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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호세아

호 6장 1-3절(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 허창수

by Preacher 2024.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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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6장 1- 3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허창수 목사 14.08.24

동성교회 [창원시] https://https://cafe.daum.net/huhcs48/

 

노회 고시부원으로서 장로가 되기 위해 고시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대로 쓰라’는 문제를 주었습니다. 장로가 될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다들 잘 압니다. 교회에서도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답을 썼습니다. 대부분이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전능하시고 무소부재 하시며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라’ 고 답을 썼습니다. 틀린 답은 아니지만 점수는 50점 밖에 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나를 구원하기 위해 고난당하신 것을 알아야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을 잘 압니다. 나이와 생일을 기억합니다. 식성을 알고 성격을 압니다. 이 정도를 안다고 해서 부모를 안다고는 말 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께서 나를 낳으시고 키우신 은혜를 알고, 내가 병들었을 때 얼마나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애를 태우셨고, 자신은 자시지 않으시고 먹여 주셨던 것을 안다면 부모님을 어느 정도 아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어느 만큼이나 수고를 하셨는가를 다 알 수 없지만 천분의 일, 만분의 일이라도 알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부모님을 어느 정도는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외쳤습니다(3).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가를 잘 가르쳐 줍니다. 그 중에 호세아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느 만큼이나 사랑하는가를 잘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와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외면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호세아를 음란한 여자 고멜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호세아’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호세아는 구약의 여호수아와 신약에 예수와 같은 뜻을 가진 이름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상징합니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 고멜을 맞이하여 아내를 삼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1:2).

 

‘고멜’은 ‘끝’, ‘완전’이란 뜻으로 ‘음란한 여자’, ‘창녀’였습니다. 죄악에 완전히 빠진 이름난 창녀였습니다.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없는 음란한 여자였습니다. 고멜은 스스로 구원 받을 수 없는 완전 타락한 죄인인 나와 여러분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구원받을 수 없는 완전 타락한 죄인들 입니다.

 

언젠가 청량리 사창가를 혼자 지나 간 일이 있습니다. 길 양쪽에 유리 상자와 같은 홀에 오렌지 색 전등불 아래 반나체를 한 여자들이 인형처럼 앉아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손짓을 하는 것을 보고 놀라 도망치듯 그 골목을 빠져 나온 일이 있습니다. 창녀는 부정한 여인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 호세아에게 음란한 고멜을 아내로 맞이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고멜을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죄인들의 신부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호세아가 고멜을 아내로 맞이하였던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영적 신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나와 여러분의 영적 신랑이고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고멜은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호세아의 아내가 될 수 없는 음란한 여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세아의 아내가 된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요 축복입니다. 나와 여러분이 영적 창녀들이지만 예수님의 신부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고멜이 호세아의 아내가 되었다면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오직 호세아만을 사랑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고멜은 옛 남편을 잊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다면 오직 예수님만을 섬기며 살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마음은 옛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고멜이 호세아와 결혼하여 살면서 아들과 딸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누구의 아들이며 딸인지 분간이 안 됩니다. 첫 번째 아들을 여호와께서 ‘이스르엘’이라고 하라고 하셨습니다(1:4). ‘이스르엘’은 ‘이스라엘’과 발음은 비숫하지만 ‘하나님께서 흩으시다’라는 정반대의 의미를 가진 이름입니다.

 

두 번째로 낳은 딸은 ‘로루하마’입니다. ‘긍휼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며(1:6), 세 번째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로암미’입니다. ‘로암미’는 ‘내 백성이 아니다’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멜이 낳은 아들 딸의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이름들은 호세아와의 정상적인 아들과 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그의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2:4).

 

이렇게 부정한 자식까지 낳은 고멜이 누구를 상징합니까? 나와 여러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는 영적 음란한 자들이였습니다. 지난 날에 세상 풍속을 따르고 살았습니다. 그러한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신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신랑으로 만족하며 감사 찬양을 돌리며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마음은 세상의 것들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달 밝은 밤에 단 둘이 손잡고 데이트를 합니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에 사랑하는 두 사람은 깊은 사랑의 고백을 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품에 안고 쓰다듬고 입맞추며 ‘나는 당신을 죽기까지 사랑한다’고 하니까 아내도 ‘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남편의 사랑의 고백을 받는 아내의 마음은 옛 남편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남편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마음은 옛 남편에게 있다면 나쁜 여지라고 욕할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의 고백을 나눈다면 개 짖는 소리도 듣지 못합니다. 그런데 멀리 개 짖는 소리를 듣고 ‘개가 왜 짖지’라는 생각을 하면 그것은 음밀한 사랑을 나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배는 신랑되신 예수님과 신부된 성도와의 깊은 사랑을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품에 안아 주시고 쓰다듬어 주시며 입맞추고 위로해 주십니다. 예배시간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사랑을 주고 받는 가장 음밀한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찬송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화답합니다. 기도는 주님만을 섬기며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예배를 통해 이와 같은 음밀한 사랑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날 위해 죽으주신 예수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회답하는 가장 음밀한 영적으로 최고로 신령한 시간입니다.

 

진심으로 하나님과의 사랑을 나누는 음밀한 예배라면 밖에 무슨 일이 있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방에 불위에 국을 올려 낫는데 끓는지 어떤지 생각한다면 예배시간에 옛 남편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멜은 호세아의 품에 안겨 입으로는 사랑을 고백하면서 그 마음은 옛 남편에게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신령한 사랑을 고백하는 예배 시간에 마음은 다른 곳에 두고 있습니다. 남편과 단 둘이 사랑을 고백하는 시간에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아내는 놀라 휴대폰을 보니까 옛 남편의 전화였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눈치를 보며 작은 소리로 ‘응 내 빨리 갈게’, 그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지어 낸 이야기입니다. 예배시간에 가끔 휴대폰 소리가 들릴 때가 있습니다. 휴대폰 소리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밀담을 나누는 시간을 옛 남편이 훼방하는 것입니다. 엄밀한 사랑을 나누는 시간에 찬물을 덮어 씌우는 엄청난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음란한 고멜이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와 축복으로 호세아의 아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호세아의 아내로서의 삶이 아니라 옛 남편을 찾아가고 만났습니다. 이제 노골적으로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고 말했습니다(2:7). ‘옛 남편과 함께 있을 때가 지금보다 나았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고멜을 욕할 것입니다. 옛 남편에게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고멜을 보고 모두 나쁜 여자라고 욕 할 것입니다.

 

그런데 고멜에게서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은밀한 사랑을 고백하는 시간에 우리의 마음은 옛 남편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마치자 서둘러 옛 남편을 만나기 위해 갑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고멜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축복과 은혜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고멜은 호세아를 떠나 다시 옛 남편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다시 창녀가 되었습니다. 3:1에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라는 말씀에서 고멜은 다시 지난 날과 같은 음녀가 되었습니다. 창녀는 대부분 자기 몸을 담보로 빚을 지고 있습니다. 고멜 역시 많은 빚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3:1). 호세아는 고멜을 찾아가서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을 주고 고멜을 다시 데리고 왔습니다. 고멜이 진 빚을 호세아가 대신 갚고 고멜을 다시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의 빚을 갚아주시고 다시 불러주셨습니다.

 

호세아는 고멜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말합니다. 3:3절에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호세아는 고멜의 도덕적인 변화를 기다렸습니다. 고멜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더 이상 옛 남편에게 마음을 두거나 돌아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음행의 길에서 완전히 돌이켜 정숙한 여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였습니다.

 

그리고 호세아는 고멜에게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고 말했습니다. 호세아는 고멜에 대한 처음 사랑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고멜이 회개하기만을 기다리는 호세아에게서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를 처음 사랑으로 변함없이 계속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 옛 남편에게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이방신을 섬기고 우상을 섬겼던 백성들에게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해 주신 말씀입니다. 마땅히 하나님을 알고 섬기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으며 살아야 할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었습니다(4:1).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4:6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라고 탄식하셨습니다. 그리고 6:6절에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십니다. 호세아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자 힘써서 여호와를 알자”라고 외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세상을 더 좋아하는 나를 끝까지 찾아 주시고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다시 품어 주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예배를 통해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예배는 아직도 옛 남편에게 마음을 두고 있지 않습니까? 거룩하고 신령한 예배를 온전히 드리지 못하는 우리들을 그래도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불러 주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상숭배와 이방신을 섬기는 행위가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마음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었습니다. 그와 같이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세상의 유혹이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 속에 있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5:4절에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게 하는 까닭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호세아는 외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이라”고 외쳤습니다(1). 우리를 살리시고 일으키시며 하나님 앞에 살게 하실 것입니다(2). 하나님을 알 때 하나님은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3).

 

우리가 하나님을 알 때 하나님이 늦은 비와 같이 임하시는 은혜와 복을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범죄한 자를 찢으시는 분이시지만 돌아오면 도로 낫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죄를 지었을 때 치시지만 돌아올 때 싸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때 이른 비와 늦은 지를 주시는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찬송을 불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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