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 --------------------/로마서

롬 15장 14-21절(우리의 자랑, 그리스도) - 이삼규

by Preacher 2023. 7. 28.
728x90
반응형

롬15장 14-21

우리의 자랑, 그리스도

이삼규 목사 20191215

낙양교회 http://nakyang.onmam.com

 

롬 15: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롬 15: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롬 15: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롬 15: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롬 15: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롬 15: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롬 15: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롬 15:21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림 형제의 <개구리 왕자>라는 동화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옛날 한 임금에게 귀여운 딸인 공주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공주는 숲 근처의 연못에서 금으로 된 공을 가지고 놀다가 실수로 공을 연못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개구리 한 마리가 나타나서, 그 공을 찾아줄 테니 나와 함께 식사하고 키스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공주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공주는 개구리의 도움으로 잃어버린 공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공주는 약속을 무시하고 궁궐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개구리가 궁궐 문을 노크하자 임금님도 그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임금은 공주에게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공주는 할 수 없이 개구리와 식사를 합니다. 그러나 개구리가 키스까지 요구하자 징그럽다면서 개구리를 잡아서 벽으로 던집니다. 그러자 개구리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미안한 생각이 든 공주가 축 늘어진 개구리에게 키스하는 순간, 못생긴 개구리가 잘 생긴 왕자로 변신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은 축 늘어진 개구리처럼 삶의 의욕을 잃고 무언가를 찾고 있는 이웃의 영혼에 키스해 주는 순간, 하나님의 아들딸로, 하나님의 왕자와 공주로 태어납니다. 고 김준곤목사님의 ‘백문일답’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모든 질문의 대답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이 민족의 소망은 누구입니까?”, “우리 가정의 소망은 누구입니까?”, “우리 역사의 소망은 누구입니까?”, “우리가 평생 전해야 할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사랑하는 이웃을 누구에게로 데려와야 합니까?”, “우리의 사랑하는 이웃에게 나눠야 할 최고의 선물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울 사도 오늘 본문에서 뭐라고 말씀합니까?

 

롬 15: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바울 사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자랑이 있습니까?

 

좋은 성도, 좋은 공동체

 

바울 사도는 이제 로마서를 마무리 하면서 본문에서부터 마지막까지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14절을 보면 바울이 바라보는 로마 교회 성도에 대한 평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롬 15: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일반적으로 편지 속에서는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유대감과 친근감이 표현됩니다. 바울 사도는 14절에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신앙을 칭찬하면서 그들과의 유대감을 표현합니다. 이들의 신앙에 대한 확신을 바울 사도는 삼중적으로 표현합니다.

 

1)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다.

2)모든 지식이 충만하다.

3)서로 권면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로마교회 선함이 가득하고 지식이 충만하여 서로를 권면할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애쓰던 로마 교회의 성도들이 바울의 칭찬을 들었을 때 얼마나 큰 위로를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핍박의 심장이었던 로마에서도 성도의 믿음이 성숙하게 잘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바울 서신의 수신 교회와는 달리 로마교회는 바울이 직접 세운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내 형제들아!”라고 그들을 친근히 부르고 있습니다. 바울은 아마도 다른 동역자들로부터 로마 교회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핍박의 심장부인 로마에도 교회가 세워지고 그곳의 성도들이 성숙한 믿음 가운데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은 바울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전해들은 소식에 따르면, 로마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너그러움과 선함이 충만했고 또한 풍성한 지식과 서로 가르치고 권면할 만한 분별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좋은 성도가 좋은 공동체를 이루고, 좋은 공동체는 좋은 성도를 길러냅니다. 교회에 이러한 아름다운 신앙의 전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고 복된 일입니다. 교회마다 약점과 단점은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좋은 공동체는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드러납니다. 약점은 보완되고 강점은 살아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이 로마 교회의 성숙함을 칭찬했던 것처럼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다면 그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이 있을까요?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지난 일 년을 보내면서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나에게 칭찬받을 만한 성숙한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했는가 말입니다. 특히 리더십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여러분의 어깨는 무겁습니다. 그냥 듣기 좋으라고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장로님은 장로님으로서, 권사님은 권사님으로서, 집사님은 집사님으로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때 우리교회가 좋은 공동체를 이루고 좋은 성도들이 될 줄로 믿습니다.

 

잊기 쉬운 것들, 잃어버리기 쉬운 것들

 

로마교회 성도들이 칭찬을 받고 성숙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그들에게 다시 복음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바울은 로마서를 쓰게 된 것입니다.

 

롬 15: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롬 15: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이 로마서를 쓴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입니다. 즉 기억을 새롭게 하기 위한 중요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복음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설명함으로써 잊기 쉬운 복음의 진리를 반복해 그들의 마음에 되새기려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목적 중 하나는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성도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라기보다는 듣는 자들이 기왕에 알고는 있었지만 잊어버린 것들, 가지고는 있었지만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상기시키기 위함입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른 자들입니다.

 

요 10: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바울이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잊어버리는 것은 비극입니다. 그렇게 되면 길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여러분은 목자의 음성을 잊지 않으셨습니까?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방인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의 직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입니다. 제사장이란 ‘폰티펙스’라고 하는데 ‘다리를 놓는 자’를 말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들의 가교 역할을 하는 자입니다. 특히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장의 직분을 바울을 맡았다고 말합니다.

 

바울을 부르시어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사명을 주시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맡겨주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이 맡기신 일을 감당하기 위해 평생 수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부르심에는 상관하지 않고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양답게 살고 있는지 자문해 봅시다. 그분의 음성을 잊어버리고 혹시 곁길로 나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절대로 복음의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바울의 자랑, 그리스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이방인들에게 힘써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울의 자랑이었습니다.

 

롬 15: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바울이 자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가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으로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사역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롬 15: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롬 15: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바울은 복음의 제사장된 자신의 사역을 보고합니다. 이 사역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이루신 일들로 사도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들입니다.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은 자신의 복음 전파 사역에서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는, 이 제사장 직무의 수행방식입니다.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바울은 말과 행위,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바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복음 전파의 범위입니다.

 

바울의 사역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함으로 나타났습니다. 복음이 시작된 예루살렘부터 일루리곤까지 복음을 열심히 증거한 것입니다. 일루리곤은 마게도냐의 북서부로 오늘날의 그리스 동북부에 있습니다(오늘날 알바니아 유고슬라비아)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복음 전파 범위가 광대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편만하게’라는 말은 ‘플레로오’라고 하는데 ‘충만하다, 채우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이 예루살렘부터 일루리곤까지 충만케 되어 그 지역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듣게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바울의 복음 전파의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롬 15: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롬 15:21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앞에서 말씀드린 두 가지 강조점의 특징이 하나님의 인도를 크게 의지한 것이라면, 여기서 말하는 복음 전파의 특징은 사도 바울의 개인적인 결단과 더 많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이 이미 전파된 곳에는 되도록 복음을 전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한 후에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도 않았습니다.

 

사 52:15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바울은 세운 것입니다.

 

저도 부목사 시절 담임목사님이 소천하시고 교회를 한 육 개월 동안 목회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동창 목사님이 담임으로 부임하시고 제 위치가 난감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교인들을 관리했기 때문에 제가 가까운데 개척을 한다든지 가까운 곳에서 사역을 한다면 많은 성도들이 동요를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가겠습니다. 그랬더니 부안으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것도 교회 건물도 아닌 창고건물 개조해서 세운 교회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보내주실 줄 믿고 열심히 사역을 감당했고 그러다가 우리교회로 부임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의 자랑은 오직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리스도였습니다. 그의 섬기는 일도 자랑거리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랑 거리는 무엇입니까? 때로 우리는 과거의 명성과 업적, 또 별로 아름답지 않은 과거를 간증을 빙자해 자랑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자화자찬의 시대에, 성령님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다는 바울의 선포는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그리스도와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고(고전 2:2), 복음의 개척지에 가서 평생 복음을 전하며 살았던 바울의 자랑거리는 오직 그리스도였습니다. 우리가 ‘자랑하는 그것’이 곧 우리 ‘믿음의 근거’입니다. 우리도 바울 사도처럼 참 진리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