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19장 1-2
거룩함을 회복합시다.
안효관 목사 2015-06-14
전주남성교회 https://https://www.nsc.or.kr/
영국의 전설적인 육상선수 가운데 에릭 리델(Eric Henry Liddell, 1902-1945)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사진> 중국에서 선교하는 선교사 가정에서 출생한 그는 에든버러 대학에 입학한 후 본격적인 육상선수로 활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22세 때인 1924년 파리에서 열린 제8회 파리 올림픽에 영국의 육상 대표선수로 출전하게 됩니다. 당시 그는 100m 경기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선 첫 경기 일정이 7월 6일 주일 오후 3시와 5시에 잡혀 있다는 것을 알자, 100m 경기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주일을 하나님의 날로 지키겠노라.’고 다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에릭 리델에 대한 영국의 반응은 아주 냉소적이었습니다. 그를 가리켜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이라느니, ‘신앙을 소매 끝에 달고 다니는 신앙심 깊은 척 하는 위선자’라느니, ‘조국의 명예를 버린 배신자’라느니 하는 비난이 계속되었습니다. 심지어 영국의 황태자도 에릭 리델에게 마음을 바꾸라고 간청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그런 상황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일생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한 기회입니다. 조국 영국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려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강력한 금메달 후보입니다. 금메달을 따면 조국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국가적인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경기가 주일이라는 것 때문에, 주일은 하나님을 위해 지키는 날이기 때문에 경기에 나가지 않겠다고 결단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에릭 리델은 그날 평소와 같이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주일을 보내게 됩니다. 그날 100m 경기에서는 동료인 헤롤드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 후 에릭 리델은 자신의 주종목이 아닌 200m에 나가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400m에서는 2위를 15m나 앞서며 결승선에 통과함으로 금메달을 따낼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세계 신기록으로 말입니다. 그는 경기 후에 우승 비결을 묻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처음 200m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힘껏 달렸고, 나머지 200m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더욱 힘껏 달렸습니다.”
그렇게 그는 영국의 영웅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스포츠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그는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금메달을 딴 스포츠 영웅인데, 그 모든 명예를 뒤로 하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금메달을 딴 다음해에 아버지와 형의 뒤를 이어 중국 선교사로 떠나고 맙니다. 그는 금메달이라는 명예와 국민적인 영웅이라는 찬사보다도 중국의 가난한 농부 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더 없이 귀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일본군에 의해서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다가 43세가 되던 해인 1945년 2월 뇌출혈로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맙니다.
여러분, 에릭 리델의 삶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가 선택한 길이 가치 있는 것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그런 길을 가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면 여러분은 그 길을 가시겠습니까? 낯설고 먼 타국의 가난한 한 영혼이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서 세상의 모든 명예와 영광을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서 구별하여 당신의 백성 삼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당신의 자녀요 당신의 백성으로 불러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신앙인이 되어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날 세상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은 삶의 목적을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행복을 찾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에 일을 합니다.
그럼 우리 신앙인들도 행복이 인생 최고의 목표이고 삶의 목적이어야 하겠습니까? 우리 신앙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의 가치로 생각하고, 신앙의 가치를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가치관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 인생 최고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린도전서 10:31)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삶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가 거기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됩니까?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우리가 거룩해야 할 이유는 우리의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우리를 택하여 구별하신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의 자녀로 사는 우리도 그분을 닮아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처럼 거룩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처럼 우리도 거룩해져야 합니다.
여러분,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거룩해질 수 있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처럼 온전히 거룩해질 순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처럼은 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을 닮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레위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거룩하게 되는 방법에 대해서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큰 틀로 보자면 두 가지를 말씀해 주시는데, 그 첫 번째는 우리가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거룩한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레위기에서 가장 먼저 말씀하고 있는 것이 제사입니다. 그러면서 제사를 드리는 방법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말씀하십니다. 어떤 짐승은 제사로 드릴 제물에 합당하고 어떤 것은 합당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말씀하시고, 여러 가지 제사를 드릴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제사를 드릴 방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섬기는 방법은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이 복 받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의 제사는 오늘 우리시대로 말하면 예배입니다. 우리가 거룩해지 위해서는 예배를 드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우리가 원하는 방식과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예배를 드릴 때 우리가 거룩해져갈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내가 은혜 받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면 은혜는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의 모습이 거룩해지지 않습니다. 예배는 은혜 받기 위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것이 예배이기에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은혜를 받기 위해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 중심의 예배가 아니라 은혜 받기를 원하는 우리 자신을 위한 예배가 되고 맙니다. 그것은 어쩌면 복 받기 위해서 제사를 드리는 세상 사람들의 방법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든 은혜를 받지 못하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예배임을 알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목적은 은혜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부족하고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이지만 그런 우리와 만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예배자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법과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레위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레위기 1-17장까지에는 제사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18장부터 마지막 장까지에서는 세상과 다르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첫 번째로 주신 말씀이 ‘너희가 이전에 살았던 애굽 사람들이 행하던 습관이나 풍습을 따라서도 안 되고, 이제 들어가 살게 될 가나안 사람들의 풍습이나 규례를 따라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레위기 18장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오늘 본문이 속한 레위기 19장에서는 세상 사람과 다르게 사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세상을 살려 할 때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지난날 살아왔던 우리의 삶에서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별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세상과 같지 않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은 우리는 이제 우리를 택하여 주신 하나님의 법도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오늘도 끊임없이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십니다. 우리의 삶이 세상 사람들과 같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우리에게 자꾸만 세상의 방법을 따르도록 강요합니다. 우리가 세상과 다르게 살면 안 되는 것처럼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세상의 방법이 아닌 성경의 방법을 따라 살면 손해 볼 것이라고 속삭이면서 세상의 방법으로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며 살게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신앙의 방법을 따라 살면 분명 세상이 말하는 것처럼 손해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의 길을 따라 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 어려운 길을 가지 말고 쉽고 편한 길을 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쉽고 편한 길을 가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본성적으로 어렵고 힘든 길을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쉽고 편한 길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는 과감하게 그 길을 거부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으로 사는 삶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영국의 스포츠 영웅 에릭 리델을 생각해 보십시다. 그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러면 그가 가지게 된 명성만을 가지고도 그는 충분히 평생 편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왜 굳이 낯선 땅 중국에 선교사로 가서 그 고생을 해야 했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고생만 하다가 43살의 짧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야 했습니까? 그가 영국에 남아 있기를 원했다면 그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고생하지 않아도 되고, 그렇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왜 그렇게 쉽고 편한 길을 거부했습니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질 스포츠 영웅으로서의 명성과 그 명성에 따라 주어지는 부귀영화를 누리는 삶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렇게 쓰시길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영웅의 삶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선택하여 갔던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세상은 우리에게 세상과 다르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과 더 많이 닮는 모습으로 살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세상 사람들이 욕망하는 것을 똑같이 욕망하고,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똑같이 추구하면서 거기에서 얻어지는 것들을 마음껏 누리며 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을 닮아가고 세상을 따라 가는 것은 결코 믿음의 길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과 많이 닮아갈수록 우리는 점점 더 믿음의 길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면 우리는 세상과 점점 더 불편해져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전혀 불편함이 없이 산다면 그것은 우리가 세상의 길을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의 길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향하여 손짓하여 오라 하는 그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우리가 믿음 때문에 세상을 사는데 불편하다면 그것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는 창립 60주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이면 60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지난 60년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베풀어주신 은혜는 일일이 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늘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거룩한 길을 걷고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60년 전에 우리 교회를 이곳에 세워주신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닮아가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세상 속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며 보여주시고자 우리 교회를 세워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교회가 가장 많이 힘써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거룩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왜 한국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이유는 교회가 거룩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성도들의 모습에서 거룩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너무 많이 세상을 닮아버렸습니다. 세상의 가치가 교회의 가치처럼 여겨지고 있고, 교회는 그것을 따라 갑니다. 세상적인 성공이 하나님의 축복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부흥하여 성도의 수가 많아지고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서 출세하면 박수를 쳐줍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신앙인답게 살기 위해서 고난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박수를 쳐 주지 않습니다. 때로는 신앙인들조차도 십자가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향하여 어리석게 신앙생활하고 있다고 나무라기도 합니다. 유별난 신앙을 가졌다고 조롱하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을 교회도 그대로 따라 합니다.
아닙니다. 교회는 교회가 가야할 길을 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와 성도들은 ‘좁은 문, 좁은 길’로 가야 합니다.(마태복음 7:13-14) 우리 신앙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열심히 달려가는 넓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공과 출세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생명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거룩해지기 위해서 믿음을 경주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부르심의 목적을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이 아무리 우리에게 세상의 길이 더 편하고 더 좋은 길이라고 유혹해도 세상의 것을 따라가지 마십시다. 세상적인 사고와 세상적인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가십시다. 그렇게 사는 것이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구약 -------------------- > 레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레 16장 6-10절(아사셀을 위한 염소) - 허창수 (0) | 2023.07.04 |
---|---|
레 19장 1-2절(너희는 거룩하라) - 배혁 (0) | 2023.06.25 |
레 19장 9-10절(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 안효관 (0) | 2023.05.30 |
레 19장 1-8절(성도는 거룩하라) - 정오영 (1) | 2023.05.14 |
레 19장 17~18절(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 김준범 (0) | 2023.05.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