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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신명기

신 33장 29절(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 이백민

by Preacher 2023.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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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33장 29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이백민 목사 2009.01.15

브니엘교회 [호주]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행복한 사람’,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되자는 목표로 함께 힘써 왔습니다. 2009년은 우리 성도들 모두가 ‘하나님의 사람’ 곧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함께 힘쓰는 한 해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번 주와 다음 주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 이전에 우리가 먼저 갖추어야 할 ‘행복한 사람’, ‘하나님을 닮은 사람’에 대하여 먼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네트를링크 시인이 <파랑새>라는 아동극을 발표했는데, 가난한 나무군의 두 아이들이 행복을 준다는 파랑새를 찾아서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추억의 나라, 매력의 나라, 미래의 나라 할 것 없이 멀고 먼 나라까지 찾아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파랑새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지칠 대로 지친 그들은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그 파랑새가 자기 집 새장 속에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행복을 위해 살아가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질 수 있는 그 행복을 엉뚱한 곳에서 잘못 찾고 있는 사람들을 비유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눅 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오늘 본문 말씀에는 모세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스라엘 각 족속들과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축복하는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너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영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된 우리 모든 성도들이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무엇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까?  

 

1. 행복은 좋은 인간관계에서 옵니다. – Happy is coming from good relationship.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물질을 많이 가짐으로, 명예를 가짐으로, 아름다운 몸매, 좋은 음식, 좋은 옷 등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 것의 근원은 바로 인간관계에서 옵니다. 로또로 벼락 부자가 된 사람들을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중의 60%는 이전 보다 불행해졌다고 응답하였습니다. 돈은 얻었지만 대부분 사람을 잃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많이 가지지 못한 것 같지만, 사실은 인간 역사상 가장 풍성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인터넷 기사에 보니 이 시대의 미국의 중산층 정도의 사람이 전체적인 면에서 100-200년 전의 영국의 왕 보다 도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상대적 빈곤감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구상에서 행복지수가 제일 높은 나라는 태평양의 작은 섬 바누아투입니다. 행복지수를 계산하는 공식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삶의 만족도’입니다. 2006-2007년 일인당 GNP가 $3,346정도 되는 가난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잘 사는 나라에 비해 더 행복한 삶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고로 2006-2007년 대한민국의 GNP$24,600이고 호주의 GNP는$34,359. 물질로만 행복을 따진 다면 바누아투가 호주에 비해 10배 덜 행복한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바누아투의 사람들은 왜 행복감이 클까? 하고 자료를 찾아보니 다른 나라에 비해 범죄율이 현저히 낮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좀도둑이 가끔 있을 정도이고 흉악범죄가 없어서 밤거리를 아이들도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바누아투에는 배고픔이 없습니다. 동냥하거나 구걸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유는 먹고 싶은게 있으면 어린아이들 조차도 자신이 일을 해서 그것을 해결합니다. 전통적으로 남에게 손 내미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행복은 가지는 것 보다 주는데 있고, 비교하는 것 보다 함께 돕고 나누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이와 동일 합니다.

 

(행 20: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이 말씀을 한 단어로 바꾼다면 바로 ‘사랑’입니다. 누구보다도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행복할 것 같은 많은 인기 연애인들이 오히려 더 외로움과 불만족 가운데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행복은 받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는 데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고하는 사랑, 돕는 사랑, 주는 사랑 속에 우리는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2. 행복은 성취감에서 옵니다. – Happy is coming from achievements.

 

사람들은 무언가를 이루어 가는 도중에는 불안하고 힘들어 하지만 그것을 이루었을 때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루고자 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수록 성취감에서 오는 행복은 더 크게 느껴집니다. 평범한 일을 이루었을 때는 – ‘좋다’라는 느낌이 옵니다. 어려운 일을 이루었을 때는 – ‘웃음’이 나옵니다. 정말 힘든 일을 이루었을 때는 – ‘울음’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이 삶 가운데서 이러한 기쁨들을 누리며 살게 하셨습니다. 하루를 열심히 뭔가를 이루었을 때 저녁이 평안하고 일주일을 열심히 뭔가를 이루었을 때에 주일이 평안한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주일로 하여 일주일의 첫날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안식일을 지킬 때 그 안식일은 일주일의 첫날이 아니라 일곱째 날, 한 주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성도들이 열심히 일하고 한 주의 마지막을 안식하게 하셨습니다.

 

(출 35:2) 엿새 동안은 일하고 일곱째 날은 너희를 위한 거룩한 날이니 여호와께 엄숙한 안식일이라 누구든지 이 날에 일하는 자는 죽일지니

 

‘안식일(솨바트)’는 ‘휴식하다’는 말에서 유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창 2: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창 2: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안식일은 휴식하는 날이며 복된 날이며 거룩한 날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6일 동안 최선을 다해 일하여 주일은 휴식하는 날, 복된 날, 거룩한 날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안식일이 주일이 되어 날이 바뀐 것이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동일 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열심히 일하시는 가운데 성취감을 느끼시고(“좋았더라”) 안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닮게 창조되었으므로 당연히 성취감을 통하여 행복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태초에 일하시던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함께 해 나감으로써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3. 행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옵니다. – Happy is coming from a good relationship with God.

 

오늘 본문 말씀은 모세가 광야생활을 거의 끝낼 무렵, 모세의 인생이 거의 끝날 무렵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신 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을 본다면 그들을 누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보겠습니까? 애굽을 떠나 온지 40년이 다 되 가는데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에 아직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유한 땅도 나라도 없었습니다. 아직도 광야에서 떠돌아 다니고 있는 신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우시는 방패시고 칼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 자신들을 바라 볼 때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누가 봐도 사람이 보기에 행복한 삶을 사는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모세는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라 볼 때 행복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바라 볼 때 행복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 준 것과 동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도우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복 주신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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