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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오바댜

옵 1장 1-21절(에돔에 대한 심판과 유다의 회복) - 최용준

by Preacher 2023.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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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1장 1-21

에돔에 대한 심판과 유다의 회복

최용준 목사 2008년 11월 09

브뤼셀한인교회 http://www.koreanchurch.be/

 

오늘은 오바댜서를 상고하겠습니다. 오바댜서는 21절밖에 되지 않는, 구약성경에서 가장 짧은 책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별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전혀 인용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깊이 공부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놀라운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 이 오바댜서는 기록된 모든 예언서의 축소판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오바댜 선지자는 그의 압축적인 요약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한 모든 이방 민족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하면서 동시에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확증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 심판과 구원이야말로 대, 소선지서 전체를 꿰뚫는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바댜 선지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 오바댜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약 열두 명이 나오는데 그만큼 이 이름은 아주 평범한 이름입니다. 이 ‘오바댜’라는 이름은 “여호와를 경외(배)하는 자” 또는 “여호와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그 외에는 구체적으로 나타난 사실이 거의 없습니다.

 

이 예언을 기록한 시기는 유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함락된 직후인 주전 586년경으로 추측됩니다. 기록한 장소는 유다이며 예언한 대상은 일차적으로 에돔 족속과 유대 백성들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세계 각지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본서를 기록한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에돔 족속을 통해 예시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범죄할 때 징계를 받으나 완전히 버림을 받지는 않고 궁극적으로 구원을 얻을 것을 말씀합니다.

 

본 메시지의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에돔 족속과 이스라엘의 적대관계라고 말할 수 있는데 사실 이러한 관계는 바로 야곱과 에서가 태중에서 다투는 것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창 25:22f.) 그들이 태어난 후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권리를 팔아버리지요. 그래서 히 12:16에 보시면 이 에서는 영적인 분별력도 없고 경건하지 않은, 망령된 자라고 말씀합니다. 이 에서는 피부가 붉었고 팥죽도 붉은 색이었기 때문에 ‘붉다’는 뜻을 가진 에돔이라고도 불렸던 것입니다. 그 후에 에서는 사해의 남동쪽에 있는 세일 땅으로 이주하게 되는 데 이 땅에도 붉은 모래바위가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에서’라는 단어와 ‘세일’이라는 단어 모두가 ‘털이 많다’라고 하는 ‘쉐아르(ראשׁ)’동사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에돔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 그들의 땅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민 20:14-21)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이스라엘과 형제지간이기 때문에 미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신 23:7) 그러나 적대관계는 점점 더 심화되어 열왕기서와 역대기를 읽어보면 이스라엘과 에돔 간에는 계속 전쟁이 있었습니다. 유다가 바벨론에게 함락될 때 에돔은 바벨론 편을 들어 유다 민족을 많이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그 후 주전 6세기 후반 또는 5세기 초반에 아라비아 북쪽지방에서 일어난 나바티안 또는 나밧 족속들이 이 에돔 족속들을 몰아냅니다. 이렇게 추방당한 에돔 족속들은 유다의 남쪽에 와서 살게 되는데 이 지역을 헬라어로 ‘이두미아’라고 불렀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헤롯대왕은 바로 이 이두미아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이 이두미아인들은 주후 70년 유대인들과 연합하여 로마를 대적하였지만 완패하면서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본문 말씀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9절까지는 에돔의 멸망에 대한 예언입니다. 10-14절은 에돔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악들을 열거하며, 15-16절은 이스라엘의 적들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17-21절까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릴 구원의 축복에 대해 말씀합니다. 이제 좀더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9절: 간략한 서문에 이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스라엘의 형제 국가인 에돔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1절: ‘계시’라는 말은 영어로는 ‘vision’으로 예언자가 하나님으로부터 그 메시지를 들었을 뿐만 아니라 ‘보았음’도 의미합니다. 오바댜 선지자는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고 선포합니다. 여기서 ‘주’라는 단어는 하나님께서 모든 족속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분이심을 강조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이시라는 뜻을 나타냅니다. 이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주 하나님께서 에돔을 치시기 위해 열국이 연합하게 하십니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에돔을 친 민족은 나밧 족속과 로마인들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성경 전체를 통해 귀중한 진리 한 가지를 가르쳐 줍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 땅위에서 그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1절은 2-9절까지 내용의 요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절: 에돔은 스스로의 부요함(무역으로 벌어들인 것, 약탈한 것, 그 지역의 철과 구리를 파내어 이룩한 부)과 지형적으로 거의 침공당하지 않는 요새지에 살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교만을 꺾으셔서 작게 만드실 것이며 다른 민족으로부터 멸시를 받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3-4절: 에돔의 교만은 사실 자기기만에 불과했습니다. 원래 교만은 히브리어로 ‘즈돈’인데 ‘끓어 넘치게 한다’라는 뜻인 ‘지드’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야곱이 에서에게 주었던 팥죽도 ‘나지드’라고 하고 그것을 요리하는 단어도 ‘지드’인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즉 팥죽을 요리할 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과 에서의 교만이 언어적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에돔 민족은 그들이 살던 세일산이 바위 절벽으로 이루어져 천연 요새라고 생각하면서 어떠한 공격에도 안전하리라고 자만했습니다. 그들은 해발 600-750m나 되는 높은 산 위의 동굴에서 살았기 때문에 마치 그들은 독수리가 날아다니는 것 같았고 또 별들 사이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끌어내리겠다고 선포하십니다. 인간적으로는 난공불락의 요새이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5-6절: 장차 에돔의 부는 약탈당하고 말 것을 선포하면서 오바댜 선지자는 에돔에게 다가오는 심판을 조목조목 열거합니다. 첫째로 그는 밤에 원하는 만큼만 훔쳐 가는 도적들에 대해 말합니다. 둘째로 그는 에돔의 수치를 가난한 자들이 취하여 가도록 약간의 포도만을 남겨둔 포도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비기고 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에서가 당할 환난은 아무 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도둑이나 포도를 따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있는 것 모두를 다 취해서 가져가지는 않는데 에서를 약탈할 사람들은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에돔을 침략한 사람들은 깊은 동굴 속에 감추어 둔 보물까지도 찾아갈 것입니다. 에돔의 죄악은 단순히 인간에 대한 죄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모독한 죄였기 때문입니다.

 

7절: 에돔은 이웃 나라들과 맺은 동맹 관계에 대해 자만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웃 나라들은 에돔과 우호적인 무역을 하기 위해 동맹국이 되었지만 결국 적들로 변하게 될 것이고 에돔을 쫓아낼 것입니다. 자신의 지혜를 믿고 자만하던 에돔은 결국 그 자신에게 그리고 믿고 있던 동맹국들에 의해 속고 맙니다. 이렇게 지혜로운 자들로 유명했던 에돔인들이 동맹국들의 술책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8-9절: 이제 에돔의 백성들은 살해당할 것이라고 경고를 받습니다.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교만하고 지각이 있다고 착각하는 자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멸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데만’은 에서의 손자로서(창 36:11-11) 에돔 나라 전체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지형적인 위치, 군사적인 힘, 정치-경제적인 지혜 이 어느 것도 에돔 사람들에게 진정한 안정과 번영을 가져다 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의 힘으로 행복과 평화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들의 교만과 지혜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10-14절: 여기서는 에돔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악들을 열거합니다. 먼저 10-12절에서 에돔의 잘못된 태도를 지적한 후 13-14절에서는 유다를 대적한 행위들을 비판합니다.

 

10절: 에돔은 그의 형제 야곱, 즉 이스라엘 민족을 무자비하고 포학하게 압제했습니다. 이 10절은 11-14절의 내용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11-12절: 11-14절에 ‘그 날’이라는 말과 ‘그 날에’라는 단어가 8번 나타납니다(히브리어로는 10번입니다). 바벨론 군대가 유다를 침공하여 약탈할 때 에돔은 적극적으로 살상과 약탈에 가담했습니다(시 137:7; 애 4:21-22; 겔 25:12; 35:5, 15; 36:5; 욜 3:19). 본문도 바로 그 당시의 상황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네가’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이것은 강조하는 용법입니다. 그들은 형제의 불행을 보면서도 12절에 보면 입을 크게 벌려 웃으면서 유다의 패망을 즐거워했고 또한 그것을 자랑했습니다. 여기서 ‘입을 크게 벌린다’는 단어는 그들이 얼마나 교만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유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한다 하더라도 에돔 족속은 그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자신도 겸허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했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아야 할 우리 성도들은 악인의 멸망을 기뻐하거나 조롱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악인들은 비록 그들의 죄 때문에 멸망할지라도 성도들은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자신들의 행위를 말씀에 비춰보면서 회개하는 겸손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쓰나미)

 

13-14절: 나아가 에돔은 단순한 방관자가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유다 백성을 멸시하면서 그들의 재산을 약탈했고 도망가려는 자들을 잡아 죽였으며, 살아남아 있는 모든 자들을 침공한 군대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들이 다시는 이런 일들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않았어야 했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15-16절: 이제 오바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모든 적들 위해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계를 다스리시는 분이심을 명시합니다(욜 3:11-14; 학 2:21, 22). 또한 본 절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셔서 만국을 심판하실 최후의 심판을 의미합니다(요 5:27; 딤후 4:1).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통해서도 심판하심으로 역사를 주관하시고 살아 계신 역사의 주인이심을 보이시는 동시에 역사의 종말에는 최후의 심판을 통해 그의 공의와 거룩하심을 온전히 실현하실 것입니다.

 

15절: 에돔은 자만함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족속들 위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하나의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주의 날’은 하나님께서 불신세력을 향해 그들이 행한 대로 갚으시는 최후의 심판을 행하실 날을 말씀합니다. 에돔이 예루살렘을 약탈했기 때문에 에돔 역시 약탈을 당할 것입니다. 에돔이 유다의 망명자들을 죽였기 때문에 에돔 역시 살해를 당할 것입니다. 에돔이 유다의 살아남은 자들을 적에게 넘겨주었기에 그들도 동맹국들에게 속아 넘어갈 것입니다. 에돔이 유다의 환난을 기뻐하였기에 그도 부끄러움을 당하고 멸망당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 절은 전체의 요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6절: 에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갔을 때 그곳에서 벌어진 음주 축제에 참여하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대적한 다른 모든 나라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감수해야하는데, 이것은 종종 마셔야 할 잔으로 묘사됩니다. 이런 나라들은 주님께서 최후의 심판을 위해 재림하실 때 너무나 철저하게 심판을 받아 마치 존재조차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에돔은 이러한 심판을 실제적으로 어느 정도는 이미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날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한 모든 민족들이 완전히 멸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17-21절: 이스라엘 백성들 위해 임하는 하나님의 축복을 말씀하는 부분으로서 전반부의 열방에 대한 심판 예언과는 정반대의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요엘서와 그 구조가 동일함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회복이 열방의 심판 이후에 이루어진다는 예언은 신약에 와서 종말론적인 계시로 완성됩니다.

 

17-18절: 비록 에서는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당하지만,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이스라엘은 해방과 구원을 체험할 것입니다. 시온산은 예루살렘과 동의어로 쓰이고 있는데 이 곳은 비록 에돔에 의해 더렵혀졌지만 다시 거룩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땅은 야곱의 후손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언약백성들은 결국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여기서 야곱과 요셉은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을 상징하는데 이들이 에서의 집을 멸망시킬 것을 초개가 마치 불길에 타버리는 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에돔이 유다 족속의 남은 자들을 죽인 것에 대한 보복으로 에돔 족속 가운데 살아남은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14절). 이것이 얼마나 확실한가를 강조하기 위해 주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다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19-20절: 비록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으나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변치 않고 실현될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오바댜 선지자는 이스라엘 지경의 회복에 대해 묘사합니다. 이스라엘의 남쪽 네게브는 에돔 족속에게서 얻은 땅입니다. 이것은 민 24:18; 사 11:14; 암 9:11-12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서쪽 기슭에 있는 이스라엘 족속들은 해안의 평지를 포함해서 남방의 블레셋 땅으로 옮겨갈 것입니다. 중앙 지역에는 사마리아와 에브라임의 들을 회복하고 베냐민은 요단의 동쪽 길르앗까지 영토를 확장할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은 북쪽 사르밧까지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스바랏’의 위치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소아시아지역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그렇다면 그곳에 있던 유대인들이 종말의 때에 다시 자기 땅으로 돌아와 지경이 확대될 것을 보여 줍니다.

 

21절: 마지막으로 오바댜 선지자는 주님의 나라가 건설될 것을 말씀합니다. ‘구원자들’은 ‘구원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종말의 때에 이스라엘은 회복되고 그 땅을 차지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할 것입니다. ‘나라가 주의 것이 될 것이다’는 승리의 선포와 함께 오바댜는 그의 예언을 끝맺고 있습니다.

 

오바댜서는 매우 짧지만 하나님의 능력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교만으로 반역하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거부하는 자들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본문은 매우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에돔이 번영을 누릴 동안, 이스라엘의 경건한 사람들은 ‘왜 사악한 백성들이 저렇게 번성할까?’라는 질문을 던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오바댜 선지자의 힘찬 메시지는 신약에서 이렇게 요약됩니다. “자기를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갈 6:7)” 오바댜는 하나님의 공의를 분명히 말씀합니다. 히 10:30-31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과 억울하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우리 결코 낙심하지 맙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당한 그 어떤 어려움보다도 크시며 우리가 만난 어떤 대적보다 더 강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진 자이지만 그 은혜를 배척하고 교만한 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더욱 겸손히 주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 은혜를 사모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 궁극적인 승리를 누리는 언약 백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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