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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아모스

암 9장 5-6절(내가 보니 ;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 박병은

by Preacher 2024.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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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9장 5-6

내가 보니 ;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박병은 목사 2014.06.08

덴버둘로스장로교회 http://whttp://www.denverdoulos.org/

 

여러분들은 부모님들이 지어주신 자기 이름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그 이름을 바꾸고 싶은 적은 없습니까? 성경에는 이름을 바꾸어 부르는 경우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아버지는 존귀하시다)을 아브라함(열국의 아비)으로(창 17:5), 야곱(속이는 자)을 이스라엘(하나님을 이긴 자)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시몬(하나님이 들으셨다)을 게바(베드로, 반석)로 바꾸어 주셨고, 세베대의 아들들인 요한과 야고보에게는 보아너게란 이름을 붙여 주셨습니다(막 3:17). 사울(묻다)도 자신의 이름을 바울(작은 자)로 이름을 바꾸어 불렀습니다. 모두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또한 상징적으로 바꾼 이름에 상징성을 더 했던 것을 봅니다. 이렇게 이름을 바꾸어 부를 때는 특별한 상황이 있으며 또한 그에 따른 상당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모스 선지자에게 7-9장에서 다섯 가지 환상을 보여 주시며 북조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을 경고하시며 선언하셨습니다. 7장에서 세 가지의 환상(메뚜기, 불, 다림줄)을 살펴보았고 지난 시간 8장에서 네 번째, 잘 익은 과일 광주리 환상을 살펴보았습니다.

 

1. 최후의 환상 : 심판 주 하나님

 

이제 마지막 5 번째 환상을 살펴보려 합니다.이 시간에 살펴 볼 아모스가 본 마지막 환상은 무엇일까요? 본문 1절에서 아모스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음을 봅니다.

 

* 암 9:1 내가 보니 ---

 

여기 1절의 기록 방식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이제까지 아모스가 본 환상을 기록할 때는 “주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라고 했습니다(7:1, 4, 7, 8:1). 즉 하나님께서 아모스에게 보여주신 것을 기록한 것이지요. 그런데 9장 마지막 환상은 “내가 보니!” 즉 주께서 보여주신 어떤 것이 아니라 아모스가 직접 보았음을 기록했습니다. 무엇을 보았을까요? 아모스가 주 여호와 하나님을 직접 본 것입니다. 그가 본 것은 주께서 단 곁에 서서 말씀하시는 모습입니다.

 

* 암 9:1 주께서 단 곁에 서서 이르시되

 

아모스 선지자가 본 것은 이제까지 그가 본 여러 가지 상징적 환상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환상입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님의 직접적 현현(顯現, manifestation)하심을 목격한 것입니다. 앞의 4 가지 환상들이 심판을 상징하는 것들이었다면, 이 환상은 직접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자신이 심판 주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습니까? 그저 사랑의 하나님으로만 알고 있습니까? 선지서들은 한결 같이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심판하시는 공의의 심판 주이심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신약에서도 우리 주님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은 사랑의 주님으로 알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는 심판주로 재림하실 것을 계시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 요계 19:15-16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2. 심판의 장소(1b)

 

그럼, 여호와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장소는 어디일까요? 다시 1 절을 보면 이곳은 바로 “단 곁”이었습니다.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요?

 

1 차적으로는 북조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여로보함 1 세가 세운 벧엘과 단의 제단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보면, 이 단은 예루살렘을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7절 이하에서 보듯이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가나안에 정착시켜 세우신 나라 전체 즉 전 이스라엘을 의미하고 또한 11절의 “다윗의 무너진 천막” 이란 표현으로 볼 때, 이 단은 통일 이스라엘의 수도에 있는 단, 즉 국가의 정통성이 있는 예루살렘의 단을 가리킨다고 해석하게 됩니다(J. Calvin, Hengstenburg).

 

3. 심판의 내용(1c-4)

 

여호와 하나님께서 무엇을 어떻게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까? 단 곁에 서서 심판을 선포하시는 내용을 봅니다.

 

* 암 9:1b ---기둥머리를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며 그것으로 부숴져서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라. 내가 그 남은 자를 칼로 살육하리니, 그 중에서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며 그 중에서 하나도 피하지 못하리라.

 

1) 속죄소를 파괴하심

 

여기서 “기둥머리”란 단에 세운 기둥의 꼭대기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기둥의 기초가 흔들리게 하여 단이 무너지게 하겠다는 무서운 심판을 말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70인 경에서는 이 기둥머리를 “속죄소(Mercy Seat)”로 번역했다는 점입니다. 만약 이 번역을 택해서 생각해 본다면, 놀라운 메시지가 숨겨져 있음을 발견합니다.

 

* 레 25:21-22 속죄소를 궤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이 속죄소가 무엇입니까? 속죄소란 언약궤, 증거궤를 의미합니다. 이 언약궤는 언약의 두 돌비 즉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을 담아 둔 시은소를 의미합니다. 이곳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만나주시고 말씀하시며 교제하셨던 곳입니다. 이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어긴 상대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언약의 partner 들을 하나도 남김이 없이 철저하게 심판하시고 또 그들과 만나셨던 그 장소까지 완전히 파괴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무서운 심판이요, 철저한 심판입니다.

 

2) 철저하게 심판하심

 

이어 하나님께서는 심판이 얼마나 철저하게 시행될 것을 자세히 설명하십니다.

 

* 암 9:2-4 저희가 파고 음부로 들어갈지라도 내 손이 거기서 취하여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취하여 내리울 것이며, 갈멜산 꼭대기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찾아낼 것이요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뱀을 명하여 물게 할 것이요, 그 원수 앞에 사로잡혀 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칼을 명하여 살륙하게 할 것이라. 내가 저희에게 주목하여 화를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이 음부, 하늘, 산꼭대기, 바다 밑에 그 어느 곳에 가서 숨어도, 항복하여 포로로 잡혀 가도, 끝까지 추적하여 찾아내어 철저하게 응징하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 하나님 앞에 숨을 자가 있을까요? 엄위로우신 하나님 안전(案前)에 피할 곳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을 들어봅시다.

 

* 시 139:7-10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3) 능력으로 심판하심

 

이렇게 진노하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 암 9:5-6a 주 만군의 여호와는 땅을 만져 녹게 하사 무릇 거기 거한 자로 애통하게 하시며, 그 온 땅으로 하수의 넘침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 같이 낮아지게 하시는 자요, 그 전을 하늘에 세우시며, 그 궁창의 기초를 땅에 두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

 

이 구절의 묘사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는 것을 선언하십니다. 온 땅에 충만하신 하나님의 통치권을 발하셔서 무섭게, 철저하게, 완벽하게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랑하셨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이 이해가 되십니까? 사실 나와 상관이 없는 자라면 못 본 체하고, 법대로 시행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이후로 이스라엘에 대하여 엄청난 애정을 쏟아 극진히 사랑했기 때문에 언약을 지키지 않은 자기 백성을 이토록 심판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4. 심판주의 명칭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6절 마지막 구절입니다.

 

* 암 9:6b ---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이제까지 하나님의 이름, “야웨(Jehovah)”를 사용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아모스는 여호와란 이름을 바꾸어 “아도나이(Adonai, Almighty)” 즉 언약의 하나님 칭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앞에서 말씀하신 대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심판하시는 분은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주관자시고, 언약의 당사자이신 바로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또한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성품을 공히 지니시고 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며 통치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준수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하여 오랫동안 인내하시며 기다리셨습니다. 그래도 언약을 준수하지 않고 거역하는 백성들을 마침내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이렇게 완벽한 사랑과 공의로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어 죄악 가운데 반역의 삶을 살고 있는 죄인인 우리를 향하여 무서운 진노를 퍼 부으시지 않으시고 다른 방식으로 구원을 시행하셨습니다.

 

* 요일 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공의로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악을 행하는 자들에 대하여 그 대상이 누구든, 어떤 집단이던지 하나님의 선하신 공의에 따라 심판하십니다. 이것이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의 방식입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연(偶然)이 없고 요행(僥倖)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하나님의 통치법에는 설마라는 것은 없습니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을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고 계시지 않습니까?

 

북조 이스라엘에게 퍼 부으시는 하나님의 진노가 바로 가장 좋은 예입니다. 설명과 설득 그리고 경고와 경고! 그래도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을 때 하나님의 공의의 통치력을 발휘되는 것입니다. 바로 언약을 맺은 그 장소에 놓아둔 언약궤를 모신 제단까지도 파괴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약의 하나님은 마침내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여 직접 보이시며 선언하셨습니다. * 암 9:8a 보라 주 여호와 내가 범죄한 나라에 주목하여 지면에서 멸하리라.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 경고의 말씀대로, 북조 이스라엘은 722 BC 앗수르 왕 살만 에셀에 의하여 철저하게 유린되고 파괴되어 뿔뿔이 흩어져 완전히 소멸해 버렸습니다.

 

성도여러분, 이 땅에 살고 있는 오늘날 우리 모두들 그리고 사회와 국가는 자신들의 권력과 부귀와 영화가 마치 자신들을 구원해 줄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설마 나에게 화가 미치겠느냐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양심을 속입니다. 정말로,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남의 생명까지도 무시하고 이용하고 철저하게 외면하는 무서운 시대에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신앙을 가졌다고 하는 자들이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겁 없이 신앙양심을 속이고 자신도 모르는 바를 함부로 전하는 것을 봅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사도 베드로의 권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 벧후 3:10-13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진리를 믿는 성도 여러분, 어찌하렵니까? 이 세상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어찌해야 할지를 깊이 생각하며, 장차 임하실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신실하고 경건한 삶을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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