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36장 11~21
시드기야의 형식적인 신앙을 경계합시다
김준범 목사 201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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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36 장
11절: 시드기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일세라 예루살렘에서 십 일년을 치리하며
12절: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일러도 그의 앞에서 겸비치 아니하였으며
13절: 느부갓네살왕이 저로 그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케 하였으나 저가 배반하고 목을 곧게 하며 마음을 강퍅케 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14절: 제사장의 어른들과 백성도 크게 범죄하여 이방 모든 가증한 일을 본받아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거룩하게 두신 그 전을 더럽게 하였으며
15절: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 사자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16절: 그 백성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그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로 그 백성에게 미쳐서 만회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17절: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저희를 다 붙이시매 저가 와서 그 성전에서 칼로 청년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백발노옹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18절: 또 하나님의 전의 대소 기명들과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과 방백들의 보물을 다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19절: 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을 헐며 그 모든 궁실을 불사르며 그 모든 귀한 기명을 훼파하고
20절: 무릇 칼에서 벗어난 자를 저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주재할 때까지 이르니라
21절: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 밀씀요약 -----
시드기야는 유다의 마지막 왕입니다. 시드기야는 마지막으로 유다의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요시야 왕의 아들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드기야는 21세의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올라 11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시드기야에 대해서는 열왕기나 역대기에도 기록이 있지만, 예레미야서에 그와 관련한 여러 기록들이 있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으며 그의 신앙은 어떠했습니까?
시드기야의 형식적인 기도(렘 21장)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로부터 압박과 공격을 받을 때에, 시드기야 왕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특사를 보내어서 기도를 부탁한 것입니다(렘 21:1-2). 참으로 신앙적인 모습처럼 보입니다. 마치 히스기야 왕이 앗수르 왕 산헤립의 공격을 받아 예루살렘이 포위되었을 때에 기도를 요청한 것을 연상시키는 모습입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이번에도 기적적으로 예루살렘을 구하여 주시기를 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시드기야의 속내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애굽 왕에게 사신을 보내어서 애굽과의 동맹을 통해서 바벨론의 속박에서 구원을 얻게 되기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런 시드기야에 대해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미 여러 차례 바벨론에 항복하는 길만이 사는 길이라고 하나님의 뜻을 알렸습니다(렘 4-8, 13-15, 21, 27장). “내가 이 모든 땅을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 또 들짐승들을 그에게 주어서 부리게 하였나니...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는 나라는 내가 그들을 그 땅에 머물러서 밭을 갈며 거기 거하게 하리라... 제사장들에게도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살리라 어찌하여 이 성으로 황무지가 되게 하겠느냐”(렘 27:6,11,17)고 여러 번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시드기야는 명백하게 드러난 하나님의 뜻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긴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예레미야에게 기도 요청을 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뜻이 성취되기를 소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라는 형식만을 빌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기도라는 형식만 가지고 있었지, 그 내용과 실질에 있어서는 자기 생각을 구하고 자기 뜻이 이루어지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습니다. 이런 기도는 인본주의와 다른 우상을 섬기는 자들의 기도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시드기야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그들의 기도 요청에 응답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시드기야의 형식적인 회개(렘 34장)
또한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34장에는 유다가 망하기 1-2년 전 시드기야 왕 때의 유다와 예루살렘의 영적 형편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는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포함한 유다 전역을 전방위로 공격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시드기야 왕은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으로 언약을 맺게 하여, 사람으로 각기 히브리 남녀 노비를 놓아 자유케 하고 그 동족 유다인으로 종을 삼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본래 율법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동족 히브리의 종들을 매 6년마다, 그러니까 제7년 안식년이 되면 자유케 해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습니다(신 15:12). 계속 종으로 두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명령을 무시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렘 34:12-14). 하지만 이제는 바벨론 군대의 압박을 받고 아주 다급하게 되었고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고, 지금 유다 전역이 전쟁 중에 있었습니다. 아주 다급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언약식을 함으로써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변했고 얼마나 순종을 잘하고 얼마나 신앙적으로 바뀌었는지를 보여주는 언약식을 성대하게 가진 것입니다.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사이를 지나고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거기를 다 지나가게 한 것입니다(렘 34:18-19).
그들은 성대한 언약식을 열고, 만일 자기들이 언약을 어기면 쪼개어진 짐승처럼 그렇게 심판을 받아도 좋다고 하면서 결연한 의지를 표현했습니다. 겉으로 볼 때 얼마나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마치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다시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속내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회개는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잠시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에 대한 공격을 멈추었을 때, 그들은 마음을 바꾸어서 다시 그 노비들을 끌어다가 자신들의 노비로 부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회개는 하나님 앞에 무언가를 보여드리기 위한 형식적인 회개, 형식적인 신앙이었습니다. 그러한 회개는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힌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렘 34:16). 그들의 마음은 실제로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었고, 순전히 이 세상의 영광과 재물에 모든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영적 관심은 없고 순전히 세속적인 관심만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시드기야의 형식적인 신앙(렘 37-38장)
예레미야 37-38장에는 시드기야 통치의 거의 가장 마지막 시기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유다 나라와 예루살렘은 곧 함락되고 불타게 될 것이었습니다. 애굽 왕 바로 의 군대가 시드기야를 돕기 위하여 군대를 이끌고 출정을 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바벨론의 군대가 일시 물러났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시드기야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제라도 순종하여 느부갓네살에게 항복하면, 침몰해 가는 예루살렘과 특별히 성전과 그 거민들이 큰 욕을 당하지 않고 생명만이라도 건질 수 있는 그런 기회였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힘을 다해서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시드기야는 유다를 향해 불길한 예언을 하고 오히려 바벨론 제국의 편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 예레미야에 대해 분노하여 그를 시위대 뜰에 가두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방백들도 분노하여 그를 죽이기 위하여 진흙 구덩이에 그를 던져 넣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에도 시드기야는 다시 예레미야를 은밀하게 불러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내가 네게 한 일을 물으리니 일호도 내게 숨기지 말라”(렘 38:14). 이는 마치 시드기야가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때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 왕의 방백들에게 항복하면 예루살렘 성도 불사름을 입지 않고 시드기야와 그 가족들이 살 것이지만, 항복하지 아니하면 예루살렘 성이 갈대아인의 손에 불타고 시드기야와 그 가족들도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렘 38:17-18). 하지만 시드기야는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나 느부갓네살은 나를 안 죽인다 하더라도, 바벨론에 항복한 유대인들이 나를 조롱하고 죽이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면서 끝까지 의심한 것입니다(렘 38:19). 시드기야는 선지자를 불러서 그의 말을 듣는 형식은 다 갖추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믿지 않고, 의심할 수 있는 구석을 다 찾아서 의심하였고,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듣고 못 믿을 것만 생각해 냈습니다. 그리하여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마지막 조언도 거절하였습니다. 시드기야의 신앙은 참으로 형식적인 신앙이었습니다.
형식적인 신앙의 결말(대하 36장, 왕하 25장)
시드기야의 형식적인 신앙의 결말은 참으로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유다의 백성들은 다 포로로 잡혀가거나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였고, 청년 남녀와 백발 노옹까지 자비를 얻지 못했습니다(대하 36:17). 여호와의 전의 크고 작은 기명들과 보물들과 왕과 귀족들의 보물들도 다 바벨론에 빼앗겼습니다(대하 36:18).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인 성전이 불타고 허물어지고 바벨론의 노예가 되어 오랫동안 치욕을 당해야 했습니다(대하 36:19-20). 그 온 땅이 황무하여 70년 동안은 황폐하게 버려지고 잊혀진 땅이 되었습니다(대하 36:21). 시드기야는 개인적으로도 매우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을 때에 양식이 없어서 고생하다가 성벽에 구멍을 뚫고는 밤중에 도망을 가다가 잡혀서 아들들은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고, 시드기야는 두 눈이 뽑히고 사슬에 결박되어 바벨론에 끌려가는 그런 비참한 일을 당했습니다(왕하 25장).
언제나 형식적인 신앙이 문제입니다. 형식적인 신앙으로는 안 됩니다. 시드기야는 왕이었고, 겉으로는 언제나 큰 문제가 없었지만, 형식적인 신앙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능력이 없었고 변화도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역사도 없고 하나님의 도우심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껍데기일 뿐입니다. 신앙생활의 내용과 실질이 중요합니다. 시드기야의 형식적인 신앙을 경계합시다. 하나님이 살게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에게 나아가는 신앙의 자리로 나아가게 해달라고 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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