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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예레미야애가

애 3장 19-33절(하나님의 본심) - 문기태

by Preacher 2023.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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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3장 19-33

하나님의 본심

문기태 목사 2018.03.25

창원침례교회 http://whttp://www.changwon.or.kr/

 

19)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21)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25)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27)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28)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29)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30)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31)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

32)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예레미야애가 3장 19-33절)

 

갓난 아기가 태어나면 모든 관심과 사랑이 온통 아기에게 집중이 됩니다. 그러면 이제까지 사랑을 독차지했던 언니는 샘이 납니다. 그래서 은근히 시기하고 해 꼬지를 합니다. 또는 관심을 끌려고 아기처럼 행동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부모는 "다 큰 녀석이 왜 그러냐"고 언니를 야단칩니다. 큰 아이는 '동생 때문에 엄마, 아빠가 나를 미워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마음에 상처를 입습니다. 그런 때는 부모가 언니를 향한 사랑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붙잡고 이해를 시켜야 합니다. "이제 갓 태어난 동생은 힘도 없고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지 그래서 우리가 모두 많이 도와줘야 해. 너도 이제 언니가 되었으니까 도와줄 수 있지"하고 말입니다. 부모의 본심을 어린 자녀가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몹시 힘들게 됩니다.

 

예수님의 주위에는 세리와 죄인들과 창녀들이 많이 몰려왔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서 상처받고 불행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함께 어울려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본심을 오해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이 못마땅하여 볼 맨 소리를 하였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한 아버지가 두 아들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둘째 아들이 갑자기 자기 몫으로 돌아올 유산을 미리 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결국 둘째 아들의 요구대로 재산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재산을 정리하여 머나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면 재산을 모두 탕진하였습니다. 반면 큰 아들은 동생과는 달리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집 안 밖에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재산을 미리 달라는 요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시키는 일에 거부하지 않고 묵묵히 하였습니다. 아버지 곁을 떠나 독립하겠다고 한 적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둘째 아들이 알거지가 되어 죽을 고생을 하다가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재산을 어떻게 했느냐 그 꼴이 뭐냐 책망하시지도 않고 호통을 치시지도 않고 오히려 반갑게 맞아 줍니다. 종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라.' '가락지를 손에 끼워주어라.' '발에 새 신을 신겨주어라.' '살진 송아지를 잡고 큰 잔치를 벌리자. 우리 모두 함께 즐거워하자.' 아주 신이 났습니다.

 

그런 아버지에게 큰 아들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불만이 가득 차서 집에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나와서 들어가자고 권해도 요지부동입니다. 볼 맨 소리로 "내가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온 맘을 다해 섬겼어도 내게는 염소새끼라도 주며 친구들을 불러 잔치를 열어주신 일이 없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리며 재산을 다 탕진한 둘째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다니 너무하십니다. 왜 동생에게만 그렇게 잘 대해 주시죠 나는 아버지에게 아무 것도 아닌가요 " 하고 원망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본심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본심을 모르면 힘들어집니다. 하나님을 오해하고 엉뚱하게 불평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시기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자신이 얼마나 사랑 받고 있는지도 모르고 불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심을 알면 고난이 와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본심을 알면 무슨 일을 만나도 불행해지지 않고 행복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조국이 신흥강국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하는 암울에 시대에 활동하던 선지자입니다. 유대나라는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이며 유대 백성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선민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유대나라가 멸망하였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비참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살아남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적들은 도성을 불태우고 식량과 보물을 약탈했습니다. 여인들은 보이는 대로 끌려가 능욕을 당했습니다. 예루살렘성전도 불타고 무너졌습니다. 백성들이 살던 집도 마을도 모두 불타버리고 경작하던 밭과 과수원은 다 황무지로 변했습니다. 남아있는 이들은 노인과 어린아이들 병든 자들뿐이고 힘없는 그들이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수축할 형편이 되지 못하고 누가 쳐들어와도 방어할 여력도 없었습니다. 황무지로 변해버린 땅에서 먹을 것조차 수확할 힘도 없어서 모두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땅에서 남아있는 얼마 안 되는 이들마저 서로 하나되지 못하고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겪고 있는 고난은 쓴 쑥을 씹는 것 같고 독한 쓸개즙을 마시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나오느니 한숨이요, 들리느니 탄식소리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셨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이 나라와 이 민족은 이렇게 끝나고 마는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살았다고 이렇게까지 엄청난 고통을 겪게 하신단 말인가 하나님의 이름도 모르는 저 무지막지한 이방인들에게 말도 안 되는 수치를 당하도록 하신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셨던 어마어마한 영광은 물거품으로 변한 것일까' 사방에서 모두가 괴로운 한숨을 지으며 하나님을 원망하는 소리, 하나님을 부정하는 소리만 들려왔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끈을 끝까지 놓지 않았습니다. 조국과 동족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들고 씨름하였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실낱 같은 희망의 끈을 붙잡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조국과 하나님의 약속을 버리고 스스로 살길을 찾아 가려는 이들에게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기다리도록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비록 적들에게 짓밟히고, 수치를 당하고, 인권이 유린당하며 억울한 일들이 수없이 반복되어도 주님께서 언제까지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신다. 우리를 괴롭히거나 근심하게 하는 것은 그분의 본심이 아니다. 우리가 억울하게 당하는 이러한 모든 일들을 주님께 못 보실 줄 아느냐 우리와 조상들의 모든 죄를 주님께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가자. 하나님께 우리의 상황을 아뢰고 더욱 마음을 다해 기도하자." 겉으로 드러난 상황만 보고 내 중심으로 하나님을 판단하지 말고 모든 상황 너머에서 우리의 고통을 바라보며 안타까워 하시는 하나님의 본심을 정확하게 이해하자는 것입니다.

 

오늘도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본심을 읽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본심을 읽지 못하면 헛다리를 짚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본심을 모르면 이간질하는 사단에게 자주 속게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본심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본심을 무엇일까요 우리가 기대한 것과 전혀 다른 고난과 역경을 만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본심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본심은 인자와 긍휼입니다.(22)

 

우리가 살다 보면 고난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질병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실패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관계가 깨어지기도 합니다.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왜 내게 일이 일어나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유대인들을 괴롭히는 것은 전쟁과 포로와 기근과 약탈과 질병이 한꺼번에 몰려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수많은 고통을 겪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하나님을 향한 의심이 밀려와 견딜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도 의심스럽고 하나님의 사랑도 의심스러웠습니다. '조상들과 선지자들을 통해 수없이 들어 내가 알고 있던 사랑이 충만하신 하나님은 어디 가고 우리를 이처럼 잔인하게 짓밟히도록 외면하며 괴롭게 하시는 하나님이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도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이 무의미하게 여겨졌습니다. 마음이 차갑게 식어지기만 하였습니다. 여러분 중에 고난을 만나 오래 씨름하며 마음이 식어지는 분은 없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인자가 한없으시고 긍휼이 무궁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이 우리의 삶 속에 가득하기에 우리가 이만큼 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천지를 창조하셔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무궁하신 명확한 증거입니다. 또한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게 하심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이 무궁하신 분명한 증거입니다. 비록 우리의 죄와 악을 징계하시려고 고통 속에 잠시 지나게도 하시지만 인자와 긍휼이 끝이 없으신 하나님의 본심은 조금도 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만나는 어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신 하나님의 본심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22절에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라고 말합니다.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이 무궁하신 하나님의 본심으로 인해 우리가 멸망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잘못을 저지른 자녀를 호되게 징계하는 부모의 마음에 자녀를 향한 사랑과 자비가 가득하기에 자녀가 징계받다가 죽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부모의 징계로 인해 장애를 입지도 않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징계했다고 해서 그 자녀를 향한 사랑이 사라지고 앞으로 자녀를 괴롭히는 부모로 돌변하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사랑에 대한 확신입니다. 확신만 있으면 징계는 아주 잠깐만 괴롭고 곧 다시 사랑의 관계는 회복되고 서로 웃고 즐거워하는 관계가 지속됩니다.

 

전주에 대흥교회를 개척한 김광혁 목사님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한 후 열심히 사역해도 도무지 부흥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사모님과 심방을 하고 돌아와 보니 어린 아들이 병에 걸려 심하게 열이 나고 죽어가는 것입니다. 당시 병원도 문을 닫고 병원에 갈 돈도 없습니다. 사모님은 밤새 아들 곁에서 간호를 하고 다급해진 목사님은 교회에 가서 혼자 밤을 세우며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한 밤중에 이르러 "너는 죽어가는 네 아들 때문에 마음이 그렇게도 아프냐 죄로 인해 죽어 가는 수 많은 영혼으로 인해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아느냐" 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정신 없이 회개기도를 드리다 보니 어느 새 날이 밝았고 집에 돌아와보니 아들의 불덩이 같았던 몸에서 열이 내리고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깨끗이 회복된 것입니다. 그 후로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하며 불신가운데 죽어가는 영혼을 진심으로 불쌍히 여기며 안타까움으로 기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목회를 하였는데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교회가 크게 부흥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사람들을 미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죄를 짓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고난 당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외면하는 마음이 아니라 회개하게 하고 다시 회복시키시는 자비하심으로 가득한 마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본심을 명확하게 알고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에 자신을 내어 맡김으로 고난을 만나도 잘 견디고 통과하여 정금처럼 빛나는 믿음을 갖게 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본심은 성실하심입니다.(23)

 

사람들도 때로는 긍휼을 베풉니다. 사람들도 때로 자비를 베풉니다. 사람들도 때때로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합니다. 그러면 사람들과 하나님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인자와 긍휼은 오래 가기 어렵습니다. 아주 조금 베풀다가 금방 밑바닥을 드러냅니다. 쉽게 지쳐버리고 오래 가지 못합니다. 또 '내가 이렇게 베풀었는데 왜 내게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냐' 하고 사랑이 원망으로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하나님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루 이틀 긍휼을 베풀다가 흐지부지 하지 않으시고 날마다 조금도 지치지 않고 끝없이 성실하게 사랑과 긍휼을 베푸십니다. 한 두 번 복을 주시다가 괜히 복 주었다고 다시 복을 거두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기뻐하셔서 큰 은혜를 입혀주시고 사랑하시다가 사랑하는 마음이 식어서 외면하시고 은혜를 거두시는 하나님이 절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성실하심이 몹시 크신 분이기에 우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고 일관되게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변치 않고 기뻐하시며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가장 좋은 것을 주시려고 준비하시고 우리를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오늘도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예배와 우리의 헌신에 결코 싫증 내는 법이 없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신실하심과 성실하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실하지 못합니다. 어느 날 큰 은혜를 체험하고 눈물 콧물 흘리며 회개하고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합니다. 믿음으로 충만하여져서 열심히 기도하고 뜨겁게 찬양하며 예배를 잘 드립니다. 중요한 사역에 헌신하여 열심으로 봉사합니다. 전도도 잘 하고 헌신된 모습을 보입니다. 헌금도 열심히 하고 선교도 열심히 하고 이웃을 돌아보는 일에도 열심입니다. 그런데 평생을 일관되게 헌신하는 분은 아주 드뭅니다. 그렇게 뜨겁던 신앙이 얼마 가지 않아 식어 버립니다. 기도의 열정도 식고, 전도의 열정도 식고 예배도 시들해지고 헌신도 시들해집니다. 그러니 하나님도 자신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처럼 성실하지 못할 거라고 느낍니다. 하나님이 자신처럼 신실하지 못할 거라고 여깁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식었기에 내게 고난이 찾아온 것이 아닌가 의심합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여 내게 복을 주시던 하나님이 이제는 복을 거두시고 화를 내리시는 것을 오해합니다. 그렇게 의심하고 오해하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기분 따라 상황 따라 절대 변하지 않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끝까지 믿을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가 범죄하여 징계하실 때 조차도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은 조금도 약해지지 아니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만나 괴로움 속에 있다 하더라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그대로입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하심은 무궁합니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의 긍휼은 끝이 없음을 굳게 믿고 희망을 버리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33절에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하신 말씀을 굳게 붙잡고 흔들리 말기를 축복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본심은 심판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본심은 징계가 아니라 긍휼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본심은 괴롭힘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본심을 믿고 겸손히 하나님께 돌아갈 때 희망이 있습니다. 고난 중에도 우리가 하나님의 본심을 믿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돌이킬 때 회복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따뜻하신 품을 맛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과 용서를 풍성하게 체험하게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본심을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위기를 만나도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구원하여 주시기를 참고 기다려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근심된 일을 만나도 예레미야처럼 하나님께로 돌아가려고 온 마음과 힘을 다하여 부르짖어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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