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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5장 17-21절(바울의 자랑과 전도) - 이건기

by Preacher 2023.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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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5장 17-21

바울의 자랑과 전도

이건기 목사 2017-05-07

다운교회 http://www.downchurch.org/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가, 선한 열매와 지식이 풍부하고, 사랑으로 권할 줄 아는, 성숙한 교회로 확신했다. 그래서 그들이 알고 있는 복음을, 다시 한 번 체계적으로 전해주려고, 이방인의 사도로, 그들의 신앙을 바르게 안내하려는 책임을, 다하기를 원했다.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필요한, 기독교 교리와, 여러 가지 권고의 말씀을, 적어서 보냈다. 바울은 자신을 이방인을 위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의 직분으로 생각했다. 오늘 말씀은, 바울은 그 일과 직분에 대해, 매우 만족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1. 바울이 자랑한 것은 무엇인가?(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바울은 예수 안에서, 자랑할 것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자랑할 것이 많았다.

 

(빌3:4-6)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바울은 육체적으로 볼 때, 자랑거리가 많았다. 할례자요, 초대 왕 사울의 후손(베냐민 지파)이었고, 히브리인 중에, 율법에 가장 엄격한, 바리새인이었으며, 율법의 의로 흠이 없었다.” 이렇게 자랑할 것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런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다(빌3:7-8).

 

이러한 육체적인 것들은, 바울의 자랑거리가 될 수 없었다. 그러면 무엇을 자랑했나?(17)

 

(1) ‘예수 안에서’ 자랑했다. ‘자랑하다.’(카우코시스, 자랑하는 행위) 바울은 세상에서 그리스도가, 가장 귀중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오직 예수님만을 자랑했다. 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나서, 착해서,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을 예수님은 구원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요 주인이 되었기에, 자랑하며 살게 되었다.

 

(2)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한, 일을 자랑했다. 바울이 사도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교회를 박해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불러서 믿음을 주고,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세웠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 항상 그와 동행해 주었다. 그래서 그는 능력 있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들에게, 나타낼 수 있었다. 바울이 이토록 짧은 기간에, 그렇게 넓은 지역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이 함께 한 일’만 자랑했다. 그는 결코 ‘자신을’ 자랑하지 않았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한 일만’을 자랑하였다. 이처럼 성도들도, 자신을 자랑하면 안 된다. 성도들의 자랑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자랑해야 한다.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바울은 자기의 사상이나, 세상의 지혜를 전하지 않았다. 감히(톨마오), 다른 것은 말하지 않았다.

 

오직 이방인들을, 하나님을 믿어 순종하게 하도록, 바울을 통해 역사하신 것만 말했다. 나를 통해 ‘역사하신’(카테르가조마이)은, 카타(~에 대하여) + 에르가조마이(노력하다, 효과를 나타내다)이다.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 외에는,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말(로고스)과, 행위(에르곤, 일, 행동, 수고)로 나타났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했다. 예수님은 사도 바울에게, 무슨 일을 했는가? 3가지 일을 했다. ① 바울을 사용하여 말씀했다. ② 바울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행위를 보여주었다. ③ 이방인을 순종하게 했다.

 

(3) 바울의 사역은 ‘이방인을 순종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바울의 사역의 목적은 (1:5下)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라고 했다. 본문 (18)절에서는 ‘믿음’이 빠지고, ‘순종’이 강조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께 순종하게 된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이유는, 이방인들이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복음을 전했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그를 통하여 하신 일’만 전했다. 복음은, 사람이 전하는 것 같지만, 성령이 그를 통해서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맡은 일꾼은, 자신을 성령님의 도구라고 생각해야 한다. 복음을 맡은 사람들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자신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말하면, 우리를 자랑하지 않고,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님을 자랑할 수 있다.

 

2. 바울의 선교 윈칙(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그리스도는 말과 행위를 통해 전했다.’ 하나님은 복음을 ‘말’을 통해 전하고, 여러 가지 시각적인 ‘행위’를 통해 전했다. 따라서 사람들은, 말로 전하는 복음을 듣고, 동시에 성령님이 역사하는 일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도 성령님은, 말과 여러 가지 표적을 통해서, 복음을 전파한다. 바울은 성령의 능력에 의해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성령의 능력은, 그들이 전하는 복음이, 진리임을 증거 한다. 이를 ‘표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일들은, 초자연적인 일이었기에 ‘기사’로도 불렀다.

 

기사는 사단을 결박하는, 큰 힘과 능력으로 나타났기에, ‘성령의 능력’으로 불렀다. 바울은 이러한 3가지 단어를 (고후12:12)에서도 언급했다. 거기서는, 이 3가지 일들을 ‘사도의 표시’(참된 사도의 표시)로 불렀다.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은, 긴 의복과 화려한 옷을 통해서, 제사장 신분을 나타냈다. 그러나 신약의 제사장들은, 화려한 의복 대신에, 성령의 능력(표적과 기사와 능력)으로, 자신을 나타냈다. 성령님을 통해, 사도의 권위를 보증해 주었으며, 그들이 전하는 복음이, 진리임을 증언해 주었다. 성령님은, 여러 가지 표적과, 기사와 능력뿐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도, 사람들을 설득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는 사람은, 복음을 믿고, 예수님께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바울의 전도 사역이 단기간 내에, 그렇게 큰 열매를 맺은 것은, 바로 이러한 성령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을 통해 역사한, 성령님의 일을 전파하겠다고 했다.

 

성령의 역사와 능력으로,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복음으로 충만하게 채웠다.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지금의 알바니아)는, 그동안 바울의 해온, 3번의 선교여행(약12년)을 요약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두루 행하여’(퀴클로, 원형으로, 순회해서)이다.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지중해의 동쪽 지역을 순회했다. 바울이 이 지역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마쳤다. 바울은 이 지역 전체를, 복음으로 흠뻑 적시지는 못했다. 바울은 이곳의 모든 지역 사람들에게, 일일이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지역을, 복음으로 흠뻑 적셨다고 했다.

 

왜냐하면 바울의 사명은, 교회개척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구가 많고, 영향력이 있는 도시에 가서 복음을 전한 후에, 교회를 설립했다. 그 교회를 통해, 가까운 인근지역에, 복음을 전했다. 그러므로 이 지역에 있는 중요한 곳에, 교회를 세운 후에 즉시 그곳을 떠났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이 지역을 ‘복음으로 흠뻑 적셨다.’고 고백했다.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하여,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서, 제물이 된 예수님의 뒤를 이어서,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인생과 재물을 희생적으로 내놓아야 한다. 이러한 헌신과 희생이 있기를,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다. (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그는 자신의 선교활동에 대해 말한 후에, 자신의 선교정책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이미 복음이 전파된 곳에서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은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진 곳’, 이미 복음이 전해진 곳이다. 초대교회에서 발생하는 논쟁과 다툼에 대하여,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방법이다. 바울은 남의 터 위에, 집을 지으려고 하지 않았다.

 

바울의 사명은, 남이 전도한 사람들을 관리하고, 양육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도하지 않은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복음이 전파된 지역에는, 복음을 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하나님이 세운 종들을, 각각 그의 은사대로 사용한다.

 

바울은 (고전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했다. 바울은 교회를 개척하고, 회심한 성도를 양육하는 일을, 농사짓는 일로, 교회를 개척한 자신의 사역을, 밭에 씨를 심는 것으로, 양육하는 사역은, 잘 자랄 수 있도록, 물을 주는 것으로 비유했다.

 

바울은 또 이렇게 말했다. (고전3: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 바울은 교회개척과 양육을 건축에 비유했다. 바울은 집을 짓기 위해, 터를 닦는 일(교회개척)을 했으며, 아볼로는 그가 놓은 집터 위에, 집을 지었다(양육). 바울의 사명이, 교회개척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에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매우 적극적으로 나섰다.

 

(21)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자신의 선교방법이,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보고 듣고 깨닫게 하려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이렇게 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하면서, 말씀을 인용했다. (사52:15)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그는 여호와의 종으로 오신 메시아는, 나라들이 지금까지 보거나, 듣지 못한 일들을, 보고 듣게 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하나님의 종인 그리스도는, 이 예언대로 나라들을 놀라게 했고, 듣거나 보지 못한 복음을 전했다. 바울은 이사야의 예언이, 자신의 복음 전도를 통해서, 성취된 것으로 말했다. 처음으로 듣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 세 번 듣게 되면, 그것은 이미 전대미문의 복음이, 되지를 않는다. 그러므로 이미 복음이 전해진 곳에는, 전도나 선교를 하기 위하여, 다시 들어가지 아니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는 쉬지 않고,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백성들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로마제국에 도시는 많고,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는, 태부족이기 때문이다. 오늘 그물망처럼 교회가 포진하고, 이중 삼중으로 전도에 임하고 있는 현실과는, 많이 다른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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