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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오바댜

옵 1장 1-21절(오바댜의 묵시라) - 양의섭

by Preacher 2023.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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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1장 1-21

오바댜의 묵시라

양의섭 목사 2011.06.28.

왕십리중앙교회 http://www.wangjoong.org/

 

오바댜 1:1-21

 

[옵] 1:1 오바댜의 묵시라 주 여호와께서 에돔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소식을 들었나니 곧 사자가 나라들 가운데에 보내심을 받고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날지어다 우리가 일어나서 그와 싸우자 하는 것이니라

[옵] 1:2 보라 내가 너를 나라들 가운데에 매우 작게 하였으므로 네가 크게 멸시를 받느니라

[옵] 1:3 너의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바위 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옵] 1:4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옵] 1:5 혹시 도둑이 네게 이르렀으며 강도가 밤중에 네게 이르렀을지라도 만족할 만큼 훔치면 그치지 아니하였겠느냐 혹시 포도를 따는 자가 네게 이르렀을지라도 그것을 얼마쯤 남기지 아니하였겠느냐 네가 어찌 그리 망하였는고

[옵] 1:6 에서가 어찌 그리 수탈되었으며 그 감춘 보물이 어찌 그리 빼앗겼는고

[옵] 1:7 너와 약조한 모든 자들이 다 너를 쫓아 변경에 이르게 하며 너와 화목하던 자들이 너를 속여 이기며 네 먹을 것을 먹는 자들이 네 아래에 함정을 파니 네 마음에 지각이 없음이로다

[옵] 1:8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에 내가 에돔에서 지혜 있는 자를 멸하며 에서의 산에서 지각 있는 자를 멸하지 아니하겠느냐

[옵] 1:9 드만아 네 용사들이 놀랄 것이라 이로 말미암아 에서의 산에 있는 사람은 다 죽임을 당하여 멸절되리라

[옵] 1:10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옵] 1:11 네가 멀리 섰던 날 곧 이방인이 그의 재물을 빼앗아 가며 외국인이 그의 성문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얻기 위하여 제비 뽑던 날에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느니라

[옵] 1:12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며

[옵] 1:13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

[옵] 1:14 네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 고난의 날에 그 남은 자를 원수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니라

[옵] 1:15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 네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네가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옵] 1:16 너희가 내 성산에서 마신 것 같이 만국인이 항상 마시리니 곧 마시고 삼켜서 본래 없던 것 같이 되리라 여호와께 속할 나라

[옵] 1:17 오직 시온 산에서 피할 자가 있으리니 그 산이 거룩할 것이요 야곱 족속은 자기 기업을 누릴 것이며

[옵] 1:18 야곱 족속은 불이 될 것이며 요셉 족속은 불꽃이 될 것이요 에서 족속은 지푸라기가 될 것이라 그들이 그들 위에 붙어서 그들을 불사를 것인즉 에서 족속에 남은 자가 없으리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

[옵] 1:19 그들이 네겝과 에서의 산과 평지와 블레셋을 얻을 것이요 또 그들이 에브라임의 들과 사마리아의 들을 얻을 것이며 베냐민은 길르앗을 얻을 것이며

[옵] 1:20 사로잡혔던 이스라엘의 많은 자손은 가나안 사람에게 속한 이 땅을 사르밧까지 얻을 것이며 예루살렘에서 사로잡혔던 자들 곧 스바랏에 있는 자들은 네겝의 성읍들을 얻을 것이니라

[옵] 1:21 구원 받은 자들이 시온 산에 올라와서 에서의 산을 심판하리니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

 

1.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면서도 성경은 잘 보지 않고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성도가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 예배 시 설교 본문이 오바댜서였습니다. 창세기나 마태복음을 본문으로 하면 찾기 쉬울 텐데 하필이면 오바댜서가 본문이었습니다.

 

오바댜서가 어디에 숨었는지 알 수 없었던 이 성도는 할 수 없이 창세기부터 찾기 시작했습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아무리 찾아봐도 오바댜서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하, 뒤에 있나 보다”싶어 이제는 뒤에서부터 오바댜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요한계시록, 유다서, 요한삼서, 요한이서, 요한일서, 이렇게 거꾸로 찾아보았는데, ‘요’자가 나오기에 ‘오’자도 곧 나오겠지 했는데 끝내 나오질 않았습니다.

 

“아, 그러면 이건 중간에 있겠구나”싶어 성경책의 중간을 쫙 펼쳤더니 시편, 시편부터 시작해서, 잠언, 전도서, 아가서까지 찾아봐도 여전히 오바댜서가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아하, 목차를 보면 알겠다” 싶어 목차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 ‘요’ ‘욘’ ‘욜’ ‘옵’ 은 있는데 오바댜서의 약자인 ‘오’는 목차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인쇄 실수인 것 같아 직접 ‘요’, ‘욘’, ‘욜’부터 시작하여 일일이 페이지를 찾아보다가 ‘옵’의 페이지를 펼쳤더니 드디어 거기에 오바댜서가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이젠 몇 장 몇 절인가 싶어 주보를 펼쳐 보는데, 목사님께서 손을 들더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 이 사람은 그래도 약과다. 심방을 가서 목사님이 오늘 본문은 ‘오바댜입니다.’했더니 초신자가 ‘목사님, 오바댜가 어디 있습니까?’ 묻습니다. 그러자 같이 갔던 집사님이 아는 체 합니다. “그것도 몰라요, 캄보디아 옆에 있잖아요?”

 

2. 오늘 본문은 그 유명한 오바댜서입니다. 구약 예언서 중에 가장 짧은 책입니다. 특이한 것은 대개의 예언서들은 시작할 때 ‘누구의 아들 누구’라고 저자를 소개하는데, 오바댜는 그냥 ‘오바댜의 묵시라’하고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오바댜가 누굽니까?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예언 내용은 분명합니다. 에돔 족을 향한 심판의 선언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한 것입니다. 에돔 족은 누굽니까? 에돔은 에서의 후예로,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 야곱과 에서의 후예들입니다. 이삭의 큰 아들 에서의 후예가 에돔이고, 작은 아들 야곱의 후예가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니까 에돔은 이스라엘과 형제입니다. 그런데 이 오바댜를 읽다보니 좀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오바댜서가 우리 민족에게 뭔가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성령께서 말씀하고 있는 듯합니다.

 

에돔이 왜 망해야 합니까? “주 여호와께서 에돔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소식을 들었나니 곧 사자가 나라들 가운데에 보내심을 받고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날지어다 우리가 일어나서 그와 싸우자 하는 것이니라. 보라 내가 너를 나라들 가운데에 매우 작게 하였으므로 네가 크게 멸시를 받느니라.” 에돔의 주변 국가들이 다 일어나 에돔을 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에돔은 망해야 합니까? 왜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야 했습니까?

 

3절, “너의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어떻게 속였습니까? “바위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들의 마음이 교만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자기들은 천연의 요새에 살고 있기에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 했습니다. ‘바위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는 것으로 보아 이들은 매우 높고도 안전한 요새에 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디일까요?

 

구약 성경에는 이곳을 세일 산이라고 부른다. 사해 남방의 산악지대로, 서쪽은 첩첩 험한 산들이고, 동쪽은 아라비아 사막으로, 성지 순례 가 본 사람들은 기억할 것입니다. 요르단의 페트라입니다. 난공불락의 천연의 요새입니다. ‘페트라’는 ‘반석’이란 뜻으로, 산악지대입니다.

 

지난 2008년 성지순례 때 방문한 적이 있는데, 거친 광야와 산악지대를 거쳐 좁고 거대한 바위틈을 한참 지나자 멋진 칼라를 지닌 바위산들이, 암벽들이 나타나고, 그 바위들을 파서 궁전을 짓고, 삶의 터전을 잡고 있는, 결코 침략군이 쉽사리 찾아낼 수 없는, 또한 공격해 들어올 수도 없는 그런 천연의 요새였습니다. ‘에서’, ‘에돔’의 뜻이 ‘붉다’는 뜻인데, 그 지역 돌산들이 전부 붉은 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이런 천연의 요새에서 살고 있는 그들이기에, 그들은 매우 교만하였습니다. 누가 우리를 침략할 수 있으며, 이런 난공불락의 요새에 있는 자기들을 끌어 낼 수 있겠느냐며 매우 교만한 생각 속에 안주하였습니다.

 

3. 북한이 그러합니다. 핵무기만 있으면 안 망하는 줄 알고 죽어라 거기에 목을 맵니다. 세계가 그만 두라고 하는데도 핵이 있어야 안전하다고, 핵 개발에 목을 맵니다. 때로는 핵무기를 개발했다며 비핵화를 원하는 세계를 놀라게 합니다. 자기들을 핵보유국으로 대접해 달라고 강짜를 부립니다. 노무현 정권 때, 신문에서 본 종북(從北) 기사를 기억하는데, 북한이 핵을 개발하면 그걸로 우리 남한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친북세력들의 논리도 있었습니다.

 

어리석고도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과거 소련은 핵무기를 만 개나 갖고 있다가도 망했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핵무기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멸망시킨다면 그 형편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핵 담장 안에 머물러 있다고, 핵으로 요새화한 곳에 숨어있다고 안전한 것이 아닙니다.

 

북한은 망해야 합니다! 좀 더 정확히 지칭한다면 ‘김정일 집단’은 망해야 합니다. 왜 망해야 합니까? 어리석은 교만 때문입니다. 진실을 외면하고, 물리적 힘만 키우면 되는 줄 알고 어리석게 떠들어대는 교만 때문입니다. 이들은 가인의 후예,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라멕의 후예입니다.

 

가인의 5대손, 라멕은 이런 섬뜩한 맹세를 합니다.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창4:23-24)

 

폭력숭배자입니다. 물리적인 힘을 숭상합니다.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모조리 다 처형합니다. 종종 북한 TV방송의 아나운서인 그 뚱뚱한 여자는 입에 담기도 힘든 말을 주저 없이 내뱉으며 남쪽 역적 패당들이 자기들을 우습게 여기면 몇 십 배, 몇 백 배로 잔인하게 갚아주겠다고 호언장담합니다. 영락없는 라멕의 후손의 모습입니다. 지금 이 지구촌에서 자기 맘에 안 들면 공개처형하는 나라가 북한 외에 또 어디 있습니까? 김정일은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공개처형입니다.

 

북한의 대표적 공안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 핵심실세였던 ‘류경’이란 사람이 지난 1월 공개처형 되었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노동당과 군부, 내각의 고위 핵심 간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99발의 총탄을 맞고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보통 총살형일 때 한 두 발의 총탄으로 총살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몸에 99발의 총탄이라면 이건 가히 학살입니다. 게다가 김정일은 공개처형이 끝난 다음 그 자리에서 고위간부들로부터 충성을 맹세하는 ‘감상문’도 받아냈다고 합니다.

 

화폐 개혁이 실패하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희생양을 찾아내어 그 개혁을 주도한 이를 역시 공개 총살하였습니다. 북한에 인권이 어디 있습니까? 오직 독재자의 폭력만이 있을 뿐입니다. 북한은 내각결정에 의하여 1967년부터 1970년 3년 사이에 전 국민을 세 계층으로 구분하는 작업을 실시하였습니다. 핵심계층, 동요계층, 적대계층입니다. 그 후 내각결정 149호에 의하여 적대계층 6,000명은 처형하였고 처형을 면한 15,000여 세대는 특별구역에 수감하였습니다. 그리고 1980년에 들어 노동당 6차대회에서 김정일이 정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 후로부터 김정일이 권력을 세습하는 것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줄줄이 수용소로 이송되다가 1990년에 들어 동구 공산권이 붕괴된 이후로 내부통제를 강화하게 되면서 수용소는 20만 명을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20만명 이란 숫자는 도시 하나의 인구 성원 숫자입니다. 도시 하나가 수용소란 뜻인 셈입니다.

 

최근엔 다시 김정은의 세습을 굳히기 위해 이젠 김정은의 반대파들이 숙청을 당하고 있고, 그 가족들이 수용소로 보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수용소의 비참한 실태들, 몇 해 전, 그곳에서 탈출한 이들의 증언에 의해 그 중 요덕 수용소의 진실이 알려지기 시작하여 전 세계가 경악하였습니다. 어떤 탈북자에게 ‘요덕 수용소’ 이야기가 진실이냐고 물었더니 시큰둥하게 대답합니다. 세상에 알려진 수용소는 사실 별 거 아니라고. 알려지지 않은 대다수의 수용소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합니다.

 

며칠 전, 22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나는 북한 교화소의 시체처리반이었다” 기사에 의하면 자기는 ‘1년 6개월 동안 시신 850여구를 처리’했다고 합니다. ‘매일 시신 1~2구씩 마대·비닐에 담겨 들어왔고, 시신 보관실은 비밀 시설로 무장 군인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시신 주변의 쥐들은 시신들을 파먹고 피둥피둥 살이 쪄 길이가 30cm 되는 것도 있었다’고 함경북도 회령시 전거리 교화소에서 시신처리 담당자로 일했던 탈북자 이수복씨가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침해센터에 증언하였습니다.

 

이토록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고, 그 존엄성을 훼손하며, 그 누구라 할지라도 자기 뜻에 어긋나면 물리적 폭력으로 처형하는 북한의 김정일 일당이, 오로지 핵무기 개발에 목을 매며, ‘우리에게 핵이 있다’고 자기들을 우습게 보지 말라며 세계를 향하여 큰소리치는데, 바로 그것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멸망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치시기로 작정하셨으면 그 어느 길을 통해서라도, 아니 집안 내부의 손에 의해서라도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무너질까요? 5절, “혹시 도둑이 네게 이르렀으며 강도가 밤중에 네게 이르렀을지라도 만족할 만큼 훔치면 그치지 아니하였겠느냐? 혹시 포도를 따는 자가 네게 이르렀을지라도 그것을 얼마쯤 남기지 아니하였겠느냐? 네가 어찌 그리 망하였는고, 에서가 어찌 그리 수탈되었으며 그 감춘 보물이 어찌 그리 빼앗겼는고, 너와 약조한 모든 자들이 다 너를 쫓아 변경에 이르게 하며 너와 화목하던 자들이 너를 속여 이기며 네 먹을 것을 먹는 자들이 네 아래에 함정을 파니 네 마음에 지각이 없음이로다.” 남는 것 없이 다 망할 것이란 선포입니다. 신뢰하던 자들에 의해 멸망할 것이란 선포입니다.

 

4. 북한은 이렇게 망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결코 놓쳐서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에돔이 망한 이유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이유가 그렇게 교만해서만 그랬던 것은 아니란 사실입니다. 조금 불편한 진실이지만, 그들이 그렇게 저주를 받고 멸망당한 것은 사실 그것보다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10절 이하,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형제 야곱에게 어떤 포학을 행했습니까?

 

“네가 멀리 섰던 날 곧 이방인이 그의 재물을 빼앗아가며 외국인이 그의 성문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얻기 위하여 제비 뽑던 날에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느니라.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며,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 네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 고난의 날에 그 남은 자를 원수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정말 정말 에돔을 향해 노하신 것은, 그들이 자기들의 형제인 이스라엘이 외국의 침략을 받아 멸망당할 때에 에돔 족도 그 침략의 세력에 슬쩍 끼어 같이 노략질을 했고, 유다 자손이 망하는 날, 원수들과 같이 기뻐하고 즐거워했기 때문입니다. 형제인 이스라엘이 어려움을 당할 때 그 어려움을 이용하여 형제의 재물에 손을 대고, 침략군의 칼을 피해 도망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길을 막아서며 침략군들에게 넘겼다는 것입니다.

 

아, 그런데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평상시 에돔과 이스라엘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은 사이였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조상, 에서와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싸웠습니다. 그 후 그의 후예들도 형제이면서 늘 자기들끼리 싸우고 다투던 사이였습니다. 그러기에 한 쪽이 외국 세력에 의해 무너지자 그것을 보고 고소해 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평상시 그들이 아옹다옹 싸우는 것은 눈감아 주었지만, 그러나 한쪽이 멸망할 때 그 멸망을 방관하고 심지어 동조하고 이용했다는 사실에 진노하셨다는 것입니다. 왜?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들은 형제지간이기 때문입니다.

 

천륜(天倫)이 현실(現實)을 우선합니다! 그들의 사이가 아무리 나쁘고, 극악하고, 원수지간이라 하더라도 하늘이 맺어준 천륜이 우선합니다. 하나님은 그걸 먼저 보십니다. 북한이 아무리 죽어 마땅한 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멸망을 우리가 태연하게 바라보고 즐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재촉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살겠다고 도망가는 이들을 가로막고 적들에게 넘길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런 에돔을 향해 진노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스라엘도 망했고, 에돔도 망했습니다.

 

우리가 북한에 대하여 가져야 할 태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난감하기 짝이 없지만, 괘심하기 한이 없지만, 그래도 저들은 우리의 형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형제입니다. 더군다나 저기에는 우리의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국제 기독교 선교단체인 ‘오픈 도어즈’는 북한을 9년 연속 세계 최악의 기독교 박해국으로 선정했습니다. 오픈 도어즈에 의하면 기독교인 약 4만~6만 명이 신앙 때문에 북한 강제 노동수용소에 수감돼 있답니다. 1999년에 탈북한 올 해 86세의 김 할머니는 지금도 매일 밤 빛바랜 성경을 품에 끼고 주무신답니다. 고어체 한글로 쓰인 이 책은 '조선 경성 대영 성서공회'에서 발간한 1936년판 '선한문(鮮漢文) 관주(貫珠) 신약전서'랍니다. 이 성경책은 18살 때 고향 친구가 선물한 것입니다. 60년 넘게 간직한 성경에는 북한에서 겪은 고통의 세월과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답니다.

 

1993년 사회안전부가 그의 집을 수색했을 때, 요원들이 오기 전 할머니는 성경을 뒤뜰 김치 움에 묻었답니다. 폭우가 내린 며칠 뒤 꺼낸 성경은 퉁퉁 불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망가진 창세기(創世紀) 부분을 태워 재를 가족과 나눠 마셨답니다. 할머니는 “새벽이면 성경을 방 한가운데 놓고 아이들과 예배를 올리며 ‘노아의 방주’, ‘모세의 기적’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합니다.

 

우리가 북한에는 기독교인이 하나도 없다고, 멸종되었다고 하던 그 때에, 그렇게 무섭게 핍박하는 공산주의 나라에 무슨 그리스도인이 있겠느냐고 할 그 때에, 새벽시간마다 성경책을 방 가운데 펼쳐놓고 예배를 드리고, 못쓰게 된 성경책은 불태워 재를 나눠 마시는 형제와 자매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결국 할머니 가족은 기독교를 믿는 게 발각돼 평양에서 산간 오지로 추방됐고, 남편은 거기서 옥사(獄死)했답니다. 다른 기독교 신자들도 이와 똑같은 비극을 경험한답니다. 처형되고 수용소로 끌려가고 오지로 추방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형제와 자매들이 그 숨 막히는 공포의 나라, 굶주림의 나라에 여전히 있다는 사실, 이것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막연히 북한이 망해야 한다고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굶어죽어도 된다고 함부로 말할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못 되게 굴었어도 그들은 우리의 형제이며, 이 사실을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고 계시며, 여전히 그곳에는 믿음의 형제와 자매들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우리의 고민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우리가 저들의 굶주림을 방치해 두고, 못 본체 하니까 저들은 이제 어떻게든 살겠다고 중국을 찾아다니며, 그 거만한 중국인들에게 내줄 것은 다 내어줄 태세입니다. 이젠 중국 갖고도 안 되니 그동안 소홀히 했던 러시아까지 찾아다니는 모양입니다. 그 까짓 자존심 죽이고 그래도 형제인 우리들에게 손을 내밀면 다 될 텐데 그건 아직까지 죽어도 못하겠다는 모양입니다. 끝까지 우리 속을 썩이는 못난 형제입니다. 그러나 어떡하겠습니까? 못나도 내 형제 인데.

 

5.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바댜의 묵시라” 묵시(黙示), 하나님의 계시란 뜻입니다. 뭔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만한 에돔, 잘났다고 하는 에돔, 핵무기만 있으면 된다고 거기에 미련한 집착을 보이며, 백성들은 다 굶어 죽을 판인데 그래도 여전히 큰소리치는 패륜적 집단 북한. 닮은꼴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려움을 당할 때 방관하고 즐거워하며, 도리어 패망을 도운 에돔. 양식이 없다고 세계를 향해 손을 벌릴 때, 너희들의 자업자득이라고 모른 체하는 남한. 닮은꼴입니다!

 

이 모든 현실과 배경, 원인을 다 아시면서도 그럼에도 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주시하는 것, ‘그래도 너희들은 형제지간이다!’하시며 형제지간의 도리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 더군다나 잊어선 안 될 것은 이스라엘이 어려움을 당하고 패망을 당하는 것, 사실은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는 사실, 하나님께 책망 받아 침략을 당하고, 패망을 당하는 거였다는 사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구경만 했던 에돔을 향해 하나님은 멸망을 선포하십니다. ‘그들이 죄악 때문에 나에게 책망을 받아 침략을 당하고, 고통을 당해도, 그래도 너 에돔은 형제이기에 그들의 아픔을 같이 아파하고, 도와주어야 했다!’ 이게 오바댜의 묵시입니다.

 

북한의 패망과 멸망, 그건 하나님의 손에 맡깁시다. 우리가 할 일, 형제지간으로 해야 할 일은 그래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저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패망을 당해도, 형제로서 우리가 가져야 천륜적 태도는 가져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저들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하고, 좀 더 지혜롭게 북한의 백성들, 믿음의 형제와 자매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결과는 어찌 되든 우리는 우리의 천륜인 형제의 도리를 다하라는 것이 오늘 오바댜의 묵시를 통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 한반도를 돌아보시고, 마침내 복음으로 통일시키사 오늘 본문의 결론, “구원 받은 자들이 시온 산에 올라와서 에서의 산을 심판하리니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 이 예언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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