다윗을 발견하여 추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사울 왕이 두통에 시달릴 때마다 다윗은 불려가 수금을 타며 찬양을 하여 악신을 쫓아 사울로 하여금 평안을 얻게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윗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에 나간 형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고 안부를 살피게 되었습니다. 마침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이 하나님의 군대를 조롱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에는 골리앗과 맞서 싸울 장수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윗은 의분에 사로잡혀 골리앗과 싸울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사울에게 요청하였고 나가 싸워서 거인 골리앗을 단숨에 쓰러뜨렸습니다. 그래서 사울왕의 신임을 받고 이스라엘군대의 장군이 되었습니다. 또한 왕의 사위가 되어 왕궁에서 살며 왕의 상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요나단 왕자의 절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흥분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전장에 나아가 큰 공을 세워 장수가 되었고 왕의 사위가 되었으며 왕자 요나단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전장에서는 승승장구했으며 왕에게 신임을 받고 모든 신하들과 백성들도 모두 그를 좋아했습니다. 다윗의 앞날에 이제는 탄탄대로가 활짝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전쟁에서 크게 이기고 돌아오는데 이스라엘의 여인들이 다윗을 맞이하러 나와서 춤추며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 하고 노래하였습니다. 그 노래를 들은 사울은 크게 질투하고 시기하며 다윗을 미워했습니다. 다윗을 죽일 결심을 하고 다윗이 수금을 타며 연주에 집중할 때 창을 던져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여러 번 죽이려는 시도가 반복되자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달아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으로부터 몸을 숨길만한 곳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광야로 달아나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다윗은 의문에 휩싸였습니다. '왕궁에서 호화롭게 지내며 왕의 식탁에서 왕과 함께 음식을 먹으며 왕자 같은 대접을 받다가 하루 아침에 쫓겨나 도망자가 되다니!' 기가 막혔습니다. 습한 동굴에서 박한 음식을 겨우 먹으며 짐승처럼 지내야 했습니다. 시중드는 사람도 없고 백성들의 환호도 사라졌습니다. 게다가 사랑하는 아내는 다른 사람에게 시집 보내졌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보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기름을 부으셨는데.. 오늘까지 믿음을 드러내며 충성을 다했는데 왜 이런 위기가 내게 찾아 온다는 말인가' 회의가 솟아났습니다.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었습니다. 사울의 광기는 더해갔고 다윗을 죽이려고 사울은 최정예 군사 삼천 명을 이끌고 광야를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어제까지 다윗을 따르던 군사들이 오늘은 다윗을 잡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습니다. 사울은 엔게디 광야에 다윗이 숨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추격의 고삐를 바짝 당겼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추격하다가 뒤를 보려고 홀로 어느 동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뒤에 다윗이 숨어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목숨을 죽일 수도 있었으나 죽이지 않고 사울의 겉옷 자락만 살며시 잘랐습니다. 사울이 볼일을 마치고 동굴에서 나가 상당한 거리로 멀어졌을 때 다윗은 사울에게 소리쳤습니다.

 

(삼상 24:11) “나의 아버지여!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십시오. 내가 왕을 죽일 수 있었지만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자락만 베었습니다. 이것을 보시면 나의 손에 악이나 죄가 없는 줄을 아실 것입니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반역하거나 잘못한 일이 없나이다.”

 

사울에게 비교의식이 발동하자 사랑은 사라져버렸습니다. 열등감이 솟아나자 다윗이 충성스런 동역 자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원수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순수하게 사울을 따르며 충성을 다했는데 사울은 그런 다윗의 충성심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미워하며 거부하고 해치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사울을 똑같이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사울과 똑같이 원수처럼 여기고 해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오해하는 사울이 안타까워서 그의 몸을 베지 않고 옷자락만 베었습니다. 그것으로 자신의 사랑과 충성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오늘날도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울과 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자신을 위기에서 건져준 다윗을 해치려고까지 하는 사울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오해하고 의심하며 상처를 입히고 원수처럼 여기고 갈등을 만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선을 악으로 갚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크게 상처를 입기 쉽습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위기를 겪게 됩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솟아나고 비난하고 싶고 원망하고 싶으며 미워집니다.

 

이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진가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미워하면 안됩니다. 보복하려고 가슴에 칼을 품으면 안됩니다. 다윗의 태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악을 선으로 갚는 것입니다. 복수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손에 원수를 맡겨야 합니다. 나를 미워하는 상대방의 오해를 벗기려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당신이 나를 오해하고 미워하지만 나는 당신을 여전히 사랑하고 충성을 다하겠다.'하며 그 마음을 능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울은 다윗이 자신을 죽일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보고 다윗의 선한 마음을 인정했습니다. 사울은 울면서 말합니다. "나는 너를 괴롭혔는데 너는 내게 이렇게 잘 해주었으니 네가 나보다 의로운 사람이다. 네가 오늘 내게 이렇게 잘 해주었으니 주님께서 너에게 선으로 갚아 주시기 바란다. 너는 틀림없이 왕이 될 것이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굳게 설 것이다." 그리고는 다윗을 잡는 것을 포기하고 군사들을 데리고 왕궁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윗은 '이제 사울 왕이 나에 대한 마음을 바꾸시겠지! 내 마음을 확실히 아셨으니 예전처럼 나에게 잘 해 주겠지. 나를 죽이려는 마음을 거두고 나를 다시 신임하고 지위를 회복시켜줄 거야.'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흘린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사울은 다시 군대를 이끌고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포위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자극할만한 일을 한 것이 없습니다. 다윗의 무리가 사울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안간힘을 쓸 때 다윗은 얼마나 낙심이 되었을까요 자신이 목숨을 걸고 충성된 마음을 보였는데 왕은 그런 다윗의 마음을 알면서도 미워하는 마음을 바꾸지 않고 또 해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거부당한 느낌에 얼마나 섭섭하였을까요

 

이 정도가 되면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사랑이 증오로 바뀌어 복수할 방법을 찾는데 열을 올릴 만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여전히 충성된 마음을 변치 않습니다. 다윗은 아비새를 데리고 사울의 진영에 잠입해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두 잠들게 하셨으므로 발각되지 않고 모든 군인들을 통과하여 사울이 잠든 곳까지 다가갔습니다. 아비새가 간청했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나로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28)"

 

아비새는 다윗이 당연히 허락할 줄 알았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여러 번 시도했습니다. 지금도 오직 다윗을 죽이려는 목적으로 군대를 이끌고 나온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일찍이 사무엘을 통해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두 깊이 잠들게 하여 절호의 기회를 주셨으니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아비새가 사울을 죽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 죽을 날이 이르거나 혹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9-11)" 그렇게 사울의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왔습니다. 너무나 바보 같지 않습니까

 

다윗이 왜 그렇게 한 것입니까 다윗은 25장에서 나발이 모욕하는 소리를 전해 듣고 크게 분노하며 직접 부하들을 이끌고 가서 선을 악으로 갚는 나발을 심판하려고 했습니다. 보복하려고 가는 길에 아비가일을 만나는데 아비가일이 다윗의 발 앞에 엎드려 만류하기를 "내 주여,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복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으니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 내 주께서 친히 보복하여 피를 흘렸다는 것으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기를 바랍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다윗은 하나님이 보복을 막으심을 깨닫고 돌아섰는데 열흘 만에 하나님이 치셔서 나발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복수하는 것은 자신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직접 복수하는 것을 죄라고 믿었습니다. 우리가 상처를 받았다고 직접 복수하려고 하면 함께 망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심판을 맡긴 것은 참으로 현명한 행동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다윗의 그런 모습을 보며 바보 같다고 비웃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이 직접 복수하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을 보시며 다윗의 큰 믿음을 인정하셨습니다. 다윗을 아주 높여주셨습니다. 다윗의 하나님은 사울을 심판하기 위해 블레셋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이 일어나고 사울의 집은 전쟁터에서 패배하고 망했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을 역사의 전면에 이끌어내시고 유대나라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제가 처음 교육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하던 때에 열정을 다하였습니다. 맡겨진 학생들과 청년들을 돌보는 일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습니다. 일년 만에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크게 부흥하고 교회에 활기가 넘쳤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못마땅한 눈으로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재정을 담당하는 집사님이 교회의 어떤 자매와 엮어주려고 중매를 섰는데 제 마음에 결혼할 마음이 없어서 거절하였습니다. 그러자 저를 미워하며 트집거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게 뜻대로 되지 않으니 사례비를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신학생이 몇 달째 사례비를 받지 못하니 얼마나 고생이 막심하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제직회의에 재정보고를 하는데 모두 지급한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제직회의가 끝난 후 찾아가 "보고서에는 지출되었는데 저는 받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하였더니 천연덕스럽게 자기가 썼다는 것입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담임목사님께 찾아가 전후 사정을 말씀 드렸는데 아무 조치도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교인들을 붙잡고 억울한 사정을 말하면 돈은 받을 수 있었겠지만 교회는 큰 시험에 휩쓸리게 될 것입니다. 결국 교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교회를 사임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손해와 억울함을 몇 배로 다 갚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그 교회보다 몇 배나 큰 교회를 목회하게 복을 주셨습니다. 만약 억울하다고 보복하려고 했다면 하나님께서 저를 외면하셨을 것입니다. 만일 그 집사님과 담임목사님을 원망하며 마음에 칼을 품었다면 더 이상 주의 일을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손해를 감수하면서 다 용서하고 주님의 손에 다 맡기고 나자 미움도, 섭섭함도, 억울함도, 분노도 나를 지배할 수 없었습니다. 하늘의 복이 심령에 더 넘치게 되었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은 잃은 것보다 훨씬 좋은 것으로 갚아주셨습니다.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을 참 많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참 좋은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만나 직접 원수를 갚으려고 몸부림치다가 스스로 무너지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받은 상처가 크면 클수록 견디기 힘듭니다. 미움이 커지고 비난하고 싶고 어떤 형태로든지 복수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큰 상처를 입힌 사람, 여러분을 파멸시키려는 사람에게 복수의 칼을 내려놓고 갈등을 넘어 관계 회복을 위해 능동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손에 맡길 때 하나님께서 가장 적당한 방법으로 그에게 원수를 갚아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여 악을 선으로 갚으며 용서를 앞세우는 여러분에게는 가장 좋은 상으로 갚아 주십니다. 여러분 모두 원수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용서하며 선하게 대함으로 하나님께 칭찬 듣고 좋은 상을 받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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