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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마태복음

마 28장 19절, 고전 11장 24절(은혜의 방편, 성례) - 박경호

by Preacher 2023.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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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8장 19, 고전11장 24

은혜의 방편, 성례

박경호 목사 2019.11.07

차타누가열린교회 [미국] https://https://yeolinchurch.com/

 

성례는 어떤 의미로 주어진 것이며, 우리는 어떻게 성례를 행하여 올바른 것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성경을 통하여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성례란 말의 뜻은 한자적 표현으로 거룩한 예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한글로 성례라고 번역한 이 단어는 원래 라틴어를 한글로 해석한 것인데 라틴어로 성례란 세그라멘툼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어원은 헬라인데 헬라어로 뮈스테리온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신비를 의미합니다. 뮈스테리온 이라는 말은 영어로 미스테리란 말의 어원입니다.

 

이 단어서 성경에 쓰여진 구절을 보면 에베소서 3장 2-3절입니다. 3절에서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셨다고 하는데 여기서 비밀이라는 단어가 뮈스테리온 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성경에서 사용될 때에 그 의미를 보면 신성한 것, 비밀스러운 것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왜 이것이 비밀스럽고 신비스러운가 하면 하늘의 신비로운 것을 땅에 펼쳐 보이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세례와 성찬을 제정하시고 시행하게 하셨는가에 대한 성경을 바탕으로 한 이해가 부족한 이들은 그냥 주님께서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세례를 베푸는 것이고, 성찬식을 통하여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 기념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시행함으로 순종해야 한다고 말하고 가르칩니다. 이렇게 세례와 성찬을 이해하고 시행하는 것은 성례의 참된 의미를 모를 뿐만 아니라 성례를 통하여 주어지는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되어 의미 없는 의식적 행위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성례가 왜 신비스러운 비밀이며, 하늘의 신비로운 것이 땅에 펼쳐진 것인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약에서 하늘의 것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구약의 백성들에게 땅의 방식으로 나타난 표징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할례와 안식일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칼빈에 의하면 할례는 무엇이든지 사람에게서 오는 것, 즉 인류의 본성 전체는 부패했으며 잘라 버릴 필요가 있다고 경고하는 상징이다 라고 말합니다. 즉 할례는 인간적인 것을 잘라 버림을 보여 주기 위하여 제정된 성례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경우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을 하지 않고 쉰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 규례에서 일을 중단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즉 안식일의 규례는 땅의 일을 그만두고 하나님께 들어가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비록 이것이 땅의 일의 방식으로 보여지는 것이지만 원형은 하늘에 있는 것에 대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려는 방식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세례도 그렇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을 보면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라고 합니다. 그런데 원래 물은 무엇에 대한 상징이며 무엇을 하는 도구입니까? 본문을 보면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라고 합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원래 물은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는 것이 바로 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례에서의 물은 이제 물의 원래 기능인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구원하는 표인 것이며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인 것입니다. 선한 양심의 간구라는 표현은 양심이 하나님께 구하는 것 또는 서약하는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세례가 물로 행하여지기 때문에 육체를 더러운 것을 씻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이것은 신비한 것 즉 비밀스러운 하늘에 속한 것으로 구원하는 표로서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 구하며 서약하는 것을 눈에 보이도록 보여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것이 땅에 것이 아니라 하늘에 것이며 이것을 우리 눈에 보이도록 행하여 지는 것이기에 감사하며 바르게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례를 행할 때에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는 첫째로 이것은 하늘에 속한 것이라는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는 것을 보이게 하시기에 위하여 하늘에 있는 것을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나타낸 것이라는 점입니다. 둘째는 하늘의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찬식에 참여 하거나 또는 세례에 참여하게 될 때에 그리고 그러한 의식에 함께 참여할 때에 우리의 마음에는 지금 하나님께서 하늘의 것을 베풀어 주신다고 믿어야 하며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례에 참여한 우리는 하늘에 것에 참여하는 것이며 지금 하늘에 속한 것을 우리에게 허락하시기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하늘에 속한 신비하고 비밀스러운 일을 우리의 눈에 보이도록 거룩한 표와 인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까? 여기에 대하여 종교 개혁자 칼빈은 이러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연약해서, 각종 수단을 사용하여 사방으로 붙들어 주고 받쳐 주지 않으면 떨리고 흔들리며 비틀거리다가 결국은 무너지고 만다. 그래서 우리의 자비하신 주께서는 그 무한하신 자비로 우리의 능력에 자신을 적응시키시며, 우리가 항상 땅에 붙어 기어다니고 육에 붙어 떨어지지 않으며 영적인 일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상상조차 하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셔서 이런 땅에 붙은 것까지 이용해서 우리를 자신에게로 인도하시며 육에 있는 우리 앞에 영적인 복의 거울을 두신다 즉 이것은 우리의 연약함 때문이며 우리에게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며 은혜를 더하셔서 우리의 믿음에 유익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성례를 통하여 우리는 하늘의 신비에 참여하게 되며 맛보며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례에 참여할 때에 우리는 두 가지를 조심해야 하는데 첫째는 성례에 참여할 때에 그것을 주신 것이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마음에 무관심한 태도나 형식적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성례의 비밀한 뜻을 소멸하거나 약화시킴으로 그 은혜가 우리에게 전혀 결실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의 마음을 성례를 통하여 눈에 보이지 않게 역사하실 성령에 의존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성례의식에만 집중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성찬에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단번의 제사와 그의 모든 은혜를 어떻게 깨닫고 확신하게 될 수 가에 대하여 하이델베르크의 답변을 보면 답: 그리스도께서는 나와 모든 성도에게 그를 기념하여 이 뗀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시라고 명령하시고 또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첫째, 주님의 떡이 나를 위해 떼어지고 잔이 나에게 분배되는 것을 내 눈으로 보는 것처럼 확실히 그의 몸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드려지고 찢기셨으며 그의 피도 나를 위해 쏟으셨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확실한 표로서 주님의 떡과 잔을 내가 목사의 손에서 받아 입으로 맛보는 것처럼 확실히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의 몸과 흘리신 피로써 나의 영혼을 친히 영생에 이르도록 먹이시고 마시우실 것입니다.

 

먼저 주님께서는 나와 모든 성도들에게 주님을 기념하여 이 뗀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시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성찬은 주님의 명령이며 그 명령은 우리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함으로 그의 단번의 제사와 모든 공효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첫째로 주님의 떡이 나를 위해 떼어지고 잔이 나에게 분배되는 것을 내 눈으로 보는 것처럼 확실히 그의 몸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드려지고 찢기셨으며 그의 피도 나를 위해 쏟으셨다는 것을 깨닫고 확신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세례에 대하여 살펴 볼 때에 이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례나 성찬이나 중요한 것은 이것이 하늘에 속한 것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의 눈에 보이게 함으로 이것이 우리에게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고 실제로 우리에게 적용된 사건이라는 점을 각인 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성찬에서 우리가 받는 떡과 포도주는 확실한 주님의 살과 피에 대한 표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먹고 마시는 행위는 우리에게 확실함을 더해주는데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의 몸과 흘리신 피로써 나의 영혼을 친히 영생에 이르도록 먹이시고 마시우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우리는 확신하여야 하는데 주님이 나의 영혼을 친히 영생에 이르도록 먹이시고 마시우신 다는 것입니다. 그의 살과 피로 말입니다.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주님의 살과 피로 변화되지는 않지만 우리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드리신 단번의 제사가 우리를 위함이며 우리를 살리시기 위함이자 우리의 영혼을 그의 살과 피로 먹이시고 마시우시는 행위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나는 성찬을 통하여 이러한 주님의 은혜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금 우리의 마음과 믿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세례를 살펴보면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서 세례는 무엇인가에 대하여 이렇게 가르치는데 그리스도께서 물로 씻는 이 외적 의식을 제정하시고 그의 피와 성령으로 나의 영혼의 더러운 것, 곧 나의 모든 죄가 씻겨짐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물로 씻어 몸의 더러운 것을 없애는 것처럼 확실합니다. 세례에서 우리가 분명하게 깨닫고 확신하는 것은 예수님의 피와 성령으로 나의 영혼의 더러운 것 곧 나의 모든 죄가 씻겨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세례 자체가 그러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으로 나의 모든 죄가 씻겨졌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성령으로 씻겨진다는 것은 세례의 과거적 관점이 아니라 현재적 관심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세례가 먼 과거에 일어난 사건으로 잊혀지며 기억에서 아련한 사건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주님께서 세례를 제정하셔서 눈에 보이는 사건으로 우리에게 보이신 이유는 현재적 은혜와 혜택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가 성령으로 씻김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성령으로 새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지체로 거룩하게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여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로 과거적 시점에서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을 말하는 듯 하지만 이것은 세례 이후에 세례자에게 지속적으로 세례가 미치는 영향이며 효력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새롭게 된 자는 그리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자는 거룩하게 되어 점점 더 죄에 대하여 죽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성령에 의해서 씻음을 받아 새롭게 되어진 자이며 새롭게 되고 있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그분으로 오는 영적 영양을 공급받아 거룩하게 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세례로 통하여 우리가 확신해야 하는 것은 나는 새롭게 된 자라는 자각과 나는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분께 붙어 있으며 그분과 교통하며 그분으로부터 은혜를 공급받아야 살 수 있으며 그분의 몸으로써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은 점점 더 죄에 대하여 죽는 것입니다.

 

세례를 물로 씻어 몸의 더러운 것을 없애는 것처럼 확실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세례라는 의식이 행하여 질 때 물로 씻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세례라는 것이 물로 씻는 행위인데 이것은 바로 눈에 보이지 않게 일어난 일들을 눈에 보이도록 우리에게 알게 하시며 깨닫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이미 세례자 안에서 일어난 일은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으로 나의 모든 죄가 씻어 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 일어났음을 눈에 보이는 물로 씻는 세례를 통하여 확인하며 확신하며 깨닫는 것이 바로 세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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