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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레위기

레 16장 6-10절(아사셀을 위한 염소) - 허창수

by Preacher 2023.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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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16장 6- 10

아사셀을 위한 염소

허창수 목사 16.03.13

동성교회 [창원시] https://https://cafe.daum.net/huhcs48/

 

기독교에 가장 중요한 것은 죄 사함 받는 것입니다. 어느 종교에도 죄를 사해주지 못합니다. 혹시 죄를 사해 준다고 해도 그것은 거짓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만은 죄를 사해줍니다.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와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요 영원한 지옥 형벌입니다. 죄 때문에 죽습니다.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습니다. 그래서 인생에 가장 큰 문제는 죄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죄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드셨습니다. 속죄함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곧 광야에 성막을 세우시고 양을 잡아 제물로 바치는 제사입니다. 아무 죄도 없는 양을 죄인들의 죄를 대신 해서 죽어 제물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양의 피를 보시고 죄를 용서하심으로 대속제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성막을 짓게 했습니다. 성막을 짓게 한 목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목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함께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 성막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 하시므로 어디든지 계시지만 특별히 성막에 임재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가까이 하시고하 하셨습니다.

 

다음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속죄를 위해서 성막을 지어라고 하셨습니다. 백성들의 죄를 사하시기 위한 법궤 위에 속죄소를 만들게 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이 피를 가져와서 하나님 앞에 뿌리면 그 피를 보시고 백성들의 죄를 사해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막의 모양과 규격과 크기를 세밀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성막을 지었습니다.

 

성막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습니다. 지성소에는 법궤가 있고 법궤 위에 속죄소가 있습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으로 사람들은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2) 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성소 안에 나타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는 휘장이 있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재하신 지성소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지성소를 함부로 들여다보거나 휘장을 열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성소에 대제사장 한 사람만 1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들어가도록 하셨습니다. 대속제일에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사함받기 위해 들어갈 수 있었을 뿐입니다. 그 외에 지성소에 들어가면 누구든지 죽습니다(2).

 

대속죄일은 유대인력으로 7월 10일입니다. 대속죄일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죄를 대속 받는 날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죄를 대속 받기 위해서 대제사장 아론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대제사장 아론이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3-5).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첫째로 거룩한 물로 그의 몸을 씻고 거룩한 옷을 입어라고 했습니다(4). ‘거룩한 옷’은 세마포 옷입니다. 세마포 속바지를 입고 세마포 때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쓰라고 했습니다.

 

월래 제사장의 옷은 에봇 입니다. 에봇은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짠 옷에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들의 이름을 새긴 보석들을 달았습니다(출39:14). 순금으로 ‘여호와의 성결’이라고 새긴 흉패를 붙이고 금패를 붙인 관을 썼습니다(8:7-9). 제사장의 옷은 화려했습니다. 그러나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갈 때 입는 옷은 모시로 만든 하얀 세마포 옷을 입고 세마포 속바지를 입고 세마포 띠를 띠고 세마포 관을 쓰라고 하셨습니다. 이 옷을 ‘거룩한 옷’이라고 했습니다.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의 의복은 단순히 외형적인 청결 뿐 아니라 내적인 정결을 뜻하는 옷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에 입었던 세마포 옷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시체를 가져다가 세마포로 싸서 장례를 치르셨던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요19:40). 부활의 아침에 베드로가 빈 무덤에 들어가 보니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세마포가 놓였던 것을 보았습니다(요20:6). 그렇다면 대제사장이 입었던 세마포 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가장 확연하게 보여주는 모형론적 의식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백성들의 대속 제물을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제물로 숫염소 두 마리와 번제물로 숫양 한 마리였습니다(5). 숫양 두 마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속죄를 위한 예물이고, 숫양은 대제사장 자신과 그의 가족을 위한 제물이였습니다. 대제사장은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에 앞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해 먼저 속죄를 위한 제사를 지냈습니다(6).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 분으로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닌 자신의 피를 택한 백성들을 위하여 피를 흐리심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영원한 화해를 이루셨습니다. 그로 인하여 우리들에게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셨던 것입니다. 지성소에 들어가서 대제사장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를 드렸습니다(6). 아론은 자신 뿐 아니라 자신에게 속한 가족들의 죄까지도 속죄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대제사장에게 자신의 속죄제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로 수송아지를 잡았습니다. 하나님께 분향하기 위한 향로에 불을 채우고 향기로운 향을 두 손에 채워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출입하는 첫 번째 경우입니다. 향로에서 나는 향연(연기)으로 증거궤와 속죄소를 가려야 죽지 않게 됩니다(12,13). 향연으로 증거궤와 속죄소를 가리게 한 것은 하나님을 사람이 바로 볼 수 없는 존재임을 나태는 것입니다.

 

지성소에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임재하셨기 때문입니다. 속죄함을 받은 대제사장은 거룩한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할 수 있었습니다. 아론은 송아지의 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렸습니다(14). 송아지의 피를 뿌림으로 아론은 감히 거룩한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성소 바닥에 뿌린 피를 기억하시고 대제사장과 그의 권속들의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대제사장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위한 속죄제를 수송아지를 잡아 지낸 후,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속함 받는 제사를 지내야 했습니다. 백성들을 위한 속죄 제물로는 두 마리의 염소였습니다. 두 마리의 염소는 이스라엘 온 백성들의 속죄를 위해 마련된 제물입니다. 두 마리의 염소를 하나님 앞에 두고 제비를 뽑았습니다. 이때 제비는 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마련되어 하나의 단지에 들어 있었습니다. 이 항아리는 회막문 앞에 놓여 졌으며 대제사장은 양손에 각각 하나씩의 제비를 동시에 뽑아 각 염소 머리 위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제비의 결과에 따라 한 마리는 여호와를 위하여, 나머지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한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 마리는 여호와께 제물이 되고 다른 한 마리는 광야의 악령에게로 보내는 것입니다.

 

먼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뽑은 염소를 제물로 드렸습니다.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예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여호와를 위한 염소’를 드리는 것입니다.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산채로 여호와 앞에 두고 여호와를 위하여 뽑힌 염소를 속죄제를 드려야 했습니다(9). ‘속죄제’라고 표현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란 의미로, ‘하나님을 위한 염소’입니다.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다시 대제사장은 휘장 안에 들어가서 속죄소 앞에 그 피를 뿌렸습니다(15). 그로인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를 속죄함을 받게 되었습니다(16). 예수님의 죽음은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죽으셨고, 피흘리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속죄제를 드린 후에 아사셀을 위하여 뽑힌 남은 염소를 산채로 광야로 보냈습니다(10). ‘아사셀’은 ‘유대 광야에 산다는 악령’ 입니다.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악령에게로 보내는 염소입니다. 악마에게 염소를 산채로 보내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사셀을 위한 염소’라고 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은 아사셀을 위한 염소의 머리에 두 손으로 안수를 했습니다(21). 안수를 하는 것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염소에게 전가시키는 의식입니다. 두 손으로 안수를 하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염소에게 전가시킨다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아론이 염소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안수를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했습니다. 안수와 함께 회개 기도가 수반되었습니다. 이때 온 백성들은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일제히 일어나 염소의 머리에 아론이 안수를 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몽땅 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끌려갑니다. 그 염소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를 지고 광야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버려졌습니다. 캄캄한 밤에 광야에 버려진 염소는 굶주림으로 죽거나 맹수의 밥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아사셀의 염소’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사셀의 염소는 아무 죄도 없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의 죄를 대신 하여 광야에 버려지게 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1:29) 이라고 외쳤습니다. 광야에서의 아사셀 염소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의 모형이였습니다. 아사셀 염소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홀로 뒤집어쓰고 광야로 나가 죽었던 것처럼,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상 죄를 다 뒤집어쓰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세상 사람들의 죄값으로 사탄 마귀에게 내어준 아사셀을 위한 염소이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대속제물이 되셨습니다. 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었는데 죄 값은 양과 염소가 대신 받고 죽은 것처럼, 죄는 내가 지었는데 내가 지은 죄의 대가는 의로우신 예수님이 아사셀 제물이 되셔서 사악한 자들의 손에 끌려 멸시천대 받으시고 골고다로 끌려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진 아사셀의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아사셀의 제물이 되심으로 우리는 속죄를 받았습니다.

 

아사셀의 염소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아주 멀리 버렸습니다. ‘아사셀’이란 말은 광야의 마신에게 죄를 다시 돌려보낸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아사셀의 염소가 되시므로 우리의 죄를 사탄에게 되돌려 주게 된 것입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시므로 우리는 더 이상 죄로 인하여 끌려 다녀야 하는 죄인이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법칙을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묘한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기 전까지 이와 같은 대속죄제를 매년 대속제 일에 한 번씩 지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성전에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지성소와 성소를 가로 막았던 휘장에 찢어짐으로 이제 지성소와 성소와의 구별이 없어졌습니다. 더 이상 대제사장이 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야 할 지성소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더 이상 지성소에만 계시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성도들에게 언제 어디서든지 만나주시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곳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제 누구나 다 제사장으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더 이상 양이나 염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광야에 성막은 오늘의 교회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광야에 버려진 아사셀의 염소를 기억하며 찬송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지신 아사셀의 염소가 되심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나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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