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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신명기

신 33장 8-11절(레위의 사명과 축복) - 강대식

by Preacher 2023.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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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33장 8-11

레위의 사명과 축복

강대식 목사 2018.06.28

한가족교회 http://ahttp://afamily.ijesus.net/

 

모세가 죽기 전에 12지파를 축복하였는데 오늘 본문은 레위 지파에 대한 축복이다. 레위 지파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맡는 지파요, 그리스도의 몸인 성막을 돕는 일을 전적으로 하는 지파였다. 그들에게는 기업을 주지 않았고 여호와가 그들의 기업이었고, 성물이 그의 기업이었다. 레위는 오늘날 신약시대에 와서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6)

“너희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2:5)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벧전2:9)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심한 참 그리스도인들은 다 레위요 제사장들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대 제사장이시니, 우리는 그와 연합한 제사장 지체들이다. 오늘 본문의 레위에 대한 모세의 사명과 축복은 오늘 우리 참 그리스도인의 사명과 축복이다. 우리 모두가 레위의 사명에 충실하고 레위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우리가 되자.

 

1. 레위는 둠밈과 우림이 있다.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 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레33:8)

 

이스라엘 백성이 신광야를 떠나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마실 물이 없어서 모세와 다투었다. 모세가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하였고,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지팡이로 호렙산의 반석을 치게 하여 물이 나오게 하였다.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니라”(출17:7)

 

모세는 맛사(시험)에서 레위를 시험하시고 므리바(다툼) 물 가에서 레위와 다투었다고 하고 있다. 모세 자기에 대한 시험과 다툼을 레위 전체에 대한 시험과 다툼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실 때 모르면 하나님과 다투는 모양을 취하기 쉽다. 맛사의 시험이 므리바의 다툼이 된다. ‘둠밈과 우림’은 ‘우림과 둠밈’을 여기서만 순서를 바꾸고 있다. 고대 이스라엘에 있어서 신의 뜻을 묻기 위해 쓴 제비, 혹은 점치던 도구였다. 나무조각이거나 막대, 금속, 돌로 만든 주사위 설이 있으나, 모두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은 다른 성물들은 만드는 법을 자세히 말하지만 우림과 둠밈 만드는 법은 전혀 없다. 제사장은 에봇 가슴에 붙인 흉패 안에 이것을 넣고 이것으로 가부의 판결을 하였다. 다윗 시대 이후에는 사용 기록이 없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기 위해 묻지 않았을 수 있다. 지금도 우림과 둠밈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잘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대부분은 점치는 사탄의 도구로 여겨 배격하며 존재 자체를 부인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선물은 받은 자만이 알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우림은 빛을 의미하고 둠밈은 완전을 의미한다. 둘이 아니고 완전한 빛 하나이다. 최고의 우림과 둠밈, 곧 완전한 빛은 진리의 말씀이다. 옳고 그름, 가와 부를 판결하는 우림과 둠밈, 완전한 빛은 진리의 말씀이어야 한다. 문제는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누가 어떻게 해석하느냐 이다. 주님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해석)을 조심하라고 하셨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터가 되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가르친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그 전통을 계승하고 완성한 사람들이 개혁자들이고 청교도들이었다. 그들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말씀을 심비에 새겼다. 오직 영으로 말씀을 해석하고 가르쳤다. 서기관과 장로들 대제사장들처럼 사람의 지혜로 해석하고 가르치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 해석과 전통을 우리의 ‘우림과 둠밈’(완전한 빛)으로 받을 것인지 결졍해야 한다. 세상의 영을 받아 사람의 지혜로 해석한 성경을 우림과 둠밈으로 받을 것인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아 그 지혜로 가르친 성경을 우림과 둠밈으로 받을 것인지다. 주의 경건한 자에게는 확실하고도 영적인 ‘둠밈과 우림’이 있어야 한다. 맛사의 시험과 므리바의 다툼을 일으키는 사람의 지혜를 배설물로 해로 여기고 버리고 오직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는 성령의 지혜를 얻기 위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

 

2. 레위는 말씀 준행과 언약 지킴이 우선이다.

 

“그는 그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의 형제들을 인정하지 아니하며 그의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으로 말미암음이로다”(신33:9)

 

부모는 보지 못하고, 형제는 인정하지 아니하고, 자녀는 알지 못한다는 것은 그들을 버린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우선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보다 더 우선인 것이 있다는 것이다.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고 먼저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주님도 동일한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마1:37)

 

이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이 마음 중심에 자리할 때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둠밈과 우림으로 마음 중심에 자리할 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킬 수 있다. 다른 것이 중심을 차지할 때, 부모나 형제나 자녀가 중심을 차지할 때,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이 중심을 차지할 때, 그는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 중심이 될 수 없는 것이 중심을 차지할 때, 삶은 빗나가고 혼란과 어둠과 사망을 낳는다.

 

하나님과 말씀이 중심을 차지할 때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고 전진하며 질서와 빛과 생명을 낳는다.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하나님과 말씀을 사랑할 때, 부모도 형제도 자녀도 이웃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말로는 부모 형제 자녀를 위한다고 하면서, 가정 제일주의라고 가정중심이라고 하면서, 결국 자기 중심이요 자기 사랑, 이기적인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첫째 되는 계명, 하나님 사랑이 될 때, 둘째 되는 계명, 이웃 사랑도 이루어질 수 있다. 주의 말씀을 준행하는 것, 주의 언약을 지키는 것이 부모 형제 자녀보다 우선인 레위만이 주의 성경과 법도를 주의 백성에게 올바로 가르칠 수 있고, 주님을 향한 예배도 섬김도 감사도 온전하게 드릴 수 있다.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제단 위에 드리리로다”(신33:10)

 

구약 선지자들과 신약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모 형제 자녀보다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목숨을 바치고 피를 흘리며 묵은 포도주와 헌 부대에 저항하고 주의 성경과 법도를 온전하게 가르치고 참된 예배와 헌신을 드릴 수 있었다.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은 이들의 가르침과 전통을 이어받아 카톨릭과 영국 국교를 개혁하는 데 온 몸을 불살랐고, 성경을 성령의 지혜로 가르쳤고, 초대교회 성도들 같이 참 교회와 참 가정을 세우는데 모범을 보였다. 1662년! 왕정이 복고되고 통일령이 반포되었을 때, 8천명의 목사들은 거기에 서명하고 교구와 사택과 월급을 이전처럼 지킬 수 있는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2천명의 목사들은 서명하지 않고 교구와 사택과 월급을 다 잃는 길을 선택했다. 이제까지 설교하고 가르친 진리와 양심의 소리를 어길 수가 없었다.

 

국교도들은 서명하지 않은 목사들을 그냥 두지 않고 ‘집회금지령’을 만들어, 가족을 제외하고 다섯 명 이상이 모이는 집회를 금지하였고, ‘5마일령’을 만들어, 이전에 사역했던 곳 근처 5마일 이내로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청교도들은 이 법령들을 어기고 설교하였고 투옥되었다. 존 번연도 설교한 죄목으로 12년간 갇혀 있었고, 그 기간에 ‘천로역정’의 명작을 남겼다. 그러나 전세는 역전되어 1688년 명예혁명이 성공함으로 청교도들의 시대가 돌아왔다. 결국 26년이면 끝날 고난을 감수하지 못하고 불의에 굴복한 이들은 부끄러운 세상이 찾아왔다. 히틀리의 나치 치하에서 독일의 주요 교단 목사들이 대부분 굴복하였고, 일제 36년 치하에서 장로교 평북노회를 시작으로 주요 교단들이 신사참배에 굴복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 조문으로, 도덕적 교훈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 되고 생명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피로써 살고 피로써 지키는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말씀도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하였다. 제자의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매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이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눅9:24-26)

 

주님의 참된 교회는 주님의 피로 세워졌고,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피로 세워졌으며,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의 피로 세워졌다. 그 교회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이다.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과는 다르게, 피로 생명으로 영으로 세워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키는 것이 부모 형제 자녀보다 먼저이고 우선일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바른 길을 판결하는 우림과 둠밈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살아 있고 영원한 말씀이 되는 것이다.

 

3. 레위는 축복이 보장되어 있다.

 

“여호와여 그의 재산을 풍족하게 하시고 그의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신33:11)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키는 자의 축복은 구약은 물론 신약도 일관하여 말씀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신30:16)

 

죽지 않고 생존하고, 멸망하지 않고 번성하며, 저주를 받지 않고 복을 받는 길은 오직 하나이다.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명령과 법도를 지키는 것이다. 법도를 지킬려면 성경을 즐거워하고 성경을 주야로 묵상해야 가능하다. 그것이 모든 일이 형통하는 길이고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멀리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복을 멀리하고 저주를 불러들이고, 생명을 멀리하고 사망을 불러들이는 사람이다. 이 복된 길을 가기 위해 청교도 아카데미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주야로 공부하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 주님도 레위의 축복을 말씀하셨다.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19:29)

 

모세는 레위로 산 사람들에게 여호와께서 그의 재산을 풍족하게 하실 것을 구하고 있다.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아끼시고 무엇을 안 주시겠는가? 모세는 시 90편에서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그 연수대로 날수대로 모세를 하나님은 정말 기쁘게 해주셨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집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는 날,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날이 될 것이다. ‘그의 손의 일을 받으소서’ 하였다. 모세의 기도이면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기도 하다. 그 전에는 그의 손이 일을 해도 보잘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손의 일을 하나님이 받으실 때는 견고하고 풍성한 열매를 영광스럽게 맺을 것이다.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시90:17)

 

주 우리 하나님이 은총을 내리시면,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이 견고해지고,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하나님이 거듭거듭 견고하게 하실 것이다. 일하는 차원이 달라지고, 열매가 달라지고, 축복과 영광이 달라질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그렇게 하셨고, 요셉도, 다윗도, 아브라함도 그렇게 하셨다. 우리도 레위로 충실하면 그렇게 높이시고 축복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 하나님과 그 약속의 말씀을 믿으라.

 

축복과 아울러 반드시 원수들에 대한 보응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게 될 것이다.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다윗을 대적하였던 원수 사울을 그렇게 하셨고, 원수 아말렉을 그렇게 하셨고, 북이스라엘의 원수 앗수르를 그렇게 하셨고, 유다를 망하게 한 바벨론을 그렇게 하셨다. 젊었을 때의 수치와 과부 때의 치욕을 씻어주시고 헤브론의 영광으로 축복하실 것이다. 레위로 살라. 둠밈과 우림이 있는 경건한 자가 되라.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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