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장 14; 갈6장 1-2
천사의 돌봄, 우리의 섬김
이준원 목사 2012.7.15.
콜럼버스한인장로교회 https://www.kpccoh.org
[들어가는 말]
여러분, 지금 좌우를 둘러보시고 위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천사가 보이십니까? 천사는 영이니까 안 보이지만, 또 마음씨가 곱고 착한 사람을 가리키며 ‘천사’라고 부르니까 보인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다들 천사로 보이십니까? 흔히 하얀 제복을 입은 간호사들을 비유해서 ‘백의의 천사’라 부릅니다. ‘수호천사’라는 가톨릭적인 개념도, 연약한 어린아이나 여자들을 지켜주는 사람, 또는 그러한 어떤 존재로 사용됩니다. 이외에도 ‘천사’라는 개념은 세상의 여러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천사’라고 하면 실제로 있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들이 여러 가지 필요에 의해 만들어 낸 가상적인 존재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천사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분명히 성경에서는 천사에 대해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도 천사에 대해 별로 많이 생각하지 않고 관심도 없습니다. 설교 때도 천사에 대해 다루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저도 천사에 대해 설교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천사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다면 우리의 삶에서 염려를 물리치는 데 큰 힘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먼저 천사에 대해 성경이 뭐라고 가르쳐주는지 알아보려 합니다.
1. 우리를 돌보는 천사들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히 1:14)
여기서 천사들을 가리켜 “부리는 영”이라고 하는데, ‘부리다’는 단어는 ‘보살피다’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부리는 영”이 “ministering spirits”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즉 천사는 ‘섬기는 영, 사역하는 영, 돌보는 영’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천사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고, 그들이 “구원 얻을 후사들” 즉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를 돌보는 영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천사들은 우리를 어떻게 돌보아줍니까? 천사들이 우리를 위해 행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있지만 그 중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1) 필요한 것을 공급
구약 열왕기상에 나오는 엘리야 선지자는 엄청난 사람이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과 혼자 영적 대결을 펼쳐서 승리한 사람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을 때 수년간 비가 오지 않고, 그가 기도했을 때 엄청난 비가 내렸던, 능력의 사람이었습니다. 야고보서에서도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지만 능력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 엄청난 승리를 맛보고 얼마 되지 않아, 당시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의 아내인 악한 이세벨이 “너를 죽이겠다.”라고 한 말 한마디에 크게 두려워하며 급히 도망을 칩니다. 그리고 광야에 들어가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며 기도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는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서 잠이 들었는데, 그 때에 한 천사가, 일어나서 먹으라고 하면서, 그를 깨웠다. 엘리야가 깨어 보니, 그의 머리맡에는 뜨겁게 달군 돌에다가 구워 낸 과자와 물 한 병이 놓여 있었다. 그는 먹고 마신 뒤에, 다시 잠이 들었다. 주님의 천사가 두 번째 와서, 그를 깨우면서 말하였다. ‘일어나서 먹어라. 갈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 (왕상 19:5-7)
육체적, 감정적, 정신적으로 완전히 지친 엘리야를 위해 한 천사가 음식을 제공했습니다. 아주 힘든 상황에 처할 때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을 때에도 천사들이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를 돌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 중 삼위이신 성령님을 가장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를 내적으로 인도해주십니다. 반면 천사들은 우리 안이 아니라 밖에서 외적으로 우리를 도와줍니다.
2) 보호
천사들은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일을 합니다. 아주 대표적인 예가 다니엘의 경우입니다. 다니엘서를 읽어보면, 모함을 받아 사자굴 안에 던져진 다니엘을 천사가 사자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줍니다.
“나의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셔서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해치지 못하였습니다.” (단 6:22)
사도행전 27장에서 천사가 사도 바울을 지켜주는 장면도 나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지중해를 가로질러 항해를 할 때, 그가 탄 배가 엄청난 폭풍을 만나 침몰의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때 사도 바울은 아무도 생명에 손상이 없을 것이라고 하며 이렇게 선포합니다.
“바로 지난밤에, 나의 주님이시요 내가 섬기는 분이신 하나님의 천사가, 내 곁에 서서,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는 반드시 황제 앞에 서야 한다. 보아라, 하나님께서는 너와 함께 타고 가는 모든 사람의 안전을 너에게 맡겨 주셨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행 27:23-24)
실제로 배는 풍랑으로 다 부서졌지만 모든 사람은 무사히 해안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은 천사가 말한 그대로 되었습니다.
여러분, 평소에 freeway나 local 길을 운전하며 다녀도 아무 사고가 없는 것이 내 운전 실력이 뛰어나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천사들은 우리가 운전하며 달리고 있을 때에도 우리를 돌보며 우리 자녀들을 지켜준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학교에 갔을 때, 자녀가 어떤 활동을 할 때, 밖에 나가 있을 때, 다른 데 갔을 때, 아무리 부모라도 아이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면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천사들을 시켜 우리 자녀들을 지켜주시기에 우리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내 아이와 함께 있더라도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없는 일들을 천사들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인도
천사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문제에 처했을 때 거기로부터 인도해주는 일도 합니다. 사도행전에 이러한 모습들이 잘 나와 있습니다. 1세기 예루살렘에서 첫 교회가 시작된 후 사도들이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증거하며 엄청난 기적들을 일으켰고, 그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거기에 위협을 느끼고 시기심에 불타서 사도들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밤에 주님의 천사가 감옥 문을 열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계속해서 생명의 말씀을 백성에게 남김없이 전하라고 지시합니다(행 5:17-20). 당시 감옥 문은 단단히 잠겨 있고 문마다 간수가 서 있었는데도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도들이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까? 천사가 내보내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해주기로 작정하신 이상, 우리는 결코 하나님께서 구하실 수 없는 상황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하시지 못할 상황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삶 가운데 염려되는 일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바로 이 사실을 기억하고 염려를 날려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초대교회에 대한 핍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열두 사도 중 하나인 야고보는 처형당했고 베드로는 감옥에 갇혔습니다(행 12장). 베드로도 다음 날 처형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날 밤 베드로는 두 쇠사슬에 묶여, 군인 두 사람 틈에서 잠들어 있었고, 문 앞에는 파수꾼들이 감옥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베드로를 깨우며 빨리 일어서라고 합니다. 그러자 쇠사슬이 그의 두 손목에서 풀립니다. 그리고 천사가 그를 인도하여 초소들을 지나서 밖으로 나가게 인도해줍니다(행 12:6-10). 그때 베드로가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이제야 참으로 알겠다. 주님께서 주님의 천사를 보내셔서, 헤롯의 손에서, 그리고 유대 백성이 꾸민 모든 음모에서, 나를 건져 주셨다.” (행 12:11)
죽음의 위기에서 베드로를 구해준 천사는, 어떤 위기 상황에 있든지 오늘 우리도 구해줄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천사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키고 구해내고 인도함으로써 그들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할 것은, 천사는 결코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천사가 응답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십니다. 천사들은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 하나님의 심부름을 할 뿐입니다.
베드로를 감옥에서 나오게 한 천사는, 교회가 합심해서 베드로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베드로를 구해내라고 명령하신 것에 순종한 것뿐입니다. 한마디로 천사들은 하나님의 종이고 심부름꾼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있어 쓰임을 받는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천사는 결코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를 섬기는 영들일 뿐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할 때, 모든 민족과 언어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 보좌 앞에 설 때, 그들도 거기서 우리와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2. 천사의 돌봄을 받는 우리가 할 일은 섬김이다
이처럼 천사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우리를 돌보아줍니다. 그러한 돌봄을 받는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섬김입니다. 우리가 영적 존재인 천사는 아니지만, 우리도 서로에게 천사와 같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우리를 섬기는 것처럼, 그들의 돌봄을 받는 우리도 똑같은 부지런함으로 서로를 섬겨야 합니다.
우리를 섬기라고 천사들을 준비시켜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서로를 섬기라고 우리도 준비시켜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예언, 가르침, 믿음, 지혜, 지식, 영분별, 긍휼, 권면, 구제, 다스림, 섬김, 기적, 치유, 방언 등 여러 은사들을 주셔서 교회의 유익,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일하도록 하십니다. 우리의 은사들은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서로를 잘 섬기라고 은사들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세워주고 도와야 합니다. 교제가 무엇입니까? “예배 후에 친교가 있습니다.”라고 하면 보통 음식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교제는 그 정도가 아닙니다.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서로 관심과 돌봄을 나누는 것입니다.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며 섬겨야 합니다.
참된 사랑이 있는 곳에는 겸손이 있게 마련입니다. 교만과 염려는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반면, 겸손은 이웃에게 관심을 기울입니다. 염려할 때 잘 생각해보십시오. 온통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기울이니까 염려가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겸손하지 않고 교만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그럴 때는 말씀으로 돌아가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더욱 힘써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여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분에 대해 알면 알수록 우리는 겸손해질 것입니다. 그분이 겸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나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주신 것처럼, 우리도 나 자신을 기꺼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내어놓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보면, 인간의 몸이 신경조직, 근육, 뼈, 인대, 장기 등으로 연결되어 있듯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한 지체가 몸의 나머지 부분과 분리되어 존재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각자도 혼자서 존재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해줍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정말로 믿는 것이 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자체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었다는 말인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일원으로 살아가지 않으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조지아(Georgia) 주에서 어떤 젊은 20대 초반의 여성이 호수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로프에 걸려서 상처가 났습니다. 그런데 별 것 아닌 줄 알았던 것이 이상한 세균이 들어가서 팔다리를 잘라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팔다리를 절단해서 살아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꿋꿋하게 버티는 모습을 보였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팔이 잘려 나가면 더 이상 그 몸의 지체가 될 수 없고 곧 썩어져 버립니다. 팔다리가 잘렸어도 본체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잘려나간 팔은 살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혼자 살겠다고 해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생명이 없어서 썩을 뿐입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씀해줍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건강하고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모든 멤버들이 서로를 신실하게 돌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한 지체라도 제대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면 그 몸은 잘못되고 무기력해집니다. 우리가 아주 작은 상처가 나도, 새끼손가락이 아주 약간 cut 되어도 몸 전체가 열이 납니다. 어느 한 지체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그 지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 전체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교회는 결코 건물이나 조직이 아닙니다. 교회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인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모임,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브루스 라슨(Bruce Larson)이라는 장로교 목사님이 계십니다. 은퇴하신 분인데, 자신의 책 에서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합니다. “인근의 술집은 어쩌면 그리스도가 교회에 주기 원하는 교제와 가장 비슷한 모조품을 주는 곳일지도 모른다. 그곳은 은혜 대신에 술을, 현실보다는 현실도피를 제공하는, 일종의 가짜이다. 그러나 관대하고 솔직하며 포괄적인 교제의 장이다. 웬만한 일에 충격을 받지 않고 민주적이다. 비밀을 말해도 대개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옮기지 않거나 옮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 술집이 번창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코올 중독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서로를 알고 알리고 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갈망을 인간의 마음속에 두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약간의 맥주를 값으로 치르고 이 모조품을 찾는다.”
여러분, 교회가 바로 이러한 참된 교제의 장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목장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함께 모여 진정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서로를 치유해주고 세워주고, 그래서 한 팀이 되어 아직 주님을 모른 채 방황하고 있는 분들을 주님께 인도하자는 것입니다. 교제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단순히 주일예배에 참석한다고 해서 채워지지 않습니다. 참된 교제는 작고 친밀한 모임을 통해 서로 마음을 나눌 때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참된 교제를 나눌 때 우리의 염려가 없어집니다. 정말 사랑하고 섬기면 염려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참된 교제를 나누는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판단하거나 괴롭히지 않습니다. 말을 톡톡 쏘아서 화가 나게 자극하거나 시기하지 않습니다. 거짓말하거나 험담을 하지 않으며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참된 교제는 서로를 세워가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서로를 받아들이고 서로에 대해 친절하며 인정이 많습니다. 서로 참아주고, 용서하고, 섬기고, 환한 얼굴로 환영해주고, 사랑으로 바로잡아주고, 서로 순종하고, 위로해줍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보여주는 참된 친교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면 축복과 영적 성장을 경험하며, 염려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속마음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형제자매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나누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지 않으려 애씁니다.
그러나 자기 문제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도움을 구하며 그것을 위해 형제자매들이 함께 기도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괴로움을 나눌 수 있는 믿음의 공동체가 있는 사람은, 오히려 똑같은 죄를 다시 범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반면 드러내지 않고 쉬쉬 할 때 계속 그 죄 안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러나 죄를 드러내고 그것을 놓고 함께 기도할 때 치유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서로 죄를 고백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 큰 효력을 냅니다.” (약 5:16)
독일 나치에 의해 죽임을 당한 순교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라는 분이 있습니다. 39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는데, 뉴욕에 공부하러 왔다가 자기는 조국에 진리를 선포해야 한다고 돌아갔다가 잡혀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여러 책들을 썼는데 <함께하는 삶 Life Together>이라는 책에서 서로에게 죄를 고백하는 특권과 관련해 이렇게 말합니다.
“죄는 사람을 외톨이로 만든다. 죄는 사람을 공동체로부터 끌어낸다. 사람이 고립될수록 죄의 세력은 더욱 그에게 해를 끼치게 될 것이고 그는 더욱 죄에 빠져들며 그의 소외는 더욱 지독한 것이 되어간다. 죄는 알려지지 않은 채 남아 있기를 원한다. 죄는 빛을 멀리한다. 죄는 드러나지 않은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의 전 존재에 독을 퍼뜨린다. 이런 일은 경건한 공동체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고백을 할 때 복음의 빛이 어둠을 뚫고 들어온다. 우리는 죄를 빛 가운데로 내어놓아야 한다. 숨기고 있는 죄를 솔직하게 말하고 알려야 한다. 비밀스럽고 감추어진 것들은 모두 드러나야 한다. 죄를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는 한, 이것은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놋문과 쇠빗장을 깨뜨리셨다.”
우리의 죄를 서로 고백하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교제를 더욱 풍성하고 깊이 있게 만듭니다. 그러한 공동체 생활을 하는 사람은 얼마나 큰 힘을 얻겠습니까. 그런 면에 있어, 오늘 본문 갈라디아서 말씀은 모든 크리스천 공동체가 운영 지침으로 삼아야 할 핵심 원리를 말해줍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 6:1-2)
[나가는 말]
문제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거나, 자신의 문제를 내어놓지 못한 채 숨기고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함께 이 일을 놓고 기도합시다. 함께 옳은 길로 걸어갑시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회복을 가져다주는 돌봄이고 섬김입니다.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기만 한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면 형제자매의 문제나 잘못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덮어두는 것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 형제자매를 회복시킬 책임이 있습니다.
자, 여러분, 다시 한 번 주위를 돌아보십시오. 천사가 이제는 보이십니까? 물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우리 주변에는 천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천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삶에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날 때,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우리를 돌봐주는 천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혹시 지금 힘든 가운데 있다면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동시에, 천사의 돌봄을 받는 우리도 서로를 돌보고 섬기며 자신의 마음을 나누고 기도해주는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러한 교제를 나눌 책임은 우리 각자에게 있습니다. 진정한 교제와 섬김에는 염려의 짐을 해결하는 엄청난 파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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