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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히브리서

히 1장 1-3절(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 - 이삼규

by Preacher 2023.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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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장 1-3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삼규 목사 20160228

낙양교회 http://nakyang.onmam.com

 

히 1: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히 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표현으로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마지막 날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히1:1-3)

 

히브리서 기자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영원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히 1:3)라는 말씀을 통해 계시하시려는 모든 것을 깨닫기를 소원합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믿고 의지합니다. 다시 말해 성경은 하나님이 숨결을 불어넣으심으로써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성경을 믿기 때문에 예수님이 ‘참 하나님에게서 오신 참 하나님’이시라고 믿고 고백합니다. 믿습니까?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에 대한 기록이야말로 이 광대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글입니다. 성육신은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와 거하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 즉 우주를 만드셨고 만유를 능력의 말씀으로 붙들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갓난아기로 우리 가운데 나타나신 것입니다. 어머니의 품에 안긴 그분이 울었을 때 어머니가 그분을 달래어 잠들게 했습니다. 얼마나 크고 놀라운 비밀입니까!

 

요즘 어떤 목회자들은 교인들에게 “신학자들이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더라도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동정녀 탄생이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그렇게 조언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마리아가 동정녀였느냐 아니면 그냥 젊은 여자였느냐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젊다는 것이 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동정녀에게서 예수님은 탄생하셨습니다. 믿습니까? 영광의 광채시요 본체의 형상 우리가 어느 시대에 살든, 어디에 살든 관계없이 참된 신자라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지위에 대해 겸손하지만 단호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신자들은 그리스도가 진정 하나님이시며, 모든 면에서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는 분이심을 굳게 믿으며 살아갑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히 1:3).

 

그리스도에 대한 히브리서의 이런 증거는 사도 바울이 예수님에 대한 증거한 것과 일치하며 또 그것을 지지합니다.

 

골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시니

골 2: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이것은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붙드는 진리입니다. 교파마다 세례의 방법이나 교회의 정체(正體), 주님의 재림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씩 견해를 달리할 수 있지만 영원한 아들의 신성(神性)에 대해서는 모두 같은 목소리를 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된 분이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나신 분으로 아버지와 본질이 동일하신 분이십니다(니케아신경 참조).

 

히브리서 기자는 박해로 인해 낙심 중에 있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계시에 대해 증거 하였습니다.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다른 분’이 오셨다고 말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증거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육체로 이 땅에 오셨지만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셨습니다. 그분이 아버지, 즉 성부 하나님은 아니셨지만, 성부께서는 성육신하지 않으셨고 앞으로도 하지 않으실 것이기에 그분은 성자 하나님으로서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요 그 본체의 형상이 되십니다.

 

오늘 본문에 사용된 ‘영광’(독사)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신성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의미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 중에 본래 그 단어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과 외경스러움을 상실하고 그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 있는데, ‘영광’(독사)라는 단어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 일에는 옛 화가들의 영향이 큽니다. 그들이 여러 그림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후광(後光), 즉 그분의 머리 둘레에서 밝은 빛을 내는 둥근 테처럼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영광은 머리 둘레에서 밝은 빛을 내는 둥근 테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영광은 몽롱한 노란 빛이 아닙니다.

 

그분의 영광은 천상의 존재들이 그리스도 앞에서 감히 그분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얼굴을 가리도록 만드는 것이 그분의 영광입니다. 그분의 영광은 그들로 하여금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계4:8)라고 찬양하며 경배하게 만듭니다. 그분의 영광은 온 우주로 하여금 그분을 찬양하게 만듭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그분의 피조물들에게 그분을 사랑하고 경배하라고 요구합니다. 그 영광으로 인해 그분은 온 우주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드러내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분은 쏟아져 나오는 찬란한 빛과 같이 하나님의 모든 것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드러내실 때도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내셨습니다. 이처럼 그분의 하나님의 인격의 형상이십니다.

 

여기에서 ‘인격’이라는 말은 이해하기 쉬운 단어가 아닙니다. 교회사를 통해 볼 때 신학자들도 이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격은 때로는 ‘실체’ 또는 ‘본질’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늘 개역개정판 성경에서는 ‘본체’(휘포스타시스)라고 부릅니다. 광대한 피조세계의 근원이 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은 그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떠 바치고 계시며, 그것들을 유지하고 계십니다. 인간의 머리로는 그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인격(하나님의 모든 것)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제시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형상’이라는 말은 ‘카라크테르’라고 하는데 중요한 직책을 맡은 사람의 문서나 편지가 진짜임을 증명해주는 인장을 밀랍(蜜蠟)에 꾹 누를 때 생기는 자국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그리스는 신성에 가시적(可視的) 형태와 신빙성을 부여하십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눈에 보이도록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질문은 인간이 지난 역사 속에서 다른 어떤 질문보다 더 많이 던진 질문입니다. 어린 아이들조차도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세요?”라고 묻습니다. 빌립도 그 자신을 위해, 또 인류를 위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러면 족하겠나이다.”(요14:8)라고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철학자들도 거듭 이 질문을 던지곤 했습니다. 수많은 종교인들과 사상가들이 수천 년 동안 이 질문을 붙잡고 씨름해왔습니다. 바울 사도가 아덴에서 전도할 때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행 17: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행 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바울은 우주 안의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그분의 임재는 살아 있는 음성이 되어 울려 퍼지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분을 더듬어 찾도록 만듭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죄로 인해서 사람들은 눈이 멀었고 그들의 귀는 둔해졌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진리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죄는 인간을 ‘혀가 없는 새’처럼 만들어버렸습니다. 혀가 없는 새는 노래하고 싶은 본능과 욕구가 있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전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얼마나 적절한 표현입니까! 우리는 시간의 피조물입니다. 우리의 손 안에, 우리의 몸 안에는 ‘시간’이 있습니다.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늙게 하고 결국은 죽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마음속에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타락한 사람들의 비극 중 하나는 마음에 심겨진 영원과 몸 안에 있는 시간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결코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한 가치를 심어두셨습니다. 사람은 그것을 채우기 위해 언제나 무엇인가를 계속 찾고 추구함으로써 자신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즉 우리가 잊어버린 것은 하나님의 존재가 아니라, 그분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입니다.

 

철학은 이런 문제에 대해 답을 주려고 부단히 노력해온 것은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우주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어떤 존재’를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사람들에 따라 그 존재는 법칙, 에너지, 마음, 또는 본질적 덕(德)이라고 부릅니다. 토머스 에디슨은 “내가 아주 오래 산다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예민한 기계를 발명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에디슨은 유명한 발명가입니다. 그는 지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철학자라고 불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의 종교들은 하나님에 대해 이런저런 답을 내 놓으려 애를 써온 것은 사실입니다. 조로아스터교(배화교/拜火敎)는 하나님을 빛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태양과 불 등 여러 가지 형태의 빛을 숭배합니다. 또 어떤 종교들은 양심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거나 덕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종교는 우주를 유지시켜주는 ‘원리’가 하나님이라고 믿으며 위안을 얻고자 합니다.

 

헬라의 이교도들에게는 판테온(판/모든, 테온/신-로마의 모든 신에게 바치는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해가 동쪽에서 떠서 강렬한 열과 빛을 발하며 서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그것을 ‘아폴론’(빛과 태양, 이성과 예언, 의술, 궁술, 시와 음악을 관장하는 신)이라고 불렀습니다. 해안에서 큰 소리를 내며 부는 바람은 ‘에오소’(바람과 별의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바다의 물이 세차게 물려와 거품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는 ‘넵투누스’라고 했으며, 곡식이 풍성하게 익은 들판 위를 맴도는 여신을 상상하며 그것은 ‘케레스’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이교도적 상상력을 동원한다면 무한히 많은 신과 여신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서 1장은 이처럼 많은 신과 여신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인간의 타락한 영적 상태를 지적합니다. 죄의 손아귀에 사로잡힌 인간은 살아 계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외면하고 그분을 그들의 삶에서 제외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분 대신에 새와 짐승과 파충류를 그들의 신으로 삼는 도착적 증상을 보인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에 대해 순수하게 생각하지 못할 때 교회는 쇠퇴하기 시작 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품격 있게 사고해야 하고, 그분께 합당한 표현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조상들의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그들은 은혜를 통해 자신을 그분의 자녀로 삼아주신 하나님 앞에서 숨이 멎을 것 같은 경외심과 감동에 사로잡혀 무릎을 꿇고 그분께 경배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계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최종적이고 완전한 답은 예수님이 주셨습니다.

 

요 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갖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으로서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 더 이상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본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모든 것을 본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동일하게 생각하시고, 동일하게 느끼십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동일하게 행하십니다.

 

요 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요즘 일부 이단들이 “아버지만 참 하나님이시고 성자는 피조물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주님이 주장하신 말씀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주장입니다.

 

요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계시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라고 물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하나님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우리는 하나님이 타락한 여자를 어떻게 여기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요 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우리는 하나님이 어부들과 노동자들과 보통 사람들에 대해 어떤 마음을 품고 계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막 1: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우리는 하나님이 어린 아이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 19:14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예수님은 우리의 세상에 계셨습니다. 그분은 이 모든 것에 대해, 우리와 관련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말씀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그분의 말씀을 들은 자들은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놀랐습니다.

 

마 7: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마 7: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요 7:46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을 찾아보십시오. 그러면 그 일에 대한 또는 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펼쳐진 한없이 넓은 피조 세계를 둘러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성육신보다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을까요? 그것만큼 완전한 것을 볼 수 있을까요? 그것처럼 경외감을 부러 일으키는 것이 있을까요?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회복하시며, 우리를 완전히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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