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24장 24-27
할 일을 미루는 자에게 결코 승리의 기회는 없다!
이삼규 목사 20130901
행 24:24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행 24: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행 24:26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행 24:27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오늘 본문을 보면 유대의 총독이었던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게 되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아무런 잘못도 없이 유대인들의 고발을 당하여 체포당하게 됩니다.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바울이 로마 시민인 것을 알고 그를 총독인 벨릭스에게 보냅니다. 그래서 바울과 총독 벨릭스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벨릭스 총독 앞에서 무엇을 선포하였습니까?
행 24: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바울은 총독에게 ‘의와 절제와 장차오는 심판’을 강론하였습니다. 이 땅에서 도덕적 변화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분이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 사실을 무시하거나 거부하고 또 어떤 이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고 그분 안에서 선한 삶을 삽니다. 그들은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 합니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을 아는 일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또 어떤 이들은 구원이 좋은 것임을 인정하고 구원에 대해 더 듣기를 원하지만 개인적인 결단을 기약 없이 미룹니다.
여러분!
진리에 따라 행동하기 전까지는 진리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진리가 마음으로 믿어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진리가 순종해야 할 명령이라면 순종해야 합니다. 믿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는다면 진리에 따르지 않는 것이고,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끊임없이 미루는 것입니다.
내일 결단하겠다는 사람들
어떤 결단을 요구받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일’로 미룹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경향입니다. “지금은 아니다. 내일하라. 내일이 되면 다 잘될 것이다.”라는 속삭임은 우리 속에서 항상 들려옵니다. 이런 속삭임을 따르면 성령의 감동은 계속 뒤로 밀려납니다. 사람들은 성령의 감동을 거부하거나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것에 따르기를 자꾸만 미룹니다. 좀 더 좋은 때를 기다린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입니다. “내일이면, 내일이면, 내일이면 다 잘 될 것이다.”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사실상 그분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불신앙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나는 믿지 않는다.”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믿지 않지만 소심해서 그런 말조차 못하는 것입니다. 후자도 전자처럼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전자만큼 악한 것입니다. 믿는다면 믿음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해 계속 생각만 하면서 “내일 하겠다.”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책방에 가서 어떤 좋은 책을 구입하였습니다. 꼭 읽으려고 비싼 돈을 주고 책을 산 것입니다. 그런데 그 책은 책꽂이에 여전히 꽂혀 있습니다. 그 책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꼭 읽어야지 라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씻고 밥 먹고, 오늘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여 8시 뉴스나 9시 뉴스를 시청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재미있는 드라마 한편을 봅니다. 그러면 눈이 슬슬 감기기 시작합니다. 하품이 나옵니다. 그러면 곧 바로 침대로 가서 곯아 떨어져 버립니다. 이것이 보통 사람의 일상입니다. 만약 이것이 성경책이라면 여러분은 평생 동안 창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마태복음 1장을 넘기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여러분이 예수 믿고 성경을 몇 독 하셨습니까? 영적인 삶을 내일로 미루는 것은 비극의 씨앗입니다. 내일은 내 날이 아닙니다.
약 4: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약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 4: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약 4: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약 4: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내일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엄밀하게 따지면 내일은 없습니다. 이번에 장례를 치르면서 보니까 옆방에 있던 분은 42세인데 갑자기 넘어져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습니다. 오로지 오늘만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허락이 있을 때 우리에게 내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할 일을 뒤로 미루지 마시기 바랍니다. 벨릭스 총독은 바울을 만나서 복음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두려운 마음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벨릭스가 바울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라고 결단을 뒤로 미루었습니다. 언제까지 미루었습니까? 2년이나 미루다가 그가 총독에서 교체되어 결국 그곳을 떠나게 되고 맙니다.
지금은 안 된다는 핑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회에 열심을 내서 참석해야 합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 낮 예배에 참석하시는 분이 오후에는 절반으로 줄어들고 수요일에는 그 절반에서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어떤 곳에서 파티를 연다는 연락을 받았다면 여러분이 그곳에 참석하지 않겠습니까? 모르면 몰라도 대부분이 참석할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회 합시다.’ 하면 몇 명이나 참석할까요? 아마도 텅 빌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회에 참석해야 하지만 지금은 안 되고 다음 주에 가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목사는 순진하여 그 약속을 철석같이 믿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주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그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면 여러 가지 핑계를 댑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하지요. 그 핑계가 저한테는 통할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까지는 애들을 공부시켜야 했고 경제 사정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헌금을 제대로 드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십일조를 드리고 또 그 밖의 다른 헌금도 드릴 것입니다. 내년부터 그렇게 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내년이 되어도 그들은 똑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생각지 않게 돈을 쓸 일이 자꾸만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 보면 주님께 드릴 것은 하나도 남지 않습니다.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때 우리는 우리가 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루었던 일에 대해 그분께 자백할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선생님은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죄니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승리의 삶을 살라 인생의 승리를 꿈꾸는 그리스도인이 참으로 많습니다. 누구나 승리를 원하고, 누구나 능력을 원하고, 누구나 더 깊은 삶을 원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승리의 삶을 내일로 미룹니다. 그리고 내일이 되면 또 다시 다음 주로 미룹니다.
거룩해지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은혜를 받고 거룩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성령님과 동행하려면 하나님께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깊은 신앙의 단계로 들어가려면 시간을 내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겠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안 됩니다. 이런 내 얘기를 듣는 사람들 중에는 “목사님의 말씀이 지당한 말씀이므로 내가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혹시 여러분이 누군가와 말다툼을 했다면 그에게 화해의 편지를 써야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할 때 그렇게 함으로써 놀라운 영적 열매를 거둔 사람들을 봅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내일 그런 편지를 쓰겠습니다.”라고 말할 뿐입니다. “내일 가족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하거나 “바쁜 일이 끝나면 가족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작 바쁜 일이 끝나도 예배는 시작되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저녁식사 자리에서 감사기도를 할 뿐입니다.
“나는 저 원수와 화해하고 그에게 친절을 베풀겠습니다.”라고 말한 사람은 자기의 말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비열함과 죄가 가득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목적들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기 위함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자비와 친절의 삶을 지금 시작하시라고 권하는 바입니다. 우리에게 내일이 있을지 없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죽기 전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의 세대의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우리의 세대를 위한 봉사의 사명을 다 감당하기 전에 죽을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명 자는 죽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지나간 세대를 섬길 수 없습니다. 다음 세대도 섬길 수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다음 세대도 섬길 수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세대는 얼마든지 섬길 수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기회가 우리에게 항상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회는 오늘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히 3: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히 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히 3: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신앙의 퇴보에 빠진 사람들에게 주님은 “집으로 돌아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주님께 돌아가기를 자꾸 미루고 있다면 탕자의 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탕자는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눅 15:18)라고 말했지, “내가 ‘내일’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리라”라고 말하고, 자기 말대로 아버지께 갔습니다. 우리의 결심을 유효한 것으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 순종하라!
이런 상황을 상상해봅시다. 주님이 잃어버린 영혼에게 찾아오시어 죄 사함과 성결과 구원과 빛을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죄인은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지금은 저를 내버려두십시오. 다음에, 좀 더 편한 시간에 오십시오. 내일은 내 악한 생활을 끝내겠습니다. 지금은 제가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악을 행하지만 내일부터는 달라지겠습니다.” 그러면 그가 내일은 자기의 말대로 행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내일은 주님을 영접하겠습니다. 내일은 설교단 앞으로 나아가 교인들이 보는 앞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겠습니다.”라고 말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과 똑 같은 사람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내일 구원받겠다.”라고 말하다가 오늘 멸망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내가 볼 때 이것이 가장 무서운 일입니다. 이런 무서운 일을 피하도록 경고하는 사건들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눅 13: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눅 13: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도로의 위험한 곳을 알려주는 표지판처럼 이 사건들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사람들에게 “조심하시오.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소!”라고 말해 줍니다. 이런 사건들 중 하나가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인생의 갈림길에 이른 사람들에게 “앞에 절벽이 있으니 유턴하시오.”라고 말해줍니다. 벨릭스는 유턴해야 할 곳에서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에 이른 것입니다. 지극히 중요한 결정을 뒤로 미루었기 때문에 그는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을 잃었습니다. 만일 벨릭스가 직업을 잃었다면 다른 직업을 구하면 됩니다. 실제로 그는 바울을 만난 후 2년이 지났을 때 그가 총독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내 드루실라를 잃었다면 재혼하면 되고, 건강을 잃었다면 다시 회복시키면 됩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 결코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바로 영혼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영혼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내일, 내일”이라고 말하며 계속 미루면 영혼이라는 지극히 귀한 보물을 잃게 됩니다. 영혼은 우리가 절대 잃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 생명을 얻겠습니까? 아니면 내일 생명을 얻겠다고 뒤로 미루었다가 영원히 얻지 못할 것입니까? 오늘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만드시겠습니까? 아니면 내일로 미루다가 영원히 기회를 놓치겠습니까? 지금이 중요합니다. 오늘만 내 날입니다. 내일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오늘 결단하십시오. 주님을 따르기로, 지금 결단하십시오. 주님을 영접하기로, 미루는 자에게는 다시 기회가 없습니다. 할 일을 미루는 자에게 결코 승리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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