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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나훔

나 2장 8~13절(강해 7 - 니느웨의 멸망 1) - 윤희주

by Preacher 2023.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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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2장 8~13

니느웨의 멸망(1) [강해 7]

윤희주 목사

신행카페 http://cafe.naver.com/pasu7777/

 

●(8절)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못 같더니 이제 모두 도망하니 서라 서라 하나 돌아보는 자가 없도다.

 

'물이 모인 못 같다' 는 말씀은 니느웨가 살기 좋은 도시라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살기 좋은 도시에 모여 살기를 좋아합니다. 큰 도시에서 살면 살기에 편하고 공부시키기에도 좋고 돈벌기도 좋고 여러가지 조건들이 시골보다는 월등하기에 골짝 골짝에서 물이 흘러 들어 큰 저수지를 이룸 같이 많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몰려 들어 큰 도시를 이루는 것이지요. 이제 모두 도망하니 서라 서라 하나 돌아보는 자가 없도다 이런 큰 니느웨 성을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통해 간섭해 버리시니 그동안 모아둔 재산이고 고향이고 자식이고 모두 버리고는 살겠다고 뒤도 돌아 보지 않고 도망쳐 버리더라는 말씀입니다. 육신의 생명을 위해서는 그동안의 모든 공이나 노력들을 다 버릴 줄 알지만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는 과연 무엇을 희생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와 복음을 위해 가족이나 물질을 희생한다면 땅에서 백배나 받고 핍박도 겸하여 받으나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육신의 생명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하는 니느웨 백성들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9절) 은을 노략하라 금을 늑탈하라 그 저축한 것이 무한하고 아름다운 기구가 풍부함이니라.

 

[늑탈]-'폭력이나 위력으로 빼앗음' 입니다. 이 말씀은 앗수르를 침략한 바벨론을 보고 하신 말씀입니다. 앗수르가 한 것처럼 바벨론 역시 은, 금을 노략하는 것이지요. 심은대로 거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늘 감사하면서 올바르게 사용하면 그 은혜를 길이 누리게 하십니다만 하나님이 금하신 방법으로 모은 재산을 자기 이기주의로 사용한다면 옳게 써 보지도 못할 뿐더러 때가 되면 다 날라가 버림을 명심해야 합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다른 나라를 침략해 약탈해 온 전리물들을 우상 숭배에 사용하고 자신의 쾌락을 위해 모아 두고 사용했기 때문에 바벨론이란 다른 나라에 다 빼앗겨 버리고 겨우 목숨만 구제해야 할 처지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물질을 모을 때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모아야 하고 사용할 때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물질을 오랫동안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10절) 니느웨가 공허하였고 황무하였도다 거민이 낙담하여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히며 모든 허리가 아프게 되며 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

 

문명이 발달되었고 건물이 훌륭하고 도로도 잘 뚫려 있고 좋은 조건들을 많이 갖추었던 니느웨가 범죄로 타락하니 공허하고도 황무하게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일시에 다 잃어 버리면 그 공허함과 황무함 때문에 자살하고 싶은 충동까지 생기는게 인간입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실 때에 항상 감사하며 겸손하게 살아야 하는데 니느웨처럼 교만하고 범죄로 살면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는 것을 교훈하고 계십니다. 거민이 낙담하여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히며 모든 허리가 아프게 되며 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 이 말씀은 한마디로 희망이라곤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침략이 얼마나 무서운지 무릎이 서로 부딪힐 정도로 떨게 된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면 모아 두었던 재산은 소리를 치며 나가고 모든 것이 공포로 변해 버린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허리가 아프게 되며 허리란 성경에서 힘에 비유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씀입니다. 허리는 힘을 쓰는 부분입니다. 허리가 아프다는 말씀은 아무 힘도 쓸 수 없는 지경이라는 말씀입니다. 전에는 물질의 힘을 믿고 권력의 힘을 믿고 까불었으나 하나님의 간섭이 임하면 그런 믿던 힘이 아예 없어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무능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되고 만다는 말이지요. '모든 허리가 아프게 되며' 라 했으니 나에게 힘이 될만한 모든 것들이 다 힘을 잃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의 범죄란 인생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원흉입니다. 그리고 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 라 하셨습니다. 바벨론의 침략이 얼마나 두려웠던지 얼굴색이 사색이 되어 버린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보이는 것 중심으로 의지하고 산 결과가 얼마나 무서우냐? 를 가르치십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는 성도는 주변의 어떠한 사건에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홍수가 나고 지진이 나도 굳건히 살 수 있습니다. 북한이 아무리 핵으로 위협해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반석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붙잡고 산다는 것은 반석 위에 집을 짓고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1절) 이제 사자의 굴이 어디뇨 젊은 사자의 먹는 곳이 어디뇨 전에는 수사자 암사자가 그 새끼 사자와 함께 거기서 다니되 그것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었으며.

 

앗수르 사람들이 얼마나 강건했던지 마치 사자와 같았다는 말씀입니다. 앗수르는 다른 여러 나라들을 침략하고 많은 것을 탈취해 오고,,, 그야말로 무적의 나라였습니다. 감히 어느 누구도 엿볼 수 없는 강대국이었습니다. 그런 앗수르였지만 하나님이 간섭해 버리시니 사자의 굴이 어디뇨 젊은 사자의 먹는 곳이 어디뇨 앗수르의 살던 곳이 어딘지도 모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강했던 앗수르의 위세를 찾아 볼 수도 없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12절) 수사자가 그 새끼를 위하여 식물을 충분히 찢고 그 암사자를 위하여 무엇을 움켜서는 취한 것으로 그 굴에 채웠고 찢은 것으로 그 구멍에 채웠었도다.

 

앗수르가 강력한 군사력으로 여러 나라를 침공해 빼앗아 오는 모습을 사자의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빼앗은 전리품으로 풍요를 누리며 잘 살았으나 하나님의 간섭으로 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물질을 모으고 명예를 얻고 권력을 얻었다면 언젠가 하나님의 간섭하심 때문에 하루 아침에 모두 잃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을 니느웨가 멸망한 역사적 사건으로 수천년 후의 사람인 지금 우리들에게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니느웨의 경고를 기록하여 나훔서로 남겨 두신 것은 우리들도 현대판 니느웨의 백성이 되면 안된다는 것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는 교회 장로고 집사면서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사는데도 잘만 살고 망하기는 커녕 자식까지 잘만 되더라는 생각을 혹 하십니까? 여러분이 모르는 또다른 면이 그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있든지 아니면 니느웨와 같은 이방인도 못되는 하나님의 관심 밖의 사람이어서 그런 것이니 부러워할 이유도 말씀을 의심할 이유도 없음을 아셔야 합니다. 성경이 하시는 말씀은 시대를 불문하고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임을 머리로만 인정하지 마시고 실지 삶에서 명심하셔야 합니다.

 

●(13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너의 병거들을 살라 연기가 되게 하고 너의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내가 또 너의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너의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파견자]-'전쟁시 상대방에게 항복을 요구하기 위해 앞서 보내는 자' 를 말합니다. 한마디로 범죄에서 회개치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대적이 되시니 끝장난다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말씀대로 살며 회개하며 산다면 하나님께서 동맹이 되시니 매사에 형통자가 된다는 말씀이지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형통의 복이 임하십니다. 왜 하는 일마다 형통치 못하고 지지리도 고생만 하고 어렵기만 합니까?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이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내가 뭐 그리도 순종하지 않는단 말인가? 라는 생각을 하지 마시고 말씀을 펴 놓으시고 촘촘히 점검해 보십시요. 그래도 깨달음이 없다면 깨달음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보십시요. 왜 어렵게 사는지에 대한 해답을 하나님께서 분명히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우선하는 우상이 있거나 형제를 사랑하기는 커녕 형제의 것을 탐내고 강포를 행하고 빼앗는 자에게는 니느웨의 상황이 분명 임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너의 병거들을 살라 연기가 되게 하고 앗수르는 전쟁에서 병거의 위력이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그런 위력이, 즉 그렇게 믿었던 세상적 세력이, 연기처럼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절대 없어지지 않을 재산이 엄청나고, 나를 받쳐 주는 권력도 엄청나니 하나님 말씀에 좀 등한시 하더라도 나는 끄떡없다! 는 분이 있습니까? 당신이 아무리 든든해도 앗수르만큼이야 하겠습니까? 요즘 상황으로 말한다면 당신의 재산이나 힘이 아무리 막강해도 미국 전체만큼이나 하겠습니까? 너의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여기 '젊은 사자' 란 앗수르의 막강한 군사력을 의미합니다. 사자는 물러설 줄 모르는 짐승의 왕입니다. 젊은 사자니 그의 위세는 절대 쇠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러나 바벨론의 칼에 멸절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내가 또 너의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다른 나라를 침략해 노략해 온 물질로 호화로이 사치하며 잘 살았으나 한순간에 거지 꼴이 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너의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앗수르가 다른 나라를 침공할 때는 파견자를 보내어 먼저 항복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이제는 그럴 일이 없을 것이란 말씀입니다. 앗수르가 남쪽 유다를 침공했을 때 먼저 사자를 보내어 항복을 강요했었지요. 산헤립 왕이 랍사게란 장군을 파견자로 보내어 항복하라고 유다를 위협했습니다(사 36:1~22). 뭐라 위협했는가 하면 빨리 성문을 열고 항복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들이 대변을 먹고 소변을 마시리라 고 위협했는데 더 가관인 것은 유다의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그에게 사정하기를 우리 백성들이 아람어를 알아 들으니 백성들이 알아 듣지 못하도록 당신들 나랏말로 하라고 부탁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랬더니 백성들도 알아 들어야 한다고 오히려 더 큰 소리로 위협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짓도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임하면 망해 버리고 마니 다시는 더 할게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심은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자에게는 은혜의 법칙을 적용하시고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의 법칙을 적용하신다는 사실도 배우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육신의 생명을 위해서는 그동안의 모든 것들을 다 버려두고 도망치는 인생들이 과연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는 무엇을 투자하는가? 라는 가르침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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