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약 --------------------/역대하

대하 16장 7-10절(온 땅을 살피는 눈) - 문기태

by Preacher 2023. 12. 26.
728x90
반응형

대하16장

온 땅을 살피는 눈

문기태 2020.11.28

창원침례교회 http://whttp://www.changwon.or.kr/

 

그 무렵 하나니 선견자가 유다의 아사 왕에게 와서 말하였다. "임금님께서 시리아 왕을 의지하시고, 주 임금님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셨으므로, 이제 시리아 왕의 군대는 임금님의 손에서 벗어나 버렸습니다. 에티오피아 군과 리비아 군이 강한 군대가 아니었습니까? 병거도 군마도 헤아릴 수 없이 많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임금님께서 주님을 의지하시니까, 주님께서 그들을 임금님의 손에 붙이지 않으셨습니까? 주님께서는 그 눈으로 온 땅을 두루 살피셔서, 전심전력으로 주님께 매달리는 이들을 힘있게 해주십니다. 이번 일에, 임금님께서는 어리석게 행동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임금님께서는 전쟁에 휘말리실 것입니다." 아사는 선견자의 이 말에 화를 참을 수가 없어서, 그를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그 만큼 화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그 때에 아사는 백성들 가운데서도 얼마를 학대하였다.(역대하 16장 7-10절)

 

참 아름다운 믿음으로 견고하게 서서 좋은 열매를 많이 맺는 분들을 보면 큰 감동이 됩니다. 늘 기도에 힘쓰고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순종하는 모습은 너무 아름답고 고귀하게 느껴집니다. 주님의 사랑을 섬김을 통해 열심히 실천하고 주님의 몸인 교회와 지체들을 귀하게 여기는 일군들은 교회의 보배입니다. 이런 분들과 끝까지 함께 하며 주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면 너무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름다운 믿음으로 충만하며 언제까지나 함께 하자고 하던 분들이 어느 순간에 우리 곁을 떠나갑니다. 아름답기만 하던 믿음이 사라져 버려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타깝게 만들기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우리 주변에서 종종 일어나는 것일까요?

 

유대나라 아사 왕은 르호보암의 손자로서 유대 제 6대 왕이었습니다. 성경은 아사를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였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아사는 왕이 되고서 유대 백성들이 섬기는 우상을 모조리 제거하였고 특별히 자신의 할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다고 해서 태후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우상을 토막 내어 불살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사는 그의 아버지가 구별하여 놓았던 것과 자신이 거룩하게 구별하여 놓은 금과 은과 그릇들을 성전에 바쳐 드림으로 주님을 사모하는 한결같은 마음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율법과 명령들을 실천하게 하였습니다.

 

에티오피아 세라가 백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왔을 때도 먼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주 하나님, 우리를 도와 주십시오. 주님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주님을 이기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나갔더니 주님이 에티오피아군을 치셔서 대승을 거두고 대단히 많은 전리품을 얻고 돌아왔습니다. 그때 아사랴 선지자가 나가 맞으며 주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임금님이 주님을 떠나지 않으면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떠나지 않으시고 임금님이 주님을 찾으면 만나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임금님이 주님을 버리면 주님도 임금님을 버리실 것입니다." 아사는 성전 제단을 보수하고 소 칠 백 마리와 양 칠천 마리를 잡아 희생 제사를 드리고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주 하나님만 찾기로 언약을 맺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35년 동안 전쟁이 없는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누구든지 진실과 정직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찾기만 하면 기뻐하시고 넘치는 복을 주십니다. 온 땅을 두루 살피시고 전심전력하여 주님을 의지하는 자를 발견하면 그에게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런데 아사 왕이 노년에 믿음이 변질되었습니다. 아사가 일찍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능력을 많이 경험했지만 인생 후반부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됩니다. 그로 인해 아사는 불행하게 말년을 보내고 비참하게 생을 끝내고 맙니다.

 

그가 왕이 통치한지 36년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을 침략해 왔습니다. 큰 두려움에 사로잡힌 아사 왕은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며 능력을 구하여야 했지만 그러지 않고 그의 아버지 때부터 친분이 있던 이웃나라 시리아 왕 벤하닷에게 여호와의 성전에 고이 간직 되어 있던 금과 은을 있는 대로 다 모아서 갔다 바치며 말했습니다. "나의 아버지와 그대의 아버지가 동맹을 맺었듯이 우리도 동맹을 맺읍시다. 부디 오셔서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맺은 동맹을 파기하고 그를 쫓아 주십시오."

 

시리아 왕 벤하닷이 아사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군대를 이스라엘에 보내어 공격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왕 바아사는 즉각 침공을 멈추고 본국으로 돌아가고 아사 왕은 이스라엘 군대가 유다 공격을 하려다가 버리고 간 돌과 목재 등 자재들을 모아 성읍을 튼튼하게 보수하여 더 좋아졌습니다. 모든 문제는 깨끗하게 해결되고 평화는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 하나니 선지자가 아사 왕을 찾아와 말했습니다. "임금님께서 시리아 왕을 의지하시고, 주 임금님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셨으므로, 이제 시리아 왕의 군대는 임금님의 손에서 벗어나 버렸습니다.

 

에티오피아 군과 리비아 군이 강한 군대가 아니었습니까? 병거도 군마도 헤아릴 수 없이 많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임금님께서 주님을 의지하시니까, 주님께서 그들을 임금님의 손에 붙이지 않으셨습니까? 주님께서는 그 눈으로 온 땅을 두루 살피셔서, 전심전력으로 주님께 매달리는 이들을 힘있게 해주십니다. 이번 일에, 임금님께서는 어리석게 행동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임금님께서는 전쟁에 휘말리실 것입니다."

 

멋진 외교력으로 전쟁을 해결했습니다. 금과 은을 모아다가 바쳤으나 전쟁에 패배하여 약탈을 당하지 않게 하여 더 큰 경제적인 손실을 피했습니다. 나라는 다시 평안해지고 적이 공격하려고 가져온 자재들로 성읍을 튼튼하게 보수했으니 더 좋아졌습니다. 백성들도 모두 기뻐하고 왕의 지도력을 인정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고 얼핏 보기에 더 좋아진 것 같은데 아사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섭섭하게 해 드린 것입니다. 아사는 사람을 의지하느라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방법을 앞세우느라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아사의 마음과 시야에 이제 하나님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도 않았고, 선지자를 불러서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아사는 우상을 찾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점을 치거나 이방 선지자에게 물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섭섭해 하실까요? 왜 책망하실까요? 무엇이 잘못된 것입니까?

 

9절 온 땅을 두루 살피셔서 전심전력으로 주님께 매달리는 이들을 힘있게 해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무슨 문제를 만나든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서 오직 주님께 매달리기를 원하십니다. 먼저 주님께 문제를 가져와야 합니다. 모든 문제를 주님께 아뢰고 주님의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대신 주님을 의지하여 주님께서 능력을 나타내시도록 하기를 원하십니다. 아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시리아 왕을 더 의지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입니까? 사람입니까? 주님의 능력입니까? 인간의 방법입니까? 주님의 약속입니까? 물질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의 마음입니까?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을 모두 악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기 바랍니다. 군대가 쳐들어와도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이 싸워주시고 주님의 능력을 보게 될 것을 믿기 바랍니다. 사방으로 포위되고 빠져 나갈 길이 보이지 않아도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께 매달리기 바랍니다. 코로나가 숨통을 조이고 불안하게 해도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힘입어 이겨내기 바랍니다.

 

아사왕의 두 번 째 실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것입니다. 하나니 선견자가 찾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젊을 때에 에티오피아 대군을 하나님을 의지하여 물리치지 않았느냐? 하고 일깨워 주었습니다. 주님께서 그 눈으로 전심전력하여 하나님을 찾는 이들에게 살피시고 능력을 베푸신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번 일은 어리석게 행동한 것이라 자칫 전쟁에 휘말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아사 왕은 말씀을 달게 받아 들이고 회개를 해야 했습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때라도 하나님을 찾고 주님께 매달려야 했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말씀에 비추어 보고 어디서 잘못 되었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찾아내 주님께 잘못을 아뢰고 빨리 바로잡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화를 참지 못하고 선견자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오히려 죄 없는 백성들을 학대했습니다. 다윗은 큰 죄를 저지르고 은폐했지만 나단 선지자가 와서 책망할 때 달게 받아들이고 겸손하게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아사 왕은 선지자를 통한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화를 내고 선지자를 옥에 가둡니다. 회개하고 주님을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스스로 거부한 것입니다. 결국 아사는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남은 생을 스스로 화를 자초합니다.

 

아사왕의 세 번 째 실수는 마지막 기회를 거부한 것입니다. 삼 년 후 아사는 발에 병이 나서 위독하게 되었습니다.(12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플 때에도 그는 주님을 찾지 아니하고 의사들을 찾았다.' 의사들을 찾아가는 것이 죄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먼저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 혹시 이 질병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이 있습니까?" "주님, 이 질병을 통해서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해 주세요."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난 후 의사를 찾아도 늦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예 기도할 생각도 안하고 무조건 의사들을 찾아서 이 병원 저 병원 순례하는 것은 믿음의 사람답지 않은 모습니다.

 

아사왕은 의사들은 찾았으나 주님은 찾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선지자를 보내 말씀으로 돌이키게 하셨으니 듣지 않자 질병으로 말씀하시려고 하십니다. 중병에 들어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면 전능하신 주님께 매달리며 겸손하게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기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사는 끝까지 주님을 찾지 않고 죽었습니다. 그렇게 믿음이 좋던 아사가 왜 그렇게 변했을까요? 그토록 주님을 찾고 주님을 사랑하던 아사가 믿음 없는 사람으로 굳어졌을까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아무도 믿음을 자신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한 때 믿음이 좋아도, 주님을 향한 열심이 대단해도 언제 불신에 사로잡힐지 모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온 힘을 다하여 아름답게 헌신하여도 시험이 와서 믿음이 변질되면 안됩니다.

 

능력이 없어도 믿음이 충만하여 주님을 의지하면 주님이 능력을 베푸십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믿음이 있어 주님께 마음을 다하여 매달리면 주님이 일하시고 공급해 주십니다. 위험한 길을 걸어도 사방으로부터 공격을 당해도 믿음이 있어 주님을 찾으면 주님께서 다 감당하게 도와 주십니다. 온 땅을 두루 살피시며 믿음으로 충만한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눈에 여러분의 믿음이 발견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발견되어 주님의 능력을 위기 때마다 경험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까지 믿음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 늙어서도 존귀하게 빛나기를 축복합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