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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나훔

나 2장 3~7절(강해 6 - 니느웨를 치러 오는 자의 모습) - 윤희주

by Preacher 2023.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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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2장 3~7

니느웨를 치러 오는 자의 모습 [강해 6]

윤희주 목사

신행카페 http://cafe.naver.com/pasu7777/

 

●(3절) 그의 용사들의 방패는 붉고 그의 무사들의 옷도 붉으며 그 항오를 벌이는 날에 병거의 철이 번쩍이고 노송나무 창이 요동하는도다.

 

[항오]-'군대를 편성한 행렬' 을 말합니다. 앗수르를 치러 오는 군사들의 옷과 방패 색깔까지도 심판을 상징하는 붉은 색깔이요 그들이 가지고 온 무기가 굉장한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병거의 철이 번쩍이고 노송나무 창이 요동하는도다 라고 표현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앗수르가 당할 수 없을 정도의 군대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4절) 그 병거는 거리에 미치게 달리며 대로에서 이리저리 빨리 가니 그 모양이 횃불 같고 빠르기 번개 같도다.

 

적군이 쳐들어 와서 사정없이 앗수르를 공격하고 점령해 버림을 표현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니 바벨론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횃불같은 모양이 번개같이 빠르다고 했습니다. 마차가 거리를 쏜살같이 달리면서 마구 죽이고 부숴 버리는 것입니다. 밤에 횃불을 단 병거가 거리를 미치게 달리며 불을 지르고 쳐 부수고 한다면 번개처럼 빠르게 보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바벨론에게 붙이셨기에 앗수르로써는 방법이 없습니다. 무조건 처참하게 망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앗수르에게는 불가항력입니다.

 

●(5절) 그가 그 존귀한 자를 생각해 내니 그들이 엎드러질 듯이 달려서 급히 성에 이르러 막을 것을 예비하도다.

 

앗수르 왕이 바벨론을 막기 위해 생각해 낸 것이 지난날에 다른 나라들을 정복해 나갈 때 특별히 성과가 많았던 훈련되고 경험 많은 정예부대를 투입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들을 '존귀한 자' 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이상합니다. 엎드러질 듯이 달려서 급히 성에 이르러 막을 것을 예비하도다 적군을 막도록 보냈더니 '엎드러질 듯이 달려서' 라 했습니다. 엎어질 듯이 비실비실하다는 말입니다. 바벨론이 볼 때 앗수르의 최고 정예부대가 저 정도로 부실하니 앗수르는 썩은 감자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버린 자들은 전쟁이든, 사업이든, 공부든, 무엇에든 간에 질 수 밖에 없고 실패할 수 밖에 없고 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교훈하십니다. 우선은 잘되고 흥하고 강해진 것 같으나 결국은 실패고 멸망함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이 시편에서 고백한 것처럼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만사가 다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손을 뗀 것에는 절대 승리가 있을 수 없습니다. 다윗은 전쟁하러 갈 때마다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치러 가라 하시면 백전백승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준비하고 무장하여 올라가 보면 이미 하나님께서 다 이겨 놓으셨습니다. 그냥 승리만 챙기면 되었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는 사실을 알게 하셨지요. 이때 앗수르가 바벨론보다 약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앗수르는 이미 세계 최강의 나라였고 바벨론은 이제 막 시작된 신생 국가였지만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손에 앗수르를 맡기셨기에 아무리 강한 정예부대가 성을 막아도 허사였습니다. 아무리 치밀한 계획과 경험과 자금으로써 사업을 구상하고 경영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손을 떼 버린 사업은 결국엔 망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사업에나 공부에나 가정생활에나 무엇에든지 범죄로 인해 하나님의 손에서 버려지면 결국엔 실패요 망하여 버림을 알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6절)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소멸되며.

 

정예부대가 급히 달려가 성문을 막으니 바벨론은 강을 타고 들어와 공격하더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 자와 주지 않은 자의 대처 방법이 이처럼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자기들 경험과 생각에는 성문을 막아야 한다지만 지혜를 받은 자들은 강을 타고 습격한 것이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지 못하는 하나님의 생각으로 모든 면에서 성공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지 않으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라고 하신 말씀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앗수르가 성문을 굳게 닫고 경계를 했으나 바벨론은 강을 타고 들어와 수문을 체치고 쳐들어 왔으니 파수꾼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간 것이지요. 우리 인생사 모든 일에서 우리가 노력하고 애를 써온 파수꾼의 경성함들이 허사가 되지 않도록 늘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늘 회개하며 감사하는 생활로 범죄와 멀리 하고 하나님의 손을 꽉 붙잡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7절) 정명대로 왕후가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가며 그 모든 시녀가 가슴을 치며 비둘기같이 슬피 우는도다.

 

[정명(定命)대로]-'정할 定, 명령 또는 목숨 命 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주셨던 명령대로라는 말씀이지요. 앗수르가 반드시 멸망하고야 만다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왕은 죽임을 당하고 왕후는 그 화려한 옷을 벗기우고 수치스럽게 끌려 간다는 것이고 시녀들은 구슬피 우는 비둘기처럼 슬피 울며 따라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앗수르가 심은 그대로 거두게 된다는 것이지요.

 

앗수르는 B.C. 722년에 북쪽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멸망시키더니 B.C.701년에는 산헤립이 십팔만 오천의 군사를 이끌고 남쪽 유다마져 정복하려고 쳐들어 왔다가 히스기야 왕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 밤에 십팔만 오천의 군사 모두를 죽여 버리셨습니다. 산헤립은 그길로 자기 나라로 도망쳤으나 자기 아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지요. 그 후 아들이 집권하면서 범죄로 일관하다가 B.C. 612년에 바벨론이 쳐들어와 니느웨가 먼저 함락되고 B.C. 605년에 앗수르 전체가 멸망하고 말았으니 하나님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세계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고 나훔서의 예언이 현대과학에 의해 앗수르 멸망 전의 기록임도 증명되었으니 어찌 나훔서에서 교훈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우리들이 지키지 않겠습니까? 믿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성경 전체가 인간의 과학으로도 사실 증명이 완벽하게 되어지는 현 시대에 사는 우리들이 어찌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일들을 하지 않으려 합니까?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들만 하다가 결국엔 멸망 당하는 자리에 갈 것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이키기 전 우리 성도된 자들부터 회개해야 하고 교회부터 회개해야지 세상도 회개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왜 세상이 회개치 않고 하나님을 모욕하고 교회를 핍박하고 무시합니까? 성도가, 교회가, 회개치 않고 세상 못지 않게 부패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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