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8장 1-10
부활을 믿는다면
문기태 목사 2015.04.12
창원침례교회 http://whttp://www.changwon.or.kr/
(마 28:1)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마 28: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마 28: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희거늘
(마 28:4)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마 28:5)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마 28: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마 28: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마 28: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
(마 28:9)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마 28:10)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1492년까지 스페인령으로 스페인이 통치하고 있었던 지브랄탈 해역에는, 라틴어 세 글자로 된 작은 표지판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고 합니다. "네블루스 울트라" "네불루스 울트라"를 영어로 번역하면 '노 모어 비얀더(NO MORE BEYOND)'라고 합니다. "이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말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구는 평평하여 끝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당시 스페인 사람들과 유럽의 사람들은 바로 그곳이 지구의 끝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42년 이후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곳이 지구의 끝이 아니라고 용감하게 넘어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곳이 끝이 아니고 또 다른 세계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의 생각대로 그들의 앞엔 참담한 벼랑만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는 신대륙 아메리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 사람들은 그 표지판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첫 글자 "네어" 라는 단어를 떼어 내고 'MORE BEYOND'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네어라는 단어가 빠지니까 이제는 "저 건너편에는 많은 것이 있다! 놀라운 것이 있다!"라는 간판으로 바뀐 것입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 같고 경험하고 이해되는 것만이 전부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은 존재합니다. 당시 가지고 있는 보편의식이 꼭 진리인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해도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이 끝이고 그저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죽음에 대하여 학문적으로 진지하게 연구한 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하바드대의 정신의학자였던 엘리자베스 퀴버라스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들의 의식세계를 연구했습니다. 죽음에 거의 가까이 왔던 사람들, 죽었던 사람들 그런 가운데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의식세계 만을 집중적으로 연구를 하였습니다. 그들이 경험한 세계는 터널을 통과하는 것이었는데 한 종류의 사람들은 아주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경험하였고 한 종류의 사람들은 터널을 잠시 통과한 후에 환한 빛의 세계에 들어가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를 향한 시작입니다. 그래서 죽음에도 희망이 있고 죽음은 또 다른 세계를 향한 과정입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가 되어 무덤 문을 여시고 다시 사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되 십자가에서 멈추지 않고 예수의 부활을 믿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부활을 믿는다면 우리의 삶이 아주 많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믿으면 우리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1. 부활을 믿는다면 큰 기쁨이 가득하게 됩니다.(8)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찾았습니다. 거기서 천사를 만납니다. 천사가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그래서 여인들은 들어가보니 빈 무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여인들은 평소에 예수님이 예언하신 대로 다시 살아난 현장을 확인한 것입니다. 얼마나 놀랐을까요 이 놀라운 사실 앞에 믿음의 여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8절을 읽읍시다.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여기 두 개의 매우 대조적인 단어를 보십시오.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서움, 다른 말로 하면 두려움인데요. 두려움과 큰 기쁨, 이 두 가지는 공존하기 어려운 감정이지만 때로 역설적으로 우리가 너무 믿을 수 없는 사실을 경험했을 때 두려움과 큰 기쁨이 함께 있을 수가 있습니다. 어떤 성서 학자들은 이 기쁨을 전율할만한 기쁨이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바로 죽음에 대한 해답을 발견한 그런 기쁨이었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근본적이고 그리고 궁극적인 문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죽음의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아무도 죽음에서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을 지배합니다. 성경은 그래서 죽음이 인류의 왕 노릇하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죽음이 우리를 지배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죽음의 지배에 종속되지 아니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반드시 죽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말씀 드린 것처럼 죽음의 힘일 것입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지배합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삼키는 것입니다. 아무도 죽음의 세력을 대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죽음의 힘보다 더 강한 힘이 있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을 패배시킨 부활의 힘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죽음에 대한 완전한 해답으로서의 부활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부활을 증명하셨습니다.
이 부활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그리고 여러분과 저의 부활이 분명히 보장된 사실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기뻐해야 할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얼마나 흥분해야 할 사람들입니까 그 부활의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부활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한다면, 그리고 부활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면, 여러분 오늘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부딪히는 삶의 시련이 아무리 어렵고 힘겨운 것이라 해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왜 절망하십니까 왜 좌절하십니까 실망과 낙심이 밀려올 때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죽음 건너편에 부활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지금 내 안에 역사하는 부활의 능력이 있음을 확신하며 기뻐하며 날마다 나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부활을 믿는다면 참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9)
9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천사가 전한 부활의 메세지를 듣고 감격하고 있는데 살아나신 예수님이 거기에 나타나셨습니다.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살아나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는 순간 여인들은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엎드립니다. 그리고 경배를 합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지난 주 종려 주일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장면을 말씀 드렸습니다. 화려함도 없습니다. 위엄도 없습니다. 오로지 겸손함만 드러내셨습니다. 약하고 겁 많은 우리를 위해 예수님은 우리가 놀라지 않도록 겸손한 모습으로 찾아오신 왕입니다. 그러나 너무 겸손함 모습만 보면 방자해지고 무례하기 쉽습니다. 그분이 진정 하나님이신데 그 사실을 잊기 쉽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대하고 오만한 자세를 드러내기 쉽습니다. 그런데 여인들은 그분의 진정한 모습을 여기서 발견합니다. 겸손하실 뿐 아니라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분, 세상에 어떤 위대한 사람도 삼켜버린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신 분, 그분이 그들의 발 앞에 서 계십니다. 이분이 누구십니까 경배 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여인들이 예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만이 받으실 그 경배를 만류하지 않고 그 경배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 데로 정녕 살아나셨고 죽음을 이기신 부활하신 살아계신 주님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인들은 엎드려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장4절에 증거합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 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부활하신 그 사건이야말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그가 하나님이심을 입증하신 사건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면 그분은 여러분과 저를 통해 참 예배를 이 시간에 받으셔야만 합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엎드려 절하였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사람이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를 드리며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께 최고의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고자 최선을 다하십니까 몸을 보여 드릴 뿐 아니라 마음을 내어드리며 여러분이 드릴 수 있는 최선을 드리며 나아가십니까 그분께 드릴 수 있는 최고를 드리며 경배하십니까 예배는 단순히 예배하는 자리에 참석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으로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여러분은 예배의 자리에 한 시간 동안 머물러있고도 전혀 예배하지 않고 이 자리를 나갈 수가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그분께 엎드려 절함으로 또는 찬양과 기도와 헌신으로 표현하며 최고의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경배가 담긴 예배를 드림으로 매번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축복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3. 부활을 믿는다면 증거하며 살게 됩니다.(10)
부활을 목격한 여인들에게 예수님은 중요한 것을 지시합니다. 10절에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제자들이 있는 갈릴리로 가라'고, '형제들에게 가서 내가 살아난 소식을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8절에 보면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 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침묵할 수가 있겠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왜 맨 처음 여인들에게 나타나셨을까요 베드로, 야고보, 요한 같은 제자들에게 부활의 주님을 맨 먼저 볼 수 있게 하지 않으셨을까요 왜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성들에게 제일 먼저 나타났을까요 왜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성들에게 나타났는가 어떤 분이 말하기를 여자들이 입이 가볍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이 소식이 빨리 퍼지는데 효과적이랍니다. 어쨌든 이 여인들을 통해서 첫 부활의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는다면 저와 여러분의 부활이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보증된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다면 어찌 잠잠할 수가 있겠습니까
히틀러 나치가 지배하던 시절에 마르틴 니멜러라는 목사님이 독일 목사님이 계셨어요. 그는 유명한 전도자였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들어온 후에 그는 말을 잊어버렸습니다. 이 히틀러와 그 작당들만은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침묵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잠을 자다가 꿈을 꿉니다. 꿈속에서 히틀러가 주님 앞에 마지막 심판을 받고 있는 광경을 꿈꾸게 되었어요. 예수님이 이렇게 물어 보더래요. "히틀러야! 너는 왜 나를 믿지 않았느냐" 히틀러가 대답하기를 "저에게 아무도 복음을 전해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히틀러보고 하는 말이, "야! 너 마르틴 니멜러 목사님하고 몇 시간씩 얘기하지 않았느냐 그때 마르틴 니멜러가 너에게 나를 전하지 않더냐" 니멜러는 꿈에서 소스라치게 깨어납니다. '아! 내가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있었구나, 저가 나를 핍박하지만 저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지만 저 사람도 용서 받고 구원 받아야 할 한 영혼으로 바라보지 못했구나,' 그날부터 그는 전도를 결심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붙들고 있는 자기를 감시하고 있는 나치의 간부들에게, 간수들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정신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가 구원이라고, 그리스도가 생명이라고, 그래서 이 마르틴 니멜러를 통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치의 간부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드리는 놀라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정말 부활을 믿는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침묵할 수 없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부지런히 전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소망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망권세에 눌려 신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해야 합니다. 부활을 믿는다면 침묵하지 말고 입을 열어 우리 안에 있는 부활의 소망을 말해야 합니다. 부활의 증인된 삶을 살므로 부활의 감격과 기쁨이 여러분 안에 더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에는 부활을 믿는 사람과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에 속합니까 기쁨이 충만한 삶을 통해 그리고 참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통해 나아가 부지런히 증인된 삶을 살아감으로 여러분의 산 믿음을 입증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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