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4장 1-10
주님의 영광이 떠나면?
이삼규 목사 20171022
애 4:1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순금이 변질하였으며 성소의 돌들이 거리 어귀마다 쏟아졌는고
애 4:2 순금에 비할 만큼 보배로운 시온의 아들들이 어찌 그리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는고
애 4:3 들개들도 젖을 주어 그들의 새끼를 먹이나 딸 내 백성은 잔인하여 마치 광야의 타조 같도다
애 4:4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 아이들이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
애 4:5 맛있는 음식을 먹던 자들이 외롭게 거리 거리에 있으며 이전에는 붉은 옷을 입고 자라난 자들이 이제는 거름더미를 안았도다
애 4:6 전에 소돔이 사람의 손을 대지 아니하였는데도 순식간에 무너지더니 이제는 딸 내 백성의 죄가 소돔의 죄악보다 무겁도다
애 4:7 전에는 존귀한 자들의 몸이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희며 산호들보다 붉어 그들의 윤택함이 갈아서 빛낸 청옥 같더니
애 4:8 이제는 그들의 얼굴이 숯보다 검고 그들의 가죽이 뼈들에 붙어 막대기 같이 말랐으니 어느 거리에서든지 알아볼 사람이 없도다
애 4:9 칼에 죽은 자들이 주려 죽은 자들보다 나음은 토지 소산이 끊어지므로 그들은 찔림 받은 자들처럼 점점 쇠약하여 감이로다
애 4:10 딸 내 백성이 멸망할 때에 자비로운 부녀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도다
(동영상-우울증을 극복한 바이올리니스트-박지혜)
하이든이 작곡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연주회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렸습니다. 그의 나이 76세 때입니다. 너무 늙고 병들어서 하반신을 못 쓰게 된 그는 휠체어에 타고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공연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사회자가 작곡자 하이든을 소개하자 박수가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되었습니다. 영광이 몽땅 자기에게 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이든이 외쳤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이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그래도 박수가 그치질 않으니까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습니다. 결국 쓰러졌습니다. 청중도 심각성을 알고 박수를 멈췄습니다. 병원으로 실려 가면서도 "나는 아니다(I am not)라고 말합니다. 그는 1년 동안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77세로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나는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 이 영광을!" 이라고 말하고 운명합니다. 하이든에게는 하나님이 자기의 전부였습니다. 하이든은 음악을 통해 돌아오는 영광을 전부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사사시대 엘리 제사장이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가 98세가 되어 눈이 어두울 때까지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이 있었고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법궤를 앞세우고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을 쳤습니다. 이스라엘이 패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앞세우고 나갔지만 하나님의 법궤는 빼앗기고 두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했으며 이스라엘의 보병도 무려 3만 명이나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엘리는 이 참담한 소식을 전해 듣고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98세의 노령이었고 더욱이 비대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충격적인 소식에 그만 넘어졌고 목이 부러져 죽게 된 것입니다. 그때 그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가 해산하게 되었습니다. 난산하게 되었는데 곁에 있던 자들이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비느하스의 아내는 대답하지도 아니하며 관념하지도 아니하고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삼상 4:22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면 이러한 충격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이런 일이 한 번으로 끝났을까요?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예레미야 선지자가 활동할 당시 다시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눈물로 탄식하며 애가를 지은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이 떠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슬픈 일이 벌어집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멸망당한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면서 탄식합니다.
애 4:1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순금이 변질하였으며 성소의 돌들이 거리 어귀마다 쏟아졌는고
‘슬프다 어찌 그리’는 히브리어에 ‘에크’라고 합니다. 영어의 뜻은 ‘how’라고 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는 반문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선지자가 그토록 탄식합니까?
첫 번째 탄식은 무엇입니까? 금과 순금의 변질, 그리고 거리에 쏟아진 성소의 돌들로 인한 것입니다. 금과 순금은 원래 전혀 변질되지 않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금이 빛을 잃고 순금이 변질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더욱이 성소의 돌들이 거리 어귀마다 쏟아진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전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슬픔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은 목숨보다 소중했고 그들의 최후 보루였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탄식은 무엇입니까?
애 4:2 순금에 비할 만큼 보배로운 시온의 아들들이 어찌 그리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는고
1절에서 순금이 변질되었다고 탄식하였는데, 2절에서 그 순금을 무엇에 비유하고 있습니까? 시온의 아들들로 비유합니다. 순금에 비할 만큼 보배로운 시온의 아들들이 어찌 그리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단 말입니까? 그러면 왜 시온의 아들들이 보배롭다고 했을까요?
사 43: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순금처럼 보배롭게 여긴 것은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무엇처럼 되었습니까? 가치 없는 질항아리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탄식은 무엇입니까?
애 4:3 들개들도 젖을 주어 그들의 새끼를 먹이나 딸 내 백성은 잔인하여 마치 광야의 타조 같도다
애 4:4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 아이들이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
성읍의 멸망으로 인한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줍니다. 어린아이가 당하는 고통을 외면하는 부모들이 광야의 타조에 비유합니다. 타조는 본능적인 모성애마저 없는 동물로, 이스라엘의 잔인한 부모들을 상징합니다. 성읍이 멸망당해 기아 상태에 빠진 어린아이들이 간절히 떡을 구해도 예루살렘 백성들은 타조와 같이 잔인하게 그 아이들의 간청을 외면합니다. 성읍의 멸망으로 인한 최종 피해자는 바로 어린아이들입니다. 지금도 시리아나 전쟁이 일어나는 지역을 보면 어린 아이들의 가장 불쌍합니다. 젖먹이는 목이 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을 정도입니다. 이는 심각한 기갈과 기근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욥 29:10 지도자들은 말소리를 낮추었으니 그들의 혀가 입천장에 붙었느니라
시 137:6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네 번째 탄식이 무엇입니까?
애 4:5 맛있는 음식을 먹던 자들이 외롭게 거리 거리에 있으며 이전에는 붉은 옷을 입고 자라난 자들이 이제는 거름더미를 안았도다
맛있는 음식도 찾을 수 없고 붉은 옷도 입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린 교회는 더 이상 그분의 돌봄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비참한 현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에서 떠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계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주님이 떠난 버린 교회는 생명의 원천인 그분으로부터 은혜와 생명력을 전혀 공급받을 수 없게 됩니다. 그 결과 교회는 뿌리가 뽑힌 나무처럼 점점 말라비틀어지게 되고 밖에 버려져 불에 던져지게 됩니다.
요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가장 큰 비극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이가봇’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은혜와 생명력을 공급받고 있습니까? 그 은혜와 생명력이 있기에 의에 주리고 목말랐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풍성함을 누리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서로 연합하고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 가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영적 기갈로 고통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배가 형식적으로 변하고 생명력 없이 메마르고 감동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 버린 교회는 참혹한 현실에 처하게 됩니다. 주님의 영광이 떠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선지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왜 이와 같이 비참한 처지가 되었는가를 설명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의 죄악이 소돔의 죄악보다 더 무거웠기 때문입니다.
애 4:6 전에 소돔이 사람의 손을 대지 아니하였는데도 순식간에 무너지더니 이제는 딸 내 백성의 죄가 소돔의 죄악보다 무겁도다
소돔이 어떻게 멸망당했습니까? 전쟁으로 멸망당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유황과 불을 내리셔서 소돔성을 잿더미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창 19:24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창 19:25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그렇다면 소돔보다 더 큰 죄악을 범한 시온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소돔이 당한 것보다 더 큰 형벌이 시온을 기다리게 된 것입니다.
겔 16:48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우 소돔 곧 그와 그의 딸들은 너와 네 딸들의 행위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겔 16:49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 주지 아니하며
겔 16:50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
사 1: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사 1: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소돔과 고모라가 사람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졌으니, 소돔보다 더 큰 죄를 지은 시온은 마땅히 더 큰 형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시온에 주어진 형벌은 소돔에게 주어진 형벌처럼 단번에 끝나지 않고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는, 더 참혹하고 무거운 형벌이었습니다.
애 4:7 전에는 존귀한 자들의 몸이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희며 산호들보다 붉어 그들의 윤택함이 갈아서 빛낸 청옥 같더니
애 4:8 이제는 그들의 얼굴이 숯보다 검고 그들의 가죽이 뼈들에 붙어 막대기 같이 말랐으니 어느 거리에서든지 알아볼 사람이 없도다
기아로 인한 치명적인 결과를 서술하기 위해서 7절에서는 ‘존귀한 자의 이전 상태(전에는)를, 8절에서는 현재 상태(이제는)를 상세하게 묘사합니다. 이 두 구절에서는 시온의 아들들의 상태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과거에 그들의 모습은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희며 산호들보다 붉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산호에 비유한 이유는 윤택해서 광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랬던 존귀한 자가 이제 수치를 당하게 되었는데, 그 수치는 외모로 표현됩니다. 숯 보다 검고, 가죽이 뼈들에 붙어 막대기 같이 말라서 누구도 알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멸망 직후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멸망의 고통을 겪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자인 이스라엘의 변화된 운명은 희고 붉은 모습에서 검고 마른 모습으로 바뀝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교회에서 주님의 영광이 떠나는 이유는 바로 교회의 부패와 타락 때문입니다. 의와 불법이 함께 하지 못하고, 빛과 어둠이 조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거룩하신 주님은 죄로 물들어 부패한 교회를 성전 삼으셔서 임재하실 수 없습니다.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이 떠난 교회는 그 영광과 존귀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맛을 잃어버린 소금(돌로 된 소금)처럼 밖에 버리어 밟히는 수치와 모욕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마5:13). 주님의 영광이 떠난 후에는 어떤 참혹함이 기다릴까요?
애 4:9 칼에 죽은 자들이 주려 죽은 자들보다 나음은 토지소산이 끊어지므로 그들은 찔림 받은 자들처럼 점점 쇠약하여 감이로다
애 4:10 딸 내 백성이 멸망할 때에 자비로운 부녀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도다
주님의 영광과 존귀가 떠난 교회에 남아 있는 자들은 차라리 죽는 것보다 더 참혹한 현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루살렘 패망 때 죽음을 면한 자들은 차라리 대적에게 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이 나았겠다 싶을 정도로 비참한 현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예레미야가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한탄하며 자신의 출생까지 저주했던 그 심정을 반드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렘 20:18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 하니라
주님의 영광이 떠난 교회는 은혜와 생명의 역사가 끊어졌기에 사랑이 아닌, 미움과 다툼으로 서로 물고 먹으면 멸망의 길로 치닫는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갈 5: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이러한 모습은 마치 소돔과 고모라를 떠올리게 합니다. 주님의 영광이 떠난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하늘 문이 닫혔기 때문에 더 이상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릴 수 없고, 그 결과 분쟁과 다툼이 일고 원수 맺고 당을 지으며 서로 물고 먹기 위해 악을 쓰는 일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영광이 떠나 버린 교회 안에서는 심판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예레미야처럼 탄식하며 때를 따라 돕는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간절히 부르짖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희생적 사랑으로 인해 성도들과 하나 되었음을 믿습니까? 성령님이 하나 되게 하신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겸손과 오래 참음으로 용납하며 품어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서로 정죄하고 미워하며 원수 맺고 당을 지으며 서로 물고 먹기 위해 악을 쓰며 멸망의 길로 함께 가고 있습니까? 주님의 영광과 존귀가 떠난 곳에서는 천국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죄에서 떠나지 못하면 반드시 경험하게 될, 참으로 가슴 아픈 모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이와 같이 기미가 공동체 안에서 조금이라도 나타나고 있다면 성령님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계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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